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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이달의 섬] 신안 도초도 고란마을, 우물가엔 두레박으로 물긷는 어머니가 살고...
[이달의 섬] 신안 도초도 고란마을, 우물가엔 두레박으로 물긷는 어머니가 살고...
  • 김연미 기자
  • 승인 2004.07.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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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하누넘해수욕장 풍경.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하누넘해수욕장 풍경.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여행스케치=신안] 도초도는 우리나라 서남단 다도해에 자리하고 있는 신안군 8백29개의 섬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만큼 큰 섬이다. 모양이 고슴도치와 닮았다하여 도초라 불리는 섬.

비 오는 섬은 짠하다. 길 위에 널어놓은 종자 시금치가 걷어져서 비닐에 싸이는 사이 종종거리는 아낙의 머리가 축축히 젖어 있다. 그렇게 하나둘 비설거지가 끝나면 길은 젖는다. 그 섬에 하루 종일 돌아보아도 다 볼 수 없는 33개 마을이 있다.

마을은 겉모습만 보면 그냥 평범한 시골동네에 불과하지만 집을 기웃거리다보면 민속마을을 거니는 듯 하다. 꾸며진 마을이 아니라 대대로 이어져온 손때 묻은 물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부엌 찬장, 고무래, 두레박 등. 이제는 없어져가는 물건들이 우리네 할머니 삶처럼 남아있어 안쓰럽고 고맙다.

고란마을 위쪽에 있는 고막동 할머니집은 우물이 있고, 쌀 창고가 있고, 초가 뒷간이 있고, 바람을 막아주는 뜸이 있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객원기자
고란마을 위쪽에 있는 고막동 할머니집은 우물이 있고, 쌀 창고가 있고, 초가 뒷간이 있고, 바람을 막아주는 뜸이 있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객원기자

5년 전만해도 50여 개의 초가집이 있었다고 한다. 이제는 살림집이 다 없어지고 헛간채만 몇 채 남아있다. 섬이지만 어업보다 농사를 많이 짓는다. 그래서 집안에는 어업과 관련된 그물, 낚싯대 등은 보이지 않는다. 수로가 발달되어 바다낚시보다 붕어낚시를 하러 찾는 사람이 더 많다. 바다를 건너와서 민물낚시를 즐기는 재미난 섬이다.

여름에는 벼농사를 짓고 겨울에 ‘섬초’라고 하는 시금치를 심는다. 갯벌 근처 염전만 없었다면 섬이라는 걸 까맣게 까먹겠다. 고란마을은 도초도에서도 큰 마을이다. 빈집이 이따금 보이지만 70여 가구가 살고 있다. 바다가 아닌 고란평야가 펼쳐져있다.

해학스러운 장군상이 고란마을에 액운이 들지 않도록 잘 지키고 있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객원기자
해학스러운 장군상이 고란마을에 액운이 들지 않도록 잘 지키고 있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객원기자

마을 앞에 서있는 높이 5.5m의 장군석에는 전설이 전해진다. 먼 옛날, 마을에 괴질이 번져서 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마을은 폐허로 변해가고 사람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 때 어디선가 노승이 ‘짠’하고 나타나서 마을 앞에 장군 모양 바위를 세우라고 했다. 사람들은 서둘러서 장군 바위를 세웠다.

그 후 마을에 나쁜 액운은 없어졌다고 한다. 너무나 급하게 세운 장군이라 그런가, 서 있는 자세는 어정쩡하고 짧은 옷소매에 아기 같은 손이 앙증맞아서 웃긴다. 마을을 지키기보다 지나가는 사람을 놀라게 하고 ‘크크’ 웃는 모양이다. 장군상을 지나서 마을로 들어서면 돌담길이 먼저 눈에 띈다.

담은 집과 집을 경계 짓기보다 이웃을 서로 이어주고 그 소실점에 대문이 활짝 열려있다. 골목에서 마을 어른들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낯선 이방인이 되어서 많은 골목들을 떠돌았지만 이곳처럼 마음 편한 곳이 없었다. 사람 좋다고, 너그럽다고, 시골 인심이 살아있다는 이런 말 필요없다. 투명하지만 물처럼 깊은 원형의 마음이 살아있다.

