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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10월호
[진도기행] 그 섬에는 바다만한 정이 있다, 아! 그리운 진도여!
[진도기행] 그 섬에는 바다만한 정이 있다, 아! 그리운 진도여!
  • 김정민 기자
  • 승인 2005.02.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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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진도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진도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여행스케치=진도] 한반도의 땅끝이라는 해남보다 더 먼 곳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 삼별초의 한이 묻혀 있으며 그 때부터 자라난 한이 서려 진도아리랑이라는 문화가 꽃 핀 곳. 이 땅을 며칠간의 여행으로 알아보려 한다는건 욕심이다. 평생을 살아도 알쏭달쏭한 것이 이 곳 진도다. 목포에서 버스를 타면 진도시외버스터미널까지 한 시간이 걸린다.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진도대교가 눈앞으로 다가온다. 진도대교 아래 흐르는 물살 빠른 바다가 울돌목이던가? 이순신 장군이 불과 12척의 전함으로 왜선 3백30척을 격파하였다는 그 역사적인 곳에 어느덧 대교가 들어섰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계절을 거슬러간다. 논에는 까슬까슬한 볏짚만 남았는데 밭에는 진녹색의 파밭이 눈 앞에 펼쳐진다.

겨울이 되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배추밭.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겨울이 되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배추밭.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진도는 섬이긴 하나 주민의 7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고 겨울에는 육지보다 날씨가 따뜻하기 때문에 봄에 출하될 대파나 배추농사를 짓는다. 예전에는 1년 벌이로 3년을 살았다는데 날이 점점 따뜻해지면서 그마저 옛말이 된지 오래. 아까운 파밭들이 이제 거름으로 돌아갈 판이다.

여행자들에게는 엄마 품처럼 따스한 풍경들이 실은 진도 농민들의 가슴에 진 멍울이다. 계절은 어길 수가 없는지 진도는 잠잠하다. 글자 하나가 떨어져 대롱대롱거리는 전방의 간판도, 모텔도, 식당도 숨죽인 듯 고요하기만 하다. 조용한 시골길을 따라 버스가 터미널로 서서히 밀려들어간다.

여느 시골동네처럼 분주한 버스터미널. 분주한 터미널의 한 귀퉁이에서 소박하게 삶을 일구어 나가는 진도 사람들과 만났다. 진도는 참 넓은 땅이다. 읍에서 바다를 보러 나가려고 해도 20~30분을 족히 달려야 한다. 농업이 주된 곳이라 항구에 가도 그 흔한 횟집조차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숱한 섬들에 휩싸인 수려한 바다풍경을 만날 수 있다.

진도에는 어딜가나 진돗개를 만날 수 있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진도에는 어딜가나 진돗개를 만날 수 있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진도에 찾아왔다면 문화예술을 먼저 찾아보는 것이 순서겠지만 진도사람들은 그 전에 진도를 한번 느껴보라고 권한다. 장대한 문화예술이 꽃피게 된 연유를 알게 되면 그 때부터 진도에 녹아들게 될 것이라며. 진도에 가면 이 세 가지는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단다. 첫째는 글씨요, 둘째는 그림이요, 셋째는 노래란다. 그만큼 예술가들이 많았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명창들이 많이 태어난 곳이 바로 진도다.

그 중 한국화의 터를 닦은 소치선생의 운림산방은 진도의 명물로 꼽히곤 한다. 운림산방이란 뜻은 첨찰산 뒤에 두른 깊은 산골에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숲을 이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동양화는 보통 남종화와 북종화로 나뉘는데, 남종화가 부드럽고 추상적이라면 북종화는 직설적이고 현실적이라고들 한다.

추사 김정희에게 본격적인 서화수업을 받은 소치 허련 선생은 조선후기 남종화의 대가로 불렸다. 스승인 김정희가 죽자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인 진도에 내려와 운림산방을 짓고 그림에 몰두했다. 이후 그의 셋째아들 허형과 손자 남동 허건을 포함한 5대가 남종화를 이어가면서, 운림산방은 한국 남종화의 성지로 불린다.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 선생이 머물렀던 운림산방에 어느덧 눈이 내렸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 선생이 머물렀던 운림산방에 어느덧 눈이 내렸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진도역사관에는 진도인들의 손때가 묻은 물건이 있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진도역사관에는 진도인들의 손때가 묻은 물건이 있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운림산방에 있는 소치기념관에는 소치선생과 그 후손들이 그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운림산방에 있는 소치기념관에는 소치선생과 그 후손들이 그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운림산방에는 소치선생이 태어난 생가와 연못을 앞에 두고 그림을 그렸다는 화실과 소치선생과 그의 후손들의 그림이 담긴 소치기념관, 진도의 역사를 읽을 수 있는 진도역사관이 있다. 소치선생은 향이 짙은 나무들을 좋아해서 주변에 유자나무, 귤나무, 은사시 나무를 많이 심었다는데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계절이 되면 운림산방 가득 향기가 들어찬다.

