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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1박2일 주말여행] 경남 남해, 거친 바다를 일구는 사람들
[1박2일 주말여행] 경남 남해, 거친 바다를 일구는 사람들
  • 김연미 기자
  • 승인 2004.07.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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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다랭이마을 풍경.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다랭이마을 풍경.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여행스케치=남해] 척박한 땅을 옥토로 일군 다랭이논이나 거센 바다에 죽방렴을 세운 남해사람들의 질퍽한 삶이 정체된 일상을 자극한다.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싶을 때 남해로 가라.

가천 다랭이마을
몇 년 전, 이곳을 찾은 적이 있다. 더위가 땅에서 올라올 정도로 더웠다. 다들 축축 늘어지는 더위 속에 바다를 마주한 벼들이 어찌나 푸르던지, ‘헉’ 소리가 나올 만큼 신선했다. 그 때 찍은 벼 사진을 엽서로 썼는데 엽서를 받은 지인들이 좋아했다. 지금, 가천 다랭이논은 마늘밭이다.

마을 뒤 응봉산 자락이 바다로 쏟아지는 급경사 지형. 언덕을 일궈 만든 백층의 계단식 논밭, 그 논이 다랭이논이다. 돌땅을 옥토로 만들기 위해서 남해 사람들은 여수까지 배를 끌고 가서 여수 사람들의 분뇨를 가져다가 거름으로 썼다고 한다. ‘남해 똥배기질’이란 말이 이 때문에 나왔단다.

다랭이 마을은 언덕에 기대어 집을 짓는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다랭이 마을은 언덕에 기대어 집을 짓는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집도 급경사에 짓다보니 담이 마을 골목과 붙어있거나 담과 길이 구분 안 될 정도로 낮다. 그래, 집안도 낮은가 들여다보니 낮지 않다. 집은 길에 기대어 세워졌지만 생활공간은 바다를 향한다. 새로 지어진 집도 마을 모습에 거슬리지 않게 지어졌다. 유명해지면 변하는 게 당연한데, 가천은 옛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바다로 가는 길에 남자 성기와 임신한 여자를 닮은 바위가 있다. 소원을 빌면 들어준다는 암수 미륵이다. 바다가 보이는 막걸리 집에서 보리새우무침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잔 마시며 근심을 잠시 내려놓는다. 고령의 노인들이 일구는 다랭이논에 남해의 굵은 마늘이, 이제 막 뿌리를 내리는 벼가 해풍을 맞으며 자란다. 꿋꿋한 남해의 생명력을 만난다.

말목 3백여 개를 원통으로 꽂고 그 앞에 'V'자 모양으로 꽂아서 원시어업 죽방렴을 만든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말목 3백여 개를 원통으로 꽂고 그 앞에 'V'자 모양으로 꽂아서 원시어업 죽방렴을 만든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원시어업 죽방렴
삼동면과 창선면을 잇는 창선교에서는 남해에만 있는 원시어업 죽방렴을 볼 수 있다. 창선교 아래가 지족해협이다. 지족해협은 물이 맑고 물살이 빠르기 때문에 이곳에서 잡히는 수산물이 특히 담백하고 쫄깃하다. 이 지족해협에는 23통 죽방렴이 있다.

죽방렴은 바닷물의 흐름을 이용해서 고기를 잡는 방법으로 조선 예종(1496) 때 <경상도속찬지리지>에도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오래된 어업이다. 원시어업이라 말하지만 사실 가장 과학적인 방법으로 고기를 잡고 있다. 자본주의가 양으로 승부한다면 죽방렴은 질로 승부한다.

죽방렴은 길이 10m 정도의 참나무 말목 3백여 개로 만든다. 물살이 빠르고 수심이 얕은 개펄에 원통을 주렴처럼 엮고 그 앞에 V자 모양으로 말목을 꽂는다. 지족해협은 물살이 세기 때문에 물고기들이 물을 거슬러 오를 때, 큰 물고기는 앞으로 나아가지만 작은 고기나 멸치 등은 힘이 달려서 뒤로 밀려난다.

