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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신라 천년의 힘] 골골마다 아로새겨진 소원이여, 살아있는 민중 박물관 경주 남산
[신라 천년의 힘] 골골마다 아로새겨진 소원이여, 살아있는 민중 박물관 경주 남산
  • 박영오 객원기자
  • 승인 2005.07.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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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칠불암 마애불. 일곱 개의 마애불이 있어 칠불암이라 한다. 2005년 7월. 사진 / 박영오 객원기자
칠불암 마애불. 일곱 개의 마애불이 있어 칠불암이라 한다. 2005년 7월. 사진 / 박영오 객원기자

[여행스케치=경주] 불국사와 석굴암이 왕족과 귀족의 사찰이었다면 경주 남산 곳곳의 절터와 불상은 서라벌 백성의 소원을 들어주는 절과 탑이 아니었을까? 백성들이 각자 능력과 신분에 맞게 절을 마련한 듯, 때로는 거대하고 때로는 정교하게 또 때로는 대충 새겨놓은 탑과 불상이 남산 하나 가득하다.

경주 남산을 찾는 사람이 차츰 늘어나고 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신라시대처럼 남산 골짜기를 가득하게 드나들지도 모른다. 흔히들 우리나라를 살아있는 박물관이라고 말한다. 국토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문화 유적을 찾아다니다 보면 그 표현을 실감할 수 있다.

경주 남산은 산 전체가 거대한 노천 박물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골짜기를 오르면 탑과 불상이요, 저 골짜기를 찾으면 바위에 새겨놓은 마애불과 무너진 절터가 넘쳐난다. 답답한 박물관 속 보다는 자연 속에서 보물찾기하듯 발품을 팔아 하나하나 찾아내는 유적과 유물이기에 더욱 애틋한 정이 간다.

경주 남산의 문화유적이 돋보이는 것은 그런 문화유적을 품을 수 있는 암반으로 이루어진 적당한 산세와 아름다운 숲 덕분일지도 모른다. 남산의 소나무 숲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네 사람살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칠불암 가는 길목에서 만난 석탑. 2005년 7월. 사진 / 박영오 객원기자
칠불암 가는 길목에서 만난 석탑. 2005년 7월. 사진 / 박영오 객원기자

왕족과 귀족처럼 고고한 품위를 잃지 않고 있는 소나무가 드문드문 보이는 가운데 삶에 허덕이는 뭇 백성들 모습처럼 이리 굽고 저리 비틀어진 소나무가 함께 어울려 숲을 이루고 있다.

울진 불영계곡 일대와 강원도 지역 소나무를 보면 다들 시원시원하게 쭉쭉 뻗어 집 짓는 재목으로 탐나는데, 남산의 소나무는 시장에서 만나는 우리네 이웃처럼 그저 정겹다.

옛날 서라벌에서도 성골과 진골 그리고 6두품과 백성들이 저렇게 어울려 살았지 않았을까? 그런 소나무 숲에 드문드문 자리잡고 있는 마애불과 탑, 그리고 불상을 찾아다니는 일은 신나고 즐겁다. 어느 문화재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경주 남산의 문화유적은 많은 사전 준비와 조사가 필요하다.

제법 큼직한 산의 골짝 골짝마다 발품을 팔아야 하는 곳이기에 처음 찾아가는 길이거나 가족과 함께 가는 답사라면 더더욱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그런 준비가 없다면 남산 어느 골짜기에서 헤매거나 중요한 문화유적을 놓쳐버려 수박 겉핥기 밖에 되지 않는다.

탑골 마애 조상군 마애불. 2005년 7월. 사진 / 박영오 객원기자
탑골 마애 조상군 마애불. 2005년 7월. 사진 / 박영오 객원기자

경주 남산은 남북으로 길게 누워있는데, 문화유적 대부분이 동쪽 사면과 서쪽 사면에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다. 경주 남산에서 가장 많이 알려졌고 즐겨 찾는 곳이 서쪽 사면의 삼릉과 용장사지가 있는 곳이다.

삼릉 계곡을 따라 올라가 용장골로 내려오는 코스로 3시간 정도 등산을 겸해야 하는 곳이기에 시간 여유와 등산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경부고속국도 경주 IC에서 빠져나와 이내 우회전해 35번국도를 따라 울산 방향으로 가다보면 삼릉과 용장골 안내표지판이 보인다. 남산에서 즐겨 찾는 또 한곳이 동쪽 사면으로, 이곳은 경주 국립박물관 주차장 뒷길에서 출발하거나, 박물관 앞 7번국도를 따라 불국사 방향으로 가다가 화랑교육원과 통일전 안내표지판을 따라 진입해야 한다.

