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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백두대간 종주기④] 전라도와 경상도가 등을 맞대고 있는 산, 남덕유산
[백두대간 종주기④] 전라도와 경상도가 등을 맞대고 있는 산, 남덕유산
  • 박상대 기자
  • 승인 2004.08.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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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백두대간 종주기. 이번엔 남덕유산이다. 2004년 8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백두대간 종주기. 이번엔 남덕유산이다. 2004년 8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전북] 산이 깊으면 평화가 넘실거린다 덕유산은 전북 무주와 장수, 경남 함양과 거창에 걸쳐 30km를 이루고 있다. 덕유산을 종주하며 산세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산길의 평화로움에 반했다. 그리고 장중한 힘에 머리를 조아렸다.  

육십령 -> 할미봉 -> 남덕유 -> 삿갓재 -> 무룡산 -> 동엽령 -> 백암봉 -> 향적봉 -> 백암봉 -> 대봉 -> 신풍령    

여름이 깊어간다. 주말마다 산을 타야하니 목요일부터 일기예보를 살핀다. 산에 오를 준비를 하는 금요일부터 마음이 설렌다. 어렸을 적 소풍날을 앞둔 기분이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려 산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생각이 달라진다. 하늘이 맑으면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고, 안개가 짙으면 입술을 깨문다. 비가 오면 혀를 차며 허허 웃고 만다.

할미봉 정상에 있는 바위 봉우리 셋. 2004년 8월. 사진 / 박상대 기자
할미봉 정상에 있는 바위 봉우리 셋. 2004년 8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육십령에서 산길을 오르는데 하늘이 맑다. 덕유산, 그 이름 탓이리다. 작은 봉우리를 타고 오르자 멀리 할미봉이 보인다. 거대한 암봉이 할머니의 곱사등이처럼 산마루에 엎드려 있다. 바위덩이 하나에 구멍이 뚫려 있어 시선을 당긴다. 소나무 숲이 이어지고, 다시 참나무 숲이다.

직사광선에 수풀은 숨을 죽이고, 등산객들만 씩씩하게 능선을 오른다. 능선 왼쪽은 전북 장수군 장계면, 오른쪽은 경남 함양군 서상면. 전라도와 경상도가 등을 맞대고 서로 의지한 채 서 있다. 그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발걸음이 상쾌하다. 할미봉 오르는 길에 엉겅퀴가 분홍색 꽃을 피우고 있다.

청년시절 나란히 밭둑길을 걷다가 엉겅퀴 꽃을 보고 탄성을 지르던 처녀가 있었다. “이게 엉겅퀴예요? 책에서 보고 실물로는 첨이네요. 진짜 예쁘다. 어쩌면 핑크색이 이렇게 곱지요? 사람한테 이런 색을 만들어 내라면 못하겠죠? 근데 왜 엉겅퀴 꽃에만 나비들이 서너 마리씩 붙어 있죠?” 그녀의 질문에 나는 답해 주지 못했다.

다른 꽃들을 버려 두고 나비들이 왜 엉겅퀴에만 고개를 박고 있는지? 20년이 지난 지금 산을 오르면서도 나는 그 까닭을 모른다. 굳이 답하라면 ‘나비들도 예쁜 것은 알아 가지고…’ 하리다. 엉겅퀴와 호랑나비. 내리 쏟아지는 직사광선, 그리고 상큼한 풀내음. 산 아래서는 이라크 전쟁과 파병문제로 시끄럽지만 여름 산에는 평화만 넘실댄다.

장수덕유산을 오르는 능선에는 암봉들이 많다. 2004년 8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장수덕유산을 오르는 능선에는 암봉들이 많다. 2004년 8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시계를 보니 정오가 가깝다.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흐른다. 이마에서 눈속으로 스며드는 땀을 씻어내며 능선을 오른다. 산들바람이 분다. 등산객에게 바람은 고마운 길동무다. 금방 왔다가 금방 달아나는 존재지만 바람은 반갑고 고마운 친구다. 바위에 걸터앉아 물을 마시며 내가 올라온 뒤를 돌아본다. 산행은 앞만 보고 가면 손해다.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뒤를 돌아보며 올라야 한다. 여지껏 걸어온 길이 얼마나 장대한 공간인지,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이었는지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산행은 인생행로와 같은 것이다. 할미봉에서 장수덕유산까지 2시간 30분이 걸릴 거라고 나무 판자 이정표에 적혀 있다.

