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고속철도 시승기] 서울-부산 2시간 40분, 박찬호 강속구 보다 두 배 빠르다!
[고속철도 시승기] 서울-부산 2시간 40분, 박찬호 강속구 보다 두 배 빠르다!
  • 이민학 기자
  • 승인 2004.04.2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고속철도 시대가 열렸다.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고속철도 시대가 열렸다.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여행스케치=서울] 고속철도 시대가 열렸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 40분이면 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단축된 시간만큼 생활모습도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시속 3백km로 달리는 고속철 안에서 앞으로 무엇이 바뀔까 곰곰 생각해보았다.

“이 열차는 지금 시속 3백km로 달리고 있습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왔을 때 창밖을 보았다. 무궁화호보다 오히려 진동이나 소음이 적은 객실에 앉아 있어선지 3백km라는 속력이 실감나지 않았다. 창밖을 봐도 별다른 느낌이 들어오지 않았다. 분명히 박찬호 선수가 던진 야구공보다 두 배 이상 빠른 속도일 텐데 말이다.

정작 놀란 것은 잠시 후였다. 서울에서 출발한지 20분이나 지났을까? 자리에 앉아 고속철도에 대한 안내 팜플렛을 읽고 객실 내부를 잠시 두리번거리는 사이에 천안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나왔다. 그제서야 “아니, 벌써?”라는 감탄과 함께 고속열차라는 의미가 생생하게 다가왔다.

일등객차는 식음료 서비스 등 항공기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일등객차는 식음료 서비스 등 항공기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고속열차는 앞뒤 두 대의 기관차에 18량의 객차가 달려있다. 여승무원 말이 서울 천안 가는 시간보다 열차 끝에서 끝까지 가는 시간이 더 걸린다고 한다. 그렇게 물리적으로 비교를 하고서야 시속 3백km라는 속력이 정말 빠르긴 빠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다니, 갑자기 자신이 촌스럽게 느껴졌다.

사실, 물리학자가 아닌 다음에야, 우리 보통 사람들에겐 속력이란 것이 비교 상대가 있을 때 또는 시간과 결합되었을 때 비로소 그 의미를 지닌다는 게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되었을 때 선조들도 그랬을 것이다. 당시는 시속 30km였다는데 열차가 달리는 모습을 본 독립신문 기자가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고 썼다는 걸 보면 말이다.

객차와 객차를 연결하는 통로가 영화에서 본 우주선 통로 같다.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객차와 객차를 연결하는 통로가 영화에서 본 우주선 통로 같다.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고속철도 역시 그렇다. 시속이 얼마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울 부산까지 2시간 40분, 서울 목포까지 3시간이라는 ‘시간’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사실 이 ‘시간’ 때문에 설왕설래 말도 많다.

혹자는 시간을 더 단축할 수도 있었는데 일부 구간에서 기존 철도노선을 이용하기 때문에 길어졌다고 아쉬워하고, 또 어떤 이들은 각 지방에서 자기 고장에 고속철도 역을 세워야 한다고 우기는 바람에 정차역이 늘어났고, 늘어난 만큼 자주 서야하니 이 때문에 저속철도가 됐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고속열차는 흔들림이 적은 데다 앞에 받침대까지 있어 독서엔 안성맞춤.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고속열차는 흔들림이 적은 데다 앞에 받침대까지 있어 독서엔 안성맞춤.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탑승 내내 창밖을 내다 보시던 할머니.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탑승 내내 창밖을 내다 보던 승객들.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어쨌거나 고속철도 시대는 열렸다. 정식 개통을 앞두고 시승식에 참가한 승객들은 ‘꿈의 열차’라는 기대감에 들뜬 표정들이었다. 남들보다 먼저 타본다는 의무감에(?) 구석구석 꼼꼼히 살펴보고 한마디씩 한다. 가장 먼저 떠오른 화제가 좌석배치였다.

정확히 한가운데서부터 양쪽을 마주보게 의자를 배치한 것. 거꾸로 가게 된 승객들이 의자를 돌려보려고 애쓰다가 고정됐다는 사실을 알고 의외의 표정을 지었다. “무궁화호도 의자를 돌릴 수 있는데….”

“프랑스에서 제작된 열차를 그대로 들여와서 그렇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계약이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통로도 비좁다고 불평들을 하시는데 우리보다 덩치가 큰 유럽 사람들이 사용하던 그대로입니다. 나중에 차차 개선되겠지요.”

