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신라천년의 힘] 천년 달빛이 물빛되는 경주 안압지
[신라천년의 힘] 천년 달빛이 물빛되는 경주 안압지
  • 김진용 기자
  • 승인 2005.07.1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흐르고 부딪치며 산산이 부서져 맴돌고 머문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안압지의 아름다운 풍경.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안압지의 아름다운 풍경.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여행스케치=경주] 안압지. 무성한 갈대 사이로 기러기(雁)와 오리(鴨)만 남은 연못. 황량한 이름이다. 조선시대에 붙은 이 쓸쓸한 이름을 걷어낼 때다. 원래 명칭은 ‘월지’(月池)다. 천년만년 영롱한 달빛을 담아 천년의 역사를 버무린 연못이다.

안압지는 통일신라 태자궁의 정원 연못이다. 지금은 터만 남은 태자궁은 통일신라 왕궁인 월성의 동쪽에 세워졌다. 안압지는 한마디로 통일 신라 왕궁의 별궁 정원인 셈이다. 안압지는 삼국을 통일한 직후 당을 몰아내는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문무왕 14년(674년)에 완성됐다.

‘삼국을 통일했고 이제 힘을 모아 이 땅에서 우리 민족의 통일 문화를 꽃피울 때’라는 뜻이 구현된 상징물이다. 물론 강력한 왕권의 상징이기도 했을 것이다. 안압지는 번성하던 통일 신라가 국정을 논한 장소이기도 하다고 추측된다.

누각에서 바라본 연못의 섬. 연못으로 흘러들어온 물은 섬에 부딪혀 양편으로 갈라져 흐른다. 여기서 생기는 물의 회전은 물을 정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한 줄기는 서쪽의 직선 호안을, 다른 줄기는 동쪽의 곡선 호안을 이룬다.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누각에서 바라본 연못의 섬. 연못으로 흘러들어온 물은 섬에 부딪혀 양편으로 갈라져 흐른다. 여기서 생기는 물의 회전은 물을 정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한 줄기는 서쪽의 직선 호안을, 다른 줄기는 동쪽의 곡선 호안을 이룬다.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단순히 태자궁이나 연회장소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려 26동의 건물터가 발견되고 각 건물의 건축 시기와 증축 시기도 세세하게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신라 마지막 임금인 56대 경순왕은 931년 고려 태조 왕건을 안압지로 초대해 잔치를 베풀었다.

이 자리에서 경순왕은 왕건에게 나라를 바치기로 마음먹었고, 왕건은 ‘경주’, 즉 경사스러운 곳이라는 지명을 하사했다. 통일 신라의 마지막이다. 오솔길을 따라 연못을 두른 호안 1,300여m를 느긋하게 거닌다. 어디에 서서 보더라도 안압지는 그 전체 풍경을 내보이지 않는다.

호안석축은 자연석으로 '바른층 쌓기'했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기암괴석도 연못 주변에 그대로 가져왔다. 모두 우리 옛 정원의 독특한 양식이다.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호안석축은 자연석으로 '바른층 쌓기'했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기암괴석도 연못 주변에 그대로 가져왔다. 모두 우리 옛 정원의 독특한 양식이다.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부분부분만 내보이는 천의 얼굴이다. 굳이 어려운 말 쓰자면 열림과 닫힘, 직선과 곡선의 끊임없는 변주라고 할까. 직선으로 뻗은 호안과 구불구불한 호안, 연못에 떠 있는 세 개의 섬, 그리고 수목과 풀꽃이 그 변주를 만들고 있다.

이상하다. 언젠가 어디선가 얼핏 본 듯한 풍경들이 자꾸만 스쳐지나간다. 신라의 이런 양식이 고구려의 저런 양식을 만났고, 백제 어느 때의 또 저런 양식과 한데 섞였기 때문이겠지. 그게 고려와 조선을 거쳐 다듬어지면서 오늘날 내 눈에 자주 띄곤 했겠지.

