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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10월호
[만화 속 배경 여행] 참 멀고도 아름다운 동네…'원미동 사람들'의 배경지, 부천 원미동
[만화 속 배경 여행] 참 멀고도 아름다운 동네…'원미동 사람들'의 배경지, 부천 원미동
  • 서찬휘 여행작가
  • 승인 2019.08.13 1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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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그리고 만화로 다시 태어난 '원미동 사람들'
무궁화 연립 등 시대에 휩쓸려 사라진 풍경 많아
'만화 도시 부천' 매력 느낄 수 있는 한국만화박물관
원미산은 해발 167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부천시 일대를 조망하기에 충분하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여행스케치=부천] 서울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서쪽으로 향하면 곧바로 마주치는 곳이 바로 부천이다. 도시화에 따른 변화의 흔적을 고스란히 끌어안은 채 묵묵히 서울과 인천 사이를 지키고 있는 작은 도시.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은 바로 부천의 한 마을, 원미동 풍경을 담아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양귀자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은 1986년 3월 <멀고 아름다운 동네> 편을 시작으로 1987년 8월 <한계령>까지 11편에 달하는 연작 단편을 묶은 작품집이다. <멀고 아름다운 동네>는 원미동의 이름을 우리말로 풀어 성경의 가나안에 비유한 제목으로, 1980년대의 한 마을, 원미동 23통에서 살던 서민들의 모습을 골목골목 속에 고스란히 담아낸다. 

원미어울마당 앞 공원에는 작중 주요 인물 3명의 조형물이 서 있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소설 <원미동 사람들> 일부 내용을 담은 구조물을 볼 수 있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소설, 그리고 만화 <원미동 사람들>
1987년 이후 4판 111쇄라는 진기록을 세운 소설 <원미동 사람들>은 그간 드라마와 연극, 뮤지컬, 그림책으로도 재탄생했다. 2012년에는 변기현이 그린 만화 <원미동 사람들>이 두 권으로 나뉘어 출간되었다. 

변기현은 <로또블루스>, <고양이Z> 등으로 상업 만화와는 또 다른 필체의 힘을 보여준 만화가이다. 따라서 예술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고, 정제된 스토리와 그림을 선호하는 유럽 시장에 어필할 수 있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변기현의 만화 <원미동 사람들>의 특징은 소설 플롯을 충실히 반영하면서도 만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시각 요소를 정갈하게 담아냈다는 점이다.

만화 <원미동 사람들> 1, 2권 표지. 이미지 / 북스토리

전체적으로 채택한 배색은 옅은 파스텔 톤으로 지난 시대의 정취를 표현하고 있으며, 캐릭터 조형과 연출이 모나지 않게 어우러지고 있다. 게다가 그 시대를 반영하는 여러 소품과 풍경의 꼼꼼한 재현도 상당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래서 원작자인 양귀자도 만화 <원미동 사람들>을 두고 “그림으로 문장의 뒷면까지 기록에 더했다. 원작자도 새로운 독자로 포섭했다”고 말했다. 소설을 인상 깊게 읽은 이라면 만화를 꼭 살펴보길 권하는 이유다. 

Tip 소설 <원미동 사람들> 
양귀자 지음, 문학과 지성사 펴냄.
1987년 11월 1일 첫 출간 이래 2003년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되면서 세대를 아우르며 사랑받은 작품. 11편의 연작 소설이 한데 엮여 있으며, 작가가 1981년부터 실제로 살았던 부천시 원미동을 소재로 삼아 당시 한국 사회의 현실을 비춰 보인다.

만화 <원미동 사람들> 
변기현 만화, 북스토리 펴냄.
양귀자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변기현의 만화. 소설 속 8개 에피소드를 담아냈으며, 2011년 한국콘텐츠진흥원 기획만화창작지원작이다.

원미동 시인으로 불리는 몽달 씨 조형물.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원미동 사람들'이라는 이름을 단 식당.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원미동 사람들> 속 풍경을 좇다
<원미동 사람들>의 배경지는 원미동 23통이다. 처음 나왔던 소설책 표지에는 이 일대의 지도가 손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곳은 현재 원미구청으로 쓰이다 ‘원미어울마당’이라는 복합 문화 시설로 거듭난 오랜 건물부터 시작해 원미로149번길로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골목길이다. 지금은 부천시 중동에 밀려 구시가로 구분되지만, 한때 부천의 중심지가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원미어울마당 앞마당에는 작품 도입부에 해당하는 일가족의 이사 풍경과 마을 풍경을 담은 조형물과 더불어 작중 주요 인물 셋의 전신상, 그리고 소설을 일부 발췌해놓은 장식물이 있다. 특히 전신상은 작품을 읽은 이라면 척하고 알아볼 법하다. 원미동 시인 몽달 씨와 주변에서 팔라고 성화인 땅에 기어이 인분을 뿌리며 농사를 짓는 강 노인, 그리고 이 마을 23통 5반의 반장으로 형제슈퍼를 운영하는 김 반장이다. 

