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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옛 정원 노닐기] 자연을 거느린 정원, 예천 초간정사
[옛 정원 노닐기] 자연을 거느린 정원, 예천 초간정사
  • 김진용 기자
  • 승인 2005.11.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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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수줍게 가려진 듯하다가도 계류 아래쪽에서 보면 어떤 인공 정원에도 견줄 수 없는 고유의 자연미를 뽐내듯 높은 암반 위에 우뚝하다. 2005년 1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수줍게 가려진 듯하다가도 계류 아래쪽에서 보면 어떤 인공 정원에도 견줄 수 없는 고유의 자연미를 뽐내듯 높은 암반 위에 우뚝하다. 2005년 1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여행스케치=예천] 정원을 찾아왔건만 도대체 어디에 정원이 있단 말인가. 아무렇게나 자란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울창하고 작은 바위 계곡에 정자 하나 서 있을 따름인데 말이다. 어디서 어디까지를 정원이라 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곳에서 우리 옛 정원의 참 멋을 발견한다.

밖에서 안으로 들었다 싶었는데, 들고 보니 물고기 놀고 기암괴석 놓인 계곡이다. 집 안의 누각에 올랐는데, 오르고 보니 송림에 묻힌 누각인 셈이다. 누각을 한두 발짝 거니는 사이 깊고 깊은 자연의 소리를 거느리게 된다.

기와 돌담이 둘러선 사각형의 작은 마당이 있다. 마당 한쪽엔 담을 헐고 누각 하나가 담을 대신하고 있다. 초간정사(草澗精舍)다. 마당에서 방으로 들듯 누마루에 오른다. 시원하게 트인 누마루를 가로질러 난간에 서니 느닷없이 펼쳐지는 무릉도원에 휘감긴다.

마당에서 본 초간정사. 누각이 돌담을 대신하면서 자연을 글어들이는 통로가 된다. 2005년 1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마당에서 본 초간정사. 누각이 돌담을 대신하면서 자연을 글어들이는 통로가 된다. 2005년 1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좁은 암곡(岩谷)이 절경을 이루는 틈 사이로 청량한 시냇물이 흘러들고, 시원한 바람은 우거진 송림과 느티나무, 은행나무 숲 사이로 스며든다. 구불구불 내려온 계류가 크게 휘돌아 소(沼)를 이루는 바위 언덕 위에 초간정사가 서 있다.

계류 쪽으로 난 담장을 허물고 들어선 누각이 자연을 마당 안으로 끌어들인다. 차경(借景)이다. 인문 공간과 자연 공간의 경계가 한순간 허물어지고, 그 뒤섞인 공간이 무한히 확장된다. 바위에 부딪는 물소리, 솔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 이름 모를 새소리를 휘감은 몽롱한 곳이다.

선조들은 깊은 숲 속에 정자나 정사 하나를 세우고 정원이라 했다. 이른바 산수정원 혹은 임천정원(臨川庭園)이다. 정원이라 이름 하지만, 도대체가 나무 한 그루 일부러 세우고 다듬은 게 없고 연못 하나 새로 파지 않았다.

누마루의 난간에 서면 발 아래 계류와 기암괴석이 아찔하다. 초간정사 난간 옆에서 담장이 밖으로 트여 안과 밖의 구분이 사라진다. 2005년 1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누마루의 난간에 서면 발 아래 계류와 기암괴석이 아찔하다. 초간정사 난간 옆에서 담장이 밖으로 트여 안과 밖의 구분이 사라진다. 2005년 1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바윗돌 몇 개를 가져와 시냇물 부딪는 소리를 만들어 낸 것이 전부다. 계류 건너편 바위 언덕. 우거진 송림 아래 벤치에서 건너편 초간정사를 감상할 수 있게 돼 있다. 저 선경 속에 잠깐이나마 머물다 내려왔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저 선경을 빌어 정사를 짓고 종일 머물렀던 이가 초간 권문해(權文海, 1534~1591)다. 예천이 본관으로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서애 유성룡과 학봉 김성일 등과 동문수학했다. 좌부승지·관찰사를 지내다 말년에 강직한 자리로 유명한 사간 벼슬을 지낸 인물이다.

어지러운 정세를 피하고 부모의 간병을 위해 10년 가까이 고향 예천으로 내려와 초간정사를 짓고 학문에 몰두했다. 초간이 남긴 큰 업적 가운데 하나가 <대동운부군옥>이라는 박물지이다.

예천 권씨 종택의 전각에 보존된 보물 제878호 '대동운부군옥'의 판고와 목판본. 종손인 권영기씨는 '대동운부군옥' 도난 사건 후 폐쇄회로 TV를 설치해 지킬 만큼 애지중지하고 있었다. 고맙게도 전각 문을 열고 판본을 꺼내 촬영을 허락했다. 초간정사에서 2km 정도 떨어진 예천 권씨 종택엔 '대동운부군옥'과 '초간집' 그리고 종택 건물과 별당을 포함해 7가지 문화재가 남았다. 2005년 1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예천 권씨 종택의 전각에 보존된 보물 제878호 '대동운부군옥'의 판고와 목판본. 종손인 권영기씨는 '대동운부군옥' 도난 사건 후 폐쇄회로 TV를 설치해 지킬 만큼 애지중지하고 있었다. 고맙게도 전각 문을 열고 판본을 꺼내 촬영을 허락했다. 초간정사에서 2km 정도 떨어진 예천 권씨 종택엔 '대동운부군옥'과 '초간집' 그리고 종택 건물과 별당을 포함해 7가지 문화재가 남았다. 2005년 1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단군 이래 선조 임금 때까지의 국토와 지리, 국호와 성씨, 효자와 열녀, 신선의 이름과 꽃이름, 나무이름 등 우리나라의 자연, 인문 환경을 집대성한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대동운부군옥>을 저술한 곳이 이곳 초간정사이다.

