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포구기행] 소래를 지키는 두 얼굴, 해양생태공원 VS 소래포구
[포구기행] 소래를 지키는 두 얼굴, 해양생태공원 VS 소래포구
  • 김정민 기자
  • 승인 2005.03.0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소래포구 풍경. 2005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소래포구 풍경. 2005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여행스케치=인천] 인천 소래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초지와 습지가 자연그대로 살아 있는 조용한 해양생태공원과 24시간 사람들이 북적이는 소래포구 어시장이다. 모습은 비슷해도 서로 다른 모습으로 부대끼며 살아간다. 백운역에서 올라탄 버스가 소래포구 종점에 도착했다. 땅으로 한 발짝 내려섰을 뿐인데 벌써부터 버스를 에워싼 호객꾼들의 목소리가 높다.

젖어 있는 정류장 바닥에서는 바다의 향기가 솔솔 올라온다. 비릿하면서도 끈적끈적한 내음.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길을 따라 들어서다가 애써 돌아섰다. 정면에 보이는 고가도로에 조그만 간판이 눈에 띄였다. ‘해양공원 500m’ 차가운 겨울바람이 돌아서는 발걸음을 알아챘는지 빨리 가보라고 등을 떠민다.

해양생태공원의 모습. 2005년 3월. 사진 / 박상대 기자
해양생태공원의 모습. 2005년 3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얼굴 하나, 갈대들의 낙원 해양생태공원
차가 줄지어 서있는 도로를 따라 걷다가 굴다리를 지나쳤다. 지나치는 사람하나 없이 레미콘 차량만 수시로 들어서는 해양공원 가는 길. 아직도 공사가 한창이라서 트럭이 모래먼지를 날리며 달려간다. 저 멀리 낡아 보이는 나무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기척도 드문 이곳에 ‘해양생태공원’이라는 큼직한 간판만이 이곳의 존재감을 나타낸다.

서해로 향하는 강가에는 수북한 갯벌이 모습을 드러낸다. ‘숨이 막혀서 과연 생물이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긴 하지만. 다리를 건너고 보니 갈색빛 초지가 드러난다.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넓은 공터. 계절 때문인지는 몰라도 가슴이 싸해지며 공허감이 몰려온다. 바람이 불자 갑자기 ‘서글서글’대는 소리가 들린다. 갈대들이 서로 몸을 부벼대며 수런대기 시작했다. ‘사람이 찾아왔어.’

해양 생태공원은 99년 6월에 처음 문을 열었다. 인천시가 관리하는 생태보호구역이자 그동안 수많은 학생들의 자연학습장으로 인기를 누렸다. 이렇게 넓은 곳에 아파트를 지어도 수 백 채를 짓겠건만 공터를 그냥 놓아둔다고 다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모양이다. 2007년까지는 관리동, 다리가 새로 설치되고, 습지와 주차장이 조성될 계획이라고.

도로 하나를 두고 한 켠에서는 하늘을 가리는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는데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어 자랑스럽기까지 한 생태공원. 일제시대부터 운영되었던 염전지대를 그대로 인수해서 그 상태 그대로 초지와 습지 등 다양한 생태서식공간을 구성해 놓았다. 때문에 이곳에 가면 계절별로 학습할 수 있는 공간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넓은 초지에 난데없는 바둑판의 물결이라.

1934년부터 1996년까지 62년동안 운영되었다는 염전인가 싶어 길을 따라 내려갔다. 반듯한 소금밭에 조그만 간판이 세워져 있다. 토판, 옹패판, 타일판. 염전을 만들기 전 바닷물이 잘 증발되어 손쉽게 소금을 모을 수 있도록 기초공사를 하는데 연대별로 그 재료가 달랐다. 그 덕택에 폐염전으로 남은 이 곳에는 염전의 바닥을 이루었던 깨진 항아리 조각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도심 안의 공원이라 겨울바람을 맞으면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다. 2005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도심 안의 공원이라 겨울바람을 맞으면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다. 2005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공원 한 쪽에서는 실제로 작은 규모의 염전이 운영된다. 4월에서 10월까지는 소금이 생산되는 과정들을 모두 관찰할 수 있다. 소금밭에서 눈을 돌리니 허름한 창고가 눈에 띈다.나무판자로 뚝딱뚝딱 지어 그 모습에 꽤 정감이 간다. 창고 안에는 아직도 하얀 소금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창고지기의 말에 따르면 소금은 저장기간이 길수록 맛이 좋단다.

