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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지구촌기행] 앙코르와트 가는 길에 만난 캄보디아 사람들
[지구촌기행] 앙코르와트 가는 길에 만난 캄보디아 사람들
  • 김연미 기자
  • 승인 2004.11.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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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도로에서 만난 소떼. 2004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도로에서 만난 소떼. 2004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여행스케치=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가기 전 많은 캄보디아인들을 만났다. 길 위에서 만난 그들은 영어를 모른다. 나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 웃을 뿐이다.

길이 붉다. 캄보디아 국경도시 포이펫을 벗어나자 길이 붉은 황톳길이다. 모내기가 시작됐나 보다. 캄보디아 사람들도 우리처럼 품앗이를 하는지 여러 사람이 모여서 모를 심는다. 더불어 사는 것, 농경사회의 삶이다.

산도 없이 펼쳐진 들녘에는 군데군데 바나나, 야자수 등 열대야 나무들이 서있다. 열대야 나무는 혼자서 그늘을 만들지 못한다. 여러 그루가 모여야 그늘이 생긴다. 그 그늘 아래 사람의 집이 있다. 시원해보이나 태풍이라도 불면 금방 쓰러져버릴 것 같은 그런 집이다. 그래도 그 집에 누워서 긴 낮잠을 자고 싶다.

우리네 집 마당에 우물이 있듯이 이곳은 못이 있다. 못에는 연꽃이 피고, 물고기가 튀어 오른다. 아이들은 낚시를 한다. 그 폼이 하도 진지해서 나도 덩달아 낚시를 하고 있는 듯 느껴진다. 아낙들은 빨래를 하고 아이를 씻긴다. 해먹에 누운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여행자를 쳐다본다.

태국 국경을 넘어서 앙코르와트를 가는 길은 4시간이 넘는다. 한번은 휴게소에 들러 기름을 넣고 간다. 휴게소 근처 좌판에 펼쳐진 과일가게. 2004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태국 국경을 넘어서 앙코르와트를 가는 길은 4시간이 넘는다. 한번은 휴게소에 들러 기름을 넣고 간다. 휴게소 근처 좌판에 펼쳐진 과일가게. 2004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버스가 멈추는 휴게소 근처에 사는 아이들은 손을 흔들 줄 안다. 그러나 길 옆 나무 그늘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손을 흔들 줄 모른다. 단지 궁금한 눈빛으로 흰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다. 소리를 내면서 깔깔 웃었는지 기억이 없으나, 그 웃는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맑은 웃음이다.

나는 캄보디아 씨엠리업 앙코르와트 가는 길이다. 가도 가도 끝날 것 같지 않은 황톳길을 4시간이 넘게 달려야 한다. ‘털털털털’ 차는 사정없이 흔들린다. 간혹 대형트럭들이 길 한가운데 서서 바퀴를 갈아 끼우고 있다. 뾰족뾰족 튀어나온 돌이 엉덩이를 들썩이게 한다.

앙코르와트에 타고 간 버스. 한국버스다. 한국 글자가 군데군데 남아있다. 2004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앙코르와트에 타고 간 버스. 한국버스다. 한국 글자가 군데군데 남아있다. 2004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차들이 급하다. 황야를 달리는 무법자처럼 경적 소리가 끊이지 않다. 아이들이 소 떼를 끌고 가다가 경적 소리에 허둥지둥 길가로 피한다. 현대화라는 이름의 속도는 소가 먼지를 일으키며 걷는 걸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혹 소 떼가 꾸물럭거리면 기사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소리를 지른다. 소 떼, 소를 탄 아이, 우마차, 자전거, 오토바이, 자가용, 트럭 다양한 이동수단이 다닌다.

우마차가 다니는 길에 자전거가 들어오고, 다시 자동차가 지나는, 기존의 것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단지 새로운 것이 들어오는 길이다. 그러나 언제인가는 이 길도 도로가 생기고, 우마차 자전거가 사라질 것이다. 차가 길 옆으로 선다. 펑크가 났다. 이 차는 10년 전 서울의 도심을 달리던 버스다. 어떻게 캄보디아까지 오게 됐을까?

길에서 물건을 파는 아이들. 아이다운 천진한 표정을 잃지 않았다. 2004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길에서 물건을 파는 아이들. 아이다운 천진한 표정을 잃지 않았다. 2004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사람들이 두런두런거리며 내렸다. 참 덥다. 떠나기 전 누군가가 그랬다. “그 더운 데를 왜 가니?” 바람 한점 없다. 차는 다행이 마을 한가운데 멈췄다. 쌀을 탈곡하는 기계가 있는 집이 있으니 꽤 큰 마을인가 보다. 나는 기웃기웃 사람의 집으로 갔다. 야자수 나무 사이로 사람이 나와 본다. 나는 인사를 한다. 그는 웃는다. 그들도 영어를 못하고 나도 영어를 못한다. 그냥 웃을 뿐이다.

