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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명인별곡] 애환과 꿈의 45년, 파독간호사 석숙자
[명인별곡] 애환과 꿈의 45년, 파독간호사 석숙자
  • 조용식 기자
  • 승인 2016.08.03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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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의 품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이방인’ 느낌"

[여행스케치=남해] “독일에 살아도 이방인, 한국에 살아도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이방인의 느낌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고 있어요.”

남해 독일마을에서 만난 파독간호사 석숙자씨. 그는 "'나 하나 희생으로 우리 가족이 잘살 수 있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파독간호사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사진 / 조용식 기자

남해 독일마을에서 만난 ‘파독 간호사’ 석숙자씨. 고국 땅을 밟은 지 15년이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그의 이방인 생활은 1973년 독일로 떠나면서부터다.

고등학교 졸업 후, 신문에서 ‘파독 간호사’ 모집 공고를 본 석숙자씨는 ‘이것만이 내가 살 길’이라는 생각으로 파독 간호사를 신청했다. 당시 파독 간호사의 월급은 15만 원으로 8, 9급 공무원 월급 1만5000원의 10배나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 하나 희생으로 우리 가족이 잘살 수 있으면 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1976년까지 독일로 간 파독 간호사는 모두 1만여 명. 이들이 보낸 급여 송금은 한국의 산업화 도정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거부감이 심했던 ‘시신 닦기’... 일 년 후 우리가 할 ‘일’

파독 간호사들이 처음 했던 일은 ‘시신 닦는 일’이었다. 어린 나이의 석숙자씨에게 ‘시신 닦는 일’은 쉽지 않을뿐더러,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는 “처음에는 굉장히 거부했다. 그러나 일 년을 독일 병원에서 반복하다 보니, 이 일은 우리가 해야 한다”는 인식을 하게 됐다고.

남해 독일마을의 베를린성의 모습. 그림 / 임산희 일러스트레이터

시신을 닦는 일에서 사망 후의 일까지 처리하는 파독 간호사들의 성실성에 독일 병원은 계약 연장으로 답을 했다. 일을 잘해주니 처음 약속한 3년이 지나면 연장을 잘해 주었다고 한다. 파독 간호사의 계약 연장은 광부들에게 희소식이었다.

“광부들은 3년이 지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어요. 그런데 파독 간호사와 결혼하면 계약이 연장될 수 있었죠. 그래서 광부들이 간호사와 사귀려고 기숙사에 와서 피아노를 치는 일이 많았어요.”

‘피아노를 친다’는 파독 간호사들만의 은어다. 파독 간호사가 묵었던 기숙사에는 초인종이 있는데, 초인종마다 간호사 이름이 적혀 있었다. 광부들이 간호사를 불러내기 위해 마음에 드는 이름의 초인종을 누르면 간호사가 나오는 것이었다.

그다음부터는 기숙사의 초인종 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니, 파독 간호사들 사이에서 이를 두고 ‘피아노를 친다’라고 불리게 됐다는 것. 결국, 광부들은 간호사와 결혼과 함께 계약도 연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동생아, 고국 가서 삼겹살, 생선 구워 먹자”

“현재 독일에 있는 동생이랑 네덜란드를 놀러 간 적이 있어요. 그곳에서 생선, 삼겹살 등을 구워 먹으며 자유를 만끽했죠. ‘왜 독일에서는 이런 자유를 맘대로 못하며 살았지’하면서 언젠가는 한국에 가서 마음대로 먹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남해 독일마을의 카페 내부 풍경. 그림 / 임산희 일러스트레이터

그런 석숙자씨에게 고국에서 희소식이 들려왔다. 경남 남해에서 그동안 고생한 파독간호사와 광부를 위한 터전을 마련했으니, 이제 연금 받으며 편히 고국에서 살라는 것이었다. 반응은 무척 좋았다. 너도나도 남해로 가서 독일마을을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선발대로 온 남해는 잡풀투성이었으며, 공동묘지였다. 이 소식을 전해지자 많은 사람이 고국행을 취소했고, 50명이 2002년부터 집을 지으며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석숙자씨도 그해 12월에 ‘로젠 하우스’로 입주했다.

올해에는 10월 1일부터 3일까지 독일마을 맥주축제인 '옥토버페스트'가 열린다. 사진 / 조용식 기자

그는 독일마을로 입주한 이후 8년 동안을 독일마을 대표로 활동해 왔다. 그동안 독일 캠프를 만들고, 매년 10월이면 열리는 독일마을 맥주축제인 ‘옥토버페스트’도 그가 만들어 냈다. 올해로 제7회를 맞는 ‘옥토버페스트’는 오는 10월 1일부터 3일까지 남해 독일마을 일원에서 열린다.

매주 금요일 파독전시관에서 해설을 진행하는 석숙자씨는 젊은이들에게 당부의 말을 잊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부강해야 젊은이들도 어디 가서 살아도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의 희생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지금 이렇게 모든 것이 풍족하게 잘 살 수 있다는 것만은 알아야 한다.”

지역 명사와 함께하는 문화여행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진행하는 '지역 명사와 함께하는 문화여행'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며 활짝 웃고 있다. 사진 / 조용식 기자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지난 7월 남해 독일마을에서 ‘지역 명사와 함께하는 문화여행’이라는 주제로 파독간호사 석숙자씨와 이야기 콘서트를 진행했다. ‘지역 명사와 함께하는 문화여행’은 볼 것과 놀 것만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사람’이 주제가 되는 테마 여행의 하나로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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