이동식 판매카트가 없는 대신 통로 마다 음료 자판기가 있다.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이동식 판매카트가 없는 대신 통로 마다 음료 자판기가 있다.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여객 전무의 설명을 듣고 보니 통로도 비좁았다. 고속으로 달려야 하기 때문에 일반 열차에 비해 날씬하게 만들다보니 좁아졌다는 것이다. 때문에 “오징어나 땅콩 있습니다~”를 외치며 지나던 홍익회 이동판매카트도 운영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쓰던 걸 그대로 가져왔다’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 우리 정서에는 낯선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열차와 열차 사이에 있는 짐칸이나 빵을 데워 먹을 수 있는 오븐설비 등등. 여승무원이 오븐 설비를 우리 실정에 맞게 전자렌지로 교체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 외 다른 부분을 대대적으로 바꾸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한다. “좌석을 배정받다보면 뒤로 가는 분도 계실 수밖에 없는데, 사실 그렇게 가는 게 멀미가 덜 하다고 해요.”

통째로 수입한 객차는 우리 정서에 안맞는 부분도 있지만 안전시설은 잘되어 있다.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통째로 수입한 객차는 우리 정서에 안맞는 부분도 있지만 안전시설은 잘되어 있다.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뒤로 간다고 투덜거리는 시승객에게 여승무원이 애교(?)있게 답하고 넘어갔는데 당분간은 이렇게 넘어가야 할 듯. 사실 이런 불편함들이 크게 문제 될 것 같지는 않다. 대륙횡단 열차처럼 며칠을 타고 간다면 모를까, 말 그대로 고속열차니 만큼 어지간한 거리는 탔다 싶으면 내릴 생각부터 해야 하니까 말이다.

그보다는 빨리 가는 만큼 안전할까? 하는데 더 신경이 쓰였다. 고속열차의 등장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곳이 역시 돈이 도는 경제 분야. 옆 칸에 단정하게 넥타이를 맨 비즈니스맨들이 잔뜩 타고 있어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금호개발(주) 임원진들이 총출동 했다고 한다.

렌터카와 리조트 사업을 하는 기업답게 ‘고속열차 개통이 여행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는 묵직한 주제를 안고 아이디어 개발에 여념이 없었다. 목적지까지 고속열차로 가서 렌터카를 이용하면 고속도로 정체에 시달릴 필요도 없고, 운전하느라 녹초가 될 이유도 없으니 좋은 방법이긴 하다.

우리나라는 세계 5번째 고속열차 보유국이 됐다.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우리나라는 세계 5번째 고속열차 보유국이 됐다. 2004년 4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여행이란 가는 길에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곁에 있는 분이 빨라진 만큼 여행의 맛이 사라지는 게 아닐까 걱정을 한다. ‘그렇지, 여행의 맛은 느긋함이지’ 하고 속으로 맞장구치다가 문득, 한적한 국도를 타고 산천을 유람하기보단 고속도로를 이용해 목적지까지 질주하는 대개의 여행습관으로 미루어 볼 때 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핏발세우고 5~6시간 내리 운전하며 달려가기 보단 편안한 고속열차로 빨리 도착하곤, 여행지에서 느긋함을 부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Interview
이연수 여객전무
 “가장 안전한 여행이 될 겁니다” 시승을 위해 서울 동대구를 왕복한 고속열차에서 가장 바빴던 분. 열차 1량 당 56명, 총 9백여 명의 승객이 타는데 그 많은 사람들의 편의와 안전을 책임져야 하니 그럴 만도 하다. 본격 개통에 앞서 예상되는 불편함을 일일이 확인하고 개선점을 살펴야 하니, 신경을 쓸 일이 하나 둘이 아니다.

“객차까지 모두 수입하는 바람에 좀 불편한 점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대신 서비스만큼은 우리 승객에 맞게 최고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한다.

노은진 승무원
“빠르고 편안한 여행, 기대하세요!” 열차 3량 당 1명꼴로 탑승하여 승객들에게 접객안내와 방송, 식음료 서비스 등의 편의를 제공할 여승무원들도 고속철도 개통을 손으로 꼽아가며 기다리고 있다.

하루빨리 항공기 국내 노선 못지않은 서비스를 선보이고 싶은 것. 13대 1이 넘는 경쟁을 뚫고 선발됐다는 후문 때문에 더 눈길을 끌었는데 본인들의 자부심도 대단했다. “고속철도 문화의 시작을 담당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