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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1박2일 주말가족여행] 강원 홍천, 사립문 열어두고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같은 고을
[1박2일 주말가족여행] 강원 홍천, 사립문 열어두고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같은 고을
  • 김상미 객원기자
  • 승인 2005.10.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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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가을 옷을 입은 홍천. 2005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가을 옷을 입은 홍천. 2005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여행스케치=강원] 팔봉산 가리산 등 명산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홍천강. 산 좋고 물 좋은 땅에 후덕한 인심이 난다. 서울서 속초를 잇는 44번국도와 춘천에서 대구까지 잇는 중앙고속국도가 만나는 사통팔달의 요지. 홍천 구경 한번 떠나보자.

홍천의 8경을 아시나요?

1경: 3면을 홍천강이 안고 흘러 수반위에 올려진 수석과 같은 팔봉산.
2경: 작은 언덕과 계곡 사이를 걸으며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가리산.
3경: 원시림의 용천수 홍천강의 발원지 미약골.
4경: 홍천강변 최고의 절경을 조망할 수 있는 금학산.
5경: 자연속에 때묻지 않은 비경 가령폭포.
6경: 월인석보와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수타사.
7경: 기암괴석이 조화롭게 펼쳐져 있는 용소계곡.
8경: 원시림에 둘러싸인 별천지 살둔계곡.

홍천 사람들은 머무르지 않고 영동지방으로 흘러가는 사람들을 위해 숨통이 확 트이는 44번 국도를 열어 두었다. 주말이면 동해 바다로 향하는 꼬리를 문 자동차 행렬. 때로 속도의 욕망으로 가득 찬 자동차 신음소리까지도 삶의 배후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메아리 같은 울림으로 사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누구의 노래라도 놓치지 않고 따라 부르는 넉넉한 마음이 나그네의 발걸음을 잡아당긴다. 어쩌면 홍천의 청정인심이 메아리처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만들지 모를 일이다.

홍천에서는 매년 찰옥수수 축제가 열린다. 2005년 10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홍천에서는 매년 찰옥수수 축제가 열린다. 2005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옛날 옥수수 알은 이런 방식으로 추려냈다. 2005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옛날 옥수수 알은 이런 방식으로 추려냈다. 2005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널따란 홍천강 인심을 읽으려면 먼저 가마솥에서 방금 쪄낸 홍천 찰옥수수 맛을 보아야 한다. 올해로 9회째 열린 찰옥수수축제 마당에서 쫀득하고 구수한 흑점 찰옥수수 맛을 나눠주었다. 옥수수라고 다 같은 맛을 지니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넓은 홍천강의 물맛이 옥수수맛을 좌우하는 것 아닌가 싶다. 웰빙시대와 맞물려 다이어트 음식으로 인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는 홍천찰옥수수를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은 행운이다. 옥수수는 농약을 치지 않아 친환경 식품이다.

단백질과 섬유질이 많아서 포만감을 주기 때문에 다이어트에도 좋은 식품이라고 자랑한다. 신선한 옥수수를 9월 중순까지 수확할 수 있다고 하는데 온도를 조절하면 2개월 정도 더 신선한 맛을 연장할 수 있다.

축제마당에서 짚신을 삼는 할아버지들. 2005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축제마당에서 짚신을 삼는 할아버지들. 2005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강따라 산따라 400리길 홍천에는 후덕한 인심도 함께 흐른다. 해마다 군민 잔치마당에서는 가을에 인삼축제와 한서문화제 여름에 찰옥수수축제가 열린다. 한서문화제는 무궁화 하면 생각나는 남궁억 선생의 고귀한 얼을 홍천의 정신으로 계승시키기 위해 제정했다.

어느 곳에 가든지 우리 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고장이다. 막무가내로 정수리에 쏟아 붓는 태양의 정열은 영서지방에 머무르고 있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더해 주었다. 진한 땀이 얼굴에 배고 사막에 위배된 듯한 시간을 지우기 위해 팔봉산자락으로 깃들어 보았다.

홍천군 서면에 위치한 팔봉산은 327m로 완만하지만 팔봉을 등반하려면 약 3시간이 소요된다.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져 홍천8경에 들어갈 정도로 아름다운 산이다. 팔봉산을 휘감아 흐르는 홍천강가에서, 견지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의 하루는 마음의 품을 늘리는 시간처럼 보였다.