지족마을은 죽방렴을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지족마을은 죽방렴을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V자 모양의 주렴은 물살을 잠재우기 때문에 그 곳으로 고기들이 들어간다. 원통의 문은 물이 들어오면 열리고 물이 빠지면 닫히기 때문에 고기들이 V를 따라서 원통 안으로 들어가면 나오지 못한다. 볼락, 놀래미, 감성돔, 도다리, 붕장어, 멸치 등이 잡힌다.

그물로 멸치를 잡을 경우, 그물에 붙은 멸치를 털어내기 때문에 머리가 잘리거나 비늘이 떨어져서 상처가 난다. 그러면 상품가치가 떨어진다. 반면에 죽방렴 멸치는 족지(잠자리채 비슷하게 생겼음)로 건져내기 때문에 상처가 나지 않아서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지족해협의 센 물살이 육질을 쫀득쫀득하게 한다.

그래서 죽방렴에서 잡은 멸치가 비싸고 맛이 좋다. 이 죽방렴은 건물 한 채 값이 나갈 정도로 비싸다. 특히 지족마을은 죽방렴 내부를 볼 수 있게 위에다 다리를 놓아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러나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지 쓰레기가 많이 들어가 있다. 자세히 보면 그 사이로 물고기들이 보인다.

망운산 정상은 해발 785m. 용두봉 가는 길.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망운산 정상은 해발 785m. 용두봉 가는 길.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망운산
망운산은 남해 사람들이 좋아하는 산이다. 금산의 비경에 밀려서 관광객의 발길이 뜸하지만 알만한 등산객은 이 곳을 찾는다. 금산은 계곡을 따라서 등산을 하기 때문에 산 정상이나 상사바위에 올라서야 앵강만과 미조가 보인다. 그러나 망운산은 남해에서 가장 높은 해발 785m로 능선만 올라서도 남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특히 맑은 날은 서북쪽에 지리산 천왕봉이, 서쪽으로 전남 광양과 여수 돌산도가, 동쪽으로 사천과 고성이 보인다. 가파르지 않은 능선을 따라서 펼쳐지는 남도의 바다가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련하게 다가온다. 등산을 잘 한다면 남해 사람들이 잘 가는 등산코스 서변리-관대봉-망운산 정상-철쭉군락지-아산리 오동마을로 이어지는 3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가 좋다.

많은 여행객이 이용하는 하방사-망운암-망운산 정상에서 되돌아 내려오는 1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도 좋다. 등산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망운산은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차를 이용해서 서면 중리마을쪽으로 5km 오르면 망운산 정상인 KBS 철탑까지 갈 수 있다.

지금이야 철쭉이 다 졌지만 5월초에 철쭉이 많이 핀다. 마음 가는 대로 바위나, 산 능선에 앉아서 남해 바다 일몰을 바라봐도 좋다. 망운산 정상은 명료하지 않다. 남해 사람들은 정상석이 있는 곳이 정상이라 하고 국립지리원은 KBS 철탑이 있는 봉을 정상으로 표기하고 있다.

철탑에서 바라보면 바다와 이어지는 능선은 금세 바다로 갈 수 있을 듯이 가까이 보인다. 그래서 쉽게 생각하고 용두봉을 지나서 예계마을로 내려오는 등산로를 탔더니 2시간 30여분이 걸렸다. 여행은 오만할 정도로 자신감을 갖게 한다. 늘 준비를 하고 시작하지만 딱 맞는 정보는 없다.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무식하게 덤벼든다. 2시간 정도는 바다가 보이는 능선을 따라서 등산을 할 수 있어 좋았다. 마을에 가까워져서야 숲으로 들어간다. 숲에서 뱃고동 소리가 새소리처럼 들린다. 그러나 바다가 보이지 않아서 답답하다. 마을로 들어서기 직전의 30여분 정도, 그 시간이 가장 길고 지루하다.

