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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지구촌 기행] 쪽빛 바다에 대한 다섯 가지 단상, 호주 시드니
[지구촌 기행] 쪽빛 바다에 대한 다섯 가지 단상, 호주 시드니
  • 김상미 객원기자
  • 승인 2005.06.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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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호주 넬슨베이 바닷가 풍경. 2005년 6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호주 넬슨베이 바닷가 풍경. 2005년 6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여행스케치=호주] 쪽빛 바다에 발이 빠져 호흡이 곤란하다. 순전히 음모다. 바다의 달콤한 음모로부터 벗어나려면 아무래도 욱신거리는 육신을 시드니 바닷가에 두고 가야할 것 같다.

바다 하나
넬슨베이 바닷가에서 바람은 흰 지느러미처럼 휘어진다. 바다 깊숙이까지 오르내리며 수영을 즐기는 심해상어와 함께 살기 위해서다. 파도를 피해 안으로 마음을 기울인 해안선을 따라 사진 속에서만 보았던 요트가 가지런하게 정박해 있다.

돌핀 크루즈에 탑승하여 갑판 위로 올라갔다. 갑판 위에는 이미 마음을 바다에 빼앗긴 채 낭만과 뒹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우리나라의 유람선을 타면 뽕짝음악이 바다 소리를 훔쳐가서 늘 아쉬웠는데 자연 그대로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이 또 하나의 수확이었다.

선장이 마이크를 통해 바다친구 상어를 구경하라고 안내했다. 혹 가까이에서 상어를 보고 싶으면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크루즈 뒤편에 내려진 그물망 속으로 들어가란다.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었지만 이미 내 몸 속에 공포를 입고 찾아 온 손님이 있어 마음을 접었다.

상어가 유영하는 바다로 뛰어든 세 모녀. 2005년 6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상어가 유영하는 바다로 뛰어든 세 모녀. 2005년 6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그런데 좀 차갑다 싶은 바닷물 속으로 뛰어드는 여인들이 있었다. 할머니, 엄마, 딸 한 가족으로 보이는 정열적인 호주의 여인삼대. 동양 여인들과는 가치관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몸무게가 1백kg에 육박할 것 같은 몸매로 많은 관광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을 드러내는 것 아닌가. 삼겹살의 당당함을 보고 한국 여인들이 놀라지 않을까 싶다.

호주의 상어들은 길들여지지 않지만 꼬리치며 관광객들을 유혹한다는데 아마도 오늘은 나처럼 컨디션이 좋지 않은지 크루즈 주변만 빙 돌다가 사라졌다.

삼삼오오 모여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호주인들. 2005년 6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삼삼오오 모여앉아 망중한을 즐기는 호주인들. 2005년 6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바다 둘
본다이비치. 동부해안으로 눈을 돌렸다. 바다의 이미지가 사라지고 없다. 바닷가에서 이정표는 비릿한 바다 냄새가 아닌가 생각하는데 아무리 킁킁거려도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왠지 슬픔이 빠져나간 것 같아 매력이 없어 보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가이드가 내 속을 들여다보듯 바다 냄새는 염분의 농도와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본다이비치로 떨어지는 햇살은 하루를 접어야 하는 아쉬운 마음을 아는 듯 바다로 빠지는 해를 쓸어 올리느라 유난히 반짝거렸다. 내가 기억하는 바다는 백사장과 파도의 연출이 전부였는데 본다이비치에는 또 다른 테마가 있었다.

깎아지른 듯한 언덕 위 파도를 안고 사는 집들, 바다와 땅의 경계를 이루며 함께 놀자고 칭얼대는 파도, 맘씨 좋은 친구처럼 보드를 들고 나가 한바탕 놀아주는 아이들…. 그리고 연애편지처럼 간직하고 싶은 조각전시회가 있다. 마침 중국의 수이 지안 궈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기획자 데이비드 핸들리가 본다이에서 타마라마 비치 사이를 산책하던 중 아름다운 바다에 사람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줄 것이 없을까 생각하다 떠올린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나는 본다이비치에서 부산 해운대 앞 바다와 달맞이 고개를 떠올렸다.  

