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가족여행] 편견 딛고 다시 서는 섬, 소록도
[가족여행] 편견 딛고 다시 서는 섬, 소록도
  • 이종원 객원기자
  • 승인 2005.05.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봄꽃에 스며든 한(恨), 화사하게 피어나는 섬, 소록도 풍경. 2005년 5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여행스케치=고흥] 편견이 있다면 뿌리까지 뽑아 버려야 한다. 자연은 스스로 아름답고 사람은 어디서나 소중하다. 작은 아기사슴 모양의 섬, 고흥 소록도. 그 아름다움과 생명을 다시 들여다보면 편견이 얼마나 스스로를 얽매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정겨운 시골버스. 2005년 5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정겨운 시골버스. 2005년 5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시골버스
한참 만에 버스가 왔다. 흙먼지가 풀풀 나는 가로수 길에 버스가 설 줄 알았는데 버스보다 빠른 문명은 이 오지까지 아스팔트를 깔아놓았다. 시골버스답지 않게 세련된 색깔을 입고 있지만 실내는 영락없는 고물 시골버스다.

엔진이 앞에 달린 것도 마냥 신기하기만 하고 돈통이 붙어 있는 것도 오래간만에 보는 모습이다. 한겨울에 버스 엔진통 위에 엉덩이를 걸치면 얼마나 따뜻한지 모른다. 가끔 기사님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더 없이 인간적이다.

길 건너편에서 할머니가 손을 든다. 지팡이를 짚고 어슬렁 걸어와도 버스는 기다린다. 그렇다고 차 안에 있는 승객 가운데 뭐라고 하는 사람 하나 없다. 할머니가 버스에 올라타는 것도 한세월이다. 지켜보는 내가 더 답답할 정도다. 기사님이 할머니가 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버스는 오라이. 훈훈한 정이 담긴 고흥의 시골버스.

국립소록도병원 입구. 2005년 5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국립소록도병원 입구. 2005년 5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슬픔의 섬 소록도
소록도는 녹동항에서 배로 5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거리로 6백m 정도니까 수영에 자신있는 사람은 훌쩍 넘어갈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병든 죄밖에 없는 한센병 환자들에게 이 바다는 너무나도 먼 바다였다. 그들이 건너가려고 했던 바다는 이 바다가 아니었다. 경비가 너무나 삼엄했기 때문에 이곳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대신 나무토막에 몸을 맡기고 조류만을 의지해 보성만을 가로질러 장흥까지 헤엄쳐 갔다. 대다수 환자들은 그러나 세찬 바다에 휩쓸려 시신조차 찾을 수 없었고 극적으로 살아남아 육지땅을  밟았어도 착취와 수탈보다 더 무서운 편견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창가에 내리면 6·25전쟁 때 이곳을 지키다 순직한 사람들의 영혼을 기리는 순록탑이 보이고 ‘국립소록도병원’이라고 쓰인 푯말을 만난다. 소록도는 2개의 번지수만 존재한다. 1번지는 소록도 병원직원이 살고, 2번지는 환자들이 산다. 1번지 지역만 일반인들의 출입이 가능하고 2번지는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하늘에서 보면 소록도는 어린 사슴이 하늘을 향해 뛰어 오를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小鹿島’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아기사슴섬’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섬은 아늑하고 예쁘다. 이곳이 일제 때 무시무시한 인권 유린이 자행되었던 곳이라고는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소록도 병원 앞 해송. 2005년 5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소록도 병원 앞 해송. 2005년 5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병원 앞에는 솔숲과 벤치가 놓여 있다. 환자들이 가족을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 앞엔 푸른 바다가 한없이 펼쳐져 있다. 지상의 낙원같은 싱그런 기분은 검시실과 감금실에 들어서면서 분노로 돌변한다. 감금실은 붉은 벽돌건물과 육중한 담으로 싸여 있으며 ‘H’ 자 형태로 교도소 모양을 하고 있다.

1935년부터 10년 동안 병원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구금과 체형을 가했던 형집행장소다. 특히 부당한 처우나 박해에 항거했던 많은 환자들이 억울하게 죽어가야만 했던 곳이다. 불과 몇 십 년 전의 일이었건만 그들은 반성은 커녕 독도마저 자기 땅이라고 우기니 그 고통을 고스란히 감내했던 한센병 환자들은 오늘날 분노에 치를 떤다.

중앙공원
한센병자료관도 마음 속으로 느껴볼 것이 많다. 소록도 병원의 역사와 환자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중앙공원의 정원수는 예쁘고 화려하다. 전문 정원사를 고용한 것이 아니라 소록도사람들이 직접 꾸민 것이다.

뭉그러진 손으로 가위질하며 이 땅에 천국을 만든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손가락은 없지만 그들의 손은 가위손이었다. 어쩌면 뭉그러진 자신의 손을 예쁘게 그리려고 했는지 모른다.

