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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백두대간종주기⑧] 산아에 만난 아름다운 것들, 대관령과 청옥산
[백두대간종주기⑧] 산아에 만난 아름다운 것들, 대관령과 청옥산
  • 박상대 기자
  • 승인 2004.12.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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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청옥산 정상 풍경. 2004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청옥산 정상 풍경. 2004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강원]  두타산 쮝 청옥산 쮝 백복령 쮝 석벽산 쮝 닭목재 쮝 대관령 쮝 소황병산 쮝 진고개 쮝 구룡령 두타산에서 대관령과 오대산을 거쳐 설악산까지 백두대간을 탈 때는 자주 순서가 뒤바뀌었습니다. 위에서 내려오다가 아래서 올라가다가, 또 건너뛰다가… 강원도 깊고 높은 산에서 가을을 보내며 만난 길동무들 이야깁니다.

대관령에는 비와 꽃과 바람이 살고
대관령 휴게소에서 진고개까지 갈 때는 전날 밤새도록 비가 내렸지요.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산에 오르기 시작했는데도 비가 내리대요. 선자령을 거쳐 동해전망대에 이를 때까지 하늘은 어둡고, 거친 빗방울이 쏟아졌습니다. 비옷을 입었지만 바지는 금세 젖었고, 신발에도 물이 찼지요. 신발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고, 등줄기에선 빗물인지 땀인지 속옷을 적시며 바짓가랑이로 흘러내리더군요.

대관령에서 만난 양떼. 2004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대관령에서 만난 양떼. 2004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빗방울이 작은 돌멩이처럼 날아와서 얼굴을 때렸습니다. 대관령의 비바람이 얼마나 거센지 절절이 경험했지요. 고개를 처박고 앞만 보고 걷기를 두 시간여. 그러나 어느 순간 몸에서 솟구치는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살아 있음, 육신의 건강함, 시간을 얻음에 대해 감사하며 빗방울도 길동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답니다. 

동해전망대 매점에서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가 따끈한 차와 컵라면을 팔더군요. 세상에나! 이런 빗속을 뚫고 산행할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아줌마! 나도 미쳤지만 당신도 미쳤네요…. 아줌마가 끓여준 컵라면에 도시락을 먹고, 술도 몇 잔 마시고 다시 빗길을 걸었습니다. 소황병산에 다다르자 빗방울이 사라지고 는개비가 내렸습니다.

허허벌판 목초지대. 우리나라에 이런 목초지대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자랑스러웠습니다. 목초지대 옆으로 비바람에 부대끼며 피어있는 들꽃들. 하얀 구절초와 보라색 큰용담이 발걸음을 붙들었습니다. 산에서 꽃들을 만나는 것은 황홀한 기쁨입니다. 오랜 친구들을 만나는 기분이 듭니다.

삼화사 앞에 있는 무릉계곡 입구. 그 이름이 아깝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2004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삼화사 앞에 있는 무릉계곡 입구. 그 이름이 아깝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2004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청옥산 무릉계곡에 가슴을 담그다
두타산을 오르기 전에 얼마나 기대를 했는지 모릅니다. 한 친구가 동해시에 있는 두타산과 무릉계곡 자랑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두타산에 오른 시각이 새벽이라 산은 볼 수 없고 모처럼 별들이 산행하는 동안 길동무가 되어 주네요. 산속에서 별을 보는 재미는 각별합니다.

저는 별들을 보다가 곧잘 혼자가 됩니다. 천천히 가면 두타산 정상에서 일출을 볼 수 있을 거라고 해서 천천히 걸었는데 두타산을 한참 지나 청옥산에 다다라서야 날이 밝아오네요. 밤이 길어진 탓이겠지요. 두타산은 냄새만 맡고 지나쳤고, 대신에 청옥산과 무릉계곡에 한껏 취했습니다.  

신선대에서 무릉계곡쪽은 수백 길 낭떠러지. 신선대에 서면 신선이 된다. 2004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신선대에서 무릉계곡쪽은 수백 길 낭떠러지. 신선대에 서면 신선이 된다. 2004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청옥산에는 낙엽이 뒹굴고 있네요. 산을 물들이고 있던 단풍은 이제 끝물. 제 목숨을 다하고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낙엽들을 함부로 짓밟을 자신이 없습니다.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서 온산을 별천지로 수놓고 있던 나뭇잎들. 그때는 찬탄을 금치 못했는데… 이제 수명을 다했다고 함부로 짓밟을 순 없지요… 낙엽과 낙엽이 서로 몸을 비벼대며 속삭이는 소리들을 듣습니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지난 달에 달밤에 산에 오르는 동료의 숨소리가 아름답다고 했는데 낙엽들이 서로 살을 부딪치며 속삭이는 소리도 가슴이 떨리게 합니다. 한편으로는 이제 제 몸을 위해 거름이 될 윤회와 숙명 앞에 고개를 숙입니다. 사람들도 세상을 아름답게 빛낸 순간이 있고, 그 순간이 지나면 쓰러져 흙이 되겠지요.

