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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가을농촌 체험여행] 연천 백학정보화마을
[가을농촌 체험여행] 연천 백학정보화마을
  • 이민학 기자
  • 승인 2004.11.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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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밤나무에서 밤 따는 가족들.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밤나무에서 밤 따는 가족들.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여행스케치=연천] 이 가을에 자녀들을 데리고 농촌 한번 가지 않았다면 정말 무심한 부모다. 살림이 빠듯해서? 핑계다. 농촌 가는데 돈 들 일이 뭐 있을까. 도시락 싸들고 가면 기름값 외에 쓸려고 해도 돈 쓸 곳도 별로 없다. 연천 백학정보화마을도 정말 한적한 마을이다.

가을 들판은 풍성하다. 아이들은 데리고 가서 풀어 놓으면 스스로 알아서 그 풍성함의 의미를 배운다. “어? 밤이 여기에 숨어 있네. 저기도 밤이다….” 밤송이를 처음 본 아이들도 가시를 벗겨내면 눈에 익은 밤이 있다는 걸 단박에 알아차린다.

고개 숙인 벼를 처음 보면서도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데, 다 익었네”라고 아는 체를 한다. 갈수록 똑똑해지는 무서운 아이들…. 아이들은 어느새 들판을 뛰어다니는데 얼굴 하얗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엄마 아빠들이 오히려 머쓱해하며 서툴러하는 모습이다.

작은 곤충 하나에도 아이들은 신기해한다.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작은 곤충 하나에도 아이들은 신기해한다.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잘 구워진 옥수수를 맛있게도 먹는 아이와 그 모습이 흐뭇한 아버지.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잘 구워진 옥수수를 맛있게도 먹는 아이와 그 모습이 흐뭇한 아버지.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농촌이 예전처럼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도시의 가족들이 연천 백학정보화마을을 찾는다고해서 사전에 자료를 찾아보려고 인터넷을 검색했는데 홈페이지(http://baekhak.invil.org)가 정말 깔끔했다. 집집마다 인터넷망으로 연결되어 있는 ‘정보화마을’이라더니 말 그대로였다.

“도농교류란게 다른 게 아닙니다. 도시민들이 찾아와 농촌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 가는 것만해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커다란 밤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장대를 휘두르느라 땀을 뻘뻘 흘리는 마을운영위원 정만종 씨. 많은 걸 바라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라도 도시와 농촌 간에 끈이 이어져야 왜 농민들이 농산물수입개방을 반대하는지 체감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이다. 장대를 한번 휘두를 때마다 가족들은 왁자지껄 난리다.

"밤송이 떨어진다!"는 소리에 엄마는 딸부터 감싼다.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밤송이 떨어진다!"는 소리에 엄마는 딸부터 감싼다.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머리 위로 밤송이가 떨어지든 말든 아이들은 신났다.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머리 위로 밤송이가 떨어지든 말든 아이들은 신났다.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밤이란 걸 과자처럼 돈 주고 사야하는 걸로만 알았던 아이들은 머리 위로 밤송이가 떨어지든 말든 상관 않고 밤을 주으러 뛰어다닌다. “자! 이제 밤은 많이 땄으니 점심 먹고 우렁이 잡으러 가자!” 우렁이란 말에 아이들 눈이 동그레진다. 우렁이? 그게 뭔지 알까 싶은 꼬마들도 신이 나서 “우렁이, 우렁이”하며 따라간다. 뭐든 잡는다니 좋은 거다!

몇 군데 태풍에 움푹 패인 곳들이 있긴 했지만 살짝 누런 기운이 도는 드넓은 논은 보기만 해도 배가 든든하다. 아이들에겐 논은 들어가면 안되는 곳이란 생각이 있는지 논둑따라 걸어가기만 할 뿐 좀처럼 내려설 생각을 않는다. 그 통에 안내를 나온 마을 분들만 바빴다. “아저씨! 저기, 저기.” “우렁이 저기 있어요! 잡아주세요!” 마을 분들이 잡아주는 우렁이를 통에 담고는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 돌아오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우렁이 잡기에 신이 난 아이들.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우렁이 잡기에 신이 난 아이들.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향긋한 깻잎을 따보는 체험.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향긋한 깻잎을 따보는 체험.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그 다음 순서는 깻잎따기. 마을 뒤쪽 산기슭에 농약 한 번 안 친 ‘진짜’ 무공해 깻잎밭이 있다. 이번엔 엄마들이 바쁘다. 웰빙시대라는 요즘 유기농 좋은 건 알지만 가격이 어디 만만한가. 또 가짜가 많아 진짜 유기농인지 확신도 서지 않는데, 밭에서 내 손으로 마음대로 따갈 수 있으니 엄마들의 욕심이 앞서는 건 당연한 일. 금세 심드렁해진 아이들은 ‘이건 재미없다, 그만 가자’ 칭얼대는데 ‘조금만 더!’라며 안으로 안으로 들어간다.

