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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고택에서 하룻밤] 세월을 덧칠하여 아름다운 집, 논산 윤증고택
[고택에서 하룻밤] 세월을 덧칠하여 아름다운 집, 논산 윤증고택
  • 김연미 기자
  • 승인 2004.10.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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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연못 너머로 본 윤증고택 배롱나무 밑에는 의자가 있어서 쉴 수 있다. 2004년 10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연못 너머로 본 윤증고택 배롱나무 밑에는 의자가 있어서 쉴 수 있다. 2004년 10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여행스케치=논산] 가을은 마당에 널어놓은 붉은 고추에서 익어간다. 3백년 된 윤증고택 마당에도 어김없이 고추가 널려있다. 꽃이 지는 백일홍나무 뒤로 11대 종부 양창호(86) 할머니가 마당에서 고추를 널고 있다. 하얀 할머니 머리 위에 내리는 가을이 다정하다.

고택을 들어가기 전, 잠시 연못에서 걸음을 멈춘다. 몇 그루의 백일홍 나무가 아름드리 한 나무처럼 꽃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떨어진 백일홍이 연못을 붉게 물들이고, 꽃이 피고지고 피고지고를 몇 백 번, 고택도 아름답게 늙었다. 윤증고택은 충남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자리하고 있다. 파평 윤씨의 종가로, 명재 윤증선생이 시조다.

문 뒤로 보이는 마당, 장독대 풍경. 2004년 10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문 뒤로 보이는 마당, 장독대 풍경. 2004년 10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윤증(조선 인조 7년에 태어남. 1629~1714)선생은 17세기 말 소론의 거두였다. 노론 송시열 선생의 가장 뛰어난 제자 중 하나였으나 정치적 사상의 차이로 스승과 대립하게 된다. 당시 정국을 주도하던 노론을 견제하면서도 벼슬을 마다하고 평생 청렴하고 개혁적인 선비의 자세를 지켰다.

우의정에 제수되자 열네번이나 상소를 올려 사양한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실용적이며 해가 긴 여름날에도 보리밥에 국 두끼만을 먹는 등 근검을 미덕으로 삼았던 윤증은 자손들이 집을 지을 때도 건축 자체를 반대했다고 후손들은 전한다.

사랑채 내루에서 정문은 연못이 보이고 서쪽으로 향교가 동쪽으로 찻집 초연당이 보인다. 2004년 10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사랑채 내루에서 정문은 연못이 보이고 서쪽으로 향교가 동쪽으로 찻집 초연당이 보인다. 2004년 10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집은 안채, 사랑채 서적을 담아둔 곳간채가 있다. 안채는 사랑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게 다른 종가와 구분된다. 그러나 대문을 거쳐서 바로 안채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내외벽이 있어서 누가 왔는지 신발을 볼 수 있게 하였다. 얼굴을 대하지 않고 말을 나눌 수 있다. 엄격한 격식은 줄이고 내외를 한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마당으로 들어서니, 안채 뒤 바라지문이 모두 열려있다. 마당은 좁지도 않고 넓지도 않다. 12대 종부 며느리는 잠시 출타중이다. 양창호 할머니가 고추를 널고 들어오신다. 잡지사에서 왔다고 하니 “사진 찍어야지?” 하신다. 작은 몸집으로 바지런하다. 그 사이 빨래를 걷어와 빨래를 개신다.

“십년 전부터 며느리랑 함께 살어. 철모르는 서울 아가씨가 종갓집에 시집와서 고생했지. 나, 나야 18살에 시집왔지. 안성, 멀리 왔지. 내 시집 올 때 해온 유기는 지금 사람들도 다 감탄해. 우리 딸이 탐내서 줬어. 제사, 일년에 열 번도 넘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또 가고, 또 가고 하니 제사가 얼마나 많겠어.”

양창호 할머니. 2004년 10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양창호 할머니. 2004년 10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실타래를 풀어내는 할머니의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할머니 빨래 개는 모습은 일품이다. 빨래를 개는 모습에 반했다고 하면 웃을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정성스럽게 빨래를 개는 모습은 처음이다. 수건을 갤 때, 그냥 탁탁 털어서 개는 게 아니라, 양쪽 끝을 잡고 조근조근 주름을 잡는 듯 하면서 편다. 그러면 흐트러졌던 수건이 고실고실 펴지면서 자리를 잡는다. 다시 끝과 끝을 맞추어서 접는다. 그 모습이 참 묘하게 사람을 끈다.

사람들이 하룻밤 잘 수 있는 곳이 사랑채다. 사랑채에는 ‘도원인가(桃源人家)’라는 편액이 붙어있는데, 내루에서 문을 열어놓고 보면 도원이 따로 없다. 앞에는 연못이 보이고 서쪽으로 향교가 동쪽으로 큰 팽나무가 보인다. 그 뒤로 궐리사(공자의 영정을 봉안한 곳, 우리나라에는 수원과 노성에만 있음)가 있다. 사랑채 아버지 방에서 샛장지문 뒤로 문간방이 있고 그 옆으로 아들 방이 있다.

