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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오일장] 닭이 변해 주작이 되다, 동해 북평 5일장
[오일장] 닭이 변해 주작이 되다, 동해 북평 5일장
  • 김진용 기자
  • 승인 2005.03.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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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동해 북평 5일장의 북적이는 모습.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동해 북평 5일장의 북적이는 모습.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여행스케치=동해] 평수를 따져보는 게 무의미했다. 북평동 전체가 장터였다. 지금도 계속 커지고 있단다. 하지만 장이 아무리 크다 한들, 사람 사는 모습이야 거기서 거기일 게다. 동해의 5일장이니 당연 어물전이 으뜸일 터, 곧바로 어물전 사람들부터 찾았다.

아침 8시. 화로에 불이 지펴진다. 좌르르 얼음이 쏟아져 내린다. 삐닥하게 담배를 꼬나문 아저씨가 동태더미를 탕탕 내리친다. 동태 하나, 동태 둘. 한 마리씩 떨어져 나간다. 전신주에는 가오리가 가득 내걸렸다. 생선 내장을 씻어낸 비릿한 물이 바닥에 흥건해진다. 아이구 우리 시어머니 오랜만에 오셨네. 여기저기서 반가운 인사가 수런수런해진다.

쭉 늘어선 생선 좌판.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쭉 늘어선 생선 좌판.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자리다툼과 사소한 투정 소리도 간간이 섞여 든다. 동해의 오징어, 가자미, 명태, 대구, 민어, 가오리, 도루묵에다가 남해의 멸치까지 한 스무 가지는 될 것 같다. 오늘 아침 대진항에서 잡았다는 40kg짜리 문어는 몸통은 어디가고 다리 두 개만 남았나. 조기 빼놓고는 다 있다.

판이 벌어졌다. 팔도 손님들 어서 오시래요. 제법 손님이 북적댈 무렵. 좌판 도루묵 아주머니에게 은근슬쩍 말을 붙여본다. “이거 무슨 생선이에요?” “어디서 왔어?” “서울서요. 사진 찍으러 왔어요.” “도루묵도 모르면서 무슨 사진을 찍어?” 한다. “그러게 말이에요. 옆에 자리나 좀 내주세요” 했다. 성가시다는 아주머니에게, “한 3만 원어치만 파시는 거 보고 갈게요” 라고 우기며 나란히 쪼그리고 앉았다.

여기서 보면 행인들이 올려다 보이는구나. 고개를 내리니 눈앞에 무심한 발걸음만 한참 동안 왔다갔다 한다. 뜻없이 울적해져서 나도 따라 목청을 높여 본다. “도루묵 좀 사세요!”

이른 아침 아저씨는 생선을 내리고 아주머니는 좌판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이른 아침 아저씨는 생선을 내리고 아주머니는 좌판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올해 쉰 살. 20년 전부터 북평장을 들락날락했단다. 가자미와 오징어를 이고 다니며 근처 가게를 돌았던 시절이다. 한 10년 전부터는 좌판 한 자리 얻어 앉으셨다. 옛날 손님들은 싸고 양 많으면 좋아했다. 요새는 비싸고 싱싱한 것만 찾으니, 물건 떼 올 때 여간 신경이 쓰이질 않는단다. 자기야 한 20년 하다 보니 이력이 났지만, 젊은 초짜 상인이 걱정이란다.

“처음 하는 아이들은 암 것도 모르고 비싸게 물건을 떼 와. 그러다 안 팔리면 더럭 겁이 나서 막 싼 값에 팔아 버려. 손해지 뭐. 안타깝지.”

모처럼 도루묵 앞에서 행인의 발걸음이 멈췄다.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이거 어떻게 해요?” 하다가 “에이, 러시아산 같네” 하며 가버린다. 아주머니는 허탈하다. “꼭두새벽에 삼척 포구에서 잡아온 걸 얼음 한번 안 재고 바로 가져왔는데 러시아산이라 해버리니 웃을 수밖에.” 그러면서도 말없이 도루묵 한 접시 더 챙겨 올려놓는다.

결국 3만 원어치 파는 걸 못보고 일어섰다. 한 접시 5천 원. 겨우 3접시 팔았는데도 다리가 저려 앉아 있질 못하겠다. 달아나는 내 뒤꽁무니에다 대고 아주머니가 외친다. “총각, 사진 안 찍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꾸했다. “나 총각 아니에요.” 불경기다.

북평동을 가로지르는 큰 도로 전체가 장터와 주차장으로 바뀌어 버린다.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북평동을 가로지르는 큰 도로 전체가 장터와 주차장으로 바뀌어 버린다.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그러고 보니 젊은 상인이 자주 눈에 띈다. 경기가 안 좋으면 상인이 더 는다고 한다. 경험 삼아 나오는 젊은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일자리가 없어, 크다는 북평장에 와서 행상을 벌이는 것이다. 지금은 3분의 2가 외지에서 온 뜨내기 상인이란다. 이런 젊은 상인은 이 지역 입주상가와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장날이면 온 도로가 주차장이 되 버려 영업이 안 되는데, 뜨내기까지 차 몰고와 상점 앞에서 판을 벌이니 속이 시커멓게 타 들어가는 것이다. 장이 크긴 참 크다. 전국의 물건과 상인이 다 모이는 강원도 최대의 장으로 커졌다 했던가. 곡식전에는 심지어 수단산 참깨도 있다. 삼척산 햇보리쌀, 진도산 흑미, 중국산 흑감자. 꼬박꼬박 원산지 표시가 붙어 있는 게 세계 곡식 박람회같다.

