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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우리말로 추구한 민족의 독립 - 육사의 자취를 따라서, 이육사문학관
우리말로 추구한 민족의 독립 - 육사의 자취를 따라서, 이육사문학관
  • 황병우 기자
  • 승인 2019.08.23 1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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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민족시인이면서 독립투쟁에도 적극 참여했던 육사의 생애 총망라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 이육사 <절정>

육사는 1927년 첫 옥살이를 포함해 17번이나 감옥 생활을 할 정도로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민족시인이었다. 사진은 이육사문학관 내 로비에 있는 육사의 흉상. 사진 / 황병우 기자
육사는 1927년 첫 옥살이를 포함해 17번이나 감옥 생활을 할 정도로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민족시인이었다. 사진은 이육사문학관 내 로비에 있는 육사의 흉상. 사진 / 황병우 기자

[여행스케치=안동] 이육사는 일제강점기 항일민족시인으로서 윤동주와 함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문학작품은 중고교 국어교과서에 한 편 이상 실리고 있으며, 그의 문학세계는 많은 학자들의 연구대상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최근 몇년 사이에는 순국할 때까지 17번이나 옥살이를 겪은 항일독립운동가로서의 면모가 크게 재조명되면서 사회교과서나 역사교과서에도 다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육사문학관에서 도보로 5분가량 떨어진 옛 생가터에 자리하고 있는 청포도시비. 사진 / 황병우 기자
이육사문학관에서 도보로 5분가량 떨어진 옛 생가터에 자리하고 있는 청포도시비. 사진 / 황병우 기자
육사가 친우들에게 나눠준 자신의 사진. 사진제공 / 이육사문학관
육사가 친우들에게 나눠준 자신의 사진. 사진제공 / 이육사문학관

육사가 태어나고 묻힌 그의 고향, 안동 원촌마을

안동 시내에서 태사2길을 따라 북동쪽으로 18km가량 이동하면 와룡면 행정복지센터가 있는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왼쪽으로 직진해 도산서원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약4km 이동하면 도산서원이다. 도산서원에서 퇴계종택을 지나 3km가량 더 이동한 후 퇴계 이황 묘소와 하계마을 독립운동기념비를 거쳐 고개를 넘으면 이육사문학관이 있는 육사의 고향 원촌마을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태어난 육사는 조국의 광복을 위해 불꽃처럼 뜨겁게 살다가 중국에서 만40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한 줌의 재가 된 채 고향 땅에 묻혔다. 그의 묘는 문학관에서 약 2.5km 가량 떨어진 원촌마을 뒷산 마차골 위쪽에 자리하고 있다.

원촌마을에는 육사의 발자취를 한데 모은 이육사문학관과 옛 생가를 그대로 복원해 지은 고택 ‘육우당’을 만날 수 있다. ‘육우당’이라는 이름은 육사의 우애있는 여섯 형제가 산다는 의미로 현재 육사의 따님 이옥비 여사가 살고 있다.

문학관 내에 복원된 육사의 생가 '육우당'. 사진 / 황병우 기자
문학관 내에 복원된 육사의 생가 '육우당'. 사진 / 황병우 기자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옮겨지기 전 육사 생가 모습. 바로 보이는 건물이 사랑채다. 사진제공 / 이육사문학관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옮겨지기 전 육사 생가 모습. 바로 보이는 건물이 사랑채다. 사진제공 / 이육사문학관

문영숙 이육사문학관 해설사는 “이옥비 여사는 공식적인 행사 외에도 가끔 문학관에 들러 관람객들에게 자신의 아버지 육사와 관련한 생생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기도 한다”고 밝혔다.

문학관 앞에는 ‘절정’시비와 육사의 동상이 자리하고 있어 문학관 방문객들을 먼저 반긴다. 포도알을 상징하는 동그란 구체와 함께 육사의 시가 새겨진 ‘청포도’시비와 ‘초가’시비는 문학관에서 도보로 5분 정도 떨어진 옛 생가터(잔디광장)에서 만날 수 있다. 

그가 16세 때까지 살았다고 하는 옛 생가는 현재 안동시 태화동에 있다. 원래 원촌마을에 있던 것을 1976년 안동댐 수몰로 인해 옮겨진 것이다.

