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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겨울산] 바람에게 가는 길, 울주 신불산
[겨울산] 바람에게 가는 길, 울주 신불산
  • 김연미 기자
  • 승인 2004.12.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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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신불산 정상에서 바라본 능선. 2004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신불산 정상에서 바라본 능선. 2004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여행스케치=울산] 해발 1천2백9m의 신불산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과 삼남면에 걸쳐서 자리하고 있다. 신불산은 가지산, 천황산, 간월산, 취서산, 능동산, 재약산, 운문산 등과 함께 영남지역에서 해발 1천m가 넘는 고봉으로 겨울이면 눈 덮인 모습이 알프스 같다하여 영남알프스라 불린다.

산에는 수런거리는 바람이 있다. 낙엽이, 나무들이, 억새가 수런거린다. 골짜기에 부는 바람, 능선을 적시는 바람, 절벽에 부딪혀 오는 바람. 산에 오르는 것은 바람에게 가는 길이다. 신불산을 오르는 몇 개의 길이, 언제 시작됐는지 모른다. 산짐승이 만들었는지 사냥꾼이 만들었는지 알 수 없으나, 나는 그 길을 ‘바람의 길’이라 부른다. 누가 있거나 없거나 그 길을 지나는 것은 바람이다. 산을 오르는 내내 바람과 함께였다.

언양에서 작괘천을 지나 등억온천단지인 등억리 간월산장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울주 간절곶에서 해돋이를 보고 신불산 초입에 도착하니, 해는 산보다 높이 떠 있다. 산은 조용하다. 간월산장 옆에 있는 신불산 안내도를 보며 먼저 등산로를 살핀다. 바람이 어느 길로 안내할지…. 지도는 너무 명료하다. 우선 홍류폭포로 길을 잡는다. 길을 따라 나무들이 서로의 어깨를 잡으려는 듯 터널을 만든다.

신불공룡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줄을 타고 오르는 구간이 몇 곳 있다. 2004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신불공룡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줄을 타고 오르는 구간이 몇 곳 있다. 2004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나무 밑으로 신이대가 융단처럼 깔려있다. 신불산은 고지대까지 신이대가 많이 나 있다. 홍류폭포 앞까지 몇 개의 의자가 놓여있다. 의자마다 낙엽이 앉아있다. 바람은 낙엽을 시켜서 ‘쉬었다 가라’한다. 33m의 홍류폭포는 물이 많이 말랐다. 계절은 어김없이 겨울로 가고 있다. 사람 사는 게 바람처럼 수다스럽다. 그리고 나는 그 바람에게 전하다. ‘사랑한다.’

홍류폭포 오른쪽 등산로를 오른다. 암릉으로 오르는 코스로 제일 험하다. 경사가 급하다. 경사가 급할수록 하늘은 가까워보인다. 신불산을 오르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그러나 길은 멀고 하늘이 쉬이 가까워지지 않는다. 심장 박동소리가 커진다. 잠시 쉬었다 간다. 등산로 근처의 나무들은 지팡이다.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가지가 반질반질하다. 30여분 정도 오르니, 바위에 메어놓은 줄이 있다. 줄에 매달리기 전에 돌아본다.

나뭇가지 사이로 언양읍이 보인다. 왼쪽으로 시선을 두니 간월산과 가지산이 들어온다. 신불산 정상은 아니지만 이제 확 트인 시야가 좋다. 콧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그 때만 해도 정상까지는 급경사로 네 번의 밧줄타기가 남았다는 걸 몰랐다. 하늘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작아진다. 바람은 작은 나무를 타고 바위에 오른다. 줄이 팽팽하다. 신경도 팽팽하게 선다. 밑을 보는 게 무섭다. 그러면서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산행 중 만난 하늘 높이 자라난 나무. 2004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산행 중 만난 하늘 높이 자라난 나무. 2004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구름이 친근하게 다가오고 마을은 작아진다. 사람 사는 것도 이렇게 높은 데서 바라보는 것처럼, 너그러우면 좋으련만. 이제 신불산 공룡릉이다. 절벽이 깎아놓은 듯 아찔하다. 숲에서 곰살갑던 바람도 절벽처럼 차갑다. 조심해야 한다. 바위 위를 걸어가야 한다. 양쪽이 절벽이라 떨어지면 크게 다치겠다. 이렇게 절벽을 타고 1km 정도 가야 한다. 마지막엔 큰 바위가 턱 버티고 있다. 바위 정상에 오른 사람들이 석불처럼 보인다.