20년째 사주를 보는 배문주 할아버지. 북평장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20년째 사주를 보는 배문주 할아버지. 북평장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다.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장터 토박이는 역시 사주팔자 보는 할아버지. 올해 84살인 배문주 할아버지는 20년 넘게 북평장에서 사주를 보고 있다. 한번 보는 데 2만 원이라는 걸, 깍고 깍아 5천 원에 봐 달라고 했다. 이책 저책 뒤적이다 대뜸 ‘계변주작(鷄變朱雀)’ 운세를 내놓으셨다. 닭이 변해 주작이 되다. 서른 서넛에 신수가 대통하다. 쉰 한둘에 손으로 천금을 희롱하다. 몸을 가벼이 놀리면 구설수가 많으리라. 그렇게 적혀 있다.

이게 좋은 거냐 물었더니, “인생이라는 게 말이야. 사주가 아무리 좋아도 어딘가 흠이 있게 마련이야. 열심히 제살(制煞)해야 해. 북평장 어떠냐고 자꾸 묻는데, 똑같애, 세상 돌아가는 거” 한다.

공무원 생활 때려 치고, 채소와 과일 싣고 트럭으로 전국을 떠돌았다. 다 다녀봐도 강원도 인심만한 곳이 없더란다. 그래서 강원도에서 뭘로 정착할까 고민하다 사주를 봤더니, 글을 배워 남 모르는 걸 알려줘야 하는 팔자가 나왔다. 그 뒤로 북평장에 눌러 앉은 게다. “매일 앉아 계시면 춥고 관절도 안 좋겠습니다” 했더니, 약초 캐서 몸보신한단다. 배 할아버지에게 공부는 곧 한학(漢學)이다.

“공부 안 하면 평생 거기서 거기야. 평생 배워도 끝이 없어. 죽을 때까지 배울 거야. 한자(漢字) 배워. 한자 안 쓰면 지옥갈 꺼야. 하늘이 벌해.” 사자소학 책 하나 파는 영업 전략이 할아버지에게는 나름의 철학이다.

시원한 메밀묵 한 그릇.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시원한 메밀묵 한 그릇.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메밀가루로 부쳐먹는 메밀무침.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메밀가루로 부쳐먹는 메밀무침.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떠나기 전에 북평장의 명물 메밀묵밥 한 그릇 안 먹을 수 없다. 육수 대접에 채 썬 메밀묵이 담겨 나온다. 거기에 양념장, 무채, 말랭이 넣고 한 그릇 후루룩한다. 술술 잘 넘어간다. 뒷맛도 개운하다. 찬 메밀과 무는 궁합이 잘 맞나 보다. 메밀 부침개가 옆에서 촤르륵하며 푸짐한 냄새를 피어 올린다. 배부르게 먹었는데 2천 원이다.

강원도의 땅은 척박하다. 메밀이 잘 자라는 게 아니라 메밀밖에 안 자랐을 것이다. 누구나 메밀묵으로 밥 한끼 값싸게 때웠을 게다. 북평 메밀묵밥에 얽힌 사연 하나. 원조는 삼척군 자지리였다. 그곳 할머니 다섯 분이 2백 년 전통의 메밀묵밥 기술로 북평장에서 메밀묵밥 장사를 해오셨다.

그러다 몇 년전 단체로 예식장에 가다가 교통사고가 나 할머니 네 분이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다. 나머지 한 분도 낙심해 장사를 접어버리셨다. 동해 사람들은 메밀묵밥 맛이 끊기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고, 보다 못한 젊은 아낙들이 할머니에게 맛을 전수받아 장터로 나온 것이다.

끊길 뻔 했던 메밀묵밥의 전통은 이렇게 해서 북평장 10여 곳에서 되살아났다. 북평 메밀묵, 묵사발날 뻔 했다.

Tip.
북평 5일장

3일, 8일, 13일, 18일, 23일, 28일에 선다. 1760년대 주민들이 밭작물을 가지고 나와 대장간에서 농기구와 교환하던 게 그 시초.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일본이 영동 지역 석탄 수송을 위해 철도를 놓으면서, 영동 지역 주민들이 동해역에 내려 북평에서 곡식을 팔았던 것.

장이 커지긴 했다지만 30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의 절반 수준이었다. 현재는 상인 9백 여 명에 우시장까지 갖춘 손꼽히는 5일장이 됐다. 특별히 교통의 요지라고 볼 수 없고 지리적으로도 영동 지방의 남쪽인 북평장. 근래 들어 이렇게 큰 장으로 변해버린 이유가 계속 궁금했다. 동해에서 만난 누구에게서도 시원한 답변을 얻지 못해 아쉬웠다.

