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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계곡 트레킹] 맑고 한적한 가평 조무락골, 새들의 지저귐을 따라 찾아들어간 원시 숲
[계곡 트레킹] 맑고 한적한 가평 조무락골, 새들의 지저귐을 따라 찾아들어간 원시 숲
  • 김선호 객원기자
  • 승인 2005.09.26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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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가평 조무락골의 시원한 계곡 풍경. 2005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가평 조무락골의 시원한 계곡 풍경. 2005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여행스케치=가평] 숲…. 녹음이 우거진 숲은 생각만으로도 시원하다. 그 아래 콸콸 흐르는 계곡이 있으면 더욱 좋겠다. 그런 곳,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오지라 불렸던 곳 ‘조무락골’을 찾았다. 숲이 깊고 울창해서 사철 산새들이 조무락거리며 논다는 뜻을 가진 곳이다.

도시의 경계선을 넘어 가평땅에 닿자 병풍을 두른 듯한 산들이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파도치듯 연이어 펼쳐진 푸른 산들을 보자 벌써 더위가 저만치 사라지는 느낌이다. 자동차 에어컨도 끄고 창문을 활짝 열고 길을 달린다.

열어둔 차창을 통해서 와락 안겨오는 산바람에 온 몸을 맡긴다. 여행의 묘미는 그런 사소한 것에서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었다. 저기가 강인가 싶을 만큼 넓고 긴 가평천이 한참 동안 길 오른쪽에 따라 붙는다. 가평천을 따라 그렇게 위쪽으로 향하다 보면 조무락골에 닿는다.

폭포 아래 물장구를 치는 아이들. 2005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폭포 아래 물장구를 치는 아이들. 2005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조무락골은 가평천의 시원(始原)인 셈이다. ‘조무락’은 새들이 재잘거리다의 사투리란다. ‘조무락골’은 새들이 재잘거리는 골짜기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그런 해석이 붙으니 생소했던 ‘조무락골’이 재밌고 정겨운 장소로 다가온다.

가평천이 끝나는 길에선 간간히 끊어질듯 이어진 계곡들이 다시 물길을 이어준다. 그곳에서부터 점점 가늘어 지고 계곡은 가팔라지며 물길이 빨라지는 것 같다. 드문드문 민가가 보인다. 민가 주변에 주홍빛 능소화가 저 홀로 곱게 피었다.

간간히 펼쳐진 평야지대엔 푸르게 벼가 익어가고 있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농가의 담벼락에 호박꽃도 보이고 화단 가득 원추리와 나리꽃이 소담스럽게 피어 있고는 했다. 그런 낯익은 농가의 풍경들이 마치 고향을 만난 듯 한없이 정겹다.

석룡산 자락, 조무락골의 울창한 숲. 2005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석룡산 자락, 조무락골의 울창한 숲. 2005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산밭의 사과나무는 어느새 아기 주먹만한 열매를 매달고 있다. 태양의 세례를 받고 열매를 익혀 가는 것들과 태양을 닮은 꽃들을 피워내는 생명들 앞에서 잠깐 숙연해 지는 길이었다.

덥다고 짜증내고 거르지 못한 말들은 내뱉곤 하던 내 자신이 부끄럽게 들여다 봐지던 길이었다. 조무락골의 여름은 바빠 보였다. 조무락골이 안겨 있는 석룡산(1,147m)을 등반하려는 등산객들이 길게 줄을 이루어 앞서 간다.

물가에 놀러온 가족 단위의 피서객들도 한 무리다. 언제부턴가 그렇게 찾아온 인파들을 소화해 내느라 계곡 주변엔 평상들이 즐비하고 꼭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 조무락골 입구서부터 200여m 구간은 시멘트 포장길로 단장이 되어 있다.

숲으로 가는 길은 적어도 흙길이었으면 싶다. 맨날 걷는 시멘트길, 아스팔트길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턱 막힌다. 숲에선 더욱 그렇다. 조무락골로 들어가기 위해 작은 다리를 건넌다. 이름하여 ‘38교’다.

입구 쪽에서 본 조무락골. 2005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입구 쪽에서 본 조무락골. 2005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작고 짧은 다리 이름치고 그 이름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진다. 실제 그곳이 38선과는 무관하지만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38선이 존재한다. 38교 아래로는 조무락골의 계곡 물이 가평천을 향하여 시원스럽게 흘러내린다.

석룡산 자락에 위치한 조무락골은 그 입구서부터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계곡물은 어찌나 맑은지 하얗다 못해 푸른빛으로 보인다. 전날 밤 내린 비 때문인지, 아니면 높은 기온과 찬 계곡물의 기온 차이에서 인지 골골 마다 물안개가 서려 있다.

조무락골을 따라 복호동폭포까지 오르는 길이 오늘의 트레킹 코스다. 갖가지 활엽수와 소나무 숲이 산중에 가득하고 한쪽엔 시원하게 흐르는 폭포수가 따라 붙는 아름다운 숲길이다. 물안개 서린 푸른 계곡물은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기 그지없다.