홍천강의 한 낮. 2005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홍천강의 한 낮. 2005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홍천은 하늘의 축복을 많이 받은 땅이다. 자급자족할 수 있는 적당한 농토와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이 조화롭기 때문이다. 하루의 고단함을 내려놓으려고 가리산휴양림으로 들어갔다. 홍천군에서 관리하는 국유림이라서 그런지 산책로가 말끔하게 정리되어 사람이 머무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숲은 쉽게 내 마음속에 安자를 꽂아 두고 어둠 속으로 살짝 비켜 앉아 버렸다. 개울물 소리와 함께 걷다가 유년시절로 돌아갔다. 얄팍한 돌멩이를 주워 물수제비를 떠보았지만 물살이 너무 세 수제비는 먹을 수가 없었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개울길이 지워지기 전에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숲에서 어둠은 빚쟁이 같다. 잠깐 저녁밥을 먹었을 뿐인데 보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빼앗아 가버렸다. 마당에 앉아 있는 평상으로 나와 별을 찾아보았지만 흐린 하늘이 별빛을 내어주지 않았다.

일행 중 왕년에 통기타로 주름잡던 사람이 분신처럼 가지고 다니는 기타를 꺼내 ‘긴머리 소녀’부터 그가 지니고 있는 레퍼토리를 연주했다. 우리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화음을 넣었는데 1%가 부족한 것 같았다.

박천근 홍천군 부군수는 산좋고 물맑은 홍천이야 말로 살기좋은 고장이라고 자랑했다. 2005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박천근 홍천군 부군수는 산좋고 물맑은 홍천이야 말로 살기좋은 고장이라고 자랑했다. 2005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눈치 빠른 풀벌레들 합창이 조화롭게 분위기를 이끌었다. 모닥불처럼 타오르던 분위기가 깨지고 침묵을 붙잡고 있을 때 홍천군 부군수님이 찾아왔다. 농장에서 방금 따온 홍천자두라며 건네주었는데 속살이 깊은 게 맛이 그만이다.

홍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여름밤이 깊어갔다. 차가 막힐 때 길가에서 아주머니들이 파는 옥수수가 홍천찰옥수수냐는 질문에 가짜가 더 많다고 했다. 홍천 사람들이 운영하는 직판장에서 진짜를 만날 수 있단다.

홍천의 젖줄 홍천강의 발원지는 홍천군 서석면 미약골인데 가평으로 흘러가다 북한강을 만나 다시 흐른다며 구수하게 홍천의 자랑거리들을 꺼내놓는다. 뭐니 뭐니 해도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먹거리이다.

삼곳(삼을 찌기 위한 시설) 재헌장. 2005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삼곳(삼을 찌기 위한 시설) 재헌장. 2005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홍천의 맛은 메밀막국수, 양지말 홍천화로구이, 늘푸름 한우구이가 유명하다. 숫 송아지를 6개월에서 l년 사이에 거세하고 알코올 사료를 먹여 키운 탓인지 육질이 부드럽다.

1등급 판정을 받아야만 ‘늘푸름 홍천한우’라는 호칭을 받을 수 있는데 군내에 2,600여두 밖에 사육 되지 않아 대덕원과 임꺽정이라는 곳에서만 판매를 한다.

고기는 눈으로, 손으로, 입으로 3번 먹는데 늘푸름은 세 가지 기호를 만족시킬 노하우를 가지고 있어서 머지않아 홍천의 넉넉한 인심을 고기 맛에 담아낼 것 같다고 했다. 자식을 자랑하듯 그의 홍천 사랑은 그가 살아가는 이유처럼 느껴졌다.

강원도의 명물 올챙이 국수. 2005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강원도의 명물 올챙이 국수. 2005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인삼은 금산,강화, 풍기 인삼이 유명하지만 토양이 산성화 되어 5년 지나면 저절로 썩어 버립니다. 홍천 토양에서 생산되는 6년근으로 정관장을 만드는데 10월 중순에 인삼축제를 열어 전국에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홍천의 보물은 물 맑은 홍천들에서 자란 수라쌀이 있고, 가평 잣보다 홍천 잣이 유명합니다. 그리고 홍천군 내면 해발 500m에서 생산되는 고랭지 감자도 쫀득한 맛이 일품입니다. 홍천은 옛날부터 살기가 좋은 고장이라서 우리나라 질곡의 역사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어요.”

