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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코리아스케치] 왕들의 정원, 창덕궁 옥류천
[코리아스케치] 왕들의 정원, 창덕궁 옥류천
  • 김연미 기자
  • 승인 2004.09.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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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오랜세월 왕들의 쉼터이자 정원이었던 창덕궁.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오랜 세월 왕들의 쉼터이자 정원이었던 창덕궁.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여행스케치=서울] 타드는 ‘시크릿 가든’이라 했다. 왕들의 후원, 창덕궁 속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옥류천. 궁마다 연못은 있으나 계곡의 흐름을 자연스레 이용해서 만든 정원은 옥류천뿐이다.  

창덕궁은 숲으로 가는 길이다. 5백년이 넘은 나무들이 그늘을 내린다. 한낮인데도 나무 그늘에 가리워서 빛이 오후처럼 찾아온다. 날파리가 얼굴에 달라붙고 모기들이 윙윙 쫓아온다. 다람쥐가 지 세상인양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다람쥐는 더위에도 참 가볍다.

타드 태커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기자다. 오후 햇살 같은 나무 그늘을 따라서 창덕궁을 함께 돌아보았다. 더위가 한풀 꺾인 것 같은데, 타드의 웃옷은 땀으로 젖어있다. “한국은 너무 더워요. 한국이 좋지만 여름만은 캐나다로 가고 싶어요.” 타드는 캐나다 사람이다. 한국 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했고, 한국어를 무지 잘 한다. 한국 사람인 나보다 더 한국 문화와 정치에 관심이 많다.

타드 태커.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타드 태커.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타드와의 만남은 두 번째다. 봄이 막 시작될 무렵 어느 단체에서 초대한 팸투어에서 만났고, 이번이 두 번째다. 근데도 그와는 오래된 친구 같다. 그가 한국말을 잘 해서 손짓발짓 안 해도 된다는 것과 나만큼 잘 웃는다는 것이다. 나무 그늘 아래여도 참 더웠다. 유난히 더위를 타면서도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다닌 타드가 고맙다.

창덕궁은 조선 제3대 태종(1405, 5년)이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은 궁궐이다. 태종은 정전인 인정전, 편전 선정전, 침전 희정당 등 주요 전각을 지었다. 그 뒤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에 오른 세조(1463, 9년)는 약 5만2천평이던 후원을 15만여 평으로 넓혔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40년에 중건하기 시작하여 광해군 5년(1613)에 복구했다. 광해군이 정궁으로 쓴 이래 고종(1868)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까지 2백70년 동안 조선왕조의 ‘법궁’이었다.

부채꼴 모양의 관람정. 주위 풍경에 따라서 달리 보인다.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부채꼴 모양의 관람정. 주위 풍경에 따라서 달리 보인다.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법궁은 왕실의 생활 공간이며, 신하들의 아뢰를 받고, 왕이 공식 활동을 하던 곳이다. 창덕궁은 다른 궁보다 자연친화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창경궁을 보고 난 후에 들은 생각이지만 경복궁이나 창경궁의 건물 배치는 사람들이 업무를 보기 편리하게 지어졌다. 관청 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왕이 사는 곳이여서 위엄이 서려있다. 창경궁은 오랫동안 법궁으로 쓰였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느낌이다. 사적인 건물 같은…. 타드의 표현에 따르면 ‘시크릿 가든’이다.

비밀의 정원, 왕이 잠시나마 세상 사람의 시선을 피해서 쉬고 싶은 곳. 창덕궁은 북악산 동편 줄기의 하나인 응봉 자락에 안겨 있기 때문에 도심 안에 있지만 산 속에 있는 것 같다. 후원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숲 속을 산책하는 듯 하다. 정자들이 띄엄띄엄 있어서 쉬어 갈 수 있다. 옥류천은 이 응봉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을 이용해서 만든 정원으로 인조(1636년)가 만들었다.