산행을 자주 하는 사람들은 세 가지 질문을 많이 받는다. 힘들지 않은가? 낭만(혹은 재미)이 있는가? 도대체 왜 산에 다니는가? 그리고 체력이 좋아졌겠다고 미루어 짐작한다. 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여유로운 마음이 생겼어요’이다.

몇 시간, 몇 킬로미터라는 이정표를 볼 때마다 다리에 기운을 몰아 넣는다. ‘겨우 몇 킬로미터를 왔구나’‘이제 얼마 남았구나’ 이런 덧셈 뺄셈을 하며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어렸을 때 할머니는 들에서 일을 하다가 “사람 몸에서 젤로 게으른 게 뭔지 아냐?” 물었다. 그리고 멀뚱거리는 내게 “눈이란다” 하셨다.

처음 논밭에 들어섰을 때 ‘도대체 언제 일을 다 한단 말인가?’ 하고 겁에 질린 내게 ‘해질 무렵이면 다 끝낼 수 있다’며 들려준 가르침이었다. 이즈음 산에 오르면서 할머니 말씀을 떠올린다. 시간이 흐르면 해결되는 것을, 열심히 움직이면 극복할 수 있는 것을 왜 한사코 눈은 게으름을 피우려하는 건지….

한 걸음 한 걸음 오를 때마다 길섶에 피어 있는 꽃들이 예사롭지 않다. 철쭉이 끝물이다. 화무십일홍 따위는 말하지 말자. 바위 밑에 현호색이 피고, 때늦은 산조팝도 하얗게 피어 있다. 분홍색 앵초와 노란 솜방망이와 양지꽃도 능선을 평화롭게 장식하고 있다.      

남덕유산 정상에 오른 솔터산악회원들. 정상은 덕유산에서 두 번째 높은 봉우리다. 2004년 8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남덕유산 정상에 오른 솔터산악회원들. 정상은 덕유산에서 두 번째 높은 봉우리다. 2004년 8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아슬아슬한 바위구간을 거쳐 장수덕유산 정상에 다다랐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는지 하나씩 올려놓고 간 돌멩이들이 돌탑을 이루고 있다. 돌탑 아래로 3분여를 내려가니 바위샘이 있다. 바위틈에서 졸졸졸 물이 흐른다. 바위틈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모습이 경이롭다. 신이 아니면 누가 이런 장면을 연출할 수 있을까.

물을 한 바가지 떠서 한 모금 삼키는데 목구멍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이가 시릴 정도로 물이 시원하다. 물을 한 바가지 더 마시고, 빈 물병을 채워 들고 다시 산을 오른다. 건너다 보이는 산이 남덕유산이다. 장수덕유산과 더불어 해발 1천5백 미터가 넘는 높은 산이다. 남쪽으로 함양군 서상면 골짜기가 길다랗게 뻗어 있고, 북쪽으로 삿갓봉과 향적봉을 잇는 대간 마루금이 굵은 근육을 꿈틀대고 있다.

장수덕유산에서 철계단을 내려가는데 시야가 확 열린다. 능선마다 계곡마다 이름이 있을 텐데 다 알 수가 없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줄 수 없음이 아쉽다. 산속에서 새들의 노래 소리가 들린다. 뻐꾸기가 울고, 산새가 운다. 얼굴을 안 보여주니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이 노래를 한다. 드문 드물 들려오는 새들의 노래 소리는 지친 등산객에게 위로가 된다.