장터 먹거리
잡화전 끝에 메밀묵집 포장마차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북평장에는 소머리 국밥집도 유명하다. 우시장을 끼고 있어 그런지 고기가 푸짐하게 담겨져 나온다. 장터 큰 길 가 동래식당을 찾을 것.

찾아가는 길
자가용 : 서울 -> 영동 고속국도 -> 동해 고속국도 -> 7번 국도(삼척 방향) -> 동해시 효가 사거리 -> 북평장터
대중교통 : 서울에서는 강남 터미널과 동서울 터미널에서 동해시 가는 고속버스를 탈 수 있다. 동해 고속버스 터미널에 내려 길을 건너 마음에 드는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시내버스는 모두 북평동을 경유한다. 20분 소요.

추암 해변.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추암 해변.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주변여행지
추암 해변
북평 5일장에서 차로 5분 정도 거리에 그 유명한 추암 촛대바위가 있다. 추암 해수욕장 왼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해금암에 올라보자. 손짓하듯 바다를 향해 가지를 뻗은 둥치 굵은 해송이 바닷바람과 맞서고 있는 곳. 억겁의 세월을 세상과 거리를 두며 버텨온 촛대바위의 절경이 쪽빛 광활한 바다를 지키고 섰다.

촛대바위의 전경.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촛대바위의 전경.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추암의 기암괴석이 없었다면 이 동해안 천지가 얼마나 밋밋했을까.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빨리 뜬다는 북위 37˚28、에 있다. 애국가 첫 소절의 일출 배경 장소로도 유명하다. 활처럼 휘어진 해안선을 지닌 추암 해수욕장. 바람에 몸을 싣고 눈부신 하늘에 둥실 뜬 바다 갈매기가 해수욕장을 수놓고 있다. 계절에 관계없이 그 평화로움을 즐기는 여행객으로 붐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곰치살과 시원한 국물이 일품인 곰치국.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곰치살과 시원한 국물이 일품인 곰치국.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맛 집
이보다 연할 순 없다, 곰치국. <주문진 횟집>
동해와 삼척 지역 별미는 역시 곰치국. 입안에서 그냥 녹아버리는 흐물흐물한 곰치살도 곰치살이지만, 시원한 국물이 해장에도 그만일 것 같다. 보통 곰치국은 물곰이라 불리는 생선에다 김치를 넣고 끓여 내는데, 이 집은 김치 대신 무를 20년 넘게 고집한다. 그 맛이 하도 좋아 이제는 곰치국의 원조라고 불릴 정도. 회도 정말 푸짐하게 나온다. 별명이 곰치 박사인 주인장에게 ‘신비의 생선’ 곰치 얘기 한번 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 묵호항에서 2분 거리.

러시아산 대게.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러시아산 대게.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러시아산 대게, 4천 만의 입맛을 바꾸다. <태평양 수산>
2,3년 전부터 전국 곳곳에 대게집이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그 진원지가 알고보니 이곳 동해시다.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러시아산 대게 2만 톤 가운데 97%가 이곳 동해항과 묵호항을 통해 들어온다. 한마디로 러시아산 대게를 가장 싱싱하고 싸게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손님이 직접 대게를 고르면 그 자리에서 쪄준다. 비싼 영덕 대게만 고집할 이유가 없다. 연해주산, 사할린산, 북한산 모두 다 같은 돌고도는 동해 바다산 아니던가.

▶잠잘 곳
14년 전 가격 그대로 <뉴동해관광호텔>

동해시에서 가장 오래된 대표 호텔. ‘가격과 서비스, 맛 모두 시작할 때 그대로’가 이 호텔의 신조다. 14년 동안 동해를 찾는 서민들의 벗이 돼 왔다. 그렇다고 시설이 그대로인 건 물론 아니다. 그 뜻을 아는지 삼척이나 강릉으로 출장온 사람도 꼭 이 호텔에서 묵고 간다. 영화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찍으면서 정준호 씨와 공형진 씨도 여기서 묵었다.

바다와 기차가 한 눈에 <망상 그랜드 호텔>
망상 해수욕장에 자리잡고 있어 경치가 단연 으뜸. 망상 해변을 따라 나 있는 동해선 철도를 달리는 기차가 낭만적이다. 객실 베란다에서 동해에 떠오르는 아침해를 맞을 수 있다.

망상 오토캠핑리조트.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망상 오토캠핑리조트. 2005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캠핑카에서 일출을! <망상 오토캠핑리조트>
망상 해수욕장 바로 옆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 전용캠프장. 동해시가 운영하는 이 캠핑장에서 지난 2002년 세계캠핑캐라바닝대회가 열렸다. 자가용을 주차시키고 야영을 할 수 있는 자동차캠프장과 대형 캠핑카가 있고, 통나무집과 목조연립형 주택 그리고 편의 시설이 골고루 갖춰진 종합 휴양시설이다. 시설이 깔끔했다. 성수기에는 꼭 한두달 전에 예약할 것. 예약은 인터넷으로만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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