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경기] 아, 어지럽다. 몸 속으로 긴 스트로우가 꽂히더니, 기운을 쭉 빨아먹는다. 한 방울도 남지 않았다. 목구멍이 타들어 가고, 몸은 더 이상 스스로 지탱하지 못한다. 컴컴한 터널 속으로 빠지나 보다. 다리가 녹는다. 죽음의 문턱에서 지금 몸부림친다.
한 벌레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고 있다. 아니, 주위를 둘러보니, 무수한 곤충들의 시체가 너부러져 있다. 여기는 1백 60여종의 식충식물들이 살고 있는 벌레잡이 식물원이다. 공짜다. 식물원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찾아오는 것만도 고마운데, 입장료라니요.” 이슬님이라고 불리우는 식물원 원장의 시원한 대답이다. 본명은 이화진씨. 벌레잡이 식물들의 어머니로, 매일 난롯불을 갈아주고,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주고 병든 식물을 치료해준다. 손톱에 끼인 흙 때, 진정 식물 어머니가 맞다.
식물원이 처음 강동구 길동에 조성된 것은 5년 전. 지난 4월 1일이 만 다섯 살 되는 날이었다. 인터넷 ‘다음’의 <벌레잡이식물동호회> 회원들의 남다른 식충식물 사랑이 식물원을 일궈낸 것이다.
“이 종은 파리지옥인데요, 화분 3분의 1 정도 되는 물에 담가 키워요. 이슬님, 이거 만원이죠?”
손님이 고른 식충식물의 가격을 확인하는 방구리님은 초등학교 6학년 남자 아이다. 식물원에서는 실명보다, 아이디로 호칭하는 게 더 익숙하다. 식충식물에 관해서 할말이 굉장히 많은 방구리님의 입은 쉴 틈이 없다.
비질비질 땀이 흐른다. 식충식물의 대부분은 물에 담가 키우기 때문에, 실내는 습도가 높다. 게다가 비닐하우스 양 끝에 연탄난로를 때고 있으니, 찜통이다. 식충식물은 최소한 습도 70%이상, 온도 20도 이상의 조건에서 잘 자란다. 비닐하우스 밖으로 유난히 햇살까지 내리쬐어 체감 온도가 40도를 육박한다. 이곳엔 반팔 차림이 한창이다.
식물원에서는 관람도 하고, 맘에 드는 식물은 사갈 수 있다. ‘파리지옥’은 손님들이 많이 사가는 식물로, 성장기와 휴면기가 있다. 성장기에는 포충 활동이 활발한데, 두 잎 사이에 감각모가 있어서, 벌레가 이 곳을 스치면 바로 잎이 닫혀버린다. 발 잘못 디뎠다가 순식간 봉변을 당하는 인생.
주렁주렁 10cm를 훌쩍 넘는 포충낭이 달린 ‘네펜데스’가 보인다. ‘네펜데스’에도 암프랄리아, 알라타 등 여러 종이 있다. 포충낭의 크기는 저마다 다르지만 그 속에는 손가락 한 마디에서 두 마디 높이까지 물이 흥건하다. 벌레나 곤충만 맡을 수 있는 향을 내는 액체로, 벌레가 이 속에 빠지면 액체는 산성이 되어 벌레를 녹인다.
궁금증이 발동한다. 만약에 어린 애가 그 물 마시면 어떻게 될까. ‘식물의 황제’라 불리는 씩씩하고 건강한 5학년 된 회원이 한마디 툭 던진다. “난감하죠.” 하더니, 얼른 수습하기를, “말레이시아인가요? 거기서는 소화제로 벌레 담긴 물 마시기도 한데요. 그러니 탈이야 나겠어요? 하하.”
식물원에는 토종 한국산인 ‘끈끈이주걱’, 길어서 붙여진 ‘긴 잎 끈끈이주걱’, 이 밖에도 ‘사라세니아’, ‘벌레잡이 제비꽃’ 등 다양한 식충식물이 있다. 외국으로 수출되기도 한다. 문득 스치는 생각 하나. 벌레잡이 식물들로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을 것 같다.
누군가 하는 말, “반반이죠. 축축한 환경 때문에 벌레가 생길 가능성도 있지요.” 끈끈이에 붙어 죽고 액 속에 빠져서 사라지는 벌레만 생각하자. 그리고 벌레잡이식물이 있는 한, 우리 집 날파리, 개미…. 벌레 끝!
Info 한국벌레잡이식물원
관람 정보 일요일 정오 ~ 오후 7시까지 개방.
위치 경기 하남시 서하남로542번길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