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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한국의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② 마곡사, 마곡천 물소리 들으며 마음마저 씻어내는 곳
[한국의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② 마곡사, 마곡천 물소리 들으며 마음마저 씻어내는 곳
  • 노규엽 객원기자
  • 승인 2019.08.1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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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시대의 문화재가 모여 있어
세조, 김구 등 역사 속 위인들과의 인연
명상길 트레킹 즐기며 가지는 사색의 시간
<편집자 주> 2018년 6월 30일, 바레인의 수도 마나마에서 개최된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이 신청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확정됐다. 이에 해당하는 사찰은 영주 부석사, 양산 통도사, 보은 법주사, 해남 대흥사, 안동 봉정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등 총 7곳. 각 사찰이 세계유산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역사적 이유와 사찰문화 등을 면면히 살펴본다.

[여행스케치=공주] 사찰 중앙으로 마곡천이 흐르며 남북으로 경계가 나뉘어 있는 마곡사는 주변의 물과 산의 형세가 태극형을 이루고 있다고 전해진다. <택리지>와 같은 조선시대 지리서에는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十勝之地) 중 하나’로 꼽았다는 이곳. 그래서인지 마곡사에는 여러 시대에 조성된 문화재들이 다양하게 남아있다.

부처님을 모셔놓은 마곡사 대광보전과 앞마당의 5층석탑. 사진 / 김샛별 기자
부처님을 모셔놓은 마곡사 대광보전과 앞마당의 5층석탑.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마곡천을 중심으로 자유롭게 자리 잡은 사찰
마곡사는 금강의 한 지류인 마곡천이 흐르는 평야지대에 자리해 있고 주변의 산들이 높지 않아 찾아감에 있어 한결 가깝다는 느낌을 주는 사찰이다. 

매표소와 일주문을 지나 마곡사로 가는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숲으로 이어지는 왼편 산길을 걸어가도 좋고, 마곡천과 나란히 이어진 나무데크를 따라 가도 좋다. 마곡사 주차장이 보이면 오른쪽으로 유턴하듯이 길을 꺾어 절의 경내로 다가선다. 절 안으로 들어서기 전, 정자와 함께 조성해놓은 작은 정원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대광보전에서 대웅보전으로 이어지는 계단. 사진 / 김샛별 기자
대광보전에서 대웅보전으로 이어지는 계단.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마곡사는 경내로 들어서는 입구가 굉장히 독특한 편이다. 아니, 경내로 들어서는 입구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길의 경계를 나누지 않은 넓은 공터가 펼쳐져 발걸음이 가는대로 절에 들어서면 된다. 그럼에도 절의 정식 입구라 할 수 있는 해탈문과 천왕문을 차례로 들어서며 관람을 시작하는 방문객이 대부분이다.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면 마곡천을 건너는 다리를 통해 사찰 북쪽 구역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경계에 대해 마곡사 종성스님은 “북쪽으로는 부처님을 모시고 예불을 보는 공간이고 입구 격인 남쪽은 스님들이 수행하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그 말처럼 다리를 건너 부처님 공간에 들어서면 기다랗게 세워진 5층 석탑과 함께 대광보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서야 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마곡사는 여전히 길을 강요하지 않는 자유로움으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백범당에서 백범 김구에 관련된 사진들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 김샛별 객원기자
백범당에서 백범 김구에 관련된 사진들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자장율사부터 김구까지, 마곡사를 거쳐간 위인들
마곡사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에 등재된 또 다른 사찰인 통도사와 마찬가지로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에서 돌아온 자장율사가 오대산 월정사와 양산 통도사를 창건할 때 신라 선덕여왕에게 토지 200결을 받아 640년에 전탑을 세우고 마곡사도 함께 창건했다고 전한다. 이후 고려 명종 때 보조국사 지눌이 중수하고 범일이 재건하였고, 그 뒤 보철화상이 주석할 때 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삼대처럼 빽빽하게 많아서 마곡사라는 절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마곡사는 역사 속에서 여러 인물들과 인연을 맺어왔다. 조선시대에는 세조 임금과의 일화가 있다. 생육신 중 한 명인 김시습이 스님 생활을 하던 시절, 마곡사에 머무른 적이 있었다. 김시습을 만나고 싶었던 세조는 마곡사를 찾아왔으나, 그 소식을 미리 알게 된 김시습은 부여 무량사로 도피를 했다. 결국 김시습을 만나지 못한 세조는 “내가 타고 온 가마를 타고 돌아갈 수는 없으니 소를 타고 돌아가겠다”고 하며 한양으로 돌아갔다. 그때 타고온 ‘연’이라는 가마가 마곡사에 계속 남아 있다고 한다. 

