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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백두대간대종주②-한강기맥 첫 구간] 양수리에서 농다치고개까지, 한강보다 깊은 산 스무 고개를 넘다
[백두대간대종주②-한강기맥 첫 구간] 양수리에서 농다치고개까지, 한강보다 깊은 산 스무 고개를 넘다
  • 박상대 기자
  • 승인 2004.06.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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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양수리 -> 소리개고개 -> 골무봉 -> 진고개 -> 벚고개 -> 청계산 -> 말고개 -> 옥산 -> 노루목 -> 농다치고개. 약 18km에 이르는 트레킹 코스를 걸어본다. 2004년 6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양평]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할 때 산행소식을 제때 전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깊은 산과 도심의 기온차 때문에 도시에는 꽃이 피어도 산속에는 눈이 쌓여 있다. 애써 백두대간을 취재하고 다니는데 산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 신록은커녕 낙엽만 뒹굴고 있다. 결국 이번 달에는 백두대간 사진을 사용할 수 없어 봄기운이 감도는 한강기맥을 소개한다.

이른 아침, 아직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시각에 집을 나섰다. 콧노래를 불며 아파트를 나서는데 앞마당에서 라일락 향기가 봄바람에 흩날린다. 아침부터 기분이 상쾌하다. 4월의 마지막 주 토요일. 버스가 한강변을 달린다. 일주일 새에 숲이 많이 깊어졌다. 창문을 열지 않았는데도 봄기운이 가슴에 확 다가온다.

한강은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는듯 잔물결조차 보이지 않는다. 버스가 양수대교를 건너는 순간 심호흡을 한다. 강물이 짙은 녹색이다. 강변의 산들이 강물에 몸을 담그고 있다. 지금은 하늘나라로 돌아간 큰스님이 어느 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는 말씀을 해서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씀을 떠올릴 때마다 혼자서 피식 웃는다. “산과 물은 하나다”고 억지를 부리고 싶은 까닭에서다. 산이 있는 곳에 물이 있고 물이 있는 곳에 산이 있으니까. 더군다나 강물은 자기 품안에 산을 보듬고 흐르지 않는가. 이런 생각은 강이나 계곡이 있는 산을 오를 때마다 느꼈던 바다.

한강기맥을 시작하는 양서고교 뒷산에서 내려다본 양수대교와 서종면 일대. 2004년 6월. 사진 / 박상대 기자
한강기맥을 시작하는 양서고교 뒷산에서 내려다본 양수대교와 서종면 일대. 2004년 6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양수리에서 나는 또 그 말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한강기맥 산행을 위해 양서고등학교 뒷산을 오른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지 않은 모양이다. 길이 거칠다. 나뭇가지나 넝쿨식물들이 발목을 붙잡는다. 야산이라 그런지 가시덤불도 적지 않다. 배나무 과수원을 지나 숲길을 걷는다.

강가에서는 그토록 보드라운 봄바람이 불더니만 숲에 들어오니 바람이 없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코에 담을 바람도 모자란다. 이마에선 땀이 흐른다. 언제나 경험하지만 산행은 초반 10분이 고역이다. 10분 동안 온갖 번뇌가 다 지나간다. 중간에 포기하고픈 유혹과 정상에 이를 때까지 완주해야 한다는 욕망 사이에서 적잖은 갈등을 일으킨다.  

한강기맥 첫날이다. 모질게 마음먹지 않아도 당연히 완주해야 하거늘 부지런히 가야 한다. 첫 번째 봉우리에 올랐다. 왼쪽으로 북한강이 조금 보이고 뒤쪽으로 양수리 일대가 보인다. 북한강을 가로질러 중앙선 열차가 지나간다. 90년대 초, 중앙선 열차를 처음 탔던 날이 생각난다.

그 해 겨울, 눈이 왔는데 중앙선 열차를 탔다. 기차가 눈 덮인 산야를 지나 하얀 터널 속으로 들어가고 골짜기에 놓인 다리를 지날 때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은하철도가 이토록 아름다울까? 나는 아직도 중앙선을 타면 그때 일이 생각나 가슴이 뛴다. 산이 깊어질수록 초록 냄새가 난다. 두꺼운 껍질을 뚫고 솟아오른 연두색 이파리들이 초록색으로 짙어진다.

