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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해외 트레킹] 화산폭발이 안겨준 선물, 일본 오제습원
[해외 트레킹] 화산폭발이 안겨준 선물, 일본 오제습원
  • 박상대 기자
  • 승인 2016.08.05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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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대 고원습지, 후쿠시마 현 오제국립공원
하늘이 아무도 몰래 조성해둔 이곳 천상의 화원
물감을 질러버린 듯한 석양 하늘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일본 최대 고원습지인 오제국립공원이 있는 곳이다. 그 습원에 트레킹을 다녀왔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후쿠시마] 일본에서 세 번째로 넓은 현 후쿠시마. 5년 전, 지진과 쓰나미, 원자력발전소의 침수로 세인의 관심을 끈 땅 후쿠시마 현. 이곳에 일본 100대 명산이 셋이나 있고, 일본 최대 고원습지인 오제국립공원이 있는 곳이다. 그 습원에 트레킹을 다녀왔다.

밤나무와 수백년 된 원시림
오제국립공원 입구에 있는 미이케 산막에 도착했다. 강원도 깊은 산골에 다다른 느낌이다. 꽤 넓은 주차장에서 버스를 세우게 한다. 트레킹을 위해서는 누마야마토게 산장까지 가야 하는데 이곳에서 공원내 셔틀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500엔짜리 입장권 겸 승차권을 사고 버스를 타자 20여분 후 누마야마토케 산장에 도착한다. 해발 1400m 산장에서 아래쪽으로 아스라이 산자락이 펼쳐져 있다. 버스 운전기사는 고갯마루에서 버스를 세우더니 창밖으로 펼쳐진 숲을 가리키며 브로콜리 숲이라고 설명한다.

마치 브로콜리처럼 봉긋 솟아오른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너도밤나무들이다. 동화에 등장하는 너도밤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여행객들은 잠시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져 나온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오제 습지에는 8천년 동안 퇴적물이 쌓여 이탄습지를 이루고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사진 / 박상대 기자
오제 습지에는 60년 전에 자연보호를 위해 설치한 목도가 있다. 목도를 벗어나면 발이 빠진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주차장에서 내려 트레킹을 시작한다. 등산로 초입부터 통나무를 잘라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10분쯤 산을 오르자 아름드리 소나무와 일본전나무들이 부동자세를 취하며 여행객을 반긴다.

전나무와 너도밤나무가 서로서로 어깨를 펼쳐서 여행객에게 그늘을 만들어준다. 나무들이 손님에게 친절한 일본 사람들 같다는 생각을 하자 피식 웃음이 난다.

전나무들은 아래쪽 가지들이 땅바닥에 닿을 만큼 늘어져 있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린 탓이다. 11월부터 4, 5개월 동안 눈이 내리면 나뭇가지는 그 눈을 짊어진 채 겨울을 견뎌야 한다. 결국 나뭇가지들은 땅바닥에 닿을 정도로 늘어져서 생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숲에는 산죽(조릿대)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 깊은 산중이라 곰이 살고 있는데, 일본 사람들은 조릿대를 ‘곰의 먹이’라고 부른다. 숲속에는 5월까지 눈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런 탓인지 숲길에는 서늘한 바람이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얇은 너도밤나무 잎사귀도 거의 움직이지 않는데 시원한 바람이 목덜미를 파고든다. 오늘 하루, 트레킹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드넓은 습지와 잘 정비된 목도(木道)
숲길을 벗어나자 광활한 습지가 펼쳐져 있다. 해발 1500m 고산지대에 습지라니…. 먼 옛날, 히우치가타케 산에서 화산이 폭발했고, 쏟아져 내린 용암이 시부쓰산에서 니가타현 쪽으로 흐르던 계곡을 덮어버렸다. 산중턱에는 작은 호수가 생겼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주변에서 흘러내린 흙이 호수를 메워버렸다.

