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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백두대간 종주기⑭] 문경 대야산과 봉화 선달산, 자연 속에는 봄과 여름이 공존한다
[백두대간 종주기⑭] 문경 대야산과 봉화 선달산, 자연 속에는 봄과 여름이 공존한다
  • 박상대 기자
  • 승인 2005.06.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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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녹음이 짙은 선달산의 풍경. 2005년 6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녹음이 짙은 선달산의 풍경. 2005년 6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문경] 깎아지른 절벽 암릉구간이 산객들을 압도했던 문경 대야산과 넉넉하고 큰 덩치로 산객들을 보듬어주었던 봉화의 명산 선달산. 백두대간 종주 막바지에 멀리 떨어진 두 산을 다녀왔습니다.  

경상도와 강원도를 하나로 이어주는 산 선달산. 선달산에 간 날이 마침 입하. 여름이 시작된다는 날이었지요. 언론에서도,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또 그들대로, 날씨에 대해 계절의 변화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봄이 짧아졌다느니, 봄을 건너뛰고 여름이 바로 온다느니 말합니다.

산에 오르면서 문득 자문했습니다. 과연 그런가? 자연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사람들의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닌지? 산행을 하는 동안 뇌리에는 갖가지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도대체 누가 사계절을 만들었지? 사람들은 입춘이 지났는데도 춥다는 둥, 입하가 되었는데 여름 같지 않다는 둥, 입춘이 지났는데도 더위가 물러나지 않는다고 말하지요. 아리송한 일입니다.

사계절이 바뀌는데 영화 장면 바뀌듯 바뀔 수 있는 것인지, 왜 계절의 변화에 시비를 가는 것인지…. 모두들 성미가 급한 사람들의 푸념이거나 계절의 변화를 노리고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조급증이 아닐까? 자연은 그대로인데 내가 좀 불편해서, 내 맘에 안 들어서 하늘을 보며 괜한 짜증을 부리고, 주먹질을 해대는 것이 아닐까?

산을 오르다보면 아랫녘은 녹음이 짙어갑니다. 여름의 문턱을 훌쩍 뛰어넘고 있지요.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도 제법 큰 목소리를 냅니다. 산을 오르는 동안 오솔길 사이로 피어난 꽃들-양지꽃, 제비꽃, 현호색, 각시 붓꽃, 송화, 조팝, 산배 등등-을 보며 봄과 여름을 동시에 만끽합니다.

산의 정상 부근에는 아직 봄이 지지 않았다. 2005년 6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산의 정상 부근에는 아직 봄이 지지 않았다. 2005년 6월. 사진 / 박상대 기자

그런데 산꼭대기로 올라갈수록 봄 냄새가 진동합니다. 아직은 여름이 아니지요. 산 아래는 이미 진달래가 꽃잎을 버리고 새 잎을 손가락만 하게 키우고 있는데, 정상에는 아직 꽃잎이 활짝 웃고 있답니다. 자연은 사계절을 가르는 경계점이 없답니다. 서서히 변화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사람들은 마침내 그 계절에 순응하며 한가운데 풍덩 빠져서 계절의 참맛을 만끽하지요. 하지만 성질 급한 사람들은 계절이 더디게 바뀐다는 둥, 길어졌다는 둥 말이 많습니다.

오금 저리게 했던 대야산 암릉 구간
따스한 봄 햇볕에 몸이 나른하네요. 버스 안에서 달콤한 토막잠을 자고 일어나자 어느 새 버리미기재. 버스에서 내린 대원들은 눈 비빌 여유도 주지 않고 앞에서부터 산을 오릅니다. 참 인정머리 없는 모습이지요. 그런데도 어떻게 길고 깊은 정이 들었을까.

어떻게 지난주에 누가 안 나왔는지 이번주에는 누가 안 보이는지 금세 파악할 수 있을까. 궁상맞은 생각을 하며 산을 오릅니다. 들머리 들어서자마자 새들이 고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네요. 어디에 있는지 얼굴을 내밀지는 않으면서. “그래 그래. 봄이다, 봄!” “새들이 짝을 찾는 프로포즈를 하는 거라지요?” 한 대원이 피식 웃습니다.

하늘이 참 맑습니다. 눈이 시릴 정도로. 시계가 참 좋습니다. 가끔 앞사람이 소나무 가지를 건드리면 송화 가루가 바람에 날리는군요. 산길이 험해서 힘든 산행이 될 거다, 긴장하고 조심해야 할거라고 등반대장이 말했는데… 첫번째 봉우리를 오를 때까지 여느 산과 다름이 없습니다.  