대화아파트 앞 안내판을 통해 공간의 맥락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작품 속 강 노인의 밭이 있던 자리.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부천로136번길을 따라 ‘원미동 사람들’을 간판으로 내건 생선구이 가게를 지나 조금만 더 가면 이정표가 나온다. 이 이정표를 따라 한 블록 걸어가 오른편으로 들어서면 소설과 만화에 반영됐던 골목이 등장한다. 조금만 더 가면 대화파크아파트가 나오는데, 이곳은 작중 가장 중요한 무대인 무궁화 연립이 자리했던 곳이다.

2층짜리 연립 주택이었던 이곳은 현재 아파트가 되었지만, 단지 앞에 ‘소설 <원미동 사람들> 언저리’라 쓰인 안내판이 서 있어 소설 <원미동 사람들>의 표지에도 실렸던 손 그림 지도와 이 공간의 맥락을 살펴볼 수 있다.

Info 원미어울마당
주소
경기 부천시 부천로136번길 27

시대에 휩쓸려 사라지고 태어난 풍경들
무궁화 연립이 사라졌듯 작중 배경이 되었던 일대도 많이 바뀌었다. 강 노인의 밭이었던 곳은 시민들의 휴식처인 은행공원으로 거듭났고, 김 반장의 형제슈퍼 또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아파트 건너편 시장 방향에 자리한 연립주택은 신축 빌라들과는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어 옛 건물의 정취를 미약하게나마 느껴볼 수 있다. 

토끼굴 벽면에는 작품 내용을 담은 타일 벽화가 조성되어 있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원미산 입구로 가는 길에 자리한 원미공원 문학동산.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공원을 둘러보고 나면 원미산으로 향한다. 원미산은 <한 마리의 나그네 쥐>에서 1980년 5월의 광주를 목도한 남자가 사라진 산이다. 원미산 입구로 가는 길 중 ‘토끼굴’이라 불리는 지하 보도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이곳은 한때 우범지대로 손꼽히던 곳이었지만, 2012년 부천 만화창작스튜디오 작가들이 <원미동 사람들>의 내용을 벽화로 제작하며 모습을 달리했다. 

현재는 타일 벽화를 새롭게 조성해 부천시와 원미구 일대, <원미동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과거 우범지대였다는 사실을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하게 단장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원미산은 해발 167m의 낮은 산이다. 야트막한 산이지만, 원미정이라 이름 붙은 정자에 오르면 부천시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어 <원미동 사람들> 여행의 마무리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만화 창작 스튜디오 내부.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원미동 사람들>과 부천, 그리고 만화
부천시에는 소설 <원미동 사람들>의 작가 양귀자를 비롯해 시인 정지용, 변영로 등 부천 출신 인물을 소재로 예술가들과 실제 공간을 연결하는 프로젝트가 있다. ‘부천인문로드’라 이름 붙은 이 프로젝트는 부천에 터를 잡고 있는 만화 기획 및 교육사업체 카툰캠퍼스가 기획한 것이다. 지난 세월 속 공간과 인물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을 가미해 소개한다는 점에서 여행의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카툰캠퍼스는 <원미동 사람들>의 각 편을 카투니스트 이대호(고구마) 작가가 카툰으로 재구성한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카툰캠퍼스 갤러리에 전시된 이대호 작가의 <원미동 사람들> 카툰.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만화박물관에서는 만화 조형물과 전시를 감상할 수 있으며, 만화 <원미동 사람들>을 열람할 수 있다. 사진 / 서찬휘 여행작가

이와 같이 <원미동 사람들>의 변주는 변기현의 만화는 물론 카툰캠퍼스에 이르기까지 지역과 만화를 연결함으로써 새롭게 조명받을 수 있었던 사례인데, 어쩌면 부천시가 ‘만화 도시’로서 꾸준히 역할을 해 온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기왕 부천까지 온 김에 만화를 즐기고 싶다면 상동에 자리한 한국만화박물관을 함께 방문해 보는 것도 좋다.

박물관은 원미어울마당 인근 춘의역에서 7호선을 타고 삼산체육관역 5번 출구로 나가면 만날 수 있다. 만화 조형물들과 더불어 전시, 상영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박물관 내에 마련된 도서관에서 만화 <원미동 사람들>을 열람할 수 있어 더욱 알차다.

Info 한국만화박물관
관람료
일반 5000원, 노약자ㆍ장애인 무료
운영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5시까지 입장, 매주 월요일 휴관)
주소 경기 부천시 길주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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