이 ‘소래염전에서 나는 소금은 학습용으로만 쓸 뿐 시판되지는 않는다’면서 씁쓸한 미소를 짓는 그.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창고도 차가운 바람이 밀고 들어온다. 창고를 거쳐 길게 펼쳐지는 흙길을 따라 걸어보았다. 창고와 비슷하게 지어놓은 건물이 4동. 학생들이 와서 학습할 수 있는 학습관, 소래의 옛모습을 일러주는 소래 옛모습 전시관, 관리사무실, 폐염고가 아직도 살아있다.

겨울 생태공원에서는 이곳들이 생명력을 가진 곳이다. 봄이 오면 오색 꽃이 피고, 여름이 되면 갯벌에서 뒹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가을되면 길가 가득 코스모스가 하늘거리지만 겨울이 되면 갈색빛 갈대들과 하늘을 낮게 선회하는 철새들만이 이곳을 지킨다. 눈이라도 내려야겠다.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흙길을 따라 걸어보고 싶다.

공원을 걷는 사이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주고 간다. 한 바퀴 돌려면 꽤 시간이 걸릴텐데… 살을 에는 바람도 자전거를 지치는 사람들의 즐거움을 빼앗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5시를 넘기면서 소래포구 어시장이 더욱 왁자지껄해진다. 2005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5시를 넘기면서 소래포구 어시장이 더욱 왁자지껄해진다. 2005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얼굴 둘, 체험! 삶의 현장 소래포구
해양공원을 산책하고 나오니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한다. 배꼽시계가 밥먹을 시간임을 알린다. 냉정한 얼굴을 가진 공원에서 한발자국 떼었을 뿐인데, 포구 초입에서부터 사람들의 술렁임을 감지할 수 있다. 버스정류장 앞 조개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포장마차를 지나니 확확 타오르는 숯불에 조개를 구워먹는 사람들이 보인다. 온갖 조개들이 한아름. 입 안에 군침이 감돈다. 수협건물을 지나쳐 포구로 향하는 길목. 폐장시간에 맞추어 저녁거리를 사러온 사람들이 여럿 눈에 띈다.

저울을 달고 달아도 손님은 한 마리를 더 얹어달라고 조르고 상인은 이만큼도 많은 거라고 실랑이를 벌이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5시가 되면 상인들이 외치는 “떨이요, 떨이”소리가 목청껏 올라간다. 확성기를 틀어놓은듯 어시장이 떠나갈 듯 시끄러워진다. 쓱쓱 싹싹 회를 치는 도마소리가 난타공연을 하듯 경쾌하게 울린다. 이제는 철도를 걷어내서 사람들이 왕래하는 다리가 된 소래철교.

뉘엿뉘엿 지는 해가 보고 싶어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연탄불에 ‘타닥타닥’ 굴을 굽는 연기가 계단 양 편에서 올라온다. 이제 막 포구로 들어서는 사람들, 건너편 시화 쪽으로 옮겨가는 사람들. 철교가 세찬바람에 흔들거린다. 문득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니 햇볕에 아름답게 빛나는 비늘들이 너울거린다.

서해안의 갖가지 게들도 한가득이다. 2005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서해안의 갖가지 게들도 한가득이다. 2005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사람들이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을 느꼈는지 먹이찾아 날아왔던 철새들이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랐다. 태양에 날개가 타는 지도 모르고 날아오르는 이카루스처럼 지는 해를 향해 대열을 지어 끝없는 날갯짓을 한다. 오는 길에 철교 아래에서 ‘안주는 무료, 막걸리 한 사발에 천원’이라는 푯말을 붙인 막걸리집을 하나 발견했다.

철제 탁자를 젓가락으로 두드리는 삼다이 가락을 들은 것도 같다. “꽃~피는 동백섬 봄이 왔어요. 형제 떠난~~” 가슴에 맺힌 멍울이 가시질 않는지 그 가락마저 구수하기만 하다. 포구 앞에서는 고급 횟집들이 많았는데 포구 뒷골목에 오니 달달한 막걸리 한 잔에 걸칠 생선전과 노릇노릇 익어가는 생선구이 파는 집이 늘어서 있다. 가격도 싸다. 배터지게 먹어봐야 만원에서 만 오천원 정도.

