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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지구촌기행] 필리핀 원주민 아이따족, 산 속에서 별을 품고 사는 사람들
[지구촌기행] 필리핀 원주민 아이따족, 산 속에서 별을 품고 사는 사람들
  • 김상미 객원기자
  • 승인 2005.05.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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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필리핀 원주민인 아이따족은 자연과 문명의 중간쯤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2005년 5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필리핀 원주민인 아이따족은 자연과 문명의 중간쯤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2005년 5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여행스케치=필리핀] 필리핀에는 아이따족이라 불리는 원주민이 살고 있다. 원시림에 둘러싸인 숲 속에 살고 있는데 영화 속의 부시맨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영혼이 순수하고 맑은 사람들. 문명의 이기에 노출되지 않은 탓일까? 눈망울이 맑은 아이따족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왔다.

TV 다큐멘터리 제작팀이라도 된 것 같은 설렘으로 퀘손 시를 벗어났다. 러시아워가 지난 시간이라 그런지 커먼웰 거리에도 복잡함이 생략되어 있었다. 필리핀에서 교통은 순간의 선택이 중요하다. 통행량에 따라 보충할 수 있는 이면 도로가 없어서 시간을 잘못 선택하면 도로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정말 탁월한 선택을 한 것 같다.

필리핀의 교통수단, 지프니. 2005년 5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필리핀의 교통수단, 지프니. 2005년 5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순조로운 하루의 출발은 많은 여유를 가져다준다. 고속도로를 달려 1시간 쯤 지났을까 창밖으로 이어지는 풍경은 자연의 미를 가득 담은 평화로운 그림이었다. 내 속에 있는 세월의 곁가지를 뚝뚝 분질러 내동댕이치며 오랜만에 가져보는 소풍을 즐겼다. 소들이 강가에서 풀을 뜯고, 농부의 손길은 푸른 섬을 만들고 있었다.

일 년에 다모작을 할 수 있는 나라라서 모내기 하는 계절이 따로 있지 않은  듯 했다. 논에는 벼가 익어 황금물결을 이루는가하면 부지런한 농부는 이미 추수를 끝내고 모내기를 하느라 하루를 가득 담아내고 있었다. 넓은 들판과 온대성 기후의 풍부한 자연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나라에서 먹을 것을 구하는 거리 천사의 삶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자동차가 발랑가 시내로 들어서자 허기가 느껴졌다. 한국 길손들을 위해 문을 열어두고 있는 한국식당으로 들어설 때 한국 음식 냄새가 입맛을 돋운다. 역시 된장찌개, 김치찌개는 지구촌 어디에서 먹어도 혀끝에 감긴다. 포만감에 나른함이 밀려왔지만 짧은 해를 알맞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빨리 빨리’란 한국형 시계가 필요했다.

계획대로라면 사가지고 간 부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아이따들과 함께 점심을 나누어야 하는데 시간이 풀려 버렸다. 시장에 들러 쌀국수와 소스를 준비해 지프니에 실었다. 산족마을로 향하는 차는 좀 색다르다. 지프니라고 하는데 바퀴가 3개 달려있고 의자는 협궤열차처럼 마주 보고 앉는다.

한글이 세계의 친구들을 만났다. 2005년 5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한글이 세계의 친구들을 만났다. 2005년 5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지프니가 달리기 전에는 모든 물건은 몸에 붙잡아 매 두어야 한다. 그리고 손잡이를 잡는 것은 기본이다. 차가 자기 리듬에 취하면 로데오 경기의 카우보이처럼 버티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 두건으로 코와 입을 막아야 한다. 사막지대를 통과할 때 흙먼지가 따라오는데 우리나라 70년대 산골마을을 통과하던 버스의 뒷모습이 떠올려졌다.

달리던 차가 사막으로 접어들었다. 춤을 추는 바퀴와 무거운 것은 받아줄 수 없는 모래 길이 타협을 하며 잘 달리는 가 싶더니 바퀴가 헛돌고 지붕에 탔던 조수가 내렸다. 차를 밀어야 하기 때문이다. 모두 내려 차를 미는데 소 배설물이 모래사장에 가득하다. 간간이 자유롭게 물을 마시며 어슬렁거리는 회색빛 소들이 눈에 띄었다.

