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11월호
[백두대간 종주기③] 지리산과 덕유산 삼도봉에서 붙잡은 작은 생각, 태초에 산은 하나였다
[백두대간 종주기③] 지리산과 덕유산 삼도봉에서 붙잡은 작은 생각, 태초에 산은 하나였다
  • 박상대 기자
  • 승인 2004.07.0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황악산 오르는 길목에서.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황악산 오르는 길목에서.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전남] 산행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잡념을 없앤다는 것. 하지만 백두대간 삼도봉에서 잠시 생각했다. 산  아래서 이전투구를 벌이는 정치인들과 그 밑에서 빌붙어 밥을 빌어먹는 소인배들의 행각을. 우중 산행의 작은 재미도 함께 소개한다.

코스 : 백운산 -> 깃대봉 -> 삼도봉 -> 대덕산 -> 부항령 -> 삼도봉 -> 화주봉 -> 황악산 -> 궤방령

백두대간 삼도봉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 지점이 전북 남원 주촌리였다. 그 무렵 이 땅에는 4월 국회의원 선거 바람이 한창이었다. 선거 때만 되면 참 희한한 바람이 분다. 20여년 전, 처음 투표권을 가진 때부터 느껴온 바람이다. 좌우 이념과 지역색을 부채질하는 바람이다. 대선 때나 총선 때나 어김없이 그 바람은 분다.

이번에도 다시 불고 있었다.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오르다보면 왼발은 남원 땅을 밟고 오른발은 함양 땅을 밟지요. 좀더 오르면 왼발은 무주 땅을 딛고 오른 발은 김천 땅을 딛고….” 동행한 모교수님이 하루에 수천 번씩 전라도와 경상도를 오간다면서 웃는다.

암봉에 서서 무주군 일대를 바라보는 대원들.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암봉에 서서 무주군 일대를 바라보는 대원들.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선거 바람은 좌우의 땅에서 확연히 다르게 불었다. 대간 능선의 왼쪽과 오른쪽에서 지지하는 정당이 너무나 달랐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어처구니없는 투표, 이해할 수 없는 몰표를 던진다. 백두대간을 타는 동안 선거는 끝났고, 결과는 예전과 별 다른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 동서로 전라도와 경상도로 지지 정당은 명확히 구분되었다.

그 무렵 등반대원들은 중요한 지점에 이르렀다. 덕유산 삼도봉, 전라도와 경상도와 충청도가 만나는 지점 삼도봉. 조선 태종 때인 1414년 조선을 8도로 나눌 때 충청, 경상, 전라 삼남의 ‘분기점’이 되면서 붙여진 이름. 지금도 충북 영동, 경북 김천, 전북 무주의 3도가 ‘마주치는 곳’이다.

기자는 삼도봉 정상에 앉아 삼도가 갈라지는 지점인지 만나는 지점인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아하, 삼도봉은 ‘만나는 지점’이다. 아니 본래는 하나였다. (참고로 백두대간에는 삼도봉이 셋 있다. 전북과 전남과 경남의 지리산 삼도봉, 전북과 경북과 경남이 한 데 모여 있는 산봉우리가 있고, 충북과 전북과 경북이 만나는 삼도봉이 있다.)

덕유산 삼도봉(1,176m) 정상에 10평 남짓한 넓은 공터와 삼도 화합비가 서 있다. 용이 여의주를 받치고 있는 대리석 돌덩이다. 거기에 비를 새운 내력을 새겨 놓았다. 얼마나 화합하지 않았으면…. 먼 훗날 후손들이 보면 이 시대를 살다간 사람들이 산줄기를 사이에 두고 서로 으르렁거리며 살아온 세월을 얼마나 비웃을지 씁쓸하다.

우중산행에서 암릉을 오를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우중산행에서 암릉을 오를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덕산재에서 해인산장까지 우중 산행
구불구불 고갯길을 10여분 오른 버스가 덕산재에 대원들을 내려놓는다. “비가 오후 늦게부터 온다고 했는데….” 한 대원이 하늘을 쳐다보며 불만을 토로한다. 이미 각오를 했지만 빗방울이 굵어지니 걱정이 앞선다. 비 오는 날까지 산행을 해야 하나? 그러나 대원들은 비옷을 입거나 우산을 들고, 더러는 방수 점퍼를 입고 산을 오른다.

주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내 목에 걸고 점퍼 속에 감춘다. 그런 모습을 보고 최회장께서 한 말씀 건넨다. “오늘은 비 때문에 박기자 공치겠네요.” “글쎄 말입니다. 아무래도 허탕칠 것 같은데요.” 멋진 대간길을 촬영하기는 이미 글렀지만, 운이 좋으면 예쁜 꽃들을 촬영할 수 있으리라.

