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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여행동호회 따라가기] 바람처럼 산을 타는 사람들, 뫼솔산악회 포천 왕방산 시산제
[여행동호회 따라가기] 바람처럼 산을 타는 사람들, 뫼솔산악회 포천 왕방산 시산제
  • 이민학 기자
  • 승인 2004.05.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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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뫼솔산악회의 왕방산 트레킹. 2004년 5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뫼솔산악회의 왕방산 트레킹. 2004년 5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여행스케치=포천] 산길을 다니다보면 등산로를 표시하기 위해 매달아 둔 산악회 리본들이 눈에 뜨인다. 인터넷 검색사이트에서 검색을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산악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산악회가 있다. 산악회들도 각기 색깔이 있다. 뫼솔산악회를 따라 갔을 때 ‘질풍노도’란 말이 떠올랐다.

포천시내에서 심곡리로 넘어가는 무럭고개. 아침 9시30분이 조금 넘은 시각, 고개 마루에 11대의 관광버스가 나란히 섰다.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더니 ‘곧장’ 2차선 도로를 건너 언덕으로 올라간다. 산행 인원이 자그마치 4백 80명.

그 많은 인원이 도착하고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반 이상 산으로 올라간 듯 했다. 그 일사불란함에 기가 찼다. ‘아니, 산에 황금을 묻어 두었나? 군사 작전도 아니고….’ 산행을 촬영하자면 아무래도 선두에 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무럭고개에서 내리자마자 산으로 '돌진하는' 회원들. 2004년 5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무럭고개에서 내리자마자 산으로 '돌진하는' 회원들. 2004년 5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선두를 따라 잡으려 언덕길을 용을 쓰며 오르다보니 어느새 숨이 턱턱 목까지 찬다. “힘들죠? 이 산악회가 원래 이래요. 북한산에서 난다 긴다 해야 따라 다닐 수 있어요.” 왕방산에서 열릴 산악회 시산제를 취재하고 싶다고 했더니 특별히 안내를 맡아준 정수현-남자분이십니다. 여자 이름 같지요?-대장이 고충을 이해한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위로(?)를 한다.

뫼솔산악회는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산행을 한다는데 지난해 3백65일중에 1백80여일을 다녔다고 한다. 그 많은 산행을 빠짐없이 다니는 회원이 한둘이 아니라는데 그 말대로라면 주소만 도회지에 두었을 뿐 산에서 사는 사람이라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평일엔 버스 두 대, 주말에는 3대 정도의 인원이 꼬박 꼬박 참석합니다. 이렇게 활발한 산악회도 드물어요. 대개 버스 한 대도 못 채우기 일쑤거든요.” 회원 2천명.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산행에 열의를 가지고 참여하는 회원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다. 이제 갓 일년이 넘은 뫼솔산악회가 이렇듯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이유가 뭘까?

길은 외줄기, 사람 마음도 한마음. 2004년 5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길은 외줄기, 사람 마음도 한마음. 2004년 5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대답이 너무 간단했다. “뫼솔은 산을 타기 때문입니다” 그럼 다른 산악회는 바다로 가나? 그런 뜻이 아니다. 산을 타는 것 외에 신경 쓸 일이 없다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 움직이면 경비도 절약되고 서로 의지가 되니 든든하다. 그래서 산악회를 찾는데 단체라는 것 때문에 불편한 점도 있다.

개인행동을 하다가 산행 시간을 못 맞춰 남들을 기다리게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오가는 버스에서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는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 등등 단체란 게 그렇지 않은가. 뫼솔은 그럴 일이 없다. 오가는 버스 안에서 음주가무는 일체 금지이다. 이는 산악회를 운영하는 박정규-여자분이십니다. 남자 이름 같지요?-등반대장의 신조이다.

산행 안내는 버스에서 이뤄지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내리자마자 미리 알려준 코스대로 제각기 알아서 올라간다. 시간을 맞추기 위해 산행코스를 중간쯤에서 뚝 잘라 탈출로를 운영한다. 일정 시간까지 그 지점을 통과하지 못하면 완주를 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탈출로를 따라 하산시킨다. 쉽게 말하자면 ‘강퇴’ 시키는 셈이다.

포천 왕방산은 흙산으로 능선산행하기에 좋은 산이다. 2004년 5월. 사진 / 이민학 기자
포천 왕방산은 흙산으로 능선산행하기에 좋은 산이다. 2004년 5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돌아올 때도 바람처럼 휭 하고 떠나온다. 도착지에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가 하산하는 대로 태우고 인원이 차면 그냥 떠난다. 술 마실 겨를도 없으니 소란스러울 일이 없다. 느긋하게 눈을 감고 산행의 뿌듯함을 맛보며 졸다보면 어느새 집에 도착한다.

여럿이서 산행을 하면서도 혼자 가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산악회가 뫼솔이다. 때문에 산을 진짜 좋아하는 이들이 모여든다는 것. 정 대장도 이 점에 매료되어 작년 내내 전국 방방곡곡의 산행을 꼬박꼬박 따라다녔다고 한다.

“단체이면서도 개인주의 성향이 있는 산악회입니다. 산을 좋아해서 오는 분들이라 신경 쓸 일 없어 좋다고 합니다. 처음 온 분들은 일정이 너무 빡빡해 따라가기 힘들다고 하지만 좀 다니다보면 오늘 같은 산행은 싱겁다는 소리를 하게 됩니다.” 전국의 어지간한 산은 당일 코스로 다녀온다.

