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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전통 마을] 태고적 소슬한 바람 그대를 오라하네, 대구 옻골마을
[전통 마을] 태고적 소슬한 바람 그대를 오라하네, 대구 옻골마을
  • 노서영 기자
  • 승인 2005.04.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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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대구 옻골마을 풍경. 2005년 3월. 사진 / 노서영 기자
대구 옻골마을 풍경. 2005년 3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여행스케치=대구] 까악까악. 까치의 울음소리가 옻골마을의 정적을 깬다. 마을 뒤편, 팔공산의 지맥이 만나 생긴 산에 부지런한 등산객들의 함성도 귓가를 울린다. 옻골마을에 따뜻한 봄이 오는가. 전통마을이라 하기에 인적도 드물고 차편도 없을 거라 예상했더니. 마을 입구에 관광안내소가 설치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건가. 마을의 전통스러움이 퇴색됐을까봐 조바심을 내며 발을 내딛는다. 동대구 도심에서 버스로 15분정도 걸리는 옻골마을은 경주 최씨의 집성촌. 마을남쪽 시냇가에 옻나무가 많아서 옻골마을이라 부른다고 한다.

일반 전통마을과는 달리 시내와 가까워 비교적 문명의 혜택을 많이 받았다. 1930년대까지 대구에는 60여개의 씨족마을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옛 그 모습으로 내려오는 곳은 옻골마을 뿐이다. 어쩌면 옻골마을이 씨티투어의 한 코스에 들어간다는 게 다행이 아닐런지. 최소한 소리없이 사라지지는 못하겠지.

하루에 열 번 정도 버스가 다니는데 옻골마을이 종점이다. 손님을 반기듯 옻골마을 입구에 키가 10미터가 훌쩍 넘는 회화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생긴지 3백 90년이 조금 못 미치는 옻골마을에, 두 그루 회화나무가 터를 잡은 지도 벌써 3백 50년이다.

최씨 종갓집에서 바라본 주산.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2005년 4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최씨 종갓집에서 바라본 주산.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2005년 4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옻골마을의 산증인은 사람이 아니라 나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을을 지킨다는 핑계로 그토록 장수하는 나무가 돌연 얄밉기도 하다. 회화나무로부터 출입 허가를 받고 마을을 향하려는데, 발을 헛디뎌 뒤로 나자빠진다. 순간 45도 각도로 시야에 들어오는 장엄한 거북. 다름이 아니라,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는 거북 모양의 주산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봉우리 모양이 마치 거북의 측면 모양이다. 보고 느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는지, 예부터 그 봉우리를 생구암(生龜岩)이라 불렀다. 생구암이란 살아있는 거북모양의 바위라는 뜻이다. 풍수지리상 거북이와 물은 공존해야 한다고 한다.

옻골마을의 상징, 거북이와 연못. 2005년 4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옻골마을의 상징, 거북이와 연못. 2005년 4월. 사진 / 노서영 기자
마을의 곧게 뻗은 안길은 시원한 느낌을 준다. 2005년 4월. 사진 / 노서영 기자
마을의 곧게 뻗은 안길은 시원한 느낌을 준다. 2005년 4월. 사진 / 노서영 기자

그래서 이 마을의 입향조인 대암 최동집의 증손자 최수학이 거북이가 정면으로 보이는 마을 입구에 큼지막하게 연못을 만들었다. 혹자는 경주 최씨의 마을을 타지역과 구분하는 경계선이었을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옻골마을은 스무여 채가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이다. 안길을 따라 얕은 담벼락 너머로 마당에 널린 윗도리며 바지가 바람결에 휘날린다.

그 아래 머리가 허옇고 피부가 검게 그을린 할아버지 한 분이 빛바랜 누런 운동화를 신고 계신다. 마을에서 한참을 돌아다니다 만나서 그런지 반가움이 그 몇 배다. 마을이 조용한 나머지, 빈집이 많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허물어진 두어 채를 빼고는 모두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정려각. 백불암 최흥원 선생의 효자비. 2005년 4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정려각. 백불암 최흥원 선생의 효자비. 2005년 4월. 사진 / 노서영 기자

마을 오른편 안길을 따라 빗살이 나간 정려각이 눈에 들어온다. 정려각은 조선 정조 때 임금의 정사를 옆에서 잘 보조한 백불암 최흥원 선생의 효자비각이다. 백불암 선생이 작고한 후에 나라에서 비각을 세웠단다. ‘虎死留皮 人死留名’은 이를 두고 한 말이려니. 정려각의 손상된 빗살이 2백년 남짓한 세월의 무게를 가늠케 한다.

동쪽 개울가(동계)로 나가는 동계정 동문. 2005년 4월. 사진 / 노서영 기자
동쪽 개울가(동계)로 나가는 동계정 동문. 2005년 4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정려각을 지나 동계정이다. 동쪽 개울가에 세워진 정자. 이 정자는 백불암의 아들인 최주진의 뛰어난 학문을 기리기 위해 1920년에 지은 정자다. 이후로 자손들이 이곳에서 수학했다고 전한다. 정자의 동쪽편에는 개울로 향하는 목재로 지은 문이 나 있다. 공부든 일이든 능률을 높이는 데 충분한 휴식이 제일이라는 건 시공을 초월하는 진리. 어린 후학들도 몰래 개울로 나가 물장구 치고 놀았으리라.

경주 최씨 종손이 살고있는 백불고택. 측면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2005년 4월. 사진 / 노서영 기자
경주 최씨 종손이 살고있는 백불고택. 측면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2005년 4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옻골마을의 가장 안쪽에 자리한 저택이 백불고택, 최씨의 종갓집이다. 대암 최동집이 입향한 후에 건립한 최씨 종택으로 대구에서 가장 오래됐다고 한다. 인기척이 있어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안채에 사람이 여럿이다. 바로 경주 최씨 15대 종손이 거주하고 있는 곳.