집구경을 한다. 집 귀퉁이에 닭이 알을 품고 있다. 아이들은 내 카메라 앞에 고개를 들이 밀며 환하게 웃는다. 어디나 아이들은 호기심 덩어리다. 집 뒤로 가니 꽤 큰 강이다. 저쪽으로 수영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

길에서 만난 아저씨.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도 배타는 멋진 포즈를 취해주셨다. 2004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길에서 만난 아저씨.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도 배타는 멋진 포즈를 취해주셨다. 2004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국경 근처 무기 그림이 그려진 간판이 있다. 뭔가 주의를 주는 포스터 같은데 현지말을 아는 사람이 없어서 물어볼 수가 없었다. 2004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국경 근처 무기 그림이 그려진 간판이 있다. 뭔가 주의를 주는 포스터 같은데 현지말을 아는 사람이 없어서 물어볼 수가 없었다. 2004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나무 밑에 3개의 나무배가 묶여져 있는데 물이 고여 있다. 아저씨가 고인 물을 퍼내고 노를 저어 저 멀리까지 간다. 의사소통이 안되는 데 그는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준다. 그가 내 카메라와 거리가 멀어지자 “아저씨”하고 소리를 치고 오라고 손짓을 하자 다시 돌아온다. 나는 한국말을 하고 있다. 관광지에서나 영어가 통하지 길에서는 소용없다.

유쾌한 일이다. 그렇게 마을에서 놀았다. 아이들 이름을 물어봤는데 익숙하지 않은 언어는 아무리 들어도 입으로 나오지를 않아 끝끝내 아이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그래도 웃을 수 있었다. 다시 버스는 달린다. 에어컨이 있는 차안이 시원해서 좋다. 길은 더 짙은 황톳빛으로 변한다. 구름은 점점 사라지고 먹장구름이 몰려온다. 곧 비가 쏟아지겠다. 스콜이다. 게릴라성 폭우.

스콜이 오고나면 사람들은 불어난 도랑에서 고기를 잡는다. 고기잡는 도구. 2004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스콜이 오고나면 사람들은 불어난 도랑에서 고기를 잡는다. 고기잡는 도구. 2004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스콜이 한번 지나가면 집 밑으로 금세 물이 불어난다. 2004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스콜이 한번 지나가면 집 밑으로 금세 물이 불어난다. 2004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소를 끌고 가는 사람,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사람들은 어쩌나! 걱정하는 순간, 비가 쏟아진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옷이 젖는다. 우비를 가지고 왔는지 우비를 쓰는 사람이 있다. 뒤에 탄 아이까지 우비로 덮는다. 물이 불어서 집 밑으로 물이 흐른다. 비 맞으며 털털 달린다. 비를 피할 생각도 않는다. 비를 피할 나무도 변변히 없거니와, 1~2시간 내리는 게릴라성 폭우를 어떻게 할 것인가. 비는 일상이다.

이 비가 끝나고 나면 마을은 축제다. 물이 갑자기 불어나고 도랑이 커진다.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으러 그물 등을 들고 나온다. 메기처럼 수염이 긴 물고기, 새우, 우렁이 등이 잡혔다. 갑자기 불어난 물로 집 밖에 나오지 않고 나무 계단에 앉아서 구경하는 사람도 있다. 닭들을 나무 위에 올려놓고 집으로 이어진 길은 물이 덮어버렸다. 그러나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한나절이 지나면 길은 나타난다. 차가 휴게소 앞에 쉬었을 때 운전기사는 바지를 내리는 시늉을 하면서 ‘쉬’라고 했다. 내리면서 다들 피식 웃는다. 과일가게로 가서 1달러에 람부탄, 망고스틴 등 열대과일을 샀다. 과일 파는 아주머니가 그 자리에서 람부탄, 망고스틴을 까준다. 과일이 참 달다. 더위만큼 달다.  

내가 유일하게 이름을 기억하는 캄보디아 사람은 ‘쌈원’이다. 쌈원은 여행 내내 운전을 해 준 27살의 청년이다. 쌈원은 유적지가 아닌 마을로 가자고 했을 때 당황했다. 마을에서 내려달라고 한 사람은 처음이라고 한다. 그의 동료들이 “쌈원은 바람둥이에요”라고 귀띔을 해 준다. 그래 “쌈원, 바람둥이?”라고 간혹 놀려도 그는 그저 웃을 뿐이다.

모내기 하는 모습. 우리보다 벼가 길다. 한 묶음씩 뽑아서 발에 탁쳐서 던져놓는다. 2004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모내기 하는 모습. 우리보다 벼가 길다. 한 묶음씩 뽑아서 발에 탁쳐서 던져놓는다. 2004년 11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쌈원은 영어를 잘 한다. 그런데로 쌈원은 한국말을 배워서 한국인 가이드가 되고 싶어 한다. 한국인 가이드가 현지 가이드보다 높은 보수를 받나보다. 하루에 얼마를 버느냐고 물었지만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다. 캄보디아 사람들은 자존심이 강하다고 한다. 쌈원은 여자친구가 있다. 보통 캄보디아 여성들은 18살이면 결혼을 한다고 한다. 결혼 할 때 남자는 여자에게 지참금을 줘야 한다. 약 2천 달러 정도.

쌈원에게 물었다. 쌈원의 애인이 많은 지참금을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거냐, 쌈원은 단번에 “헤어지겠다!” 답한다. 쌈원은 역시 신세대다. 지나가는 청년이 흥얼흥얼 노래를 하고 간다. 노래를 잘 한다고 박수치는 시늉을 하니 “캄보디아 싱어송”이라 소리친다. 길 옆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 하고 그들의 삶을 기웃거리다 보니 아직 길이다. 나는 지금 앙코르와트에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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