6천평의 중앙공원은 일본과 타이완에서 가져온 남방의 나무들이 가득 심어져 있다. 사시사철 꽃이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글씨가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구라탑. 정말 낫는 것이 확실하다.

치료제 ‘리파피신’을 한 번만 복용해도 나균 99.99%가 전염력을 상실한다. 몸은 완치되었건만 그들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바로 한센병에 대한 사회의 편견 때문이다. 중앙공원을 지키고 있는 한센병 환자를 만나 어려운 질문을 했다.

“일본이 그토록 만행을 저질렀지만 그래도 이런 공원을 조성한 것은 잘 한 것 아닙니까?”, “일본이 저지른 가장 나쁜 것이 나병에 대한 가혹한 편견을 조장했다는 겁니다.”

자신 뿐 아니라 죽어서도 자손 대대로 멸시와 편견에 시달려야만 하는 것이 이들에겐 가장 큰 고통이었다. 부모가 죽었어도 찾아가지 못하는 불효자가 되었고, 자신이 죽어도 알릴 수 없는 서러움이 이들을 괴롭힌다.  

환자들의 대다수는 각자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신앙이 없었다면 오늘날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교회도 여러 개 있고, 절과 성당도 소록도 사람들의 희망이다.

매도 죽고 놓아도 죽는 바위.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가 새겨져 있다. 2005년 5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매도 죽고 놓아도 죽는 바위.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가 새겨져 있다. 2005년 5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바로 앞 녹동항에 가서 식사를 하려고 해도 식당주인이 밥 떨어졌다고 하고 버스까지 타지 못하게 했는데 89년에 교황께서 저희들을 어루만져주어 그나마 편견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후 녹동항에 가서 식당에 들어갈 수도 있었고, 혼자서 식사를 하니까 옆테이블에 계신 분이 다가와 함께 소주잔도 나누었지요. 세상에 태어나 가장 기뻤던 때랍니다.”

작은 관심. 그들이 가장 목말라 했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정에 굶주린 사람. 바로 소록도 사람들이다. 중앙공원 한 가운데 이불만한 바위가 하나 누워 있다. 이른바 ‘매도 죽고 놓아도 죽는 바위’다.

완도에서 이 바위를 떠메고 올 때 한센병 환자들은 무게에 못이겨 허리가 부러져 죽었고 목도를 놓았다가는 채찍에 맞아 죽었다고 하여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 바위 위에 한센병 환자인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가 새겨져 있다.  

'한셈병은 낫는다'라는 글이 새겨진 구라탑. 2005년 5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한셈병은 낫는다'라는 글이 새겨진 구라탑. 2005년 5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백의의 천사
백의의 천사들이 있기에 소록도가 더욱 아름답다. 나병환자들의 손발이 되어 밥도 먹여 주고 똥오줌까지 가려준다. 환자들은 평균 70세가 넘는 노인 분들이 대다수니 더욱 힘이 들 것이다. 이 분들야말로 천사나 다름없다. 하얀 가운이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가끔 간호사와 환자와 사랑이 싹 터서 결혼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간호사는 매일 울면서 기도했다. ‘제발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그들은 하나가 되었다. “사랑은 참 묘한 것이야”.

녹동항에서 소록도는 배로 5분 거리다. 2005년 5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녹동항에서 소록도는 배로 5분 거리다. 2005년 5월. 사진 / 이종원 객원기자

소록해수욕장
한센병 환자들의 쓰라린 과거 때문일까? 그 아련함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그렇다면 송림이 우거진 소록도 해수욕장을 거닐어 보라. 자연이 바로 환자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여느 해수욕장보다 조용하고 깨끗하다.

소록도는 ‘돈섬’이라고 부를 정도로 해산물이 풍부하다. 해변에 미역이 떠밀려 올 정도다. 조용히 거닐면서 울적한 마음을 추스려본다. 세상의 온갖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고 살아온 소록도 사람들에게서도 그윽한 봄향기가 느껴졌다. 기나긴 겨울을 거치고 나서야 봄이 성큼 찾아온다. 소록도 사람들은 다시는 끔찍한 겨울을 맞고 싶지 않다.

Tip. 가는 길
서울 -> 호남고속도로 -> 순천IC -> 벌교 -> 고흥 -> 15번국도 -> 녹동항.
녹동항에서 소록도까지 수시로 배가 있다. (소요시간 5분) 선착장에서 중앙공원까지 도보로 15분 정도 소요된다.
섬에서는 취사나 야영도 금지되어 있으며 소록도에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머물 수 있다.

화이트하우스
푹신한 소파에 앉아 녹색의 송림과 옥색 바다를 감상 할 수 있으며 아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카페, 한정식당, 매점을 겸하고 있다. ㄹ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