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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해안 드라이브] 동해 바다는 다도해다
[해안 드라이브] 동해 바다는 다도해다
  • 김진용 기자
  • 승인 2005.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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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동해에는 금구도, 죽도, 백도, 흑도, 자작도, 호미섬 등 섬이 많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동해에는 금구도, 죽도, 백도, 흑도, 자작도, 호미섬 등 섬이 많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여행스케치=강원] 남한 최북단의 섬은 백령도인 줄 알았습니다. 사람 사는 섬만 따진다면 그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실은 백령도 북쪽에 20개가 넘는 섬이 있습니다. 그 위는 군사 분계선인데 어디에 섬이 있단 얘긴가. 예, 서해에는 없더군요. 동해에 있습니다.

남한 최북단 섬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저도’였습니다. 민간인 통제선 너머 북위 38도 35분 부근이지요. 축구 구장 3개 만한 이 섬에는 해군기지가 있어 민간인은 살지 않습니다. 동해의 섬은 대부분 이처럼 작전 지역인 무인도 혹은 바위섬이라, 민간인 대신 날짐승의 천국입니다.

해양수산부는 강원도에 32개, 경북에 43개의 섬이 있다고 합니다. 동해에 포함된 경남의 동해안 섬까지 합해 자그마치 1백 여 개의 섬이 동해에 있다는 얘깁니다. 섬을 만나러 강원도 고성의 동해 바다로 달려갔습니다.

7번국도를 따르다 보면, 화진포 호수가 있는 초도리 앞 바다에 ‘금구도’가 있었습니다. 저녁 해가 대나무 숲에 반사돼 금빛 거북이가 된다는 섬입니다. 고니의 휴식처인데다 일출 명소기도 하구요. 20년 전까지 금구도 안의 넓은 돌방석에선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빌었고, 섬 안에서 죽은 사람을 위한 명당자리가 섬에 따로 있었다 합니다.

섬의 거북 머리 부분은 바다를 향해 있습니다. 초도리 주민은 이 때문에 마을이 흥하지 못했다고 믿습니다. 이곳은 고성에서도 가장 북쪽인지라 살기에 그리 녹녹하지 않았나 봅니다. 외지디 외진 곳인데다 38선 이북이라 한때는 인민군의 점령지였습니다.

재첩이 많이 잡히는 죽왕면 오호리의 석호 송지호까지 내려오면 ‘죽도’가 보입니다. 둘레 4km. 근처 섬 가운데 가장 큽니다. 멀리서 보니 사람 키 두 배 정도의 대나무가 빽빽합니다. 어떤 섬을 죽도(竹島)라 우기려면 대나무가 저 정도는 돼야겠지요.

죽도 부근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김창호 할아버지는 아직도 죽도가 내내 그립기만 하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죽도 부근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김창호 할아버지는 아직도 죽도가 내내 그립기만 하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오호리에서 횟집을 하는 김창호 할아버지는 죽도만큼 놀기 좋은 데가 없었다 합니다. 민물 샘터가 있는데다 김, 미역, 국수나물, 가시리, 전복, 홍합도 지천으로 널려 술만 있으면 안주 걱정 없었다 합니다. 해안에서 멀지 않아, 아주머니들이 아랫도리만 겨우 걸친 채 해조류를 따러 헤엄쳐 다니기도 했습니다.

따뜻한 해양성 기후 덕에 대나무가 굵고 잘 자라, 돛대용으로 베다 팔아 가게 살림에 보태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르신 눈 때문에 마을에서는 마음 놓고 데이트를 못했던 시절. 연인들이 섬으로 자주 건너갔나 봅니다. 햇빛 눈부신 은빛 용바위 위에서 바다를 보다, ‘비 올때 피하기 좋은’, 한마디로 ‘으슥한’ 바위 아래로 향하곤 했답니다.

지금은 통제 구역 안이라 못 갑니다. 얼마 전 젊은 연인이 밤에 몰래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헬기 뜨고 난리났다는군요.

예전 소죽도에는 물개가 많이 서식했다. 그러나 지금은 물개비 하나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예전 소죽도에는 물개가 많이 서식했다. 그러나 지금은 물개비 하나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죽도는 대죽도와 소죽도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옛날에는 소죽도가 물개로 뒤덮혀 있었답니다. 그러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물개 가죽을 얻으려 마구잡이로 포획하고, 한국전쟁 때 폭약으로 대량 학살하기도 해 요즘은 물개 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정월 대보름날 두 섬이 맞붙으면 가뭄이 들고, 떨어지면 장마가 든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죽왕면 삼포 해수욕장 부근에는 백도, 흑도, 자작도, 호미섬이 떼로 모여 있군요. ‘흑도’는 검은데, ‘백도’는 전체가 하얗네요. 갈매기 류의 가마우지 배설물 때문입니다.

백도. 갈매기 배설물 때문에 섬 전체가 새하얗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백도. 갈매기 배설물 때문에 섬 전체가 새하얗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근처 문암리가 고향인 문암호 선장 김인철 씨는 백도에서 가마우지를 잡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밤에 배에서 백도로 불빛을 비추면 섬을 덮고 있던 가마우지 떼가 새까맣게 날아오릅니다. 그걸 어떻게 잡나 했더니, 미리 섬에 올라가 있다가 막대기로 때려서 한두 마리 잡았답니다. 지금도 그 재미를 생각하면 고향을 앞에 두고 못가는 심정이랍니다.

백도에 얽힌 전설 하나. 백도에는 뱃사공처럼 생긴 바위가 있고, 해안에는 아기를 업은 형상의 엄마바위가 있습니다. 옛날 한 사공이 풍랑을 만나 육지를 눈앞에 두고도 백도에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기를 업은 부인은 해변에서 백도를 바라보며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됐고 남편도 백도의 사공바위로 변해 버렸던 것입니다.