INFO 옛 이육사 생가
주소 경북 안동시 포도길 8

 

의열단에 가입한 육사와 교류하며 영향을 준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 의열단 단장과 김시현 의사의 사진. 사진 / 황병우 기자
의열단에 가입한 육사와 교류하며 영향을 준 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 의열단 단장과 김시현 의사의 사진. 사진 / 황병우 기자
일제 경찰이 육사를 베이징으로 압송할 때 사용한 것과 같은 포승줄, 수갑과 족갑 그리고 용수. 사진 / 황병우 기자
일제 경찰이 육사를 베이징으로 압송할 때 사용한 것과 같은 포승줄, 수갑과 족갑 그리고 용수. 사진 / 황병우 기자

의열단원 이육사 그리고 그의 마지막 모습

육사의 본명은 이원록으로 ‘장진홍 의거’에 연루돼 대구교도소에 수감됐다가 그때의 수인번호 ‘264’를 따서 호를 ‘육사(陸史)’로 지어 활동한다. 이후에는 의열단 산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입학해 군사훈련을 받는 등 독립투쟁에 적극 가담한다. 

국내 무장투쟁을 위해 무기반입을 준비하던 육사는 이를 위해 중국을 오가다 1943년 서울에서 체포돼 베이징으로 압송된다. 그의 17번째 옥살이는 마지막을 암시하는 듯 혹독했다.

문 해설사는 “이옥비 여사는 ‘아버지가 베이징으로 끌려가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이 청량리역 앞’이라고 증언한다”며 “수갑과 포승줄에 묶이고 용수를 쓴 모습으로 어린 따님의 얼굴을 보며 ‘아빠 갔다 오마’라고 한 것이 이 여사가 기억하는 육사의 마지막 모습이다”라고 말했다.

가족들이 감옥으로 흰 한복을 넣어두면 일제 경찰의 모진 고문으로 얼마 되지 않아 육사가 입은 한복은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어 나왔다고 한다. 사진은 문학관에 재현된 피투성이 한복. 사진 / 황병우 기자
가족들이 감옥으로 흰 한복을 넣어두면 일제 경찰의 모진 고문으로 얼마 되지 않아 육사가 입은 한복은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어 나왔다고 한다. 사진은 문학관에 재현된 육사의 피투성이 한복. 사진 / 황병우 기자

이어 “다만 이 여사는 ‘아버지의 모습은 기억나지만,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은 다른 분에게 전해들은 것일 뿐 기억에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종종 말한다”고 문 해설사는 밝혔다.

베이징으로 압송된 육사는 일제의 무자비한 고문 끝에 광복을 1년 앞둔 1944년 1월 결국 베이징 소재 일본 영사관의 차디찬 감방에서 40년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노천명, 모윤숙, 서정주, 이광수 등 많은 문인들이 친일파로 변절하는 그 순간에도 육사는 조국광복의 투쟁에 단 한 번도 이탈하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진 독립운동가의 책무를 수행하다 한 줌의 재가 되고 만 것이다.

광복 이후 동생에 의해 출간된 육사의 유고집. 사진 / 황병우 기자
광복 이후 동생에 의해 출간된 육사의 유고집. 사진 / 황병우 기자
사방을 철창처럼 꾸며 감옥을 연상시키게 하는 문학관 2층 전시공간. 사진 / 황병우 기자
사방을 철창처럼 꾸며 감옥을 연상시키게 하는 문학관 2층 전시공간. 사진 / 황병우 기자

육사의 문학세계와 독립투쟁을 한자리에, 이육사문학관

언덕 위에 있는 2층 출입구를 통해 이육사문학관 안으로 들어가면 육사의 흉상을 비롯해 그가 남긴 시와 그를 추모하는 공간이 나타난다. 실내 벽에는 육사의 시들이 새겨져 있어 발길을 멈추게 하며,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원촌마을과 가계도, 유학생활, 대구에서의 독립운동 활동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바닥에 그려진 동선을 따라 걸어가면 이름의 유래가 된 대구교도소를 묘사한 공간이 나타나는데 사방이 철창으로 꾸며져 마치 감옥 안에 있는 느낌을 준다.

‘광야’ 시상지인 너른 원촌들판의 탁 트인 풍경을 볼 수 있는 문학카페 ‘노랑나븨’에서는 커피와 음료는 물론 다양한 기념품도 구입할 수 있다. 청포도로 만들어 은은한 맛과 향이 좋은 ‘264청포도와인’도 판매 중이다.