즉 아들이 아버지 방으로 직접 들어올 수 없다. 샛장지문은 전국에서 하나 밖에 없는 문이다. 미닫이와 여닫이 겸용 문. 사람이 들고 날 때는 미닫이로 열고 큰 상을 들고 들어올 때는 미닫이를 연 상태에서 여닫이로 연다. 직접 봐야 ‘아 그렇구나!’ 무릎을 치는 이 고택만의 지혜가 있다.

세월이 덧칠해서 그럴까? 고택은 사람을 겸손하게 한다. 일상의 사소한 무게들이 그 집 마루에 앉아있으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윤증고택에 간다고 하니 누군가 그랬다. “가장 아름다운 집이에요.” 아름다운 집에서의 하룻밤이 기다려진다.  

Tip.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 천안논산고속도로 -> 탄천 톨게이트 노성 표지판 쪽으로 10km -> 노성 삼거리좌회전 2백m 가면 운증고택 표지판 나옴

고택에서의 하룻밤. 전국에는 고택 체험을 해볼 수 있는 고택들이 꽤 많다. 2004년 10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윤증고택 사랑채. 전국에는 고택 체험을 해볼 수 있는 고택들이 꽤 많다. 2004년 10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그 밖에 하룻밤 잘 수 있는 고택
◆ 청송 송소고택
담장에 꽃이 피지 않아도 꽃담이다. 송소고택은 구석구석 돌아보면 재미있는 것이 많다. 굴뚝, 문살…. 조선시대 영조 때 만석의 부를 누린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호박골에서 조상의 본거지인 덕천동에 이거하면서 지은 것으로 1880년쯤에 세웠다고 한다. 7동 99칸. 조선시대 갑부양반 집, 잠자리에 들어도 쉬이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 가는 길
중앙고속 -> 서안동IC에서 안동 진입 후 영덕방면 34번 국도 -> 진보사거리에서 청송·포항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31번 국도 13km 진행 -> 파천초등학교 끼고 우회전 -> 다리 건너면 송소고택  

고택 한 벽면에 걸린 정겨운 짚 바구니. 2004년 10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고택 한 벽면에 걸린 정겨운 짚 바구니. 2004년 10월. 사진 / 김연미 기자

◆ 안동 지례예술촌
지례예술촌은 의성 김씨 종가다. 조선 숙종(1663년) 때 세워졌으나 16세기에 불탄 것을 김성일 선생이 다시 세웠다. 한 때는 임하댐 건설로 수몰위기에 처한 것을 시인 김원길 촌장이 4년 동안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가까이 댐이 있어서 운치를 더하고 주위 경관 또한 수려하다. 종택, 제청, 사랑방, 서당, 객사 등 10동이 있다. 또한 안동의 전통 제례를 볼 수 있다.
· 가는 길
경부고속 -> 신갈IC -> 영동고속 -> 원주IC -> 중앙고속 -> 서안동IC -> 34번 국도 안동방향 -> 영덕방향으로 30km 가면 가랫재휴게소, 지나서 지례예술촌 표지판이 보임.

◆ 안동 수애당
‘물가에 떠 있는 집’이란 뜻이지만 사실 수애는 수애당을 건립한 류진걸 선생의 호다. 1939년 세워졌다. 29칸 한옥. 수애당도 임하댐 수몰로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부엌, 화장실을 개조한 것 외에 모든 방과 대청마루는 여전히 옛스럽다.  
· 가는 길
안동시 34번 국도 -> 임하댐 입구 -> 수곡교 -> 수곡교 우측 수애당

고즈넉한 전통 한옥집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2004년 10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고즈넉한 전통 한옥집에서 창 너머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2004년 10월. 사진 / 김연미 기자

◆ 전주 세화관
조선시대 양반집을 연상케 하는 한옥집이다. 안채, 사랑채, 행랑채가 있다. 개별적인 숙박도 가능하지만 가족 모임, 세미나, 학회 등 단체 숙박을 위한 전체 대관도 가능하며 40명 수용할 수 있다. · 가는 길
전주IC -> 고속도로에서 좌회전(남원가는 쪽으로 계속 직진) -> 금암 옛 분수대 자리에서 기린로로 직진 -> 오른편 리베라 호텔 후문

◆ 만산고택
지난 8월부터 숙박을 처음 시작하는 고택이다. 조선 말기 문관신하인 만산 강용(1846-1934)선생이 고종 15년에 건립하였다. 행랑채 중앙의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 서쪽에 사랑채와 안채가 연접하여 ㅁ자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사대부집의 일반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사랑채의 전면에는 만산이라 쓴 대원군의 친필 액자가 걸려있다.  
·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 풍기IC 영주 방향 -> 봉화읍 동쪽으로 울진 방향 36번 국도 따라서 20km -> 다덕재 지나 노룻재 넘어서 방전 삼거리 북쪽 3km 가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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