전통마을의 종갓집이라 해서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호롱불 밝히며 밤새 글 읽고, 아궁이에 땔감 땔 거라 생각하면 잘못이다. 세상만사가 문명의 이기를 피할 수는 없는 법. 더군다나 대구시내에서 15분도 채 걸리지 않는 마을인데. 문명을 적절히 수용했기에 옻골마을이 전통마을로써 존속되어 온 것이 아닐까.  

보본당 우측 문을 통해 보이는 고택과 산에는, 봄이 피고 있다. 2005년 4월. 사진 / 노서영 기자
보본당 우측 문을 통해 보이는 고택과 산에는, 봄이 피고 있다. 2005년 4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유난히 청초한 하늘이다. 시든 잎과 아래로 축 처진 줄기에 덩그라니 박이 매달려 있다. 대구에 홀로 남아 전통의 맥을 이어오는 옻골마을 그리고 마을 담장의 박 한 덩이. 마을 동쪽 정려각 옆으로 동계를 건널 수 있는 짧은 다리 하나가 보인다. 다리를 건너 검덕봉 기슭에 오르니 마을이 작기도 하다.

높지 않은 산인데도 한 손 안에 마을이 다 들어간다. 집들이 모두 남향인 데다가 자로 잰 듯 똑바른 길. 다른 전통마을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고나 할까. 산을 내려오는데 손에 큰 캔버스를 들고 지나가는 한 여행객과 마주친다. 종이에 옻골마을을 담아가려는 건가. 그 뒤로 여행객을 데려다 주었을 버스 한대가 마을을 떠나간다.

Info 옻골마을
위치 : 대구시 동구 둔산동 386번지
가는 길
대중교통 : 기차(동대구역 하차) -> 대구지하철 1호선 방촌역 -> 2번 출구(방촌시장 방면)로 나와 5분 정도 걸으면 농협 도착 -> 11-5번(옻골방면)버스 종점 하차 -> 옻골마을  
승용차 : 서울 -> 경부고속국도 동대구 IC -> 대구공항 방면으로 우회전 -> 지하철 방촌역에서 우회전 -> 옻골마을

달성측백수림의 모습. 2005년 4월. 사진 / 노서영 기자
달성측백수림의 모습. 2005년 4월. 사진 / 노서영 기자

주변여행지
▶ 천연기념물 1호 달성측백수림
옻골마을을 나와 외길로 직진하다가 넓은 도로가 나오면 우회전한다. 직진을 하다 보면 고가 도로가 나오는데 그 아래 오른쪽으로 붙어 직진하면 왼쪽으로 달성측백수림이 나온다.

절벽에 듬성듬성 심어진 달성측백수는 1962년 선정된 천연기념물 1호. 이끼 낀 바위 사이마다 수천 그루의 상록수들이 각기 다른 모양, 다른 각도로 서 있다. 달성측백수림은 식물지리학상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이 지역이 측백나무가 자생할 수 있는 남쪽 한계이기 때문.

주된 뿌리는 바위틈으로 내리고, 잔뿌리는 바위를 덮는다. 측백수림의 이름은 ‘상록바늘잎나무’이다. 측백수림따라 차를 몰다 보이는 정자. 무심코 지나칠 정도로 규모가 작다. 측백수림 절벽 아래로 흐르는 불로천을 따라 둘러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위치 : 대구 동구 도동 산 180
대중교통 : 동대구역에서 401번을 타고 불로동에서 하차.

불로동 고분군. 2005년 4월. 사진 / 노서영 기자
불로동 고분군. 2005년 4월. 사진 / 노서영 기자

▶ 불로동 고분군
대규모 고분군이다. 약 2백여 기의 삼국시대 고총고분이 밀집 분포되어 있는 곳. 고분들 사이로 서 있는 한두 그루의 침엽수가 운치를 더한다. 분구의 규모는 지름 15m 이상이며 높이는 4m 가까이 된다. 고분군에서 토기류, 마구류, 무기류 등과 생선뼈 등이 출토되었다고 전해진다. 고분이 있는 지대가 높아 대구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불로동 고분군으로 가는 이정표가 많아 대구시내에서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위치 : 대구 동구 불로동

동림식당의 칼국수 한 상. 2005년 4월. 사진 / 노서영 기자
동림식당의 칼국수 한 상. 2005년 4월. 사진 / 노서영 기자

동림식당
팔공산 자락에 있는 칼국수가 맛있는 집이다. 할머니가 직접 방 안에서 면을 밀고 있는 집. 두 팔을 벌려도 닿지 않을 정도로 긴 밀대와 밀가루가 날려 뿌연 방안. 힘드시지 않냐는 물음에 “내가 안 하면 누가 해?” 하신다.

할머니의 정성 때문인가 쫄깃쫄깃한 면발과 시원한 국물이 시장한 등산객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동림식당이 자리한 지도 거의 15년. 단골손님들은 예나 지금이나 푸짐한 인심이 한결같다고 한다. 식사 때가 아니어도 소문 듣고 찾아온 사람들로 붐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와 입에 착 달라붙는 호박엿. 직접 만들어 판다. 이밖에 김치와 바삭한 부침개도 있다. 팔공산 아니 동대구에 오면 꼭 들리기를 추천한다.

가는 길 : 동대구역 -> 불로동 가는 방면 -> 동화사와 파계사 갈림길 -> 파계사 방면 -> 검문소 못가서 옛 구길로 들어가면 동림식당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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