그리보면 조선왕조 5백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어느 왕이 다리를 편히 뻗고 잤겠는가? 창덕궁 후원에서 머리를 식히고 싶었던 왕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창덕궁 후원은 사람의 고뇌를 덜어준다. 창덕궁을 세운 태종 이방원은 아버지를 등지고 형제들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르고 왕위에 올랐다. 태종은 새로운 정치의 장으로 새 궁궐이 필요했겠지만 어쩌면 자신의 슬픔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옥류천. 푸른 이끼가 예쁘게 끼었다.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옥류천을 흐르는 물은 청의정 태극정 사이를 타고 내려와 소요암의 홈을 따라서 소요정 앞에서 폭포수를 만든다. 소요암에 새겨진 '옥류천'은 인조의 글씨.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오후의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어서 신비함을 더하는 소요정과 소요암.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오후의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어서 신비함을 더하는 소요정과 소요암.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그래 창덕궁이 궁의 역할보다 후원의 기능이 더 크게 부각되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세조는 어떤 왕인가, 어린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사육신을 비롯해서 많은 반대파 신하를 죽이고 왕이 됐으니, 꿈속에 귀신들이 보이는 게 당연하다. 세조 또한 숲 속으로 가고 싶지 않았겠는가?

또한 옥류천을 만든 인조는 왕의 시호도 받지 못한 광해군이 인조반정으로 물러 난 후 왕위에 오른 왕이다. 광해군은 명나라에 벗어나 진정한 자주 조선이 되고 싶었으나 사대부에 발목을 잡혀서 쫓겨났다.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인조는 얼마나 사대부 등쌀에 시달렸을까? 꼭두각시 왕에 불과했으니 다른 왕보다 더 깊은 정원이 필요했으리라.

창덕궁 후원 부용지에 연꽃이 피기 시작했다. 원래 이곳은 숙종 때부터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이 곳에 정조가 부용정을 세운다. 북쪽의 주합루와 동쪽의 영화당, 남쪽의 부용정. 탁한 못 위에 부용정이 비친다. 그 위에 금붕어 한 마리 그림을 그리며 지나간다.

옥류천. 푸른 이끼가 예쁘게 끼었다.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옥류천. 푸른 이끼가 예쁘게 끼었다.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정조는 주합루를 짓고 아래층을 규장각이라 하여 수만 권의 책을 보관하는 서고로 만들었다. 정조는 규장각을 통해서 새로운 문신 세력을 키운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할아버지 영조에 의해서 아버지가 죽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쨌든 사대부들의 세치 혀로 아버지가 죽었으니, 가슴에 한이 서려있지 않겠는가? 새로운 세력과 자연을 즐기면서 새로운 정치를 꿈꾸는 게 당연하다. 정원이 아름답고 깊을수록 왕들의 고뇌가 짙어지는 듯하다.  

부용지 오른쪽으로 길을 따라가니 5월에 개방한 옥류천에 닿았다. 옥류천은 28년 만에 다시 개방되었다. 1979년 유적 훼손을 막기 위해 일반인의 출입을 막았다. 앞으로 11월 말까지 하루 3차례씩 개방한다고 한다. 창덕궁은 다른 궁과 달리 시간제로 관람해야 한다.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송덕정 안에는 정조의 조선 개혁 의지가 담긴 현판이 붙어 있다.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송덕정 안에는 정조의 조선 개혁 의지가 담긴 현판이 붙어 있다. 2004년 9월. 사진 / 김연미 기자

특별관람 코스는 예약이 몇 분만에 끝난다고 할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이 많다. 옥류천 계류를 따라서 청의정, 소요정, 태극정, 농산정, 취한정을 적절히 배치하였다. 특히 어정 옆에 자연 암석인 소요암을 파서 곡수구와 폭포를 만들었다. 암벽에는 숙종이 지은 시가 새겨져 있다.  

‘흐르는 물은 삼백척 멀리 날으고, 흘러 떨어지는 물은 높은 하늘에서 내리며 이를 보니 흰 무지개가 일고 온 골짜기에 천둥과 번개를 이룬다’ 과장이 심한 시다. 물이 그냥 졸졸 흐른다. 계곡 물이 도심 한가운데 흐르는 데, 이 곳이 과연 도심 한가운데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한적하다. 그래 옥류천 주변 분위기가 신기할 따름이다.

타드의 마지막 말이 생각난다. “궁궐 문을 들어서면 서울 시내가 아니라 시골 분위기가 나서 신기해요. 한국의 궁궐들은 서울과 이질적인 분위기를 내요. 특히 창덕궁이 더 하죠. 마치 ‘시크릿 가든’에 살짝 숨어들어서 엿보는 것 같아요. 근데 모기가 매우 많군요.”  

Tip. 창덕궁 가는 길
지하철 종로3가역(1,3,5호선) 6번 출구로 나와서 도보 10분.
지하철 안국역(3호선) 3번 출구로 나와서 도보 5분. 알아두세요 옥류천 특별관람 예약은 창덕궁 홈페이지(www.cdg.go.kr)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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