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원주] 등 따습고 배부르면 그게 곧 행복 아닌가. 게다가 경치까지 좋으니 눈도 심심치 않고. 여행이라고 꼭 대단한 걸 봐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숯과 찐빵만으로 여행이 될까? 자문(自問)하고 스스로 답해봤다.
원주에는 참숯공장이 여럿 있다. 숯가마 찜질이 인기를 모으면서 점차 일반인에게 공장을 찜질용으로 개방하는 곳이 늘어났다. 시작으로는 강원참숯이 제일 먼저이고 규모로는 원주제일참숯이 큰 편이다.
요즘은 치악산 밑 황골에 있는 치악참숯이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공장을 연지 8년, 찜질객을 받아들인 지는 4년 된 신림참숯은 전통 그대로의 숯가마로 인기가 있는 곳이다. 한달에 한두 번, 심지어 주마다 찾는 단골까지 약 3백 명에 이른다.
가는 길 풍광이 좋다. 치악산을 비스듬히 마주하는 구학산 아랫자락이 신림(神林)면이다.
“신림의 신(神)자가 신성할 신자입니다. 치악산 쪽 뻗은 기운이 탁 풀리듯 평지를 이루는 지세가 예사롭지 않아 예로부터 신성한 숲으로 불렀답니다.”
치악참숯 이래근 사장은 명함을 받아든 기자가 꺼림칙한 ‘귀신 신’자로 읽을까봐 재빨리 지명을 풀이해준다. 충주 원주 등 도시에서 그리 멀지않건만 마치 심심산골에 들어온 듯하다.
원주와 제천의 경계를 짓는 고개 아래 골짜기인데 6·25때도 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은 진짜 ‘동막골’이었다고 한다.
“숯가마 찜질의 효과를 제대로 누리려면 전통방식의 숯가마가 단연 최고입니다. 요즘 숯가마 찜질이 인기라니까 너도나도 만드는데 제대로 된 가마가 아니면 큰일납니다. 일산화탄소 가스에 중독 되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곳곳에 들어서는 찜질방. 그중에는 숯가마를 테마로 한 곳들도 많은데 시멘트로 가마를 만들고 겉에 대충 황토를 바른 다음 숯불을 피워 가마를 데우는, 숯가마 아닌 숯가마가 늘어나고 있어 문제라는 이야기이다.
심지어 나무를 적당히 쌓고 태우는 곳도 있다는데 이럴 경우 완전히 연소가 안된 일산화탄소에 중독될 수 있고 실제로 근래 사망 사고도 있었다. 전통 숯가마는 벽돌과 황토로 만든 가마에 참나무를 빽빽이 쟁이고 입구를 완전히 막은 다음 옆으로 난 불구멍으로 불을 붙이는 방식이다.
이렇게 해야 나무가 9일에서 10일 정도 타들어가면서 가마 안의 온도도 1,400℃에 이른다. 이렇게 뜨겁기 때문에 숯을 꺼내는 데만 16시간에서 20시간 정도 걸리고 일산화탄소도 완전히 연소된다.
즉 산소와 결합하여 이산화탄소가 되어 하늘로 날아간다는 것. 때문에 가마 안에 들어가면 그을음이나 가스 냄새가 없이 쾌적하다. 막가마라는 방식도 있는데 가마 입구 아랫부분만 막은 다음 윗부분에 직접 불을 붙이는 방식이다.
이럴 경우 6일 정도면 숯을 만들 수 있고 꺼내는데도 8시간에서 10시간이면 충분하다. 대신 가마 안의 온도가 전통 가마만 못하고 숯의 품질도 떨어진다고. 그래도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어 숯공장에서 많이 사용하는 방식이다.
어떤 방식이든 가마에 들어갔을 때 가스냄새나 그을음 냄새가 나면 재빨리 나와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돌아오기를. 숯가마 찜질의 짜릿한(?) 이벤트는 맛있는 숯불구이.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냇가에서 질 좋은 참숯으로 불을 피우고 돼지고기 두툼한 목살을 구워 먹을 수 있는데 은은한 숯의 향이 밴 고기 맛이 일품이라 먼 길 오가는 통행료가 전혀 아깝지 않다.
막 쪄낸 찐빵은 숯가마만큼이나 따끈하다. 신림면에서 중앙고속국도를 가로질러 영월 주천 방면으로 가다보면 황둔찐빵마을이 나온다. 찐빵하면 안흥찐빵을 떠올리는 이가 많을 듯.
심순녀씨가 33년 동안 줄기차게 쪄낸 덕분에 유명해진 안흥찐빵. 이제는 마을 전체 17군데의 찐빵집이 들어서면서 마을 이름까지 안흥찐빵마을이 됐다. 매년 10월이면 찐빵축제까지 열린다.