입수구 시설 가운데 거북 모양의 2단 석조. 낙차를 두고 물이 흘러 정화된다.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입수구 시설 가운데 거북 모양의 2단 석조. 낙차를 두고 물이 흘러 정화된다.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입수구 시설의 마지막 부분 2단 폭포. 판석에 떨어진 물이 사방으로 부서지며 흘러들게 된다.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입수구 시설의 마지막 부분 2단 폭포. 판석에 떨어진 물이 사방으로 부서지며 흘러들게 된다.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그래서 그런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그 풍경이 한결 더 정겹다. 안압지의 진짜 묘미는 경주 북천의 물이 안압지로 들어오는 부분인 입수구에 있는 것 같다. 입수구는 자연석으로 만든 도랑(石溝), 2단으로 된 돌웅덩이(石槽), 작은 연못, 이어지는 좁은 수로, 두 개의 판석 이렇게 5단계로 이뤄져 있다.

석구에서 물은 몇 번을 꺽이며 불순물이 걸러진다. 그 물은 수로를 통과해 두 개의 거북 모양 석조로 흘러든다. 위쪽 석조에 물이 차면 아래쪽 석조로 넘친다. 두 개의 석조에서 맴돌고 부딪치며 다음 단계인 작은 연못으로 흘러든다.

못의 동쪽 호안은 심하게 구불구불하다. 이 곡선이 엿못 속에 떠 있는 세 개의 섬과 어울려 마치 섬이 한 열 개쯤 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서쪽 호안은 반듯하게 솟아 있다. 이 두 호안이 형제같이 잘 어울려 있다.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못의 동쪽 호안은 심하게 구불구불하다. 이 곡선이 엿못 속에 떠 있는 세 개의 섬과 어울려 마치 섬이 한 열 개쯤 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서쪽 호안은 반듯하게 솟아 있다. 이 두 호안이 형제같이 잘 어울려 있다.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그나마도 연못 입구의 작은 바윗돌에 부딪혀 물줄기는 2개로 갈라져 흘러든다. 연못 안에는 작은 돌이 또 하나 놓여 있다. 그 돌을 에둘러 가며 타원형의 연못 안을 천천히 흐른다. 흐름이 느려지면서 맑아진다. 작은 연못 끝에선 갑자기 좁고 구불구불한 수로를 통과한다.

수압이 변하면서 물은 또 걸러진다. 최종 단계는 작은 2단 폭포다. 각 단의 낙수 지점에 판석을 하나씩 놓았다. 판석으로 떨어진 물이 산산이 부서져 큰 연못으로 흘러들게 만든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계곡물이 맑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열렸던 풍경이 섬에 가려져 닫힌 풍경이 된다. 하지만 몇 걸음하면 또다시 열리는데 그렇게 열리는 풍경은 또 다르다. 막혔다 확 열리는 풍경이라 훨씬 시원한 느낌이다.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열렸던 풍경이 섬에 가려져 닫힌 풍경이 된다. 하지만 몇 걸음하면 또다시 열리는데 그렇게 열리는 풍경은 또 다르다. 막혔다 확 열리는 풍경이라 훨씬 시원한 느낌이다.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그저 자연석 몇 개와 수로로 맑은 물을 만들어내는 우리 옛 정원만의 탁월함에 감탄하고 또 감탄한다.

안압지에 있었다는 임해전(臨海殿)이라는 전각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신라인은 안압지를 바다로 여겼다. 처음엔 작은 개울 같은 물줄기가, 흐르고 부딪치며 맴돌고 머물다가 산산이 부서지면서 맑아지고, 그 물이 모여 바다가 됐다.

이 모습이 천년을 이어온 신라인의 온갖 역사와 문화에 다름 아니지 않겠나.

안압지관.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안압지관.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Tip. 주변 볼거리
안압지관

경주 국립박물관 내에 별관 형태로 지어진 박물관. 안압지 한군데에서 나온 유물만을 모은 박물관이다. 현재까지 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 15만여점 가운데 신라시대 유물만 해도 무려 3만3,000여점에 이른다. 이 가운데 700여점이 전시돼 있다.

안압지 관리를 위해 사용됐던 나무배가 원형 그대로 전시돼 있어 흥미를 끈다. 원형이 보존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배라고 보면 된다.

