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서울] 제법 오래된 이야기일지 모른다. 유치원 입학도 안 했던 시절, 외가에 갔더니 숙모가 눈이 시리도록 흰 백설기를 시루에서 내온다. 모락모락 나는 연기 속으로 고사리 손 한 줌 떼어 먹던 떡. ‘질시루’에서 그 떡을 다시 만난다.
와인케이크, 녹차케이크, 당근케이크…. 갖다 붙이면 독특한 ‘질시루’만의 떡이 된다. 어쩜 상상력이 그리 풍부한지. 김치말이떡과 떡맛탕도 있다. ‘질시루’는 종로에 있는 떡카페로, 질그릇으로 만든 시루에 떡을 쪘다는 의미다.
예스러움을 풍기는 이 카페의 인테리어는 군더더기 없이 산뜻하다. 통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담벼락과 항아리, 서구식 떡 메뉴들. 전통과 적당히 들여온 서구문물이 교차하는 선로에 서있다.
‘이것도 떡이야…? 샌드위치 같은데. 빵껍질이 아니라 떡껍질이군. 이건? 살짝 익은 김치를 썰어 떡으로 말은 김치말이떡? 꽃사과단자도 있네.’
꽃사과단자는 물엿과 설탕으로 사과를 얇게 썰어 졸여 만든 사과정과 위에, 흰팥소를 넣은 분홍 찹쌀떡을 올린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떡의 하나로 위에는 코코넛 가루를 흩어 뿌려 놓으면 완성된다.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에 침이 닿으면 얼음 녹 듯 조용히 사라진다.
매일 새벽 6시에 출근해서 당일 소비할 만큼의 떡을 찌고, 무조건 그날 다 팔거나, 이웃에게 나눠준다. 신선하기 그지없다. 외국인들은 물론, 한국인들도 떡으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에 입이 쩍 벌어진다.
우리는 예부터 떡을 참 좋아했다. 코흘리개 녀석들이 집에 돌아오면 찾던 것이 시커먼 개떡, 술맛이 궁금한 초등학생들이 몰래먹던 술떡, 잔칫집에서 빠지지 않던 무지개떡. ‘질시루’에 진열된 각종 떡케이크는 무지개떡처럼 시루에 넣고 40분가량 쪄낸다.
녹차케이크는 녹차가루를 쌀 빻을 때 섞고 같이 쪄낸다. 그 위에 다시 녹차가루로 옷을 입히고 떡조각으로 모양을 낸다. 색이 아주 고운 당근케이크도 있는데, 시력보호, 신진대사 활성화와 항암작용을 하는 당근을 이용해 만든다.
떡을 먹다보면 목이 마르기 마련이라, 떡도시락정식을 시키면 동치미 국물을 한 사발 내어 준다. 시원한 국물과 떡은 찰떡궁합이라 하겠다. 구석 한 켠에 앉아서 인생을 음미하고자 하는 손님에게는 시루꽃차를 추천한다.
녹차꽃을 따다 꿀에 재운 후, 녹차잎을 넣어 찻물을 우려내는데, 향기가 일반 녹차와 다르고, 달코름한 끝맛이 여운을 남긴다. 이밖에도 차와 음료 종류가 많으며, 얼린 홍시쉐이크도 인기있는 음료중 하나다. 다시 찾고 싶다.
‘질시루’만이 지닌 떡향기와 차향기. 그리고 어릴 적 숙모가 만들어준 시루떡 향기. 어릴 적 맛을 찾고 싶어지면 나이가 들은 거라는 신경숙 작가의 말이 가슴에 사무쳐온다. 글·사진 노서영 기자 이렇게 가세요 서울 지하철 3호선 종로3가역 7번 출구에서 100m 직진하면 비원 슈퍼가 나오고 그 맞은편 도로에 있다.
Info 질시루
위치 _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 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