샌드보드를 탈 수 있는 포트스테판의 언덕. 2005년 6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샌드보드를 탈 수 있는 포트스테판의 언덕. 2005년 6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바다 셋    
포트스테판의 백사장은 작은 모래 언덕들이 모여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 위로 사륜구동 차들이 기우뚱거리며 바퀴자국을 내고 있었다. 교통법규가 없는 모래판에서 길을 내는 것은 운전사 맘이다. 예쁜 이방인 아가씨들이 탄 것을 보고 운전사가 심상치 않은 미소를 흘렸다.

짓궂은 운전사는 사람을 버무리려고 울퉁불퉁 반항하는 길을 달렸다. 정상에 오르자 운전사는 트렁크에서 널빤지를 하나씩 꺼내주며 모래산을 내려가라고 한다. 우두커니 서서 속도감에 내지르는 괴성을 듣다가 나도 모르게 두려움이 사라졌다.

단순한 생각으로 널빤지 위에 앉았다. 1백m가 넘는 낭떠러지로 내려간다는 사실에 소리를 지르다보니 벌써 발이 바닥에 닿아 있는 것 아닌가. 모두 나이를 잃어버리고 모래썰매를 즐기고 있을 때 해는 빛과 어둠의 중간지점을 맴돌고 있었다. 호주의 바다는 삶을 즐기기 위해 참신한 자극을 이식받는 공간이 아닌가 싶었다.

영화 '빠삐용'의 마지막 촬영지로 유명한 갭팍의 절벽. 2005년 6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영화 '빠삐용'의 마지막 촬영지로 유명한 갭팍의 절벽. 2005년 6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바다 넷
갭팍은 남태평양의 절경이 내려다보이는 곳이며 시드니 동부지역의 마지막 틈새공원이다. 무려 3천8백 개가 넘는 틈새공원이 있다고 하는데 갭팍의 절벽공원은 시드니항구를 3대 미항으로 만드는데 한 몫을 하고 있었다.

태풍이 지나가지 않는다는 호주에서 바닷바람이 상륙하려고 시도하는 곳이 갭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 뒤로 시드니 항을 감추고 바람막이 역할을 해내고 있는 절벽은 자신을 희생하기 버거웠음인지 가슴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영문도 모르는 바다새들은 집세도 내지 않고 구멍 속으로 입주해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다. 자연도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영화 ‘빠삐용’의 마지막 촬영지로도 유명한 갭팍의 절벽.

세상과 벽을 쌓으려는 사람들이 자살충동을 느끼는 곳이라고도 한다. 모든 환경정책은 자연친화적인 것을 먼저 고려한다는 호주. 그런 연유인지 해안선을 따라 철조망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바다 위에도 아파트를 짓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아직도 80%의 해안가에는 사람의 발자국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나 땅이 넓으면 그럴까. 그러고 보면 세상은 참 불공평한 것 같다.

싱글아치 다리 중 세계에서 두번째로 긴 하버브릿지. 2005년 6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싱글아치 다리 중 세계에서 두번째로 긴 하버브릿지. 2005년 6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바다 다섯
서큘러 키는 시드니만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시드니 수족관 관람과 런천크루즈를 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2백여 나라 사람들이 이민을 와서 사는 곳이다. 크루즈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바라보는 시드니 항구의 집들은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가장 예쁜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커팅 된 오렌지 조각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디자인 했다는 조가비 모양의 오페라하우스, 싱글 아치 다리 중 세계 두 번째로 긴 다리라는 명성을 지니고 있는 하버브릿지. 모두 시드니 항구의 이미지들이다. 왠지 내게 시드니 항구는 잘 읽혀지지 않는 추상화 같았다.

거제도 어느 바닷가 마을과 닮았는데 출어를 준비하는 어부의 손놀림, 비릿한 바다 냄새와 갈매기떼들의 소란스러움이 빠졌을 뿐이다. 드넓은 땅, 푸른 숲,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꽃들, 야생동물들의 낙원, 천연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나라. 호주의 매력은 자연이었다. 노을, 일출, 바다, 수영, 모래, 수평선, 남십자성, 태양, 상어는 내 생각 속에 이미지로 강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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