덕유산에는 산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울타리를 많이 쳐놓았다. 2004년 8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덕유산에는 산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울타리를 많이 쳐놓았다. 2004년 8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남덕유산 정상. 사방 팔방이 다 시야에 들어온다. 온천지가 발 아래다. 무엇이 더 부러우랴. 사람들은 바위에 앉아 세상에서 가장 넉넉한 부자가 된다. 손가락으로 구획을 그리며 “저 산에서 이쪽 산까지는 내껍니다” 한다. “그러세요. 그 다음 산에서 저쪽까지는 제겁니다” 하고 웃는다.

이것은 욕심이 아니다. 여유다. 서로 다툴 필요가 없고 욕심부릴 필요도 없다. 아무도 욕심을 부리지 않으니 산에는 평화가 넘치는 법이다.      

이제 삿갓골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삿갓골재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아침 일찍 나머지 구간을 가야 한다. 얼마 만인가. 산에서 밤을 샌 것이 몇 년은 된 듯하다. 산에는 땅거미가 일찍 깔린다. 어둠이 산골짜기를 거쳐 삿갓골재 산장으로 밀려온다.

덕유산에서 만난 바위. 장군바위라고 할까? 2004년 8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덕유산에서 만난 바위. 장군바위라고 할까? 2004년 8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일몰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동엽령 가는 언덕으로 올라가는데 그토록 맑던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해는 찾지 못하고 바위에 걸터앉아 땀에 젖은 옷을 말린다. 덕유산이 깊어진다. 멀리서부터 어둠 속으로 천천히 빨려든다. 산마루에 앉아 어둠 속으로 빨려드는 까마득한 산마루를 바라본다.

어느 시인은 그 산마루의 산 그림자들을 누이의 눈썹 같다고 말했지만, 글쎄다. 오랜 옛날부터 시인들은 산 그리메(그림자)를 붙들고 노래하고 울었다. 홀로 바위에 앉아 산 그리메를 감상하는데 문득 ‘혼자’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그립다. 산아래에 있을 그리운 사람들이 떠오른다. 캔맥주 한 잔이 같이 그립다.

산장의 밤은 실망 투성이였다. 별들은 어디로 갔는지 하나도 없고, 날짜를 잘못 선택한 탓으로 달도 없다. 멀리 보이는 마을의 전깃불만 여행객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한다. 이런 밤에 맥주가 없다는 사실이, 준비성 부족한 내가 정말 싫다. 자는 둥 마는 둥 하다 이른 새벽에 다시 산을 오른다.

일출을 보여주지 않은 대신 햇빛을 보여준 덕유산 하늘. 2004년 8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일출을 보여주지 않은 대신 햇빛을 보여준 덕유산 하늘. 2004년 8월. 사진 / 박상대 기자

헤드랜턴을 켜지 않아도 될 만큼 여명이 밝아온다. 푸른 숲길에서 산죽과 풀잎들이 몸을 비벼댄다. 산들바람이 깊은 잠에 빠진 풀들을 흔들어 깨우는 모양이다. 동녘 하늘은 어둡고, 바람이 차다. 몸을 움츠리며 걸음을 재촉한다. 전망이 좋은 곳에서 일출을 감상하기 위함이다.  

참으로 고요한 아침이다. 이토록 고요한 산속에서 왜 사람들은 편을 갈라 총질을 하고 서로 원수라며 죽이려 했을까. 방정맞게도 이른 아침 숲속에서 저 지난 날 난리 때가 떠올랐다. 그러나 세월의 더께에 묻힌 건지 바람에 날려간 건지 ‘원수들’의 아우성은 들리지 않고 풀이파리들의 잠깨는 소리, 기지개 켜는 소리만 들린다.  

무룡산을 오르는 길에서 되돌아본 덕유산. 2004년 8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무룡산을 오르는 길에서 되돌아본 덕유산. 2004년 8월. 사진 / 박상대 기자

한 시간 쯤 걷자 무룡산 정상이다. 동쪽 하늘에 구름이 잔뜩 깔려 있다. 아침이 열리는데 왜  해는 보이지 않는가. 해넘이를 못보고 해돋이도 못보고…기도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아쉬움을 달래는데 구름 사이로 하늘이 열린다. 그리고 천지창조의 현장처럼 햇빛이 쏟아진다.

