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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지구촌기행] 모험의 나라 필리핀! 게스트하우스 소리네집 & 팍상한 폭포
[지구촌기행] 모험의 나라 필리핀! 게스트하우스 소리네집 & 팍상한 폭포
  • 김상미 객원기자
  • 승인 2005.02.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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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마닐라의 팍상한 폭포. 2005년 2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마닐라의 팍상한 폭포. 2005년 2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여행스케치=필리핀] 코발트빛 하늘만 보면서 길을 나섰다가 돌아갈 수 없는 곳까지 와버린 듯한 느낌이다. 언젠가 찾아 헤맬 길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어 기억해 둘 것이 많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가져가지 않으려 한다. 아쉬움을 남겨두지 않으면 다시 여행길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필리핀 하면 섬들이 모여 있는 나라, 직선으로 꽂히는 태양, 이멜다의 신발, 망고, 안경원숭이 정도를 생각했는데 하늘에서 내려다 본 바다 빛은 맥주병인 나도 빠져보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다. 하얀 구름과자 속을 통과했을 때 장난감 마을처럼 낮게 엎디어 있는 지붕들이 낯선 이방인을 환영하고 있는 듯했다.

필리핀 공항을 빠져 나오는데 가을을 몸에 묻혀 온 피부가 온도조절을 하느라 땀을 내뱉는다. 도로는 만원이었다. 가볍게 통과할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틈이 없다. 트라이시클(5인승 오토바이)과 지프니(창문이 없는 버스)가 끼어들기를 하면서도 깜박이를 켜는 매너를 지키지 않는다.

팍상한 폭포를 안내해 준 소리네 가족. 소리네 가족은 선교를 하기위해 필리핀에 머물고 있다. 2005년 2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팍상한 폭포를 안내해 준 소리네 가족. 소리네 가족은 선교를 하기위해 필리핀에 머물고 있다. 2005년 2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그러나 강물이 실개천을 안고 흐르듯 질서 정연한 바퀴의 흐름을 보고 양보는 침묵처럼 깊다는 생각을 했다. 혼잡함 속에서도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사람들. 바퀴보다 마음이 앞서는 우리의 빵빵대는 경적문화를 찾아 볼 수가 없다. 여유는 넉넉함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끌어안는 힘이 아닌가 싶다.

자꾸만 옷을 벗으라는 햇살을 피해 도착한 필리핀 게스트 하우스 소리네 집은 낙원이었다. 소리와 수근이, 성민이가 밝게 웃는 해바라기처럼 인사를 했다. 잠시 숨을 돌리고 나서 소리네 집에 머물고 있는 하숙생들(영어공부 하러 온 사람들)과 함께 소리네 애마 봉고를 타고 팍상한 폭포로 향했다.

시내를 벗어나자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소리 옆자리에 앉은 덕에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민생활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물어보려는데 막내 성민이 목소리가 먼저 오뚝이처럼 톡 튀어나와 말을 가로막는다. “우리학교에는 중국, 일본, 필리핀, 한국 아이들이 모여서 공부를 하는데요. 서로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해요.

그런데 우리나라 친구들과 일본친구들은 잘 싸워요. 하지만 중국과 인도 친구들은 싸우는 것을 아주 싫어해요.” 민족마다 독특한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노을이 지는 필리핀 하늘빛에 반했다고 소리엄마가 고백한다. 어떻게 필리핀에 이민을 오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한국에서 목회하기가 힘들어 남편을 설득해 필리핀 선교사로 파송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강에서 목욕을 하고 먹을 것을 얻고 또 삶을 흘려보내는 필리핀 주민들. 2005년 2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강에서 목욕을 하고 먹을 것을 얻고 또 삶을 흘려보내는 필리핀 주민들. 2005년 2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그림자는 언제나 한자리에 머물러 있어서 든든하다. 엑스트라처럼 말을 아끼는 소리아빠는 아이들에게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과 남을 섬기며 살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을 나눠주고 싶다고 한다. 처음 아이들을 만났을 때 필리핀의 하늘빛만큼이나 맑은 천사들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힘차게 사랑의 페달을 밟는 동적인 아빠와 정적인 엄마 바퀴에 실려 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창 밖으로 놀러 나온 햇빛과 바람을 바라보던 소리가 반대편 차선으로 장례차량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내 눈길을 잡아끈다. 이 세상에 잠깐 소풍 나왔다 가는 길에 무슨 하객이 그렇게 많은지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행렬의 꼬리가 뱀처럼 길다. 그 뒤를 따르는 많은 차량들 묵묵히 뒤를 따를 뿐 아무도 길을 내 놓으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커다란 인내를 보는 듯 했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데 웃통을 벗은 보트맨의 구릿빛 등에 땀이 구슬처럼 맺힌다. 2005년 2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데 웃통을 벗은 보트맨의 구릿빛 등에 땀이 구슬처럼 맺힌다. 2005년 2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하이웨이를 벗어나자 좁아진 도로가에 늘어선 보트맨들이 수신호를 보내며 길을 막는다. 여행사나 호텔을 통해 예매하지 않으면 바가지를 쓸 수 있다는 정보를 챙겨왔기에 치열한 삶의 현장을 기웃거리지 않고 통과했다. 바퀴를 잡아당기는 언덕으로 올라서자 ‘팍상한’ 이라는 팻말과 함께 멋진 석조문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서둘러서 온 탓인지 주변은 한산했다.