초간정사를 품은 산수정원의 자연미는 결국 고유한 민족 문화를 담은 백과사전을 편찬한 초간의 자주정신을 담은 그릇인 셈이다. 학문이 바다와 같다는 초간의 이름처럼, 예천 권씨 가문은 이후로도 명예와 부귀보다는 학문을 닦고 인덕을 높인 가문으로 이름 높다.

눈 닿는 풍경 모두를 정원의 경물로 삼았으니, 이 정원의 범위는 어디까지 일까. 난간 아래의 아찔한 계류와 정을 통하면 거기가 정원이요, 먼 산의 구름과 교감하면 거기도 정원이다. 건너편의 송림이 정원 경게처럼 보이면 또 거기까지가 초간정사의 정원인 셈이다. 우리의 정원은 와이드 렌즈나 포나라마 렌즈 하나에 절대로 다 담을 수 없다. 2005년 1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눈 닿는 풍경 모두를 정원의 경물로 삼았으니, 이 정원의 범위는 어디까지 일까. 난간 아래의 아찔한 계류와 정을 통하면 거기가 정원이요, 먼 산의 구름과 교감하면 거기도 정원이다. 건너편의 송림이 정원 경게처럼 보이면 또 거기까지가 초간정사의 정원인 셈이다. 우리의 정원은 와이드 렌즈나 포나라마 렌즈 하나에 절대로 다 담을 수 없다. 2005년 1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초간정사는 별채 도서관 역할을 했다. 초간정사 옆에 딸린 작은 살림집에 기거하며 학문 수양에 정진할 뿐 굳이 제자를 받지 않았다 한다. 어느 날 한 유생이 초간을 찾아와 과거에 급제하고자 학문을 청하니, “초간정사 난간을 백 바퀴 돌면 뜻을 이룰 것이다” 고 대답했다 한다.

그런데 마지막 100바퀴째를 돌던 유생이 그만 발을 헛디뎌 난간에서 떨어져 깊은 소에 빠져 죽어버렸다고 한다. 99바퀴를 돌고서도, 벼슬을 마다하고 초야에 묻혀 학문에 열중한 초간의 뜻을 모른 유생의 죽음이 남의 일 같지 만은 않다.

돌담을 자세히 보면 2단으로 보수 돼 있다. 원래는 돌담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음에 틀림없다. 2005년 1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돌담을 자세히 보면 2단으로 보수 돼 있다. 원래는 돌담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음에 틀림없다. 2005년 1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실개울 두 줄기를 받아들여 정사 앞에서 세 굽이를 치며 돌아나가는 계류는 예천 용문사에서 흘러내려온다 하여 용문천(龍門川)이라 부르고 있었다. 이 용문천은 한천과 몸을 섞어 내성천으로 흘러간다. 내성천의 하류가 용궁면(龍宮面)이다.

재미있는 상상 한 가지. 용궁면의 용이 휘돈 곳이 물돌이로 유명한 예천 용궁의 회룡포(回龍浦)다. 그렇다면 용문천은 용궁의 입구다. 초간정사 앞의 작은 암곡은 묘하게도 좁게 패여 바윗살이 한결같이 물 흐르는 방향으로 쏠려 있다.

용이 뚫고 지나간 흔적이다. 450년 전 여기에 정원을 조영한 초간은 이걸 알고 있었을까. 산수정원의 진경(眞景)은 정원의 위치에 있다. 자연을 받아들여 생활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초간정사는 자연을 벗하는 여행과 일상 생활의 경계를 허무는 위대한 힘이다.

Info 가는 길
중앙고속국도 예천IC -> 928번지방도 예천 방향 -> 예천읍 -> 928번지방도 용문면 방향 -> 초간정
초간정 위치 _ 경북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초간정사에 직접 올라가 보기 위해서는 2km 정도 떨어진 종택에서 허락을 받아야 한다. 주변에서 초간정사를 감상하는 것은 언제든 가능하다.

화룡포의 비경. 2005년 1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회룡포의 비경. 2005년 1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Tip. 주변 여행지
회룡포
예천군의 회룡포 마을은 강이 360° 로 산을 휘돌아 내려오며 낮은 산능선과 마을을 감싸안는 비경을 볼 수 있다. 마을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비룡산 전망대를 찾을 것. 강 건너편에 차를 세우고 ‘아르방 다리’를 통해 마을로 걸어 들어가면 된다.

목조각 예술의 아름다움이 깃든 용문사. 2005년 1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목조각 예술의 아름다움이 깃든 용문사. 2005년 11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용문사
다양한 목조각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사찰이다. 고려 때 창건한 고찰. 보물 145호인 대장전은 조선시대 목조각의 진수를 보여 준다고 정평이 나 있다. 전국에서 하나뿐이라는 윤장대는 회전식 서가 안에 불경을 가득 넣고 한 바퀴 돌리면 불경을 다 읽은 공덕을 쌓는다는 서가이다. 그림이 아니라 조각으로 된 목각탱화 역시 볼거리.

맛집
<전국을 달리는 청포집>
예천의 별미 청포묵 전문점이다.

<전통 복어>
예천 읍내에서 가장 유명한 복집이다. 복탕과 복지리, 복불고기가 별미.

<목마식당>
초간정사가 있는 용문면의 정식 전문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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