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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안성 특집④] 미리내 성지-이진터(죽산성지)-구포동 성당
[안성 특집④] 미리내 성지-이진터(죽산성지)-구포동 성당
  • 이민학 기자
  • 승인 2004.09.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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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과 바꾼 신앙, 꽃으로 피어나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미리내성지 전경. 2004년 9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미리내성지 전경. 2004년 9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여행스케치=안성] 안성에는 유난히 천주교인들의 성지가 많다. 김대건 신부의 묘소가 안치된 미리내 성지를 비롯하여 병인박해 때 수많은 교인들을 형장의 이슬로 보냈던 죽산성지와 박해이후에 세워진 구포동 성당이 있다. 미리내 성지는 안성에서도 조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미리내’는 ‘은하수’의 순우리말이다. 천주교인을 박해하자 많은 교인들이 이 계곡으로 들어와 살았는데 깊은 밤에 보면 교인들이 밝힌 불빛들이 은하수 같다하여 ‘미리내’라고 불렀다. 김대건 신부와 그의 지인들이 묻혀있다. 경내를 둘러보려면 넉넉잡아도 2시간이 걸린다.

구포동성당. 2004년 9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구포동성당. 2004년 9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미리내 성지에서 시내 방향으로 조금 내려오다 보면 구포동 성당이 보인다. 이 성당은 프랑스 출신인 안토니오 콩베르 신부가 세운 곳이다. 이 성당은 유명한 안성 특산물 ‘포도’의 역사와도 관련이 깊다. 안성에 포도 묘목을 퍼뜨린 이가 바로 콩베르 신부였던 것.

콩베르 신부는 미사에 사용할 와인을 만들기 위해 32그루의 포도나무 묘목을 들여와 심었다. 안성포도는 지금도 전국에서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포도향기가 소로록 올라오는 7월에서 9월까지 향긋한 포도밭 사이를 달리는 드라이브 코스가 낭만적이다.

이 때는 길 옆 포도농장들이 입구에 박스를 내놓고 파는데 믿고 사도 된다. 인심도 좋아서 가는 길에 먹으라고 싸주는 덤이 한 광주리나 된단다. 죽산성지, 일명 이진터는 중부고속도로에서 안성으로 진입하는 일죽 IC 근처에 있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안성에 있는 천주교인들은 죽산 관아에서 심문을 받고 이곳에서 모조리 처형당했다.

죽산성지. 2004년 9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죽산성지. 2004년 9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이진터라는 이름이 생긴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었다. 고려 때 몽고군이 쳐들어와 죽주산성을 치기위해 진을 쳤던 곳으로, 오랑캐 이(夷)가 진(陣)을 친 곳이라 해서 ‘이진터’라고 불렀다는 것. 병인박해 후에는 ‘그곳으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 하여 ‘잊은터’라고 불렀다는 애절한 사연도 있다.

지금은 넓은 4차선 도로가 뚫려 차들이 쌩쌩 달리는 대로변이 됐지만 원래는 노송이 우거져 길에서 보이지 않는 후미진 골짜기였다고 한다. 그 때는 이 곳 근처에만 가도 이상한 소리들이 들려와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는 괴담이 남아 있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천주교인들의 울부짖음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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