아직 정상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에게 달려 오르라는 사인을 보냈다. 혼자 보기 아까운 광경이다. 이른 아침 서둘러 산에 오른 보람을 만끽한다. 동엽령을 지나 백암봉까지 오르는 길에는 밧줄 울타리가 자주 눈에 띈다. 입산 금지. 산도 안식이 필요하다. 상처 입은 산을 치료하기 위해서다.

울타리 너머로 수풀이 제법 우거졌다. 풀잎들이 바람과 함께 춤을 춘다. 블루스를 추다가 탱고를 춘다. 그 수풀 사이에서 수많은 들꽃들이 하하 웃는다. 풀향기가 코끝을 파고든다. 하얀 나비들이 너울너울 춤을 춘다. 에덴 동산이 따로 없다. 잠시라도 앉아서 지친 몸과 영혼을 쉬고 싶다.

향적봉 가는 길목에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뿌리로 천년 산다는 주목나무 군락지가 있다. 2004년 8월. 사진 / 박상대 기자
향적봉 가는 길목에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뿌리로 천년 산다는 주목나무 군락지가 있다. 2004년 8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백암봉에 오르니 중봉과 향적봉이 늠름한 봉우리를 곧추 세우고 있다. 계속 직진하면 향적봉이고 대간길은 오른쪽으로 뻗은 지봉 능선을 타야 한다. 향적봉을 다녀오는데 한 시간이 좀 더 걸린다. 그러나 덕유산에서 가장 높은 향적봉을 모른 체하고 지나칠 수는 없다.

대부분 향적봉을 다녀온다. 중봉에서 향적봉까지 가는 길목에는 구상나무와 주목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푸른 잎보다 앙상한 가지만 남았을 때 사람들의 찬사를 받는다. 앙상한 가지에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의 이파리만으로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구상나무. 그래도 살아야 한다며, 그래도 품위를 지켜야 한다며 꿋꿋이 서 있는 그들에게서 강한 생명력과 절개를 배운다.

몸의 절반만 살아 있는 구상나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2004년 8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몸의 절반만 살아 있는 구상나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2004년 8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덕유산 주봉인 향적봉. 뒤쪽으로 무주리조트와 구천동이 있다. 2004년 8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덕유산 주봉인 향적봉. 뒤쪽으로 무주리조트와 구천동이 있다. 2004년 8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이틀동안 덕유산에서 살았다. 굵은 능선을 타고, 깊은 산 그림자들을 보았다. 벌과 나비가 춤을 추고, 새들이 노래하고, 풀과 바람이 춤을 추는 산마루를 걸었다. 그리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평화로운 풍경에 취해 살았다.  

Tip. 무주일성콘도
여름산 매미소리가 가득한 곳 무주로 가는 길은 기분이 좋다. 등산객, 관광객이 많이 찾아도 계곡은 여전히 깨끗하고 산은 푸르다. 덕유산은 사계절이 다 아름답지만 매미가 숲을 온통 울리는 여름산이 그만이다. 그 싱싱한 산에 푹 안겨있는 무주일성콘도는 그래서 하룻밤 지내기에 좋다.

개관한지 2년, 건물이 깨끗하다. 거실 창안으로 맞은편 산이 가득 들어온다. 테이블 의자에 앉아 산을 마주보고 커피를 마셔도 좋을 듯. 맥반석사우나, 황토방, 쑥탕, 오락실, 노래방, 아이들이 물놀이 할 수 있는 야외수영장 등 휴식공간이 잘 마련되어 있다. 

무주일성콘도에는 가까운 관광지가 많이 있다. 덕유산, 나제통문에서 백련사까지 이르는 30km 구천동 계곡 등. 특히 일성콘도와 30여분 거리에 있는 안국사는 입구까지 길이 포장되어 있어서 드라이브를 할 수 있다. 올라가는 길에 산 정상에 있는 산정호수를 볼 수 있다.  

가는 길 옥천IC -> 영동IC -> 학산 -> 무주삼거리 -> 덕유산(구천동) -> 나제통문 -> 무주일성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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