한접시에 만원이라고 써 붙인 횟집들이 많았는데 인심들이 어찌나 후한 지 접시에 회가 넘쳐난다. 2005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한접시에 만원이라고 써 붙인 횟집들이 많았는데 인심들이 어찌나 후한 지 접시에 회가 넘쳐난다. 2005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저녁이라 그런가 회감도 마찬가지. 한 접시에 만원거리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제철에는 너무 비싸 손도 못 댔던 전어회도 10마리 넘게 잡아 만원이란다. 상인이 가득 쌓아놓은 조개무지 안에서 일회용 접시로 표시해 놓은 가격표를 보았다. 아까 보았던 가격보다도 몇 천원이 내려갔다. “맛있는 조개요, 조개.”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상인들이 외치는 소리가 점점 높아가기만 한다. 5시, 소래포구의 풍경은 고되고 억척스럽지만 활기차서 시원하고 삶에 대한 향기가 있어 구수하다.

Tip.
만약 소래포구를 간다면 저녁무렵에 가라고 권하고 싶다. 진정한 에누리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주차장이 번잡스러우므로 이곳에 갈 때는 오히려 대중교통이 편하다. 낮에는 산책겸 해양생태공원을 거닐다가 저녁무렵에는 산해진미가 펼쳐진 어시장 구경에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른다. 삶의 희노애락이 묻어나서 더욱 애착이 가는 그런 여행지!

국내에서 가장 긴 자전거 도로
해양생태공원을 걸어서 다니기 힘들 때는 자전거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얼마전 국내에서 가장 긴 자전거 도로 건설계획이 발표되었다. 인천대공원~소래포구~시화방조제를 잇는 28km의 자전거도로. 현재 인천대공원에서 소래포구 가는 길까지 만들었다. 해양생태공원에서는 자전거를 즐기기 좋은데 자전거를 빌리려면 인천대공원까지 가야한다. 인천대공원에서 해양생태공원까지는 차로 10분 거리.

소래염전의 모습. 2005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소래염전의 모습. 2005년 3월. 사진 / 김정민 기자

Info 소래염전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제염의 선구지는 인천이었다. 주안염전이 가장 컸다면 소래 염전은 그 두 번째. 62년간 운영되던 염전이 폐쇄되자 인천 남동구청에서는 염전지대를 인수하여 염전학습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소금이 생산되려면 4단계를 거치는데 첫 번째 바닷물을 가두는 저수지를 거쳐 10일동안 1차로 염도를 맞추는 난치지역에 머무르고, 2차로 염도를 맞추는 늦태지역에서 14일을 지냈다가 소금을 만드는 최종구역인 결정지역에서 7개월을 보내면 소금이 탄생된다.

소금을 가두는 각 구역에는 타일이나 토판을 깔아서 물이 잘 증발되면서도 소금이 잘 긁어질 수 있도록 했는데 1955년 이전에는 토판을 깔았고, 55년에서 80년대에는 옹기를 잘게부순 옹패판이, 8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까만 타일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소래포구의 명물
막걸리집
: 한 사발에 천원, 안주는 무료로 나오는 막걸리집. 80년대에 유행하던 서민들의 집합소인 대포집을 닮아 더욱 정이 간다. 포구에서 소래철교를 올라가는 길목에 있다. 빵집 _ 쑥빵, 호박빵. 큼직한 찐빵 한 조각에 2천원. 세수대야만한 찜통에 오색의 찐빵들이 김을 모락모락 물고 모양을 뽐내고 있다. 술빵처럼 달달하고 고소한 것이 이 빵의 특징. 포구풍경하고는 안 어울리지만 고달팠던 옛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맛이 있다. 소래철교 가는 뒷골목에 위치.

가는 길
· 승용차 : 제2경인고속국도 남동 IC -> 남동공단 방향으로 1km 달리다가 4거리에서 좌회전. 도림초등학교가 보이면 우회전 2차선 좁은 길에서 1.2km를 달려 소래포구 가는 삼거리에 이른다.
· 대중교통 : 1호선 백운역에서 21번 버스를 타고 종점인 소래포구에서 하차.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