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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독자 추천 여행지] 뱀이 가른 윗섬과 아랫섬, 사량도
[독자 추천 여행지] 뱀이 가른 윗섬과 아랫섬, 사량도
  • 김진용 기자
  • 승인 2005.05.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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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사량도 전경.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사량도 전경.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여행스케치=통영] 사량도 윗섬 ‘지리산’ 정상에서는 멀리 내륙의 지리산까지 보인다 한다. 하지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코앞의 아랫섬조차 멀기만 하다. 주민들은 ‘사량도’라고 부르지 않는다. 사량도 윗섬과 아랫섬을 오가는 다리를 놓고서야 그렇게 부를 것 같다.

다도해를 지나는 배는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다. 가도가도 섬과 굴 양식장의 미로니, 앞으로 나아가긴 가나 싶다. 통영에서 사량도로 향하는 여객선. 얼핏 세 본 승객은 29명. 큰 배가 무료할 만큼 한산하다. 핸드폰을 붙잡고 시간을 보내는 어르신이 눈에 띈다. 핸드폰이 남녀노소 시름을 달래는 도구가 된 지 오래다.

수녀님 둘. 성당이 있나 보다. 배낭 맨 등산객 둘. 주말이나 날씨가 좋을 땐 등산객으로 선실이 미어터진다 하니, 가지 않고도 섬의 날씨를 알 것 같다. 젊은이 다섯. 카드패를 돌리는 폼이 한두 번 해본 솜씨는 아닌 듯 싶다.

단체 관광 나선 아줌마 부대. 아줌마들의 음파는 모터 소리가 만들어낸 공기의 울림을 뚫고 직진할 만큼 강하다. 그리고 나머지 보따리를 안은 섬사람들. 40여 분 만에 도착한 곳은 상도(上島)의 진촌 마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승객과 차량이 내리자, 매표원이 하도(下島) 가는 사람만 타라고 외친다.

통영 나들이 가기 위해 선착장으로 어선을 타고 온 주민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통영 나들이 가기 위해 선착장으로 어선을 타고 온 주민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배는 상도와 하도를 한번 왕래한 후에야 통영으로 돌아간다. 사량도 사람들은 사량도라는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웃섬’과 ‘아랫섬’, 기껏해야 상도와 하도라 부른다. 그 사이에 뱀처럼 꼬불꼬불한 바다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진촌은 왜구를 막던 최영 장군의 진(鎭)이 있던 곳이다. 진촌 사람들은 당집 대신 장군의 사당에 매년 정월과 섣달 두 차례 제사를 모신다. 섬의 안녕과 풍어를 지켜주는 무속신은 최영 장군인 셈이다.

상도에는 1천 3백 명, 하도에는 1천 명이 산다. 엇비슷하다. 하지만 중심은 상도다. 면사무소와 중학교가 상도에 있기 때문이다. 하도의 중학생은 하루 두 번 있는 통학선을 이용한다고 한다. 그나마 중학생이 40여 명으로 줄었다니, 관에서 운영하지 않는 한 저 통학선이 사라질 날도 멀지 않았다.

상도든 하도든 산세가 무척 가파르다. 상도에는 지리산이 있다. 깍아지른 바위 절벽의 산이다. 지리산 옥녀봉 등반축제의 테마가 ‘스릴과 모험’ 일 정도다. 지리산 옥녀봉에 올랐다. 해발 218m. 우습게 볼 높이가 아니다.

윗섬의 해안 일주도로. 봄철에는 심어둔 벚꽃나무가 만발해진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윗섬의 해안 일주도로. 봄철에는 심어둔 벚꽃나무가 만발해진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섬의 산이라 수면에서부터 218m를 올라야 하는 데다, 가파르기가 기암절벽이다. 아름답다는 통영 풍광 가운데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든다는 옥녀봉 다도해 풍경을 내심 기대했건만, 건너편 하도의 칠현봉만 겨우 보인다.

안개와 진눈깨비가 흩뿌리는 궂은 날씨다. 지리산(398m)은 맑은 날 바다 건너 지리산을 바라볼 수 있다 해서 ‘지리망산’이라 부르다, 줄여 ‘지리산’이라 부르는 곳이다. 옥녀봉은 봉긋한 형상이 여인의 볼록한 가슴을 닮았고 여인이 거문고를 타는 옥녀탄금형을 이룬다는 풍수지리설에서 유래했다.

윗섬의 중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산줄기를 따라 지리산, 불모산, 가마봉, 옥녀봉으로 이어지는 종주 등산코스가 유명하다. 특히 옥녀봉에서 가마봉 구간은 로프와 사다리를 동원한 유격 코스를 방불케 한단다.

마을 어르신 말로는 산이 가파르고 수풀이 우거져 10여 년 전까지는 정상에 올라가본 사람도 별로 없었다 한다. 그래서 지리산이 보이는 줄도 몰랐단다. 예전 경남 고성에서 사량도를 바라보던 사람들이 저기 오르면 지리산도 보이겠다 싶어 ‘지리망산’이라 이름붙였다는데, 실제로 지리산이 보이더라는 것이다.