신갈나무의 연두색 이파리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햇빛에 빛나는 모습이 환상적이다. 2004년 6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신갈나무의 연두색 이파리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햇빛에 빛나는 모습이 환상적이다. 2004년 6월. 사진 / 박상대 기자

햇살에 부딪쳐 빛나는 연두색 신갈나무 이파리들이 여행객의 시선을 붙든다. 맑고 곱다.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니 얼마나 행복한가! 다시는 힘들다고 투정하지 말아야지. 산이 준 기쁨을 어찌 육체적 고통에 비할 수 있겠는가.

길섶에 여러 종류 꽃들이 피어 있다. 하얀 조팝나무, 민들레, 노랑 양지꽃, 연한 보랏빛 현호색, 노랑 제비꽃, 짙은 보라색 각시 붓꽃, 고사리 등등. 어떤 사람은 고사리와 취나물을 꺾어 모은다. 눈부신 자태를 뽐내고 있는 보라색 각시 붓꽃이 여행객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누군가 꽃 이름을 묻는다. 그동안 백두대간을 뛰면서 적잖은 질문을 받았다. 특히 여성 대원들이 꽃 이름을 묻는데 다행히도 아는 이름들이어서 답변을 해드렸지만 걱정이 된다. 들꽃 이름이 전문가나 책마다 조금씩 다르게 불리는 경우도 있고, 지방에 따라 다른 경우도 있고, 내가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다.

또 흡사하게 생겼는데 전혀 다른 이름을 가진 것도 있고, 모습이 조금씩 다른데 한 이름으로 불리는 꽃들도 있다. 깊은 산중에 있는 생강나무와 동네 뒷산에 있는 산수유, 참꽃 진달래와 개꽃 철쭉 등등.

물이 깊으면 산도 깊다더니 영락없는 말이다. 한강만큼 깊은 산이 이어진다. 오르고 내려가는 것이 산행이라지만 한강기맥은 좀 심하다. 애써 올라갔는데 곧장 내려가야 한다. 산행을 여러 시간 하다보면 능선을 타고 오르는 재미가 있다. 좌우를 둘러보고 뒤를 돌아보며 가야 심신이 즐거운 법이다.

양평군 서종면 수능리와 양서면 수왕리를 잇는 벗고개. 중도 탈락자를 위해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2004년 6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양평군 서종면 수능리와 양서면 수왕리를 잇는 벗고개. 중도 탈락자를 위해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2004년 6월. 사진 / 박상대 기자

그런데 영 그렇지 못하다. 숨가쁘게 올라가면 작은 산마루가 나오고, 산마루에 오르면 숨도 고르기 전에 곧장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는 길이라 편안한 게 아니라 억울한 기분이다. 한참을 또 내려가는데 벚고개가 나온다. 서종면과 양서면을 잇는 고개다.

우연희 대장이 예고한 대로 버스가 기다리고, 우대장이 하산하는 대원들에게 막걸리 한 잔씩을 따라준다. 이상한 날이다. 아침에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해장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있더니 중간에 또 막걸리를 나눠준다. 어쨌거나, 막걸리 맛이 꿀맛이다. 자연스레 한 잔을 더 마시고 다시 가파른 산을 오른다.  

청계산 중턱에서 돌아본 골무봉과 진고개. 산 높이는 높지 않지만 한강 주변에 있어서 깊은 맛이 난다. 2004년 6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청계산 중턱에서 돌아본 골무봉과 진고개. 산 높이는 높지 않지만 한강 주변에 있어서 깊은 맛이 난다. 2004년 6월. 사진 / 박상대 기자

경사가 심한 송골고개를 오르고, 또 오른다. 청계산 정상 4.5km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절망과 희망이 교차한다. 아직 절반까지 그만큼 남은 거다. 신갈나무와 떡갈나무가 숲을 이룬다. 산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소리만 듣고는 무슨 새의 울음소린지 알 수가 없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새는 우는가, 노래하는가? 아니면 지저귀는가? 새들도 울 때가 있고, 노래할 때가 있다. 뱀이나 사냥꾼한테 쫓길 때는 울고 마음씨 좋은 여행객들을 만날 때는 노래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가는데 노루길, 청솔모길 따위를 알리는 안내판들이 서있다.