운림산방 왼편에 천년의 역사를 지닌 고찰 쌍계사가 있다. 아담한 고찰 주위로 동백나무 서식지가 있어서 겨울이면 붉은 동백꽃이 핀다. 쌍계사 뒤편으로 올라가면 첨찰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다. 수풀이 우거져 있어 하늘이 보이지 않는 등산코스라고 하는데 정상까지 가는 데만 2시간이 걸린다.

신비한 바닷길로 가는 해안도로, 바다가 열리는 길을 따라 빨간 부표가 설치되어 있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신비한 바닷길로 가는 해안도로, 바다가 열리는 길을 따라 빨간 부표가 설치되어 있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등산로 올라가는 초입에는 소원의 샘이라는 기이한 지형의 샘이 하나 있다. 그 모양이 여성의 자궁을 닮아 이곳에서 지성으로 빌면 아이를 못 가진 여성들도 아이가 생긴다는 속설이 있다. 풀숲이 우거진 등산로와 누군가 소담스레 쌓아올린 우물가의 정취가 남다른 곳. 운림산방에서 해안선을 따라 움직이면 신비의 바닷길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일년에 6개월 여, 한 달에 3일에서 4일간 열리는 바닷길을 찾는 외국인들은 ‘모세의 기적’이라 부르며 신기해 한다. 바닷길은 새벽시간에 주로 열리는데 낮 시간에 열리는 날이면 ‘영등제’라는 축제를 연다. 이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열린 바닷길 사이로 조개잡이에 나선다. 바닷길이 열리는 시간은 불과 1시간 30분. 바닷길이 열리는 곳은 빨간 부표가 수놓여 있다.

멀리 보이는 섬까지 가려면 달음박질로 뛰어갔다가 돌아와야 한다고. 영등제가 열리는 기간에는 그 섬까지 배로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바닷길이 있는 곳에는 뽕할머니의 전설이 깃든 동상이 있다. 너무 무거워서 대교를 건너지 못하고 배로 실어 날랐다는 뽕할머니 동상. 조선 초기에 호랑이를 피해 주민 모두가 섬을 떠나자 홀로 남은 ‘뽕할머니’가 가족들과 만나게 해달라며 용왕에게 빌어 바닷길이 열렸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지난 해의 마지막날 세방낙조 전망대에서는 진도국립국악단의 신명나는 공연이 펼쳐졌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지난 해의 마지막날 세방낙조 전망대에서는 진도국립국악단의 신명나는 공연이 펼쳐졌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바닷길과 가까이 붙어있는 가계해수욕장 근처에는 해양생태관이 자리 잡고 있다. 세계의 조가비 1만 여점을 수집한 진도출신의 사업가가 진도군에 기증을 하여 건립한 곳. 1층에 희귀조가비 전시관과 2층의 해양생물 생태관이 있어 아이들과 둘러보기에 좋다. 신비의 바닷길을 지나면 해안도로는 고려시대 삼별초의 항쟁당시 배중손 장군이 여몽연합군과 격전을 벌이다가 최후를 마친 남도석성으로 간다.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원형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다는 석성의 아름다운 모습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듯. 고려가 몽고에 굴욕적인 강화를 맺고 개경환도를 할 때 이에 불복하며 대몽항쟁을 다짐했던 삼별초군이 남하하여 근거지로 삼았다던 용장 산성은 진도대교에서 가까운 곳에 있으므로 삼별초의 유적을 살펴보고 싶은 분들에게는 권할 만한 여행지다.

세방낙조 길로 들어서는 시닉 드라이브 코스. 해안가 마을과 다도해상을 한꺼번에 관광할 수 있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세방낙조 길로 들어서는 시닉 드라이브 코스. 해안가 마을과 다도해상을 한꺼번에 관광할 수 있다. 2005년 2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진도여행의 마지막 묘미가 될 세방낙조는 한반도 최서남단에서 전망 좋은 곳으로 인정을 받은 곳. 겨울은 다도해 섬 사이로 떨어지는 해를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그러나 해상의 자욱한 안개 때문에 낙조를 보는 것은 천운이나 다름없다.

가는 해를 보낼 때면 국립국악단의 공연이 펼쳐지므로 나름대로의 재미는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진도는 음식점과 숙박시설이 발달하지는 않았다. 진도를 천천히 둘러보며 ‘중간에 식사를 해야겠다’라고 마음먹으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맛있는 식사와 숙박은 읍에서 해결하는 것이 좋다.

가는 길에 마주친 어른에게 진도아리랑 한 번 구성지게 들려달라고 부탁을 드리면 못 부르는 어른들이 없을 정도로 진도사람들은 정도 많고 소리도 잘한다. 그들이 부르는 아리랑 노래를 지표삼아 진도라는 섬에 동화되어 보는 것도 소중한 추억거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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