전시관 벽에 걸린 육사의 시가 발길을 붙잡는다. 사진은 시 '청포도'. 사진 / 황병우 기자
전시관 벽 여기저기에 걸린 육사의 시가 발길을 붙잡는다. 사진은 시 '청포도'. 사진 / 황병우 기자
육사는 시력 보다는 멋을 내기 위해서 안경을 착용했었다고 한다. 사진 / 황병우 기자
육사는 시력 보다는 멋을 내기 위해서 안경을 착용했었다고 한다. 사진 / 황병우 기자

문학관 1층에는 대구격문사건·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등 당시 자료와 모형, 문학작품·비평문이 실린 도서를 통해 독립운동가 겸 시인·논객으로서 육사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윤세주·김원봉·김시현을 비롯해 정인보·신석초·뤼신 등 육사와 교류했던 독립운동가와 문인들에 대해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특히 1934년 6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석방 2일 전에 찍은 육사의 사진과 그의 안경이 눈에 띈다. 시력보다는 멋을 내려고 안경을 착용했었다고 알려진다. 벽에 걸린 옛날 전화기의 수화기를 들면, 김원봉 단장이 독립투쟁을 위해 육사에게 명령한 비밀지령도 들을 수 있다.

김원봉이 육사에게 명령한 비밀지령을 들을 수 있는 옛 전화기. 사진 / 황병우 기자
김원봉이 육사에게 명령한 비밀지령을 들을 수 있는 옛 전화기. 사진 / 황병우 기자
지난해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육사의 친필원고 '편복'. 사진 / 황병우 기자
지난해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육사의 친필원고 '편복'. 사진 / 황병우 기자

1층에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는 서대문형무소 감옥과 육사가 베이징으로 압송될 때 사용된 것과 같은 수갑·포승줄·용수가 전시 중이다. 감옥 안에는 가혹한 고문으로 피투성이가 된 육사의 옷을 재현해 걸어두고 있다. 그가 겪은 모진 고문과 고통스러운 수감생활이 연상된다.

또한 옥사 이후 고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에 대해서도 육사의 시신을 수습했던 독립운동가의 육성증언으로 생생하게 들어볼 수 있으며, 각종 사진과 훈장·추모시·유품 전시와 육사의 대표시 ‘청포도’, ‘광야’, ‘절정’을 성우의 낭독으로 청취할 수도 있다.

INFO 이육사문학관
이용요금 성인 2000원, 청소년 군경 1500원, 어린이 1000원 (30인 이상 단체 500원 할인) (65세이상 노인, 7세이하 유아, 장애인, 국가유공자 무료)
운영시간 3월~10월 오전9시~오후6시, 11월~2월 오전9시~오후5시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 추석 휴무)
주소 경북 안동시 도산면 백운로 525

문학관 앞에서 만날 수 있는 이육사 동상과 절정시비. 사진 / 황병우 기자
문학관 앞에서 만날 수 있는 이육사 동상과 절정시비. 사진 / 황병우 기자
문학관 길 건너편 '광야'의 시상지 원촌들판의 모습. 육사는 이 곳에서 일제에 신음하는 민족의 현실과 대한독립을 이뤄낼 '초인'을 소망했다. 사진 / 황병우 기자
문학관 길 건너편 '광야'의 시상지 원촌들판의 모습. 육사는 이 곳에서 일제에 신음하는 민족의 현실과 대한독립을 이뤄낼 '초인'을 소망했다. 사진 / 황병우 기자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 이육사 <광야>

TIP. 영상으로 보는 육사의 생애 – MBC 광복절 특집드라마 <절정>

육사의 일대기를 다룬 MBC 광복절 특집드라마 '절정'. 사진제공 / MBC
육사의 일대기를 다룬 MBC 광복절 특집드라마 <절정>. 사진제공 / MBC

육사의 생애는 지난 2011년 MBC에서 방영한 광복절 특집드라마 <절정>을 통해 영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도 재방영을 요구하는 글이 방송사 시청자 게시판에 종종 올라올 정도로 꾸준한 화제가 되고 있으며, 지난해에도 삼일절을 맞아 재방영되기도 했다. 육사 역에는 김동완, 부인 안일양 역에는 서현진이 열연을 펼쳤고, 2012년 제45회 휴스턴 국제 영화제 특집극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MBC홈페이지에서 유료로 다시보기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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