‘목제주령구’라는 14면체 주사위가 재미있다. 궁중에서 놀이를 즐길 때 사용된 벌칙이 각 면에 적혀 있는 유물이다. ‘술 한잔에 시 한 수 읊기’, ‘여러 사람 코 두드리기’, ‘술 다 마시고 크게 웃기’, ‘얼굴 간지려도 꼼짝않기’, ‘덤벼드는 사람 있어도 가만히 있기’, ‘누구에게나 마음대로 노래시키기’, ….

김알지가 탄생했다고 전해지는 숲, 계림 풍경.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김알지가 탄생했다고 전해지는 숲, 계림 풍경.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계림(鷄林)
신라 김씨 왕실의 시조 김알지 탄생 설화로 유명한 숲. 700년 이상된 나무도 있다 보니 시멘트가 나무기둥을 대신하고 겨우 가지만 살아남은 고목도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경주에는 ‘신라 8괴’라는 8가지 괴이한 일이 있다.

‘계림황엽(鷄林黃葉)’이 그중 하나다. 계림에서는 가을이 아닌 여름에도 잎사귀가 누렇게 변한다. 이를 보고 통일신라 말 최치원이 신라의 국운이 이미 쇠퇴하였을 예언했다는 것이다. 계림의 나무나 전설은 천년 신라의 처음과 끝을 품고 있다.

첨성대.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첨성대.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첨성대
첨성대는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붕괴의 위험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누구도 섣불리 해체 복구할 엄두를 못내고 있다. 362개의 돌조각이 그만큼 정교하게 쌓여 있다는 말이다. 647년에 세워진 동양 최고의 천문대라는 게 정설이지만, 천문대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의견 역시 분분하다.

월성.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월성.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월성(月城)
신라 천년의 왕궁으로 추정되는 곳. 신라와 관계된 명칭에는 유난히 월(月)자가 많이 들어간다. 모양이 반달과 닮았다 해 반월성 혹은 신월성으로도 불린다는데, 일반 여행객의 입장으로선 반달 모양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성벽과 건물터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었고, 해자 발굴도 한창이였다. 길이 900m, 너비 260m 규모의 궁궐로 추정되며, 통일 후 태평을 누리던 문무왕 19년에 안압지와 첨성대 일대까지 확장되는 등 가장 대규모였다. 성벽은 석성과 토성이 뒤섞인 형태다.

밀면 식당의 밀면 한 상.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밀면 식당의 밀면 한 상.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맛집
밀면 식당
부산, 양산, 울산, 경주에선 냉면보단 밀면을 먹는다. 이 집은 여름 한철에만 장사를 하는 집인데, 점심 시간엔 줄서서 기다려야 한다. 밀면 대(大)자가 4,000원인데, 함부로 시키면 양이 많아 다 못 먹는다. 안압지에서 10분 거리 황오동 사무소 맞은편에 있다.

얼큰한 매운탕 한 상.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얼큰한 매운탕 한 상.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반월 매운탕
허름한 외관과는 달리 실속있는 매운탕이 시원하다. 돌솥밥이 함께 나온다. 메기탕, 자연산메기탕, 버들치탕, 기름치탕, 쏘가리탕 등 매운탕이란 매운탕은 다 있다. 안압지 맞은 편 국립경주박물관 정문을 지나 작은 다리 하나를 건너자마자 왼쪽에 있다.

매콤달콤한 불낙 전골 한 상.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매콤달콤한 불낙 전골 한 상. 2005년 7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삼정 불낙
불낙 전골 볶음을 공기밥에 비벼 한가득 담겨 나오는 야채에 싸먹는다. 입 안이 화끈거리고 매콤달콤하다. 버섯과 낙지, 새우가 푸짐하게 담겨 나온다. 안압지에서 5분 거리.

황남빵집
경주빵의 원조로 행정자치부가 선정한 경북지역 명품집. 3대 60여년 동안 이어져 온 황남빵 기술을 가까운 일가가 배워 지금의 경주빵이 됐다.

이풍녀 구로쌈밥
한국전통문화보존명인장으로 지정된 이풍녀씨의 쌈밥집이다. 쌈속으로 나오는 밑반찬이 상다리 휘어질 정도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