표지판을 보니 바위를 돌아서 가는 길이 있다. 오르지 않고 돌아가는 길을 택한다. 1m70cm 정도의 작은 나무군락을 지났다. 잎은 다 떨어져서 마지막 잎새는 없다. 나무군락지를 지나니 신불평원으로 이어진다.  

신불산 정상은 간월산에서 취서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광활한 평원이 펼쳐진다. 키 작은 억새밭이 장관이지만 벌써 새품이 다 떨어졌다. 바람에 마른 잎이 서걱거린다. 신불산 억새는 유난히 키가 작다. 지대가 높아서 바람이 강하니, 키가 작을 수밖에 없다. 그래 신불산은 늦가을에 등산하기에 좋다. 나무 그늘이 없으니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다. 너럭바위나 억새밭에 앉아서 가을 소풍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신불산 표지석. 2004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신불산 표지석. 2004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정상에 있는 오뎅집. 2004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정상에 있는 오뎅집. 2004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좀 높아서 그렇지…. 신불산 1천2백9m 정상 표지석 앞에는 천막이 있다. 커피, 라면, 오뎅 등을 판다. 주인 아지매는 배낭을 2개 메고 간월재로 올라온다고 한다. “이름을 붙인다면 뭐라 붙이고 싶어요?” 사진을 찍으니 주인아지매가 묻는다. “산주막”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어떤 분은 오아시스라고 합디다.” 나무그늘도 없는 신불산 능선이 여름에는 얼마나 덥겠는가. 그래 그 천막이 오아시스처럼 시원하다고 해서 ‘오아시스’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제 이 천막은 겨울바람을 막을 테니 뭐라 지어야 하나? 그러나 나는 산주막이 좋다. 커피 한 잔 마시며 평원을 거닌다. 신불산에서 취서산 사이 신불평원까지 1시간 넘는 거리. 바람이 능선을 타고 달린다. 하늘을 달린다. 바람의 길. 바람의 노래가 들리는 듯 하다. 표지석 옆에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보리가 막 자라는 이른 봄에 월출산을 오르고 나서 처음이니 오랜만에 등산을 했다. 삐리리 문자를 날렸더니 답장이 온다.

‘뒷산에 갔고만!’ 그는 울주 사람이다. 울주사람에게 신불산은 뒷산이다. 신불산 북쪽으로 가지산이 보이고 왼쪽으로 운문산이 보인다. 산자락이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졌다.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나는 ‘바람의 길’을 더듬는다. 간월재로 내려간다. 간월재 앞에 있는 산이 간월산이다. 내려가는 길 또한 수월하지 않다. 그래도 발걸음이 가볍다.    

신불산은 울주군 주민들에겐 뒷산이다. 2004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신불산은 울주군 주민들에겐 뒷산이다. 2004년 12월. 사진 / 김연미 기자

Tip. 신불산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타고 서울산IC에서 양산 방면으로 1km 정도 가면 등억온천단지 간판이 보인다. 이 곳이 작괘천 입구. 작괘천을 따라서 1.5km 정도 가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언양자수정동굴 간판이 붙은 좌측으로 진입하면 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서 바로 우측으로 5백m 정도 가면 등억온천이다. 등억온천 안쪽으로 들어가면 신불산 입구 주차장과 공용화장실이 있다. 화장실 위에 간월산장이 있다.

◆ 겨울산행정보
신불산은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린다. 산 정상에는 추위를 피할 나무가 없기 때문에 겨울바람이 세다. 겨울 산행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홍류폭포에서 공룡능선으로 가는 길을 위험하다. 간월산장에서 홍류폭포와 간월재로 가는 길이 있다. 간월재로 가는 길을 오르다 보면 임도가 나온다. 임도를 따라서 간월재를 오른다. 간월재에서 신불산 정상까지 40여분 정도 소요. 가파르지 않아서 오르기가 좀 수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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