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호 표지이미지
여행스케치 5월호
27살 도시 아가씨의 선택, 횡성 신대리
27살 도시 아가씨의 선택, 횡성 신대리
  • 김진용 기자
  • 승인 2005.12.05 00:0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가을이 내려앉은 신대리 마을 풍경.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가을이 내려앉은 신대리 마을 풍경.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여행스케치=횡성] 횡성에서 가장 높다는 태기산 골짜기이며 섬강의 발원지이기도 한 신대리. 그곳에서 도시 아가씨 1명과 아이들 10명을 만나고서야, 왜 이 마을이 그토록 아름다운지 받아들일 수 있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시골에 자라는 도시 아가씨의 꿈
계곡 물소리 청량한 이 깊은 산골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련된 차림새의 아가씨를 만났다. 훨씬 더 안 어울리게도 청국장 된장을 들고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서울 강남 출신의 27살 이경재씨다.

이 도시 아가씨의 직책이 놀랍다. 신대리 마을 총무, 마을 소유의 펜션 겸 마을 회관인 <깨끗한 집>의 대리 사장, 신대리 새농촌건설운동 추진위원과 팜 스테이 마을 추진을 맡고 있고, 마을 홈페이지 관리자에다 마을 사람과 함께 청국장, 된장을 만들어 파는 작은 사업가이기도 하다.

대학 시절 다이빙을 즐기러 울릉도 제주도를 쏘다녔고, 2년 전까지 방송국 의상실 디자이너로 일하며 퇴근길에 스타벅스를 들락날락하던 아가씨가 말이다.

청국장과 된장을 들고 포즈를 취하는 이경재씨.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청국장과 된장을 들고 포즈를 취하는 이경재씨.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봄에는 텃밭에다 씨뿌리고 잡초 매느라 정신없죠. 여름엔 펜션 손님 받느라 정신없고, 가을엔 고구마 캐고, 고추 말리느라 정신없어요. 아 참, 다음 주엔 복분자술 내려야 하는데, 복분자 내리면 하나 보내드릴까요?”

결국 웃음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뼛속까지 도시인일 법한 아가씨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라기엔 어처구니없이 정겹다.

지난 4월엔 도농교류페스티벌에, 얼마 전엔 횡성한우축제에 신대리 대표로 참가해 마을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 지난해부터는 서울에 어머니와 오빠를 남겨두고 아예 주민등록마저 신대리로 옮겨 버렸다.

덕분에 신대리에서 40대 이하의 유일한 젊은이다. <깨끗한 집>에서 마을 어르신을 모시고 회의가 한창이었다. 팜 스테이 프로그램 추진 방향을, 크게는 마을의 발전 방향을 의논하고 있다. 이러기를 벌써 1년여. 대부분 농사일에 바쁜 분들이라 뭘 하나 결정하고 실행하기가 그만큼 어렵다.

그녀와 신대리의 인연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강이 좋지 못한 아버지가 요양 차 신대리로 내려온 것이다. 어머니와 오빠와 함께 서울에서 지내던 그녀는 아버지를 보러 들르곤 하다 그만 신대리에 정이 들어 버렸다.

주민들 역시 올 때마다 마을 일에 발벗고 나서고 거리낌없이 어울리는 이경재씨가 대견스러웠던 모양이다. 2003년 겨울부터 아예 마을 펜션을 맡긴 것이다.

'깨끗한 집' 황토방 굴뚝엔 연기가 피어오르고 맑은 물에만 사는 송어가 헤엄친다.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깨끗한 집' 황토방 굴뚝엔 연기가 피어오르고 맑은 물에만 사는 송어가 헤엄친다.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농삿일만 알고 지내던 산골 사람들이라, 군청에다 “아니, 왜 펜션만 지어주고, 손님은 안 보내줘?” 하며 항의했을 정도라니, 그녀가 펜션을 맡았을 때 그 차림새야 두말 하면 잔소리. 열심히 새 단장해 지난해 봄에 재오픈했다. 펜션 운영으로 나온 수익금은 수고비와 경비를 제하고, 마을 공동 기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게 시작된 시골살이에 재미가 붙으면서 2년 동안 그녀가 맡은 일거리는 점점 늘어났다. 마을 주민들도 지금은 그녀가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란다. 팜 스테이 지도자 과정을 마치고, 다른 지역 마을 이장단 회의에도 참석한다.

