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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초록별 가족여행] 동백 뚝뚝 떨어지는 오동도의 봄
[초록별 가족여행] 동백 뚝뚝 떨어지는 오동도의 봄
  • 구동관 객원기자
  • 승인 2005.05.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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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오동도로 향하는 유람선을 따라오는 갈메기. 2005년 5월. 사진 / 구동관 객원기자
오동도로 향하는 유람선을 따라오는 갈메기. 2005년 5월. 사진 / 구동관 객원기자

[여행스케치=여수] 봄꽃 여행으로 오동도를 꿈꿨다. 여행 계획을 잡고 아이들은 동백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따뜻한 남쪽나라를 떠올리며 즐거워했다. 더욱이 이번 여행은 유람선을 타고 다도해의 멋진 경치를 보는 신나는 해상투어다.

여행을 자주 다니지만 해상 유람선을 타는 것은 흔한 기회가 아니다. 시간이 많이 걸려 다른 일정을 잡기도 어렵거니와 가격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여수 여행에서는 돌산도를 돌아오는 해상투어를 미리 예약했다.

동백꽃 축제 행사의 하나로 유람선을 반값에 타는 프로그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요일 아침. 봄날의 아름다운 풍경을 꿈꾸는 길이었기에 대전에서 여수까지 3시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여수에 도착하니 오후 1시 40분.

우리 가족이 꿈꾼 따뜻한 남쪽 나라가 아니다. 바람이 거세고 날도 춥다. 여수가 우리나라 가장 아래쪽에 자리 잡은 곳이어서 가벼운 옷차림으로 왔는데, 꽃샘추위에 눈물이 다 흐른다.

다솜이는 추위 때문에 차에서 내리기도 싫단다. 차 안에 있는 여벌의 옷을 입혔다. 예쁘게 차려입은 옷들이 가려져 태가 나지 않는다며 투덜거린다. 그래도 추운 것보다는 낫다. 이런 날에는 옷의 때깔보다는 추위를 이기는 게 우선이다.

절벽에 걸려 바다를 품고 있는 향일암. 2005년 5월. 사진 / 구동관 객원기자
절벽에 걸려 바다를 품고 있는 향일암. 2005년 5월. 사진 / 구동관 객원기자

선착장으로 가서 유람선에 몸을 실었다. 오후 2시. 유람선이 향일암을 향해 출발했다. 바람이 매섭다며 객실 안에 있던 아이들이었지만, 창밖에서 부르는 갈매기의 유혹을 끝내 참지 못했다. 간간이 눈발까지 날렸지만, 갈매기를 보러 밖으로 나갔다.

갈매기가 힘찬 날갯짓으로 배꼬리에 따라붙고 있었다. 갈매기를 바라보다 아이들은 새우깡을 생각해 냈다. 강화도에서도 그렇게 따라오는 갈매기들에게 새우깡을 줬던 적이 있었다. 유람선 매점에서 새우깡을 샀다.

새우깡 몇 개를 하늘로 날려 보냈다. 거센 바람에 새우깡이 날렸다. 사방으로 흩어졌다. 바다에 빠진 새우깡을 갈매기들이 재빠른 동작으로 낚아챈다. “오동도 갈매기들도 새우깡을 좋아하네….” 추워서 꼼짝도 하기 싫다던 다솜이도 신이 났다. 새우깡 몇 개는 던져 주고 또 몇 개는 제 입에 넣고…. 그렇게 갈매기들과 금세 친구가 되었다.

향일암까지 가는 한 시간 동안 아이들은 새우깡 두 봉지를 갈매기들과 나눠먹었다. 유람선은 향일암에서 잠시 멈췄다. 아스라이 보이는 향일암이 가파른 벼랑 끝을 꼭 잡고 있었다. 이때쯤은 향일암에서 보는 동백꽃도 좋을 것이다.

배는 돌산대교 아래쪽으로 지나간다. 2005년 5월. 사진 / 구동관 객원기자
배는 돌산대교 아래쪽으로 지나간다. 2005년 5월. 사진 / 구동관 객원기자

5분쯤 서 있던 배는 돌산대교로 향하기 시작했다. 바람이 거세졌고, 배의 출렁거림도 더 심해졌다. 아이들도 객실로 들어와 쉬었다. 이젠 배가 고프단다. 아이들과 함께 객실에서 컵라면을 먹었다. “바로 이 맛이야….” 이제 막 중학생이 된 현석이는 여행의 이런 맛을 즐긴다.

그 사이 배는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있었다. 금오도, 송도…. 섬마다 사연도 많다. 그 사연이 구수한 사투리의 선장님 음성으로 흘러나왔다. 그렇게 다도해를 지나온 배가 이젠 여수의 모습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경치다.