태화산 솔바람길을 걸으며 볼 수 있는 삭발바위. 사진 / 김샛별 기자
태화산 솔바람길을 걸으며 볼 수 있는 삭발바위.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마곡사에 자취를 남긴 또 다른 인물은 독립운동의 지도자였던 백범 김구이다. 본명이 김창수였던 김구는 을미사변으로 살해된 명성황후 민비의 소식에 분개해 일본인 장교를 죽였고, 인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탈출한다. 마곡사로 피신을 온 그는 신분을 감추기 위해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고, 1년 정도 스님 생활을 하다가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났다고 전한다. 당시 머리를 밀었다는 삭발 바위가 아직도 남아있어 하나의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마곡사는 남방화소의 본거지로 금강산 유점사(북방화소), 수락산 흥국사(경산화소)와 더불어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3대 화소에 속하기도 했다. 때문에 마곡사에서 불화(탱화)를 그리는 화승들이 많이 배출되었으며, 사찰 곳곳에 불화들도 여럿 남아있다. 종성스님은 “보물 제1260호인 석가모니불괘불탱을 비롯해 보존가치가 높은 불화들이 많이 남아있다”며 “법당 내부와 외부의 벽면을 찬찬히 살피면 뛰어난 불화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마곡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오래된 역사와 1000년을 넘게 이어오며 인연이 닿은 한국의 주요 인물들과의 인연, 오래도록 남아있는 다양한 문화재들로 인해 세계유산으로의 이름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대광보전 내외부 및 마곡사 곳곳에서 다양한 불화들을 볼 수 있다. 사진 / 김샛별 기자
대광보전 내외부 및 마곡사 곳곳에서 다양한 불화들을 볼 수 있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각기 다른 시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문화재들
마곡사의 주요 문화재는 북쪽 구역에 많이 모여 있다.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역시나 대광보전 앞에 우뚝 세워진 5층 석탑의 존재다. 보물 제799호로 지정된 5층 석탑은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탑 꼭대기에 얹어진 독특한 청동구조물이 눈길을 끈다. 이 구조물의 이름은 풍마등으로 몽골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라마교 형식이다. 종성스님은 “전 세계에 3개, 국내에서는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원래는 바람이 불면 돌아가는 구조인데, 현재는 낡아서 돌지 않는다”고 알려준다.

탑 뒤편의 대광보전은 보물 제802호로 부처님을 모시는 법당이다. 이곳에는 조선 후기 앉은뱅이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인근에 살던 앉은뱅이가 마곡사를 찾아와 100일 기도를 드리며 돗자리를 짰는데, 100일 기도를 마치며 돗자리를 완성하였을 때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걸었다는 이야기다. 

부처님을 모셔놓은 마곡사 대광보전과 앞마당의 5층석탑. 사진 / 김샛별 객원기자
외부에서 보면 2층으로 보이는 대웅보전의 모습.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대광보전 옆 계단을 오르면 보물 제801호인 대웅보전이 있다. 종성스님은 “밖에서 보면 2층으로 보이지만, 내부는 한 층으로 연결되어있다”며 “원래는 경전을 모셔놓는 공간이었는데, 중수 이후 부처님을 모시게 되었다”고 말한다. 대웅보전 내부에는 싸리기둥 네 개가 있는데, 예부터 이 싸리나무 기둥을 안고 돌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웅보전 내부의 싸리기둥은 손때가 묻어 윤기가 나고 있으며, 지금도 소원을 비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대웅보전을 나와 오른편을 보면 마곡천이 보인다. 이 천을 잠시 거슬러 오르면 백범 김구가 머리를 밀었다는 삭발바위로 향하게 된다. 현재는 삭발바위를 잘 볼 수 있도록 데크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곳에 서면 머리를 밀던 김구 선생이 마곡천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였을지 가늠해볼 수 있겠다. 종성스님은 “삭발바위를 비롯해 백범 김구를 기리기 위해 태화산 솔바람길이라는 명상길을 마련해 놓았다”며 “코스를 선택해 솔향기를 맡으며 1~2시간 산책을 할 수 있으니 이 또한 마곡사를 알차게 돌아보는 방법”이라며 추천한다. 한편, 대광보전 옆으로는 백범 김구를 기리는 백범당이 있어, 그와 관련된 사진 등도 확인할 수 있다.

마곡천에 조성해놓은 거북이 조형물. 실제로 거북이들이 살고 있어 운이 좋으면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마곡천에 조성해놓은 거북이 조형물. 실제로 거북이들이 살고 있어 운이 좋으면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마곡사의 두 법당을 둘러보고 마곡천을 돌아 나오는 길에도 볼거리들이 남아있다. 먼저 마곡천 앞 산언덕에 자리한 산신각과 인근의 군왕대다. 특히 군왕대는 임금이 난다는 전설이 흐르는 터로, 옛날에는 양반들이 죽으면 가문에 왕이 나기를 바라며 묘를 썼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그런 일이 없도록 돌을 채워 막아놓았지만, 지금도 군왕대에 올라 기운을 받아가는 일도 마곡사 탐방의 재미가 되어준다.

영산전에 모셔진 부처님 1000명의 얼굴을 확인해보는 재미도 있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영산전에 모셔진 부처님 1000명의 얼굴을 확인해보는 재미도 있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남쪽 구역에서 마곡사를 빠져나가기 전에는 해탈문 옆의 영산전을 둘러봐야 한다. 보물 제800호이자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기도 한 영산전은 군왕대에서 기운이 내려오는 마지막 자리에 부처님의 제자를 모셔놓은 전각이다. 종성스님은 “영산전 현판은 세조 임금이 직접 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며 “내부에 천 명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어 절을 세 번 하면 삼천배를 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귀띔한다. 불교적 기도의 목적이 아니더라도 영산전 내에서 천 명의 부처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것도 마곡사 탐방을 마무리하기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Info 마곡사
주소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입장료 어른 3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 본 기획 취재는 국내 콘텐츠 발전을 위하여 (사)한국잡지협회와 공동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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