국사봉 오르는 비탈길에서 걸음이 더뎌진다. 2004년 5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국사봉 오르는 비탈길에서 걸음이 더뎌진다. 2004년 5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바로 엊그제도 전라남도 해남 땅끝 달마산을 올랐는데 새벽에 서울에서 출발해서 오후에 산행을 하고 저녁에 돌아왔단다. 그야말로 날아다니는 셈이다. 아닌 게 아니라 뒤쪽 어디에선가 몇몇 사람이 두런두런 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오늘 코스가 쉽고 시간도 너무 길다’‘시산제 때문에 사람이 많이 몰려서 그러니 소풍 나온 셈 치자’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해발 737m 왕방산 산신령이 들었으면 노하지나 않았을까. 감히 우습게 봤다고 말이다. 그런데도 날씨가 맑고, 바람도 적당해서 산행하기 딱 좋았다. 시산제를 올린다고 새벽같이 찾아온 정성 때문에 눈감아 준 것일까.

가다가 배고프면 삼삼오오 때로는 혼자서 요기를 하며 산을 즐긴다. 2004년 5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가다가 배고프면 삼삼오오 때로는 혼자서 요기를 하며 산을 즐긴다. 2004년 5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왕방산은 글자 그대로 왕이 방문했다는 산이다. 포천시 서북쪽을 두른 산으로 흔히 포천의 진산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보덕사로 이름을 바꾼 자리에 절이 있었는데 도선 국사가 머물고 있을 때 신라 헌강왕이 찾아 왔다고 한다. 그 후로 절은 왕방사, 산은 왕방산이 됐다는데 조선 태조가 왕자들간의 골육상쟁을 보고 상심해서 머물렀다는 이야기도 내려온다.

뫼솔은 산행 코스로 무럭고개에서 곧바로 능선에 올라 정상을 거쳐 국사봉까지 올라갔다가 그 아래 절골을 따라 깊이울 계곡으로 내려오는, 총 9.5km의 거리를 4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것으로 잡았다. 동북쪽에서 시작해서 남서쪽으로 쭉 능선을 타고 가다 왕방산 정상을 기점으로 꺾어져 서북쪽으로 돌아오는 긴 능선 산행이었다.

국사봉까지 내리 걸어온 회원들이 정상 헬기장에서 한숨 돌리고 있다. 2004년 5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국사봉까지 내리 걸어온 회원들이 정상 헬기장에서 한숨 돌리고 있다. 2004년 5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능선 산행의 장점은 툭 터진 시야. 황사만 아니었다면 멀리 국사봉이나 소요산, 운악산, 국망봉 등을 바라볼 수 있다는데 아쉬웠다. 흙산으로 길이 평탄하고 양옆으로 숲이 우거져 있어 가족과 함께 오붓한 산행을 하기에 딱 좋다. 깊이울 계곡이 흘러내리는 물을 가둔 곳이 깊이울 저수지. 심곡 저수지로도 불리는 곳이다.

저수지 못 미쳐 공터에서 뫼솔산악회의 시산제가 열렸다. 산악회의 운영자인 박정규 대장을 찾았는데 이것저것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본대로만 써주세요!’ 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휭하니 사라졌다. 박 대장은 산을 잘 타기로 소문난 여성산악인. 시산제 장소가 평지이긴 하지만 왔다 갔다 하는 걸음이 가뿐가뿐 나는 듯한 걸 보니 굳이 눈으로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제사상에 돼지머리와 고사떡이 올려지고 시산제가 시작됐다. 개회사와 선배 산악인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에 이어 축문 낭독. “…무거운 배낭을 멘 저희들의 어깨와 다리에 힘을 주시고, 험한 골짜기와 바위를 오르내리는 자일이 낡아 헤어지지 않게 하여 주시고….” 시산제는 한해 산행을 시작하면서 안전한 산행을 기원하고 먼저 간 산악인들을 추모하는 행사.

하산길에 한해 산행의 시작을 고하는 시산제가 올리고 모여서 음식을 나눠먹는다. 2004년 5월. 사진 / 이민학 기자
하산길에 한해 산행의 시작을 고하는 시산제가 올리고 모여서 음식을 나눠먹는다. 2004년 5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원래 음력 1월 중에 제를 올리는 게 맞는데 산악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날이 풀린 3월경에 치르는 곳이 많다. 요즘 같은 세상에… 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사시사철 산을 오르며 대자연의 은혜를 누리고 때로는 무서움을 경험하는 산악인들에겐 종교를 떠나서 뜻 깊은 행사이다.

이 날은 산악회의 일년을 결산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한해 산행을 시작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일종의 잔치인 셈. 평소에는 산행 후에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뫼솔산악회도 오늘만은 음식을 푸짐하게 차리고 술판까지 벌였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참가하는 바람에 행사진행요원들은 쩔쩔맸지만 일반 회원들은 그간 산행 경험을 나누며 우의를 새기는 신명나는 자리였다.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꼭 산행을 한다는 회원에게 ‘도대체 이 힘든 산이 뭐가 좋아서 그렇게 다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잘 모르겠다. 아마 중독인가보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땀 뻘뻘 흘리며 올라갈 때는 힘들어도 산을 내려오면 까맣게 잊고 다시 올라가고픈 생각만 난다나. ‘산이 거기 있어서’라는 식의 선문답 보다 솔직하게 들렸다.

Tip.
왕방산 가는길
의정부 -> 43번 국도 -> 포천 -> 87번 국도 (창수 방향) -> 무럭고개 -> 심곡리 -> 깊이울저수지 

산행 안내
1. 무럭고개에서 능선을 타고 왕방산 정상과 국사봉을 가는 코스
2. 심곡리에서 깊이울 계곡을 타고 올라가 왕방산 정상 또는 국사봉을 올랐다가 내려오는 코스
3. 호병골로 해서 보덕사를 거쳐 왕방산 정상을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코스 등 다양한 코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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