지질학자들에 의하면 8천년 전부터 늪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는데 늪지식물과 수생식물, 그리고 멀리서 날아온 나무열매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며 대를 잇고 있다고 한다. 습지식물들이 나서 죽고, 더러는 퇴적하고, 분해되어 이탄(석탄으로 변하기 이전의 흙)을 이루고, 마침내 드넓은 늪지대가 형성되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오제 습지공원에는 오제누마 호수가 있다. 호숫가로 걷기 길이 있으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사진 / 박상대 기자
오제누마 호수 위쪽의 작은 연못에 있는 어리연꽃. 사진 / 박상대 기자
사진 / 박상대 기자
오제공원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객들. 사진 / 박상대 기자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고산지대에 봄부터 가을까지 갖가지 식물들이 꽃을 피웠다. 말 그대로 천상의 화원이 만들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등산을 하는 산객들과 인근에 사는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찾아 왔다. 그러다가 차츰 소문이 났고, 120여 년 전에는 일본 각지에서 적잖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화원을 구경하기 위해 찾아들었다.

자연은 사람의 발길이 잦아들면 탈이 난다. 하늘이 아무도 몰래 조성해둔 이곳 천상의 화원은 사람들의 손길을 타면서 망가지기 시작했다. 늪지의 화원은 짓이겨졌고, 늪지에 빠져 몸을 다친 사람들도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산에 올랐다가 제때 하산하지 못해 고생한 사람들도 있고….
이 무렵, 처음 산중턱에 산장이 들어섰다. 산장은 사람들을 보호하였지만 자연을 보호하진 못했다. 천상의 화원은 차츰 상처를 입고, 병들어갔다.

마침내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고, 1960년대 초 지방정부에서 숲길과 늪지에 목도(木道)를 만들었다. 목도가 아닌 곳을 출입하지 말도록 계몽했다. 그와 함께 부분적으로 들꽃들이 군락을 이루도록 옮겨 심었고, 천적 역할을 하는 풀들을 제거했다.

두 길을 깔아놓은 목도는 자연을 보호하는 데 매우 적절한 역할을 했다. 두께가 10cm 이상 되는 통나무들(주로 소나무와 전나무)을 가지런히 잘라서 만들어 놓은 목도는 60년이 지난 지금도 말짱하게 견뎌내고 있다.

봄에 피는 물파초는 하얀 꽃으로 정원을 만들고, 여름에 피는 원추리는 초록 벌판을 노랗게 물들인다. 고산지대에 사는 곰취, 얼레지, 잔대 등이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작은 연못에 피어 있는 어리연꽃과 그 위에서 한가롭게 낮잠을 자거나 짝짓기를 하는 물잠자리들도 여행객의 시선을 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트레킹 하는 도중에 곰이 보일 때, 종을 치면 곰이 숲 속으로 달아난다. 사진 / 박상대 기자
사진 / 박상대 기자
봄부터 가을까지 일본인은 물론 한국의 여행객들이 트레킹을 즐기고 있다. 사진 / 박상대 기자

Tip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는 산장과 무료휴게소가 여행객들을 반긴다. 음료수나 캔맥주, 심지어 생맥주를 판다. 아무 수도꼭지나 틀어서 마실 수 있는 시원한 물은 공짜다. 산장에서 마시는 물은 대부분 산속에서 솟아나는 용출수이다.

산장 주변에는 대부분 공중변소가 있다. 친환경 화장실인 이곳은 사용료를 내야 한다. 화장실 입구에 있는 투명한 모금함에 100엔을 넣고 들어간다. 설령 돈을 내지 않고 들어가도 제지하는 사람은 없지만 이런 일에 양심을 시험하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하늘에 뿌려놓은 붉은 물감과 산장의 별들
오제습지 중앙에는 2300m대에 이르는 히우치가타케 산에서 흘러내린 물을 품고 있는 오제누마 호수가 있다. 호숫가를 지나는 동안 늪과 숲 사이에 신이 그려놓은 아름다운 곡선이 숨어 있다. 너도밤나무나 일본전나무, 혹은 가문비나무와 소나무, 키 작은 편백나무들이 파란 하늘과 이루고 있는 경계를 보라. 들판을 걸을 때나 숲길을 걸을 때면 걷는 사람마다 보고 느끼는 것이 다르다. 오제 습지에 숨어 있는 좁쌀 만한 꽃이나 미세한 바람, 부드러운 그림자들을 보지 못한다면 다리근육만 키우게 된다.

