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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시리도록 곱디고운 단풍산 사이로 뺌꼼이 숨어있는 정읍 내장사(內藏寺)
시리도록 곱디고운 단풍산 사이로 뺌꼼이 숨어있는 정읍 내장사(內藏寺)
  • 이현동 객원기자
  • 승인 2005.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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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내장산의 가을. 온통 붉은 단풍으로 가득하다. 2005년 10월. 사진제공 / 정읍시청
내장산의 가을. 온통 붉은 단풍으로 가득하다. 2005년 10월. 사진제공 / 정읍시청

[여행스케치=정읍] 오색찬란한 단풍 길은 심금을 울리는 전주곡과 같다. 선율을 따라 내 몸을 던지면 내장사(內藏寺) 일주문에 이른다. 백제 무왕 37년에 영은조사가 창건해서 영은사라 불리던 사찰은 조선시대에 와서 강제로 불타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데….

한여름 푸른 잎들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면 잎들은 곧잘 햇살을 흡수하지만, 가을철 잎들은 제 속살 붉게 태우고 햇살을 토하기만 하는 듯하다. 붉게 타버린 잎들은 단풍으로 눈부시고 토해지는 햇살은 오히려 따뜻하기만 한데.

이 햇살을 등에 지고 가슴에 안으며 눈부신 단풍골로 들어간다. 쾗하 노피곰 도쾓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행상 나간 제 남편 걱정하는 마음을 달님께 띄우던 한 여인의 노랫소리.

그 남편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는지, 천년을 기다리기만 하던 여인이 오늘도 정읍사 공원에 망부상으로 세워져 있다. 그 안타까운 여인의 마음에 정읍이 단풍으로 덮일 만도 하다.

정읍, 순창, 장성에 걸쳐 있는 해발 763m 내장산은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호남의 금강이라 불리며 예부터 조선 8경의 하나로 꼽혔다. 본래 영은산이라 불리다가 내장산으로 고쳐 불렸다. 2005년 10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정읍, 순창, 장성에 걸쳐 있는 해발 763m 내장산은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호남의 금강이라 불리며 예부터 조선 8경의 하나로 꼽혔다. 본래 영은산이라 불리다가 내장산으로 고쳐 불렸다. 2005년 10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정읍 시내의 벚나무 길을 따라 내장산으로 들어서니 호수공원을 사이에 두고 길이 두 갈래로 나눠진다. 왼쪽 구(舊)길로 들어서니 호수에 산 그림자 드리운다. 산은 물을 그리워하던가! 그 그림자 살짝 드리울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이라면, 그 안타까움은 산이 그러한가?

내 심정에 남아있는 그리움 한 덩어리가 그러한가? 백제 여인의 기다림이 그러한가? 한 줄기 바람이 불어 호수에 잔잔한 물살이 인다.

일 년을 다시 기다려 찾아든 내장산, 그 단풍이 만만치 않은데, 길은 이리 돌고 저리 돌고 하지만 오히려 곱디곱게 휘돌고 나무들도 길 마냥 제 몸 곱게 단장한다.

이 고운 단풍골 길 위에서 발길 멈추지 않는다면, 그 미친 짓하러 내장산까지 오지는 않았을 터, 멈추어선 발길에 나무들의 단풍 빛깔을 흠뻑 마신다. 내 마음 고이고이 단풍처럼 물들어라. 내장산 내장사(內藏寺) 일주문.

내장사 대웅전 앞 마당에서 본 정혜루. 2005년 10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내장사 대웅전 앞 마당에서 본 정혜루. 2005년 10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이 일주문에 이르는 단풍길은 훌륭한 전주곡이었다. 통나무를 깎아 껍질만 벗겨내고 세운 일주문의 두 기둥, 별 다른 가공이 닿지 않은 두 기둥은 장사처럼 떡 버티고 서있어 그 힘이 느껴진다.

오로지 한 가지 마음으로 들어서라는 일주문이지만 눈길은 이미 일주문에서 내장사로 이어지는 단풍터널에 가 있다. 한여름에도 빛이 들지 않는 이 길은 단풍의 절정이다. 탄성을 절로 자아내는 그래서 오히려 입을 열지 못하는 아름다움….

고이고이 이 길을 거닐어 산사에 닿는다. 길 중간에 부도전이 있으니 어찌 스님의 무덤 앞에 또한 소란함이 조금이라도 있을 수 있으리오. 고이고이 길을 걷는다. 이제 완전히 마음까지 적셔버린 단풍은 오히려 나를 불태우고 남음이 있다.

내장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만산홍엽 속의 내장사. 2005년 10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내장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만산홍엽 속의 내장사. 2005년 10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탐진치(貪嗔痴),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삼독(三毒)을 모두 태우고 한 육신에 한 마음으로 단풍터널을 지나오니 내장사 천왕문이 나온다.