그 경치를 보다가 아내는 문득 이런 곳에 살아 보고 싶단다.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아파트를 빌려 2년 쯤 살아보면 좋겠다고 했다. 좋은 생각 같다. 퇴직을 하고 2년 쯤 여수에 살자고 했다. 지금까지의 내 꿈은 민박집이었다.

정년퇴직을 한 뒤 산골마을에서 민박을 하며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아내의 제안에 솔깃해진다.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가족에게 딱 좋은 계획 같다. 앞으로 고민을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배는 오동도 입구 선착장에 도착했다.

바람이 거세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시간도 늦었다. 4시 도착 예정이었는데 5시를 넘겼다. 오동도를 들어가지 않은 사람을 위해 배가 들어가 준다니 다행이었다. 배를 타고 오동도를 한 바퀴 돌았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모습도 아름답다.

오동도를 지키는 오동도 등대. 2005년 5월. 사진 / 구동관 객원기자
오동도를 지키는 오동도 등대. 2005년 5월. 사진 / 구동관 객원기자

특히 등대가 서 있는 언덕은 걸어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푸른 숲과 하얀 등대가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환하게 서 있다. 한 폭의 그림이다. 선착장에 내려 드디어 오동도를 밟았다. 오래지 않아 어두워질 것 같다. 서둘러 등대로 향했다.

등대로 오르는 길은 동백과 대나무가 무성했고, 한쪽으로 긴 지압길이 이어져 있었다. 다솜이는 신발을 벗어 들고 그 지압 길을 걸었다. “아야, 아파….” 가끔 뾰족한 돌을 밟아 발바닥이 아프다며 찡그렸다. “아프면 내려와서 걷지 그래?”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발바닥이 시원하고 재미있다며 계속 걸었다.

날씬하고 가는 대나무인 신우대 숲이 마치 터널 같다. 2005년 5월. 사진 / 구동관 객원기자
날씬하고 가는 대나무인 신우대 숲이 마치 터널 같다. 2005년 5월. 사진 / 구동관 객원기자

등대로 오르는 길 중간에 바다로 내려가는 길도 있었다. 그 길에는 대나무가 무성했다. 워낙 대나무가 많아 오동도를 대섬이라고도 부른단다. 오동도의 대나무는 날씬한 신우대였다. 이순신 장군이 심고 나중에 화살을 만들어 왜적을 무찔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데, 화살을 만들기 딱 좋았을 그런 굵기였다.

그 길 안쪽으로 들어가니 완전 터널이다. 컴컴한 대나무 터널은 아이들에게 뿐만 아니라 나와 아내에게도 신기하기만 했다. 등대까지 오르니 여러 곳으로 길이 나뉘어 있었다. 해맞이를 보러 가는 길도 있었고 용굴로 가는 길도 있었다.

우리가족은 산등성이 길을 따라 용굴로 갔다. 용굴까지 가는 산등성이 길에도 온통 동백 나무였다. 다른 곳보다는 꽃이 예쁘게 많이 펴 있었다. 길 안쪽으로는 이미 목을 톡톡 부러뜨리고 꽃이 진 동백도 보였다.

용굴에 무엇이 있을까 다들 궁금한지 기웃거린다. 2005년 5월. 사진 / 구동관 객원기자
용굴에 무엇이 있을까 다들 궁금한지 기웃거린다. 2005년 5월. 사진 / 구동관 객원기자
동백꽃. 2005년 5월. 사진 / 구동관 객원기자
동백꽃. 2005년 5월. 사진 / 구동관 객원기자

“꽃은 예쁜데, 꽃이 진 모습은 슬퍼….” 다솜이는 꽃이 진 모습을 보며 마음 아파했다. 동백은 다른 꽃들과 달리 꽃잎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꽃봉오리 전체가 한 번에 떨어진다. 다솜이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동백꽃이 진 모습이 정말 슬픈 모습이다.

꽃을 보며 걷다보니 금세 용굴 입구 쪽이다. 오동도 남쪽 바위에 있는 용굴은 오백년 묵은 지네가 살았던 곳이란다. 굴 바로 앞쪽은 바다와 연결되어 있었고, 정말 큰 지네가 살 만한 동굴 같았다. 용굴을 돌아보고 나오니 해가 지고 있었다.

모두 출출하단다. 바다가 보이는 휴게소에서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문을 연지 이틀째인 휴게소다. 김밥과 어묵, 자장면과 라면, 그리고 공깃밥 하나까지…. 우리 가족이 주문한 조촐한 식단은 단돈 1만원짜리….

하지만 너울거리는 바다경치가 식탁의 훌륭한 배경이 되었다.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다. “바다경치가 정말 멋져서 음식도 맛이 좋아….” 여행만 나서면 늘 배가 고프다는 아내도 만 원짜리 식탁에 행복해했다. 가벼운 식사를 마치고 오동도 방조제로 걸어 나왔다. 아름다운 오동도의 모습이 어둠에 잠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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