하산 길 그쯤이 고비인 듯하다. 차를 철탑이 있는 주차장에 세워두고 능선을 타고 싶다면 용두봉까지 권하고 싶다. 앞, 뒤로 보이는 바다가 다르게 다가온다.

용문사는 전국 3대 지장도량의 하나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용문사는 전국 3대 지장도량의 하나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호구산 용문사
비온 뒤라 용문산은 비구름에 덮여있다. 부도 밭을 지나서 일주문으로 들어선다. 나무는 여름으로 가고 있는지, 계곡에 그늘을 드리우고 물소리를 깊게 한다. 절은 크지 않고 아담하다. 소각장 옆 나무는 몸을 깊게 숙이고 합장을 하듯 절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나무를 따라서 숙연하게 절로 들어선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금산에 보광사를 짓고, 뒤에 호구산에 첨성각을 세운다. 그 후 금산에 있던 보광사를 이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용문사는 전국 3대 지장도량의 하나다. 미륵불이 올 때까지 현세에 머물면서 육도 중생을 제도한다는 지장보살을 모신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천왕을 모신 천왕각을 유심히 보라.

용문사 뒤에는 차밭이 있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용문사 뒤에는 차밭이 있다.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보통 사천왕 밑에 깔려 신음하는 것은 못된 귀신들이지만 이곳은 양반과 탐관오리가 깔려서 신음하고 있다. 내세의 편안함을 말하기보다 현세의 고통과 함께한 절. 임진왜란 때는 승병들이 일어나 호국사찰의 위상을 높였고, 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용성스님이 머물기도 한 곳이다.

절은 사람들을 배려한 흔적이 곳곳에 서려있다. 대웅전 가는 왼쪽에는 휠체어가 다닐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대웅전 뒤는 차밭이 잘 가꾸어져 있고 텃밭은 상추가 자란다. 찻잎을 따는 보살의 손길이 바쁘다. 비가 오락가락한다. 구름다리를 지나 천왕각 뒤편 돌계단에 올라보라. 대나무 잎이 수런거린다. 용문사에 맑은 기운이 돈다.

Tip.  청산·삼천포대교에서 시작하는 남해여행
남해는 남해대교와 청산·삼천포대교로 가는 두 개의 길이 있다. 남해대교는 그 동안 세인들의 입에 많이 올랐으니 다시 말하면 입만 아프고 청산·삼천포대교로 남해여행을 시작해보라. 길이 3.4km 사천과 남해를 잇는 5개의 다리가 2003년 4월에 완공. 엉개교, 단항대교, 늑도교, 초양교, 삼천포대교가 남해 가는 길을 즐겁게 한다.

왕후박나무 모습.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왕후박나무 모습.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① 왕후박나무
청산·삼천포대교를 지나서 20여분 가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높이 9.5m 후박나무(천연기념물 299호)를 볼 수 있다. 옛날 충무공이 이 나무 밑에서 점심을 먹었다고 한다.

당항.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당항.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② 당항
당항에서는 수산물 경매를 볼 수 있다. 경매하는 뒤로 당항대교가 보인다.

구미.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구미.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③ 구미
영화 ‘고독이 몸부림 칠 때’의 배경지. 뒤쪽으로 골프장이 생기면서 옛 모습은 잃어가고 있지만 조용하다.

공룡발자국 화석.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공룡발자국 화석.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④ 공룡발자국 화석
청산면 가인마을 바닷가에는 1억1천만 년 전 백악기 공룡화석이 있다. 특히 익룡발자국으로 추정되는 발자국이 있다.

물건방조어부림.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물건방조어부림.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⑤ 물건방조어부림
남해에는 15곳의 방풍림이 있다. 그 중 물건방조어부림이 가장 큰 방풍림이다. 3백50년 된 이팝나무, 모감주나무, 팽나무 등 활엽수림으로 해풍과 해일 등의 피해를 막는다.

해오름예술촌.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해오름예술촌. 2004년 7월. 사진 / 김연미 기자

⑥ 해오름예술촌
물건방조어부림에서 3분 거리에 있다. 미술, 옛 물건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도자기, 알공예 등을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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