휴양림의 아침 자명종은 매미소리다. 어둠이 걷히자 개울물 소리와 호흡을 맞춰 계곡을 깨워놓고 분주한 일상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홍천 안내를 해주기로 한 홍천군청 이인식씨를 기다리다 새마을 운동 노래 같은 홍천군민 노래를 들었다.

“여기는 홍천 강원도 홍천~” 트롯가수의 미끄러지는 노랫가락이 내 몸의 중심을 흔들었다. 누구나 700원을 내고 홍천군민 노래를 컬러링하여 쓰고 있는 홍천사람들. 노래 하나로 애향심까지 챙겨두는 꼼꼼함이 홍천의 자랑거리 아닌가 싶다.

고장사랑으로 가득한 이인식씨가 동서고속도로가 뚫리면 홍천은 속도를 즐기는 사람들이 스쳐가는 곳이 될 것 같다는 걱정을 했다. 우스갯소리로 내려오는 길은 3차선으로 만들고 올라가는 길은 2차선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속내를 열어 놓는다.

“홍천군은 높은 산이 많아 쉴만한 계곡이 많아요.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면 바다로 빠져나가는 사람들은 젊은층이고, 계곡을 찾는 사람들은 산과 같은 나이를 지닌 사람들입니다. 우리고장을 찾아주는 사람들을 위해 먹거리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역시 경제관광과 근무하는 사람답다. 산새들의 허드렛말을 들으러 수타사로 가자는 말을 따라 나섰다. 수타사 봉황문 앞에서 한국의 등소평이라고 불리는 홍천군 문화해설사 박건환씨를 만났다. 아마도 허리평수가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타사 원통보전. 2005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수타사 원통보전. 2005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그의 안내를 받아 수타사를 공부했다. 홍천군 동면 공작산 끝자락에 자리한 수타사는 신라 성덕왕 7년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 되었다.

어느 사찰이나 드나드는 사람들의 잡귀를 막기 위해서 사천왕상이 있는데 거의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수타사의 사천왕상은 조선시대 강희본이 새끼줄에 흙을 발라서 만들어 그 위에 단청을 입혔다고 전해진다.

70년대 초 새마을운동을 할 때 부서진 사천왕상을 복원하려다 뱃속에 들어 있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보물을 수타사에 보관하던 중 박물관이 없어서 6년 동안 월정사로 옮겨졌다가 지난 5월 10일 보장각이 완공되어 봉안식을 마친 후 다시 옮겨왔다.

낙산사가 불에 타고 난 후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수타사를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공작산의 정기가 모두 모여 있다는 대적광전 조선후기의 균형미가 살아있는 八자모양 팔작지붕이 멋스럽다.

수타사의 동쪽을 지키는 지곡천왕상의 배속에서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편한 책 월인석보 17, 18합본이 나왔다. 세조가 조카 단종을 죽이고 반발하는 사육신 등 많은 신하들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지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자 구원을 얻기 위해 지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5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수타사의 동쪽을 지키는 지곡천왕상의 배속에서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편한 책 월인석보 17, 18합본이 나왔다. 세조가 조카 단종을 죽이고 반발하는 사육신 등 많은 신하들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지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자 구원을 얻기 위해 지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5년 10월. 사진 / 김상미 객원기자

그 밖에 보물들은 1364년 만든 동종, 3층석탑 ,후불탱화, 홍우당부도등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어 영서내륙의 오래된 고찰로 이름이 나 있다. 생태, 문화 탐방로와 다양한 등산로도 열려 있다.

홍천구경 한 번 잘했네. 어둠을 데리고 서울로 향하려는데 홍천에는 참숯가마 찜질방이 유명하다며 홍천에서 흘린 땀과 피곤까지 홍천에 두고 가라고 가이드가 말한다.

서울에서 속초 쪽으로 44번 국도를 타고 가다 팔봉산 주유소를 만나 바로 우회전하면 홍천참숯가마찜질방 입간판이 안내를 한다. 단체관광객들과 가족단위 손님들이 많다. 참숯으로 열을 높여 놓은 황토가마의 온도가 따갑지 않아 기분이 좋고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가마를 빠져 나와 뒷마당에서 숯불에 구워먹는 삼결살 맛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마지막까지 친절한 홍천여행은 친정집처럼 그리울 것 같다.

Info 가는 길
44번국도 서울 -> 홍천(94km)/속초 -> 홍천(131km)
중앙고속국도 홍천IC 춘천 -> 홍천(26.2km)/대구 -> 홍천(25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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