“자, 이제 그만 내려오세요. 밤 다 익었어요!” 마을 분들은 어느새 모닥불을 피워 콩이랑 밤, 옥수수들을 구워놓고 가족들을 부른다. 그제서야 털레털레 내려온 가족들. 가끔가다 펑펑 밤 터지는 소리에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한발짝 떨어져서 구운 옥수수를 받는다. 철이 좀 지나 알갱이가 딱딱하지만 이런 맛도 따로 없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입가에 검댕이가 묻던 말던, 손으로 호호 불어가며 옥수수와 군밤을 먹는 재미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가을 농촌의 풍요로움. 아이들이 그 깊은 의미까지는 몰라도 그냥 길가에 먹을 것이 주렁주렁, 잡을 것이 여기저기 있다는 것쯤은 느낄 수 있었던 하루. 그 것만으로도 족한 나들이였다.  

트럭을 탄다니까 빠짐없이 올라가 앉는 아이들.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트럭을 탄다니까 빠짐없이 올라가 앉는 아이들.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Tip. 주변 여행지
옛 왕국의 영혼이 잠든 숭의전 연천군 미산면 아미산 기슭에 있는 숭의전은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세운 사당으로 고려 태조 왕건을 비롯한 고려의 왕들과 신숭겸 등 16공신을 모신 곳이다. 자신이 멸한 왕조의 태조를 모심으로써 그 영을 달래려 함이었을까? 조선을 개국하자마자 곧바로 숭의전을 세웠다고 한다.

숭의전 역시 망국의 설움을 겪었는데 그 사연이 기구하다. 태조는 조선을 개국하고 공양왕과 왕씨 일족들을 강원도 간성과 강화, 거제 등지로 유배를 보냈는데 일년 후 숭의전을 세우고 왕씨 일족들의 유배를 풀어주며 숭의전에서 조상을 모실 수 있게 배려를 하였다. 그런데 엉뚱한 일로 피바람이 분다. 동래의 한 관리가 점장이를 불러 왕씨와 이씨의 앞날을 놓고 점을 쳤는데, 이씨가 좋지 않게 나왔다.

숭의전.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숭의전.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그 바람에 숭의전은 폐쇄되고 공양왕을 비롯한 왕씨 일족 또한 몰살을 당하고 만 것.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각지로 도망쳐 성을 바꾸고 숨어 살아야 했다. 세월이 흘러 태종이 즉위하였는데 숭의전을 다시 열고 왕씨 일족을 불러 제사를 지내려 했다. 그런데 왕씨 후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널리 알려 왕씨를 찾노라고 했지만 한번 피바람을 당한 터라 누구하나 나서지를 않았다.

고려 태조 왕건의 친필.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고려 태조 왕건의 친필. 2004년 11월. 사진 / 이민학 기자

이때 마침 남쪽 어느 고장에선가 성을 숨기고 살던 왕씨 한 사람이 이웃집 사람에 의해 고발을 당했다. 원한을 품고 있던 이웃은 왕씨라는 것을 밝히면 끌려가 죽임을 당할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사람들이 내려와 극진히 모셔가더니 이곳 숭의전에 거처하게 하며 조상의 제를 올리게 하였다. 사람 팔자는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몇 년 전에는 떼로 몰살당하고 몇 년 후에는 팔자가 피고. 어찌됐든 덕분에 태조 왕건은 한창 시절, 고려를 세우려 수없이 오갔던 임진강변을 바라보며 쉴 수 있게 됐다. (도움말 제정호 숭의전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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