그 속에 무엇을 간직하고 있길래 내장사라고 했는지, 그 연유 찾기에 바쁠 터지만 이미 불태운 심중에는 호기심 한 조각 없이 다 사라지고 발길만 무심히 옮겨질 뿐이다. 내장사는 백제 무왕 37년(636)에 영은조사가 창건하면서 영은사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 조선시대 1539년에 이르러 왕실에서 강제로 불태운 뒤 폐허로 남아 있던 터에 1557년 희묵대사가 새롭게 가람을 이루니 이때에 내장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여러 문헌에서는 내장사와 영은사가 서로 혼동을 준다.

내장사 전경. 2005년 10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내장사 전경. 2005년 10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내장사이지만 옛날 이름 영은사로 적은 것처럼 또는 영은사와 내장사가 1557년 이후에도 따로 존재한 것처럼. 명확하지 않은 절의 역사는 절의 탓인가? 기록자의 탓인가? 탓할 일이 무엇인가! 나 또한 갔다 오면 그만이지, 좋으면 됐지, 기록은 뭣하러 하는데!

천왕문을 들어서면 연못에 비치는 정혜루가 나온다. 연못 옆에는 해묵은 단풍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내장사 들어서는 그 길은 나무와 나무들이 연이어 단풍을 빚어내는 장관이었다면 이제 이 한 그루 단풍나무는 그 뜻을 홀로 전하는 듯하다.

그 뜻이 물에 비치어 아른거린다. 정혜루 밑을 지나 대웅전 마당에 들어선다. 정면에 대웅전이 있고 양쪽에 극락전과 명부전이 놓여 있다. 대웅전 왼쪽 약간 뒤로 물린 자리에 관음전, 마당 중간에 탑이 서 있다.

다시 극락전 옆 안쪽으로 들어서면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가 있다. 발길을 명부전 앞쪽으로 옮기니 만산홍엽이 가득한 속에 바위로 솟은 서래봉이 나온다.

내장사 대웅전 벽화. 대웅전의 기둥이 하얀 돌기둥으로 그려져 있다. 2005년 10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내장사 대웅전 벽화. 대웅전의 기둥이 하얀 돌기둥으로 그려져 있다. 2005년 10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내장산을 이루는 아홉 봉우리 중 하나. 서래(西來)라면 달마가 서쪽에서 온 이유에서 연유된 이름인가? 내장산 단풍길 그 끝에 다다른 내장사, 이제 은근히 산으로 오를 생각이 든다.

그래도 다시금 내장사에 내 발길 잡아두자 대웅전의 기둥이 눈에 들어선다. 하얀 배흘림 돌기둥. 보기 드문 일이다. 내장사에 물어보고 물어보아도 왜 돌기둥이 섰는지는 쉽게 들을 수 없는데. 그 연유 또한 속으로만 간직하려는 것일까?

나 또한 짐작만 하지 말을 않는다면 답답한 노릇일까! 궁금하다면 내장사를 찾을 일이다. 내장사가 단풍으로만 불탔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1539년에 불타버린 내장사의 안타까움은 단풍 찬탄 속에 못내 아쉬움을 준다.

어디 내장산에 단풍만 있었던가! 단풍 속 곱게 물들었을 내장사는 아직도 그대에게 말하지 못한 채 그 무엇을 간직하고 있지 않은가!

Tip.
① 내장산 단풍 등산길

일주문 -> 벽련암 -> 서래봉 -> 불출봉 -> 원적계곡 -> 내장사 : 3시간 30분 소요
일주문 -> 금선계곡 -> 까치봉 -> 신선봉 -> 금선대 -> 내장사 : 4시간 30분 소요
일주문 -> 벽련암 -> 자연관찰로 -> 원적암 -> 내장사 : 1코스의 반이다

② 사랑의 다리(3코스 자연관찰로 중간에 있는 돌다리)
신랑이 신부를 엎고 다리를 건널 때 딸깍딸깍 소리가 안나면 아들을 낳고, 연인들이 손잡고 걸을 때 소리가 안 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어떡하지! 대부분 소리가 난다.

③ 내장사 일주문 못 미쳐 우측 연못에 우화정이 있고 그 위쪽으로 내장산 케이블카가 있다. 타고 오르면 전망대가 있어 내장사 뿐 아니라 아홉 봉우리를 볼 수 있다.

④ 내장산의 단풍은 단풍나무가 주종 특히 내장산에만 자생하는 내장단풍나무가 있고 그 외에도 신나무, 복자가나무 등도 있다. 자세한 단풍 및 내장산 생태에 관한 이야기는 내장산탐방안내소의 ‘단풍골이야기’ 라는 특별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좋다.

⑤ 식당과 숙박업소는 상가지구에 많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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