“배고프면 잡아먹어도 되겠네요.” 라고 가이드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 많은 소들에게도 임자가 있단다. 만약에 훔쳐서 잡아먹어도 진실은 곧 밝혀진단다. 너무나 맑고 투명한 사람들이라 거짓말을 할 줄 모르기 때문이란다. 오선지 위에 그려진 높낮이만큼만 사는 악보처럼 사람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는 맑은 울림이 있는 사람들인가 보다. 어쩌면 필리핀의 투명한 하늘빛이 사람의 마음속에 드리워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막 한가운데 외롭게 서있는 고사목은 우기를 기다리고 있다. 2005년 5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사막 한가운데 외롭게 서있는 고사목은 우기를 기다리고 있다. 2005년 5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사막지대를 빠져나가는데 2시간쯤 걸렸다. 간간이 물줄기가 있어 바퀴가 빠지는 바람에 길이 더뎠다. 건기에는 사막이 되었다가 우기 철이 되면 문명 속에 사는 사람들이 건널 수 없는 강이 된다고 했다. 사막을 건너자 산길로 이어지고 사람 키를 넘는 풀들이 조그만 길을 양보해주었다. 흙먼지가 날리는 것을 보고 아이따족들이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두 나와 있었다.

50명이 넘는 아이따들이 산골짜기에서 내려 온 것이다. 그곳에는 한국에서 파송된 목사님이 교회를 짓고 있어서 문명세계의 사람들과 소통을 시작하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보았던 부시맨들과 다를 것이 없지만 아이따들은 옷을 입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이 보내준 옷을 입은 친구 티셔츠에 ‘세계의 친구들’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함께 사는 지구촌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사람들이 내리자 지프니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앉아보고, 만져보고, 지붕 위로 올라가고, 아이들이 차에서 내려올 줄을 몰랐다. 한 쪽에서는 장작불을 지펴 쌀국수를 삶아 소스와 비벼 음식을 만들었다. 바나나 줄기를 반으로 갈라 음식을 담아주는데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눈망울이 너무 맑았다.

건축 중인 교회에 모인 아이따들. 사진 찍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2005년 5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건축 중인 교회에 모인 아이따들. 사진 찍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2005년 5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그들은 윤리와 도덕을 학교교육으로 배우는 우리보다 질서를 더 잘 지켰다. 음식이 모자라 끝에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배급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다투거나 싸우는 사람들이 없었다. 먼저 받은 사람들이 나눠주는 모습을 보고 무엇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비록 바나나와 나무열매를 따먹고 산짐승들을 잡아먹고 살지만 풍요로움을 누리고 사는 그들. 문명과 함께 풍족한 삶을 사는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그들만의 가치관을 지니고 사는 듯 싶다.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채워지지 않는 욕심과 가장 최선의 것으로도 만족하는 그들 사이에는 분명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었다.

등나무 줄기는 타잔 소년들의 유일한 놀이터다. 2005년 5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등나무 줄기는 타잔 소년들의 유일한 놀이터다. 2005년 5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자연과 동화되어 놀고 있는 아이따 아이들. 2005년 5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자연과 동화되어 놀고 있는 아이따 아이들. 2005년 5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그들의 눈빛은 하나 같이 호수처럼 맑았다. 짐승과 인간의 경계선쯤에서 살고 있는 그들과 문명 속에 내가 나누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그들과 3시간 정도 함께하며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손님들이 온다고 직접 딴 나무 열매를 우리에게 가져왔다.

바나나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열매를 반으로 갈라서 먹었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맛이었다. 아마 돈으로 살 수 없기 때문 아닐까.

하늘이 붉은 노을을 드리울 때 타이어 바퀴를 굴리며 신나게 놀던 아이들이 흩어지려다 말고 우리를 배웅했다. 지프니가 먼저 출발 하도록 길게 늘어서서 손을 흔들었다. 떠나올 때 그들의 눈빛을 보며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선물을 받은 날로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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