단풍나무와 계곡. 2005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단풍나무와 계곡. 2005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계곡 주변에 유난히 단풍나무들이 많다. 단풍나무도 더웠을까, 계곡을 향하여 가지를 드리웠다. 단풍나무와 계곡은 참 잘 어울려 보였다. 산 입구에서 1km 남짓 걸어가자 갈림길이 나온다. 석룡산 등반 코스가 두 곳으로 나뉘고 오른쪽으로 복호동폭포 가는 길이 보인다.

그곳은 잠시 물길과 떨어져 가게 된다. 한참 아래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곳이며 길이 넓어서 햇살이 환히 드러나는 곳이기도 했다. 물소리 대신 매미소리가 우렁찬 길이다.

계곡과 산길 사이에 제법 너른 밭이 보이고 그 아래 조무락골 마지막 농가 한 채가 한가롭게 앉아 있다. 지금이야, 농가 건너 민박집도 생기고 그랬지만 얼마 전까진 그 집은 산중에 있는 외딴 오두막집이었단다.

산골 외딴집은 산들이 잠시 길을 비켜서 시야를 시원하게 트여 주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 집 마당에 서면 조무락골을 흘러드는 계곡물을 바라볼 수가 있을 듯싶었다. 집 건너편 산자락에 울창한 잣나무 숲이 가지런히 서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등산객이 간간히 지나칠 뿐 산길은 적요가 느껴질 만큼 고요하다. 오로지 제철을 만난 매미만 정적을 깰 뿐…. 쏴아, 폭포수 쏟아지듯 매미들이 경쟁적으로 울어 대고 매미소리에 묻혀 산새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새들이 조무락댄다는 곳에 산새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조금 서운하다. 나비들이 팔랑대며 길을 안내하고 가끔씩 산길에서 빨갛게 익어있는 산딸기를 따먹으며 가는 길. 다시 물소리가 가까워진다.

복호동폭포 진입로에서 만난 옥수수밭. 2005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복호동폭포 진입로에서 만난 옥수수밭. 2005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조무락골을 거쳐 석룡산을 오르는 등반객들. 2005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조무락골을 거쳐 석룡산을 오르는 등반객들. 2005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석룡산 가는 길이 다시 한번 갈라지는 지점에서부터 복호동계곡으로 향한 길은 이제 가느다란 소롯길이다. 길 양편에 개망초꽃이 무더기로 피어나 하얀 꽃밭을 이루었다. 누가 심어 놓았을까, 산밭 가득 진초록 잎새가 싱싱한 옥수수가 잘 자라고 있다.

한 사람 정도가 지나다닐 수 있을 좁은 산길, 개망초 꽃밭 속으로 들어선다. 복호동계곡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숲은 한결 울창하고 계곡은 깊고 청정했다.

하얗게 부서지고 굽이쳐 흐르다가 푸른 소(沼)를 이루는 계곡 가에서 그곳은 자신의 구역이라는 듯 짙은 청색의 산제비나비 한마리가 고요히 날개짓하는 양을 만나기도 했다. 조금씩 깊이 들어갈수록 숲은 서늘하고 신비로운 기운을 내뿜는다.

아름드리나무들이 조화롭게 섞여 있고 그 사이로 관목들이 무성했으며 군데군데 들어앉은 바위 위엔 어김없이 이끼가 파랗게 돋아나 있었다. 숲이 울창한 대신 야생화는 자주 만날 수 없었는데 그런 탓인지, 까치수영 한 송이도 산수국 한 송이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호랑이가 웅크린 형사이라는 복호동 폭포의 물줄기. 2005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호랑이가 웅크린 형사이라는 복호동 폭포의 물줄기. 2005년 9월. 사진 / 김선호 객원기자

줄곧 산길을 걷다 어느 순간 계곡물을 건너기를 몇 번 반복한 끝에 드디어 시원한 물줄기를 쏟아내는 복호동폭포를 만났다. 아이들과 더불어 천천히 숲을 감상하며 산길을 걸은 지 세 시간 만이었다. 호랑이가 웅크린 형상이라는 복호동 폭포의 거센 물줄기는 포효하는 호랑이처럼 힘차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양말을 벗고 폭포수에 발을 담근다. 발이 시릴 정도로 물이 차갑다. 발을 담그는 것만으로도 온 몸에 차가운 기운이 돌고 더위는 저만치 물러가는 느낌이다. 원시의 숲, 복호동폭포 가는 길의 숲이 주는 인상이 그랬다.

두 시간 남짓의 짧지 않은 시간동안 잘 참고 따라 와준 아이들을 복호동폭포 아래 계곡물에 풀어 주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물속으로 행복하게 뛰어 드는 아이들의 모습이 생기로웠다. 차마 물속에는 뛰어 들지 못하고 물가에서 발을 담가 보았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물이 차갑다. 물가에 발을 담그고 들여다 본 물속은 티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하다. 하도 깨끗하고 맑아 계곡아래 깔린 자갈돌 위에 물그림자에 비친 물무늬가 그대로 보일 정도다.

흐르는 물에 씻기고 세월에 씻긴 동글동글한 돌들이 아이들의 함성에 비로소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 환한 빛을 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제서야 물소리에 섞여 산새소리가 들려온다. 조무락골, 시원의 숲에서 고요히 여름이 흐르는 소리를 들었다.

Info 가는 길
46번경춘국도 -> 가평읍 -> 75번국도 북면 방향(20분) -> 362번국도와 만나는 삼거리 -> 조무락골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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