학창시절에 이효석 선생의 <낙엽을 태우며>란 글을 읽으며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선생은 “낙엽이 타는 냄새를 좋아한다. 낙엽을 태우면 커피향이 난다”고 했는데 저는 낙엽을 왜 태우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요. 그런데 어디선가 낙엽을 태우는 냄새가 나는 듯합니다. 선생이 왜 낙엽을 태우며 코를 벌름거렸는지, 그 향내에 취했는지 어른이 된 지금 산행을 하며 조금은 알 듯합니다.

구절초와 큰용담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대관령. 2004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구절초와 큰용담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대관령. 2004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바람이 휙 불면 나뭇가지가 머리 위로 툭 떨어집니다. 혹은 길섶으로 떨어지고. 이른 아침 홀로 산길을 걷는 저는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 긴 밤을 걸어온 산객을 맞이하는 바람의 인사랍니다. 밤에는 바람을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날이 밝으면 산길에서 바람도 벗이 되지요. 바람이 동행해 주면 산행이 한결 쉽지만 바람이 멀리 떠나고 없으면 산행은 정말 팍팍합니다. 해서 산행 중에 바람을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때로는 꽃보다 바람이 더 고맙고 아름다운 동무랍니다. 나눠 먹는 재미와 배려하는 멋 청옥산에 올라 아침을 먹었습니다. 먼저 오른 사람들이 따끈한 녹차를 끓여 나중에 올라온 사람들에게 한 잔씩 권합니다. 이른 아침에 산 정상에서 나눠 마시는 차 한 잔! 이건 마셔보기 전에는 모릅니다. 그 맛과 멋을.

야간산행을 마치고 꿀꿀이죽을 만들어 먹는 산객들. 2004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야간산행을 마치고 꿀꿀이죽을 만들어 먹는 산객들. 2004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아침식사를 해야지요. 산객들의 아침식사는 꿀꿀이죽이 인기 있습니다. 코펠에다 물을 붓고 밥과 김치, 라면, 떡, 김밥 등을 한꺼번에 끓입니다. 참여하는 사람 숫자만큼 다양한 종류의 부식들이 섞인 섞어찌개랍니다. 무슨 맛이냐구요? 맛있냐구요? 솔직히 그냥 먹습니다. 배도 고프고, 만든 사람들 성의도 있고, 콧물 흘리면서 허허 웃으면서 먹습니다. 특별한 맛보다 같이 먹는 재미로 먹는 거지요.

청옥산에서 아침을 먹고 한 시간쯤 내리막길을 걷자 연칠성령이라는 고개가 나옵니다. 날씨가 맑은 아침나절이라 울긋불긋 물을 들여놓은 산허리가 아름답습니다. 아니 모든 산들이 고운 치마를 입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듯 보이네요. 연칠성령을 거쳐 고적대에 이른 산길은 볼거리가 참 많습니다. 조그만 암릉에 올라 산 아래를 휘둘러보는 재미가 있고, 어른 키보다 높은 진달래 숲길을 걸으며 단풍향내를 맡는 재미가 있습니다.

연칠성령 정상. 2004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연칠성령 정상. 2004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고적대에 올라 청옥산과 두타산을 건너다 봅니다. “우리가 지금 저기 저 산부터 타고 온 거죠? 누구 10만원 주면 다시 갔다 올래요?” 모두들 고개를 흔들며 무릉계곡으로 하산. 1시간 이상 꽤나 경사가 급한 비탈길을 내려가자 맑고 고운 계곡이 앞길을 막습니다. 무릉계곡! 그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계곡. 얼굴이 비치는 맑은 물에 빨간 단풍잎들이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발을 벗고 계곡 물에 발을 담급니다.

한기가 머리끝까지 전해지는 시간은 불과 3초. 너른 바위에 누워 하늘을 보니 겨우 한 평. 계곡과 하늘의 너비가 같아 보이네요. 다시 하산길을 재촉하는데 작은 고개가 버티고 섰네요. 고갯마루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가져가니 신선대라. 지친 다리 때문에 한 발짝도 아껴야 할 하산길에 다시 신선대에 오릅니다. 아, 신선대! 산객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맙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각기 다른 절벽. 아스라이 서 있는 절벽과 소나무와 단풍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습니다.

무릉계곡 초입에 있는 천년고찰 삼화사. 2004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무릉계곡 초입에 있는 천년고찰 삼화사. 2004년 12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죽인다. 여기서 사랑을 고백하면 안 받아줄 수 있겠나.” 신선대 옆 사랑바위가 무슨 용도인지, 왜 사랑바위인지 짐작할 수 있더군요. 무릉계곡에는 폭포가 셋 있습니다. 폭포는 여간해서 마르지 않고 여행객들에게 건강한 생명력을 보여 준다네요. 폭포를 들러 하산하자 조그만 사찰이 있네요. 삼화사. 무릉계곡이 품고 있는 삼화사를 둘러보고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절 앞에 펼쳐진 너른 바위가 아직 무릉계곡이 끝나지 않았음을 일깨워 줍니다. 백두대간 종주는 매주 주말에 2005년 5월까지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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