오제의 숲길을 걷다보면 여러 가지 새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숲에 비해 많은 새가 살지는 않지만 어린 산새나 휘파람새, 산비둘기가 들려주는 노래들은 여행객의 귀를 즐겁게 한다.

산길을 트레킹 할 때마다 기대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산속에서 맞이하는 해넘이 풍경이다. 지리산이나 덕유산 능선을 타면서 해넘이 광경을 목도한 사람들은 그 장엄함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이야기한다.

오제의 습원, 드넓은 구릉에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한다. 여행객들은 류쿠 산장에 여장을 풀고, 저마다 카메라를 들고 목도를 따라 늪지대로 나아간다. 산장 주인이 자랑하는 불타는 하늘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해가 넘어가는 산에 그늘이 지고, 그 맞은 편 산마루금은 훤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늘과 밝음이 더 또렷해지고, 서쪽 하늘에 하얀 구름이 나타난다. 하얀 구름에 서서히 붉은 기운이 감돌고, 맞은 편 산허리를 짙은 산안개가 덮쳐온다.

사진 / 박상대 기자
물감을 흘린 듯한 오제의 석양 하늘. 사진 / 박상대 기자
사진 / 박상대 기자
오제의 산장에서 맞이한 아침 풍경. 사진 / 박상대 기자

하얀 자작나무숲까지 침범한 산안개를 보며 생각한다. ‘저건 사랑행위다!’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는 산과 자작나무숲을 하얗게 덮어버린 산안개의 불장난이다. 하늘에는 붉은 기운이 감돈다. 아마도 신이 멋진 그림을 그리려다 산과 안개가 벌이는 사랑놀이를 보고 물감을 질러버린 듯하다. 여행객들은 탄성을 지른다. 한국의 해넘이처럼 장엄하지는 않지만 그윽한 아름다움을 남긴 해질녘 풍경이다.

밤 9시에 산장은 실내외 전깃불을 끈다. 자가발전을 하기 때문이다. 불이 꺼지자 여행객들은 다시 산장 밖으로 나온다. 산중 풍경과 밤하늘의 별자리들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늪지대 목도에 만들어 놓은 쉼터에 누워 하늘을 본다. 별이란 별은 모두 얼굴을 내밀고 있는 듯하다. 별들을 보고 누워 있는데 문득 부자가 된 기분이다. 저 많은 별들을 서울의 벗들에게 나눠 주고 싶다.

여명이 밝으면 산을 껴안던 안개는 사라지고
새벽 3시30분에 잠에서 깼다. 여명을 취재하기 위해 서둘러 기상하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다. 깊은 산속의 여명은 어디에서부터 밝아올까?

의심의 여지없이 산꼭대기다. 산꼭대기에 햇살이 비치면 밤새 산을 껴안고, 맘껏 사랑을 나누던 안개는 서서히 몸을 낮춘다. 아래쪽으로 몸을 낮춘 안개가 자작나무숲으로 숨어들고, 자작나무가지에 붉은 기운이 감돌 때 안개는 허공으로 사라진다.

이른 아침, 깊은 산중이라 손이 시리다. 여행객은 산장에서 준비해준 주먹밥 도시락을 받아들고 다시 길을 나선다. 아스라이 펼쳐진 습지를 지나 산길을 걷는다. 산속에는 소나무, 일본전나무, 마로니에, 너도밤나무 등등 굵은 나무와 키가 작은 나무들이 더불어 숲을 이루고 있다. 가끔 이끼류나 고사리에게 등을 내주기도 하고, 줄기식물에게 온 몸을 내준 나무들의 넉넉한 모습이 보기 좋다.

※ 이 기사는 하이미디어피앤아이가 발행하는 월간 '여행스케치' 2016년 9월호 [해외 이색 트레킹] 코너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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