고란마을은 우물과 수도가 함께 있다. 아주머니는 아직도 두레박에 우물물을 길어서 쓰고 있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고란마을은 우물과 수도가 함께 있다. 아주머니는 아직도 두레박에 우물물을 길어서 쓰고 있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마을의 빈 집은 외양간이 되었다. 허물어진 흙담 사이로 소들이 고개를 내밀고 사람들도 하지 않은 경계를 한다. 지붕에 있던 고양이가 후다닥 달아난다. 집은 우물을 품고 있다. 옆에 수도를 만들어 놓았어도 아주머니는 두레박을 내려서 우물물을 푼다.

어린 날은 우물이 무서웠다. 밑이 보이지 않는 우물에서 뭔가 나와서 잡아당길 것 같은… 우물 속 물빛이 검었다. 고란마을에서 2개의 우물을 보았다. 집집을 다 들여다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몇 개의 우물이 더 있겠다 싶다. 우물에 두레박을 넣는다.

줄이 스르르 풀리면서 “철푸덕” 두레박이 물에 주저앉는다. 푸른 물소리가 우물 안에서 부딪힌다. 두레박이 철철 넘치도록 욕심껏 물을 올린다. 물이 싱싱하다. 고란마을 사람들, 맑은 그늘 같은 삶의 소리가 나는 듯 하다.

마을이 넓다. 초가지붕을 지나서 돌담길이 이어진다. 할머니는 처음 만난 사람을 대문 밖까지 배웅하며 “조심해가라!” 손사래 친다.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고란마을의 아름다운 돌담길.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고란마을의 아름다운 돌담길.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고란마을의 풍경. 따뜻한 할머니의 배웅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고란마을의 풍경. 따뜻한 할머니의 배웅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Tip. 도초도 옆 비금도
비금도는 도초도와 서남문대교로 연결되어 있어서 두개의 섬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비금도 주위로 사람이 살고 있는 섬이 두 군데, 그리고 79군데의 무인도가 있다. 비금도는 마을이 35곳이나 되며 도초도보다 약간 더 큰 섬이다.

특히 비금도는 우리나라 최초 천일염을 생산한 곳으로 유명하다. 평안남도 용강군 주을염전으로 징용갔던 박삼만 씨가 해방이 되자 고향에 돌아와서 개펄을 막아 1946년에 ‘구림염전’을 개척했다. 그 이전에는 바닷물을 솥에서 끊여서 소금을 만들었으니 ‘구림염전’이 최초의 천일염이다.

지금이야 값싼 수입 소금으로 가격이 떨어졌지만 1970년대 까지만 해도 ‘돈이 날아다닌다’ 뜻으로 ‘飛金島’할 만큼 염전사업이 호황을 누렸다. 비금도, 도초도의 소금이 좋은 점은 바다가 오염이 되지 않아서 깨끗하다는 게 첫째다. 햇볕과 바람이 좋아서 소금알갱이가 굵고 희며 잘 부스러진다.

구름 사이로 오랜만에 살짝 고개 내민 해가 염전을 찾는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구름 사이로 오랜만에 살짝 고개 내민 해가 염전을 찾는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소금 맛은 짜고 쓰다고 생각하는데 비금도 소금은 뒤끝이 달다. 그래서 김치를 담아도 달다고 한다. 3월부터 10월까지 장마철을 뺀 6개월간 좋은 소금이 난다고 한다. 현재는 수차가 다 없어지고 모터로 바닷물을 해주에 담았다가 염전에 넣는다. 해주 하나에 2천7백평 염전에 바닷물을 댈 수 있다고 한다.

현재는 값싼 수입산 소금과 일을 할 수 있는 젊은 인력이 없어서 폐전된 염전이 많다. 올해는 30kg이 5천7백원으로 매매되고 있어서 작년보다는 형편이 조금 나아진 편이라고 한다. 비금도는 좋은 해수욕장이 많다. 해당화 향기가 가득하고 사구가 아름다운 명사십리, 원평해수욕장, 하누넘해수욕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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