섬에서는 가축을 방목하는 경우가 많다. 달아나봐야 손바닥 안이기 때문이다. 섬에 흩어져 풀을 뜯다가 식사시간이 되면 알아서 나타나는 게 보통이다. 사량도 역시 몇 가구가 흑염소를 방목한다. 하지만 가끔씩 나타나지 않는 심성 이상한 흑염소가 있는데, 험한 산 속으로 숨어들면 찾아내기란 애시당초 글렀다고 봐야 한다.

사람도 못 찾고, 염소도 못 찾아오고. 이런 흑염소는 야생화된다. 혹 사량도 지리산에서 외따로 떨어진 흑염소와 마주친다면 이런 연유라고 보면 된다.

하도에는 칠현봉(258m)이라는 산이 있다. 7개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완만하게 연이어져, 뾰족한 상도 지리산과는 달리 포근한 느낌이다. 주민들은 지리산보다는 칠현봉에서 보는 다도해 풍경이 더 뛰어나다고 한다.

멀어지는 사량도. 오른쪽이 윗섬, 왼쪽이 아랫섬이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멀어지는 사량도. 오른쪽이 윗섬, 왼쪽이 아랫섬이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배편이 상도로 향하기에 지리산은 유명세를 탔고, 칠현봉은 뒤편으로 밀려났다는 것이다. 칠현봉의 멧돼지 가족이 먹이가 떨어지면 지리산으로 헤엄쳐 건너올 만큼 두 섬은 가깝다. 하지만 상도는 관광지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는 반면, 하도는 아직 어렵고 어려운 섬마을이란다.

상도에는 식당과 여관에다 유스호스텔까지 있지만, 하도에는 횟집을 겸한 식당 2곳이 유일한 상업시설이다. 좀 사는 집은 굴 양식이라도 하지만, 마땅히 올라오는 소득원이 없어, 도다리와 갈치 따위를 잡는 영세한 어민이 대부분이다.

사량도 사람들은 2년에 1번 사량 중학교 운동장에 모여 체육대회를 벌인다. 사량도 사람이 모이는 유일한 기회다. 돌아가는 배를 타는 진촌 선착장에서 만난 “이름 같은 거 엄따” 아주머니. 하도 주민이란다. 어선에 페인트칠을 하려 상도에 들렀다가, 선착장 위치가 바뀐 줄 몰라 배를 놓쳤단다.

하도는 살 만하냐 물었더니, “옥녀봉은 쪼삣하이 파이다. 칠현봉이 팬팬하이 좋지” 한다. 상도는 가파르고 드세지만, 평평하게 둘러선 하도의 칠현봉은 아늑하다는 것이다. 사량도 사람들의 20년 소원이라는 상·하도 연결 다리가 어서 빨리 놓여야 할 텐데 한다.

들어갈 땐 29명이었는데, 나오는 배에는 28명이다. 그 섬의 안개 속에 꼭 뭘 하나 두고 나온 것 같아 왠지 찜찜하다. 통영에 가까워져서야 뿌옇게나마 햇살이 비친다. ‘쪼삣한’ 지리산과 ‘팬팬한’ 칠현봉. 한 지붕 두 가족 사량도가 아득히 멀다.

Tip. 숙박
그림같은 집
새단장해 깔끔하다. 그 외 상도에 여관 4군데와 민박 20여 가구. 하도에도 마을마다 민박 한·두 가구가 있다.

맛집
미화식당
봄철이 되면 도다리 쑥국이 별미. 새순의 향긋한 맛이 비린내를 없애 준다고. 면 사무소 앞 에서 도다리 쑥국 뿐 아니라 직접 잡은 횟감을 맛볼 수 있다.

회의실 가든
흑염소 요리집. 풀어놓은 흑염소를 잡기가 쉽지 않아, 몇 일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사량도 내 등산을 할 수 있는 여러 코스가 있다. 옥녀봉 구간은 무척 험하니 넉넉한 산행을 추천한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사량도 내 등산을 할 수 있는 여러 코스가 있다. 옥녀봉 구간은 무척 험하니 넉넉한 산행을 추천한다. 2005년 5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등산코스
옥녀봉 등반 _ 진촌 -> 옥녀봉 -> 진촌 (1시간 소요)
지리산 종주 _ 일반적으로 돈지에서 출발 -> 지리산 -> 옥동 고개 -> 불모산 -> 가마봉 -> 연지봉 -> 옥녀봉 -> 진촌 (8km, 5시간 소요).
                  돈지 -> 지리산 구간과 가마봉 -> 옥녀봉 
칠현봉 등반 _ 덕동 -> 봉화대 -> 칠현봉 -> 읍포 (6km, 4시간 소요).

가는 길
사량호 _ 통영시 도산면 가오치 선착장 ↔ 사량도 진촌 선착장. 통영에서 첫 배는 07:30(동계)와 07:00(하계). 마지막 배는 16:10(동계)와 17:10(하계). 약 2시간마다 한 대. 40분 소요. 나오는 배 시간은 통영 출항 시간 1시간 뒤.
다리호 _ 고성 하일면 춘암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배편도 있다.
섬 내 마을 버스 _ 진촌 선착장에서 배 시간에 맞춰 1대 운행. 진촌에서 돈지까지 갔다가 다시 진촌으로 돌아와 내지로 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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