감실여래좌상. 소박한 모습이 오히려 정겹고 친근해 보인다. 2005년 7월. 사진 / 박영오 객원기자
감실여래좌상. 소박한 모습이 오히려 정겹고 친근해 보인다. 2005년 7월. 사진 / 박영오 객원기자

동쪽 사면에는 감실여래좌상, 탑골 마애조상군, 마애탑, 보리사 석조여래상 등 소중한 문화유적이 여럿 있다. 그리고 이 길 끝에 칠불암과 신선암 마애보살상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감실여래좌상과 탑골 마애조상군은 남산의 문화유적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문화유적으로, 도로에서 가까워 늘 가족단위의 답사팀으로 붐비는 곳이다.

탑골 마애조상군은 큰 바위 전체를 법당으로 삼아, 바위 모든 면에 탑과 불상, 그리고 공양을 받치는 보살상, 나무 밑에서 참선하는 스님상, 갈퀴를 휘날리는 사자 등을 빼곡하게 돋을새김해 놓았다.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문화재이지만, 특히 바위 북쪽 면에 새겨놓은 9층 마애탑은 불타버린 황룡사 9층 목탑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어 찾아볼 만하다.

비록 바위에 새겼지만, 천년의 세월 동안 비바람에 닳고 닳아 이제는 그 윤곽이 희미해졌다. 하지만 각 층의 추녀 끝에 풍경을 달고 화려한 상륜부까지 그대로 묘사해 놓아 황룡사 9층탑이 분명하리라 여겨진다.

칠불암의 사방불. 바위 4면 모두에 부처님을 조각해 사방불이라 한다. 2005년 7월. 사진 / 박영오 객원기자
칠불암의 사방불. 바위 4면 모두에 부처님을 조각해 사방불이라 한다. 2005년 7월. 사진 / 박영오 객원기자

탑골의 문화재만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칠불암과 신선암 유희보살좌상을 찾아가길 꼭 권한다. 화랑교육원과 통일전 앞으로 난 도로 끝에서 1시간 남짓 오르면 칠불암이고 다시 암벽 등반하듯 300m 정도 오르면 신선암 유희보살좌상이 있다.

경주 남산의 문화재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다. 탑골의 마애조각상이 소박하고 거칠다면 칠불암의 부처님은 정교하고 화려하다. 그리고 절벽 위 바위에 새겨놓은 신선암 보살좌상은 위치 선정이 절묘하다.

그곳을 찾아가는 바위 길도 아름답고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아름다워, 1시간 이상 걸어온 산길이 전혀 아깝지 않다. 오히려 시간을 넉넉하게 내서 다시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신라의 문화재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이렇게 전해질 수 있는 것은 문화의 기록을 단단한 화강암에 새겨놓았다는 것이고, 더욱 다행인 것은 경주가 양질의 화강암 지대라는 것이다.

신선암 유희보살좌상을 찾는 길의 들꽃. 2005년 7월. 사진 / 박영오 객원기자
신선암 유희보살좌상을 찾는 길의 들꽃. 2005년 7월. 사진 / 박영오 객원기자

만약 남산이 퇴적암이나 다른 암석지대였다면 지금 우리가 소중하게 보고 느낄 수 있는 이 문화유적이 이렇게 정교하게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무리 단단한 화강암에 새긴 탑과 불상이라 해도 천년의 세월은 어찌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남산 곳곳에 점점 윤곽이 희미해져 가는 마애 조각상과 깨어지고 흩어져 있는 유적을 바라보다 보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자명해진다. 신라인들이 찬란한 불교문화를 창조해 이 시대 사람들에게 전해주었다면, 아끼고 보존해서 다시 천년이 지난 다음 후손에게 전해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 우리의 몫이 아니겠는가.

Info 가는 길 
남산 삼릉 방향 _ 경부고속국도 경주 IC -> 우회전 35번국도 울산 방향
탑골 칠불암 방향 _ 경부고속국도 경주 IC -> 경주 국립박물관 주차장 뒷길이나, 박물관 앞 7번국도를 따라 불국사 방향 -> 화랑교육원과 통일전 안내표지판을 따라 진입 남산 답사,

Tip. 남산 사전 조사의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여행서적이나 신문잡지에서 모은 관련 자료와 지도를 펼쳐놓고 미리 마음속으로 답사를 해보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쉬운 방법은 역시 인터넷을 검색하는 것인데, ‘경주 남산연구소’가 남산에 관한 많은 자료와 친절한 안내를 해주고 있다. 경주남산 연구소는 매주 일요일과 공휴일마다 코스별로 전문안내인이 동행해 무료 답사 안내를 한다. 인터넷 예약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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