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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박물관 기행] 잊혀진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보물창고, 강진 '와보랑께' 박물관
[박물관 기행] 잊혀진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보물창고, 강진 '와보랑께' 박물관
  • 김정민 기자
  • 승인 2004.08.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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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와보랑께 박물관 내부. 2004년 8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와보랑께 박물관 내부. 2004년 8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여행스케치=강진] 강진의 관광안내지도에는 없다. 하지만 한번쯤은 꼭 들러볼 만한 곳이다. 화려한 외양을 자랑하거나 비싼 골동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의 추억이 켜켜이 쌓인 보물창고. 타임머신이 부럽지 않다. 

박물관이라고 해서 멀쩡한 건물을 기대했는데 기다리고 있는 것은 허름한 조립식 창고였다. 문 앞에서 발견한 방명록에는 시원한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와서 폐만 끼치고 갑니다. 강진은 너무 아름다운 역사와 문화의 고장. 그 속에 와보랑께 박물관은 보석과도 같습니다. KBS2 세상의 아침 ○○○PD’

와보랑께 박물관 외관. 2004년 8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와보랑께 박물관 외관. 2004년 8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방명록의 글귀가 유난히 관심을 끌었다. 보석 같은 곳이라. 솔직히 박물관에는 그 물건을 설명해 주는 패찰조차 없다. 먼지까지 묻어 나뒹구는 물건들은 놓여있는 모습도 제 각각이다.

붕어빵을 굽던 주물틀, 버스차장의 ‘오라이’와 오랜세월을 함께한 ‘광원여객’ 버스간판, 여름이면 맨밥에 무채 넣고 사각사각 흔들어 비빔밥을 해먹었던 철제 도시락, 주인아저씨 총각시절에 자취방에서 라면 냄비를 달구던 석유곤로.

다락방을 내 집처럼 드나들던 쥐를 가두는 쥐덫, 양틀에 생선을 끼고 연탄불에 굽던 생선구이 틀, ‘중’이라고 쓰여있는 어느 젊은 오빠의 중학교 교복 모자, 70년대 정숙하고 수줍은 여고생을 떠올리게 하는 자수 테이블보.

양말을 잘 기워 신자던 초등학교 실과책. 2004년 8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양말을 잘 기워 신자던 초등학교 실과책. 2004년 8월. 사진 / 김정민 기자

70년대 젊은 아빠들의 샴푸대용품 무공해 빨래비누, 일일이 선생님의 글씨로 출제됐던 8절지 기말고사 시험지, 양말 깁기가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는 초등학교 실과 교과서, 아직도 흥겨운 음악이 지지직 들리는 트랜지스터 라디오, 이제는 채널이 빠져서 더 이상 돌릴 수도 없는 텔레비전, 아직도 깎은 연필밥이 남아있는 연필깎기.

예전의 추억들을 하나하나 들춰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입가에는 미소가 걸린다. 고개를 들어 벽면을 바라보면 전라도 사투리가 창고를 빙 두르고 있다. 암사타나다(아무렇지도 않다.), 여러서(부끄러워서), 이므렁께(잘 아는 사이니까)등.

전라도 사람들에게는 평상시 언어인데 다른 지방 사람들에게는 이국말처럼 낯설기만 하다. 이런 전시물들을 모으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애를 썼느냐’라고 물었더니 박물관 주인아저씨의 대답은 의외었다.

우리들의 영우너한 친구 철제 도시락. 2004년 8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우리들의 영우너한 친구 철제 도시락. 2004년 8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박물관을 시작하려고 모은 것이 아니었어요. 이 집에 처음 이사왔을 때 옛 주인이 남겨놓고 간 물건들이 40~50여점 있더라고요. 정리하자니 복잡하고 버리자니 아깝고 해서 어느 날인가 그냥 쭉 늘어놓았지요. 그런데 마실 나온 동네사람들이 ‘어메, 박물관이다냐? 야, 이것도 갖다 놔라’ 하면서 하나둘씩 놓고 갑디다.

그런 물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서 지금과 같은 규모가 된 거죠. 따로 정리한 것도 없고 그냥 차곡차곡 쌓아 놓습니다. 제 물건은 별로 없고 이곳에 놓아달라며 이웃들이 모두 전해준 물건들입니다. 그러니 어디 제가 함부로 할 수 있겠습니까. 가끔씩 팔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절대 그럴 수 없죠. 그냥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즐거워하는 모습만으로도 행복할 따름입니다”

주인장의 소박한 바람이었다. 흘러간 세월을 가둔 듯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한 박물관. 구석구석에 적힌 사투리도 살펴보고, 주인이 가꾸는 매실농원산책은 박물관 관람에서 얻는 덤이다. 관람료는 무료.

Tip.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한마디!
① 직가슴 장시가 실가리도 폰다 : 채소장사가 시래기도 판다.
② 작년시한 게집머리로 솔차니 보대께 부럿당께 : 작년 겨울 감기로 굉장히 힘들었었다.
③ 놉들도 만앙께 밥 좀 낙낙하니 해라이 : 일하는 사람도 많으니 밥을 넉넉하게 하소

Info 가는 길
전라도 병영성 근처에서 병영-장흥가는 길로 접어들어 4km 가량 직진, 병영중상고가 보이는 사거리까지 와서 직진한다. 시내로 들어가지 말고 우측에 있는 장흥길로 3km정도 가다보면 <와보랑께> 박물관의 간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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