하얀 꽃대를 드러낸 은대난초.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하얀 꽃대를 드러낸 은대난초.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쥐오줌풀꽃.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쥐오줌풀꽃.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산행 중 마주친 애기나리꽃.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산행 중 마주친 애기나리꽃.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산을 오르는데 빗방울이 더 굵어진다. 능선에 올랐는데도 앞산이 보이지 않는다. 비옷을 차려 입고 산행하는 모습이 극성스러움을 넘어 존경스러워 보인다. 별꽃 모양을 한 하얀 애기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눈부시게 하얀 은방울꽃이 수줍게 피어 있다. 둥굴레는 새하얀 꽃에 빗방울을 대롱대롱 매달고 있다. 그 물방울이 여행객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은대난초가 하얀 꽃대를 흔들며 당당히 서 있다. 홀아비꽃대도 이름답지 않게 무리를 지어 꽃을 피우고 있다. 틈틈이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누른다. 과연 이토록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에 생생하게 담을 수 있을지 가슴을 졸인다.

비옷을 입고 산행중인 대원들. 화주봉에서 삼도봉으로 가는 길.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비옷을 입고 산행중인 대원들. 화주봉에서 삼도봉으로 가는 길.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뒤를 따르던 한 대원이 슬그머니 우산을 씌워준다. 비가 내리니 먼 산을 볼 수 없어 아쉽지만 발 아래만 열심히 볼 수 있어 많은 꽃들을 만나게 된다. 세상 만사는 어떤 경우든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공존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확인한다. 작은 암봉들이 앞을 가로 막는다.

비 오는 날 산행할 때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암봉이나 흙길이나 미끄럽기는 마찬가지다. 자연스럽게 먼저 오른 사람이 뒤에 오르는 사람의 손을 붙들어 준다. 사람들은 이미 남남이 아니다. 산이 하나이듯 산을 타는 사람들의 마음도 하나다.

신갈나무 숲이 산길을 음침하게 한다. 몸이 조금씩 떨린다. 이럴 때 따끈한 커피나 위스키를 한 잔 마셨으면 좋겠는데 가진 게 없다. 나중에 또 빗길 산행을 하게 된다면 두 가지를 준비해야겠다. 빗방울이 가늘어지더니 곧 는개로 바뀐다. 신갈나무 숲 사이로 멀리 펼쳐진 산등성이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백두대간을 관통한 터널과 고속도로를 자주 마주할 수 있다. 부항령 고개에서.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백두대간을 관통한 터널과 고속도로를 자주 마주할 수 있다. 부항령 고개에서.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골짜기로는 하얀 운무가 짙게 흐른다. 유감스럽게도 카메라에 담을 수 없다. 안개가 너무 짙다. 하나님을 부른다. 이렇게 고생하며 산을 타는데 사진 찍을 기회를 안 주는 거냐고. 곧이어 하늘이 조금 열리고 넓은 초원지대가 펼쳐진다. 능선길이라 먼 산까지 카메라에 잡힌다. 속으로 야호를 외치며 계속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모처럼 본 장관이다. 서너 시간 계속 된 어둠 속에서 광명 천지를 만난 것이니 황홀한 기분을 감출 수 없다.

능선 군데 군데 야생 멧돼지들의 흔적이 눈에 띈다. 아마도 약초나 나무 뿌리를 캐먹은 흔적이 아닐까? 아직 멧돼지와 마주친 적은 없지만 숲속으로 긴장한 시선을 날린다. “야, 더덕이다!” 앞서 가던 대원이 막대기로 더덕 뿌리를 파헤친다. 손가락 굵기 만한 더덕을 하나 캔다.

“왼쪽으로 멀리 있는 봉우리가 석기봉이고, 그 뒤가 민주지산. 그리고 맨 앞에 우뚝 서 있는 봉우리가 삼도봉이에요.” 한 대원이 설명해 준다. 그 삼도봉에서 선두로 달리는 대원들이 손을 흔들어 보인다. 왼쪽으로 보이는 민주지산 능선길은 몇 해전 특전사 병사들이 겨울훈련 중에 사고를 당한 곳이다. 그 후로 지어 놓았다는 쉼터 건물이 보인다.

백두대간 종주를 함께한 대원들.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백두대간 종주를 함께한 대원들. 2004년 7월. 사진 / 박상대 기자

가파른 오르막길을 힘차게 걷는다.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차고 목이 마르지만 언제나 마지막 봉우리를 치고 오를 때는 새 힘이 솟는다. 지친 다리를 끌고 삼도봉 정상에 오르니 우대장이 기념 사진을 찍어 준다. 넓은 공터와 삼도 화합비가 화강암으로 조성되어 있다.

먼저 오른 대원들은 기념 촬영을 하느라고 분주하다. 삼도봉에서 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려 나무 계단으로 만들어진 내리막길을 걷는다. 지친 발목이 더 불편하다.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물한리 방향으로 하산하는데 못생긴 돌밭 길이라 여간 불편하지 않다. 계곡에 다다르자 몸이 으스스 떨린다. 주차장 앞 가게에서 컵라면 냄새가 막 하산하는 대원들의 코끝을 간지럽힌다. 마른 옷으로 갈아 입고 컵라면을 하나 먹는데 꿀맛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