청계산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대원들. 산마루에서 남한강과 용문산과 유명산이 보인다. 2004년 6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청계산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대원들. 산마루에서 남한강과 용문산과 유명산이 보인다. 2004년 6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청계산 정산이다. 여전히 자잘한 산마루를 다섯 개쯤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한 뒤다. 겨우 656m다. 백두대간 1천m를 오르던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하지만 여간 까탈스러운 게 아니다. 청계산 정상에 오르니 시야가 사방으로 다 트인다. 남쪽으로 남한강이 흐르고, 북쪽으로 북한강이 흐른다. 그 너머로 수종사가 보이고, 동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유명산과 용문산이 아스라이 앉아 있다.  

청계산에서 다시 내리막길을 가다가 된고개를 오른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된다. 고갯길에 밧줄이 여럿 있다. 밧줄은 아마 산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사람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설치해 두었을 것이다. 밧줄을 잡고 산을 오르면서 생각해본다. 먼저 오른 사람은 나를 위해 밧줄을 설치해 놓았는데 나는 뒤에 오를 사람을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겨우 카메라에 좋은 풍경을 담아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 뿐. 다행히도 솔터산악회원들 중에는 나중에 오를 사람들을 위해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이 많다. 이상하게도 나이가 많은 분들이 더 적극적으로 산길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줍는다. 세상을 살아본 만큼 사람들을 사랑하는 모양이다. 국토사랑 자연보호라지만 사실은 뒤에 오르는 사람들을 위한 쓰레기 줍기가 아닐까.

옥천면과 서종면을 잇는 농다치 고개. 2004년 6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옥천면과 서종면을 잇는 농다치 고개. 2004년 6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말머리봉과 옥산을 거쳐 양평군 서종면과 옥천면을 잇는 농다치고개에 이른다. 유명산과 용문산은 금방 손에 잡힐 듯한데 여전히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하루 동안 20회, 스무 고개 이상을 더 오르락내리락 했을 것이다.  

중미산과 유명산이 먼 발치에 서 있다. 지친 다리를 끌고 농다치고개에 이르니 막걸리가 기다리고 있다. 하산주를 마시는 시간. 아직 후미는 먼 뒤쪽에 있는 모양이다. 먼저 골인한 사람들은 후미 대원들을 기다리며 막걸리를 마신다. 우정을 키우는 중이다.  

Tip. 백두대간
백두대간은 일제때부터 태백산맥으로 불린 한반도의 큰 등줄기로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를 말한다. 두로지능은 강릉 두로봉에서 시작하여 오대산 비로봉 계방산 운두령 구목령 운문산 수리봉 태기산 시루봉 용문산 농다치고개 청계산 양수리까지 163km에 이르는 산줄기인데, 2000년 동국대 산악부에서 처음 답사하여 두로지능이라 명명하였다. 솔터산악회에서는 현재 매주 토요일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중인데 마지막 주에는 한강기맥을 종주한다.

백두대간을 이끄는 우연희 대장과 정남회님. 2004년 6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백두대간을 이끄는 우연희 대장과 정남회님. 2004년 6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솔터산악회
솔터산악회는 세상에 나온 지 역사는 일천하지만 국토를 사랑하고 자연을 보호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산에 오를 때는 쓰레기를 줍고, 산불조심 캠페인도 벌이고, 산에서 내려오면 친교를 나누며 하산주를 마십니다. 지난 4월 17일 육십령에서 갑신년의 무사 산행과 백두대간 종주를 기원하는 산신제를 올렸습니다.

마침 캐나다에서 온 스티브스와 맥브라이드 두 젊은이가 산행에 합류하여 산행에 활기가 넘쳤습니다. 솔터산악회의 갑신년 백두대간종주는 스포츠용품회사 M&R과 <여행스케치>가 함께 합니다. 매주 토요일 출발하는 대간 종주에 참여하실 분은 솔터산악회로 연락하여 예약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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