백도에 붙어 있는 사공바위와 해안의 엄마바위가 마주 서 있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백도에 붙어 있는 사공바위와 해안의 엄마바위가 마주 서 있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40년 전 방파제용 석재를 팔아 마을에 전기를 끌어올 생각에, 엄마 바위를 폭파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자마자 문암리 사람들이 갑자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는 이 바위에 일절 손대지 않는답니다.

‘자작도’는 작은 어선들이 가끔 피항하기도 하는 곳입니다. 백도가 파도를 막아주는 덕분입니다. 자작도에 들어간 어민들은 거기서 그대로 잠을 자기도 하는데, 청둥오리의 산란 장소라 소란을 떨어선 안 된다고 합니다.

동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천학정.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동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천학정.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토성면 교암리로 내려오면 천학정이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가도’를 앞에 두고 풍류를 즐기던 정자였습니다. 나이 지긋한 해송들이 턱 걸터앉은 해안 절벽의 천학정도 절경이지만, 천학정에서 바라본 가도와 멀리 또 다른 죽도의 풍경에는 가슴이 아릴 정돕니다. 동해의 섬 주위에는 온갖 물고기가 다 잡히나 봅니다.

바위섬의 해조류가 파도에 떨어져 나가 먹잇감이 되기 때문입니다. 전라도와 제주도에서 잡히는 방어까지 올라옵니다. 섬 주변에는 수심과 해류가 달라 조업 방식과 포인트가 다른 법입니다. 동해 어민은 큰 바다 조업에만 능한 줄 알았더니, 섬 주변의 조업에도 일가견이 있더군요.

고성군 관계자가 묻더군요. 동해의 무인도 찍어가 뭐 하려느냐고요. 잘 모르겠습니다. 지난 겨울에 동해 바다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망망대해 동해가 왜 그렇게 부담스럽던지요. 문득 다도해 생각이 간절하더군요.

푸근하고 정겨운 다도해에 비해 그때 본 동해는 너무 절망적인 곳이었습니다. 풍랑을 피할 작은 섬 하나 없이 스스로 독하게 감당하라 명하는 그런 차가운 바다가 동해였습니다. 스스로에게 무섭도록 준엄해져야 하는 바다. 삶의 초라한 밑천 전부와 대면해야 하는 바다.

지난 겨울 우리는 그렇게 강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열렬하게 고독하지도 못했습니다. 그 외로움이 두렵습니다. 차라리, 동해에도 가깝게 안길 섬이 있더라고 우겨 보고 싶었습니다. 보세요, 여기에도 섬사람의 웃음과 눈물이 있쟎습니까.

가는 길
영동 고속도로를 타고 강릉까지 가서 강릉에서부터 7번국도를 따라 양양, 속초, 고성 방면으로 오르면 동해 북쪽 해안의 섬들을 차례로 구경할 수 있다.

화진포.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화진포.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주변 볼거리 
화진포

동해안 최북단의 석호. 광활한 호수 멀리 백두대간이 병풍처럼 둘러섰고, 송림과 기암괴석이 신비로운 곳이다. 바다로 이어진 석호에 해가 저물면 금빛 호수 위로 파도 소리가 들려온단다.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이 쓰던 별장이 아직 남아 역사안보전시관으로 사용된다.

자유당 때 지은 이승만·이기붕 별장도 남아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어릴 때 김일성 별장 앞에서 찍은 사진이 남한에 남아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 사진을 포함해 화진포 화보집을 만들어 화진포 지역을 개성과 맞바꾸자 했다는 일화가 남아 있을 정도로 경치가 아름답다.

산호섬과 다양한 열대어의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화진포 해양 박물관도 시간 나면 들러 볼 것. 

송지호 식당
2대째 이어온 오호리의 횟집. 죽도가 바라보이는 바닷가에 있다. 죽도 주변은 심층수 개발이 진행될 정도로 바닷물이 맑다. 청정수에 산다는 명지조개와 칼조개, 백합을 한가득 넣은 조개탕 맛이 일품이다.

회덮밥을 시키면 억센 쇠미역이 딸려 나온다. 쇠미역에는 포자가 빠져나가면서 생긴 구멍이 송송 나 있다. 이 쇠미역에 회덮밥을 싸먹는다.

자매해녀횟집
고성 가진항에는 해녀가 3명 있는데, 그 가운데 자매 2명이 직접 운영한다. 물회 전문으로 유명하다. 제주 물회는 된장을 풀어 구수한데, 강원도 물회는 고추장을 풀어 매콤하다. 또 제주 물회는 한치나 자리 같은 한 가지 회만 쓰는데, 강원도 물회는 가자미, 해삼, 송어를 비롯한 다양한 회를 쓴다.

고성 죽왕 왕곡마을
북방식 전통 한옥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어 전통 건조물 보존지구로 지정된 마을이다. ㄱ자형 가옥 형태와 부엌 옆에 외양간을 둔 게 특이하다. 방과 함께 따뜻해지라고 아궁이 옆에 외양간을 만든 것이다. 돌담도 아름답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송지호에 둘러싸여 전쟁 중에도 훼손되지 않았다

숙박 정보
고성에는 해수욕장이 24개다. 그 주변에 모두 민박촌이 있다. 그 중 삼포 해수욕장 주변 시범민박촌이 잘 알려져 있다. 코레스코, 대명, 일성, 알프스, 현대 콘도를 비롯한 대형 콘도 시설은 모두 2천 9백 실 규모. 삼포 해수욕장 옆 공터에는 군청에서 오토 캠핑장을 운영한다.

펜션을 찾으려면 진부령 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목장 펜션 : 찜질방 포함 황토 독채·가족형 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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