강가에 마련된 탁자 위에 소리엄마가 새벽잠을 밀어 두고 챙겨온 김밥을 풀어 놓았다. 바라보는 필리핀 가이드들 눈빛이 진지하다. 한국 어머니들의 도시락 사랑을 알까. 도시락을 비우기가 무섭게 등 떠미는 햇살을 머리에 이고 구명조끼로 안전점검을 한 후 보트에 올랐다.

팍상한 폭포를 가기 위해 기ㅏ란 배에 3명씩 나뉘어 타고 강을 오르내린다. 2005년 2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팍상한 폭포를 가기 위해 기다란 배에 3명씩 나뉘어 타고 강을 오르내린다. 2005년 2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앞, 뒤에서 보트맨이 키를 잡고 3명씩 나뉘어 탄 보트를 한 줄로 세운 다음, 앞에 선 모터보트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진으로만 보던 강가에서 빨래하는 여인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곁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세월을 낚는 아이들을 보고 고향마을을 떠올려 보았다. 강가의 나무들은 편안한 터전을 가꾸고 있는 오래된 영혼이었다.

산 위로 점점 올라갈수록 숲은 무성하지만 물길이 좁아졌다. 엔진 보트를 떼어내고 바위 위로 보트를 끌고 가는 보트맨들의 노동이 고되게 느껴졌다. 희망을 퍼 올리는 그들은 웃옷을 벗고도 달아오르는 열기를 어쩔 수 없어 땀으로 목욕을 하는 듯했다. 인생길과도 같은 물길은 가파른 고단함과 완만한 여유로 사람들을 끌고 산으로 산으로 올라갔다. 사방은 하늘로만 열려 있고 새들의 노래 소리에 마음을 빼앗겼다.

상류에 이르자 강물이 줄어들었다. 보트맨들은 보트를 끌고 올랐다. 2005년 2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상류에 이르자 강물이 줄어들었다. 보트맨들은 보트를 끌고 올랐다. 2005년 2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악착같이 벽을 타고 올라간 넝쿨식물을 보면 금방이라도 타잔이 나타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가로 내려온 신비로운 꽃들과 인사를 나눌 때 물길이 깊어지는 듯 하더니 보트가 멈추어 서며 땅 위로 발자국을 내라고 한다. 선착장 계단 위로 올라서자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한 세찬 물줄기가 폭포를 이루면서 지상의 깊은 곳을 찾아 떨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대나무를 엮어 만든 뗏목을 타고 호수를 건너가면서 물매를 맞고 돌아오는 것이 팍상한 관광의 하이라이트다. 앙상한 과거처럼 버려진 기억속의 나를 찾고 싶다면 팍상한 폭포 앞으로 오세요. 물벼락을 얻어맞으면서도 소리를 지르고 즐거워하는 사람들. 팍상한 호수의 물빛이 탁한 이유는 아마도 죄를 꺼내놓고 그냥 돌아오는 사람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소리네 여행팀은 팍상한 폭포의 물로 심판을 받고 돌아오며 마치 지옥에서 살아난 것처럼 만세를 불렀다. 뗏목을 타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 시간이라 보트맨들의 행동이 빨라졌다. 이미 유턴해버린 해를 따라 다시 물길에 몸을 맡겼다. 돌아오는 길에 올라가는 보트와 마주하면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는데 여기가 한국의 동강인가 착각할 정도였다.

팍상한 폭포의 시원한 물세례를 맞고 돌아오는 사람들. 2005년 2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팍상한 폭포의 시원한 물세례를 맞고 돌아오는 사람들. 2005년 2월. 사진 / 여행스케치 DB

한국 관광객들의 단골 여행코스가 되어버린 팍상한 폭포. 세계 7대 관광지로 불리게 된 것은 한국 사람들이 남겨놓은 발자국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하루의 힘든 기도를 싣고 돌아오는 이들을 위하여 강물은 옅은 어둠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내려오는 시간은 물살이 끌고 가기 때문인지 올라가는 시간보다 빨랐다.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손을 잡아주던 보트맨의 수줍은 친절이 최고의 서비스가 아니었나 싶다. 3시간 정도 뗏목 위에서 흔들린 뻐근한 시간은 돌아오는 차 안을 침묵으로 몰아넣었다. 각기 달콤한 추억을 혼자 수신하면서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아마도 꿈 속에서 인생의 바다에 배를 띄우고 혼자 노를 저어가는 연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마닐라 시내로 들어서는 길은 이미 동맥경화증에 걸려 신음하고 있었다.

Tip.
급류타기의 보트맨에게 줄 별도의 팁으로 1백 페소 정도 챙겨두어야 한다. 바가지요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는 마닐라에서 투어를 이용하거나 팍상한 호텔에서 소개를 받는 것이 가장 좋다.  

찾아가는 방법 : 마닐라에서 파사이시에 있는 JAM 버스 터미널로 이동해서 라구나 주의 산타크루즈행을 타고 산타크루즈 시장에서 다시 팍상한으로 가는 지프니로 갈아타면 된다. 마닐라에서 산타 크루즈까지 2시간30분 걸린다. 산타크루즈에서 팍상한까지 지프니를 타면 약 20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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