그에 비하여 7군데의 찐빵집이 들어선 황둔찐빵마을은 아직 작아 보인다. 그러나 맛은 외려 더 낫다는 게 중인들의 평. 황둔찐빵의 비밀은 쌀가루를 살짝 섞는데 있다. 밀가루로만 만든 찐빵보다 찰지고 고소하다.
10여년 된 ‘황둔송계원조찐빵’이 제일 먼저 시작한 집. 그런데 귀띔으로 얻은 정보에 의하면 영월 주천과 운학으로 갈리는 삼거리 모퉁이에 있는 ‘황둔쑥찐빵’집이 맛이 있다고 한다. 사실 알고 보면 그 집이 그 집이다.
‘원조’집의 둘째 며느리가 차린 집이니 말이다. 그래도 손맛이 약간씩은 달라 입맛에 따라 사람들마다 찾는 집이 다르다. 황둔찐빵마을에서 찐빵을 한 아름 사서 들고 가야할 곳이 있다.
마을 삼거리에서 운학방면으로 5분만 달리면 주천강의 윗물인 서만이강을 만날 수 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사이로 굽이굽이 흘러가며 절경을 빚어내는 강가에서 따끈한 찐빵을 먹는 재미로 반나절을 즐겁게 보낼 수 있다.
절경인 만큼 예쁜 펜션들도 꽤 있으므로 숙박지로도 추천할 만하다. 운학리에서 포장도로가 끊기고 그 이후로는 임도로 횡성 안흥면으로 이어지는데 아주 험하고 공사중이므로 튼튼한 지프가 아닌 이상 갈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내후년이면 포장도로를 타고 달릴 수 있으므로 그 때를 기약할 것.
Tip. 맛집
신림찐빵만두 _ 신림면 소재지는 정말 아담하다. 마을을 크게 삼등분하는 삼거리 모퉁이에 있는 신림찐빵. 소개를 받아 찾아가기는 했는데 보기에 허름한 분식집 같아 처음엔 실망을 했다. 그런데 맛은 정말 뛰어나 원주 사람이 자신 있게 소개할 만했다. 이상하게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숙박
펜션 예솔누리 _ 서만이강 둔치 솔밭에 있어 강물 흐르는 소리와 솔 사이로 지나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잠들 수 있다. 흔들의자에 앉아 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저절로 평안해진다. 원주 신림역까지 픽업도 나온다.
Info 가는 길
중앙고속국도 신림IC을 나오면 바로 면소재지가 있다. 면소재지에서 5번 국도를 타고 5분 정도 가다 우측으로 난 402번 지방도로 접어들면 구학산이 나온다. 구학산을 넘는 구력재를 경계로 제천과 신림면이 나뉘는데 고갯길 초입에 숯공장이 있다.
서울이나 충청도 쪽이라면 38번 국도를 타고 제천방면으로 가다가 백운면에서 덕동계곡 입구를 거치는 길(402번 지방도)을 이용하면 더 빠르다.
Interview 이래근 사장이 전하는 숯가마 찜질법
숯가마 찜질은 얼마나 어떻게 하는 게 효과적일까? 뜨거운 가마 안에서 온몸에 수건을 두르고 필사적으로 버티는 사람들을 보면서 궁금했다. 이래근 신림참숯 사장은 가마 안에 있는 시간을 합쳐서 30분 정도가 되면 적당하다고 한다.
지치지 않게 들락날락하며 한나절 여유를 가지고 하는 게 좋단다. 뜨거운 가마에서는 1분도 견디기 어려우니 서른 번 정도 드나들어야 할 듯. 숯가마 찜질은 2~3일 연속해서 하면 더욱 효과가 높다.
숯가마는 숯을 꺼낸 지 이틀이 된 아주 뜨거운 가마에서 삼사일 된 저온 가마까지 셋으로 나뉘는데 특별한 병이 없는 한 저온 가마에서 지치지 않게 하는 편이 낫다고.
“숯가마 찜질은 심근경색이나 뇌경색, 뇌졸중 등 순환기 계통의 질환이나 고혈압, 뜨거운 처방이 맞는 관절염 등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죠. 녹내장이나 백내장을 앓고 있는 사람들도 효험을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피가 ‘뻑뻑해서’ 순환이 잘 안되는 데서 오는 병들에 효과가 있죠.”
숯가마 찜질이 누구에게나 좋은 것은 아니다. 저혈압과 임산부, 당뇨 환자와 차가운 습포가 맞는 관절염의 경우는 피하는 게 좋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