대야산에는 암릉이 유난히 많았다. 2005년 6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대야산에는 암릉이 유난히 많았다. 2005년 6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바로 그때 첫번째 절벽. 내리막 길이 급경사네요. 로프를 붙잡고 내려가는데 이제는 거의 모든 대원들이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이 정도야 뭐.” 계속되는 크고 작은 바위 위를 대범하게 성큼성큼 내딛는 대원들.

몇몇 여성 대원들은 까르르 웃고 장난도 칩니다. 대야산도 별거 아니라는 생각에서겠지요. 그러나 저 멀리 버티고 선 거대한 산. 봉우리 하나가 온통 거대한 바위덩이네요. 반대쪽에서 올라온 사람들로 보이는데 엉금엄금 기어서 움직이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마침내 앞을 가로막고 떡 버티고 선 암릉! 경사가 70도인지 80도인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정상이 보이지 않고 앞서 오르기 시작한 사람도 보이지 않고 로프만 대롱대롱 매달려 있습니다. 차마 목숨을 앗아갈 올가미는 아니겠지요. 10여 분을 올라갔는데 앞뒤에 아무도 없군요.

저 아래 까마득한 낭떠러지. 두려움이 엄습하네요. 괜히 온 거 아냐? 그래도 가야 합니다. 앞으로! 버스는 이미 반대편에 가서 대기하고 있을 거고, 중간에 우회로나 탈출로도 없답니다. 숨이 거칠어지고, 손바닥에 땀이 고이고, 이마에 송알송알 땀이 흐르고, 다리는 후들거리고, 발바닥이 간질간질하네요. 생존을 위한 전진!  

대야산 정상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대원들. 2005년 6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대야산 정상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대원들. 2005년 6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드디어 대야산 정상. 표지석을 살피니 大耶山. 바위에 앉아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산들 바람이 뺨을 스칩니다. 여기저기서 먼저 오른 대원들이 점심을 권하지만 입맛이 싹 달아나버려서…. 물만 벌컥벌컥 들이킵니다. 모든 산이 발 아랩니다. 하늘은 높고 바람은 보드랍군요. 잠시 그리운 얼굴들이 스쳐갑니다.

부석사 무량수전. 2005년 6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부석사 무량수전. 2005년 6월. 사진 / 박상대 기자

가슴이 넉넉하고 육질이 튼실한 선달산
한국 최고의 목초건축물 무량수전이 있는 영주 부석사. 몇 주전에 내려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부석사 뒤쪽 갈곶산과 선달산을 오르기 위해서지요. 부석사 앞마당엔 파란 새싹들이 자라나고, 여기저기 호랑나비들이 어깨춤을 추고 있습니다.

도로변 야산에 조팝나무가 하얀 꽃을 한껏 자랑하고 있네요. 길섶에서 보기 드문 야생 금낭화를 카메라에 담으며 오늘의 행운을 기대합니다. 소나무 숲이 참 좋군요. 춘양목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허리춤에 도끼 자국 상처를 가진 굵은 소나무들이 많습니다.

대야산은 사방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정상 북서면 능선. 2005년 6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대야산은 사방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정상 북서면 능선. 2005년 6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일제 때 송진 연료를 채취하기 위해 도끼로 흠집을 내놓았다네요. 안타까운 마음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토록 깊은 상처를 껴안고 수십 년 세월을 버티고 살아온 나무들에게 고개를 숙입니다. 무지했던 사람들, 야만의 시대는 갔지만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갈곶산과 늦은목이재를 지나 선달산에 오릅니다. 5월 초순, 입하라지만 선달산에는 봄바람이 머물고 있군요. 군데군데 진달래들이 방긋 웃고 있고, 양지바른 야산에선 한달 전에 꽃을 피운 양지꽃이 이제야 노란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백두대간에서 이런 능선을 만나는 건 행운입니다. 암릉이 거의 없는 육산. 녹음이 짙어지진 않았지만 산들바람이 불고, 길에서 먼지도 나지 않고, 진달래와 참나무, 물푸레나무의 새순이 까르르 인사를 합니다. 멀리 북쪽으로 버티고 서 있는 산이 강원도 함백산과 태백산. 동쪽으로 봉화의 깊은 산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깊은 산에 깃들어 있는 깊은 평화가 가슴을 평화롭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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