게다가 올해 초 서울의 야간대학원에 등록했다. 신대리의 깨끗한 풍경 때문인지 친환경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다. 편한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이렇게 내려온 이유를 물으니, 도시가 싫은 건 아니었단다.

다만 뭔지 모르지만 ‘향수’ 같은 걸 느끼고 싶었다고 한다. “전 우리 마을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생각해요. 마을 분들도 만나면 다 편하구요.” 왜 그렇게 마을 일에 열심이냐고, 이 마을 잘 되는 게 자기랑 무슨 상관이냐고 물었다.

의아한 눈길로 반문한다. “동네 사람이잖아요?” 마을 홈페이지나 펜션 홈페이지에서 깨끗하다 못해 청정하기까지 한 신대리 콩 고추장 된장 청국장 더덕 가시오가피 많이많이 사달란다.

도농교류시책사업 지원금으로 개축해 마을 사람이 운영해 온 펜션이었다. 팜 스테이를 위해 물레방아를 이용한 소수력 발전설비, 디딜방아, 정자, 텃밭 등이 남아 있다.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도농교류시책사업 지원금으로 개축해 마을 사람이 운영해 온 펜션이었다. 팜 스테이를 위해 물레방아를 이용한 소수력 발전설비, 디딜방아, 정자, 텃밭 등이 남아 있다.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지금 27살 도시 아가씨는 신대리를 선택했다. “이렇게 깨끗한 마을과 마음씨가 그대로 지켜졌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도 북적북적하고 돈도 많이 버는 마을이 되면 좋겠어요. 왜 그런 곳 있잖아요. 대표적인 전통마을로 지정돼 외국인들도 자주 들락날락하는 그런 마을요. 얼마나 좋겠어요? 10년이에요. 10년이면 되지 않을까요?”

아직 여물지 못한 꿈이 마구 당돌하다. ‘10년 후’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참 오랫만에 만났다. 10년 후의 그 마을에서 자신은 무엇이고 싶으냐고 물으니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마을 안의 다른 집에 살다 얼마전부터는 밤이면 꼬박꼬박 딸에게 들르는 아버지는 딸의 꿈이 대견하면서도 한숨이다. 서울의 어머니는 “너도 이담에 꼭 너같은 딸 낳아 봐라” 한단다.

서울의 디자인 작업실에서 옷을 매만지다가도 “서리 내리면 안 되는데, 고구마 캐야 되는데…” 하며 일기예보에 귀 기울이고, 지나가는 트럭을 보고는 “어, 고추 모종이네?” 했다가 서울 친구들한테 외계인 취급받았다는 이경재씨.

신대리 마을에 찾아온 조용한 가을.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신대리 마을에 찾아온 조용한 가을.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손님 다 떠난 <깨끗한 집> 앞마당의 낙엽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녀는 가끔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뭘까?” 묻는다. 꼬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함께 어울려 일하고 만들어가는 어떤 그림. 그게 그녀가 만나려는 ‘동네 사람’이며 ‘향수’가 아닐까.

신대리가 보듬은 아이들
신대리를 떠나려다 신대분교로 발길을 되돌린다. 좀 전에 <깨끗한 집> 앞을 지나쳐 등교하는 아이들 뒷모습이 떠오른 탓이다. 몇 안 되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가득한 자그만 운동장이었다.

“사진 찍어 줄까?”, “와~.” 아이들이 신이 났다. 단체로 모인 아이들과 친해지는 데는 카메라와 말 한마디면 족하다. 온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취하는 거침없는 저 포즈들!

초점을 맞추기도 전에 또 다른 포즈를 취하는 아이들을 허겁지겁 쫓느라 한참, 하도 조르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내준 디지털 카메라를 되찾는 데 또 한참. 그 작은 학교에 단풍이 그렇게 고운 줄도 몰랐다.

여행객 가족이 송덕사에 버려두고 간 고무줄 프로펠러가 상혁이와 상태 덕분에 다시 하늘 높이 솟구친다. 창범, 정환, 진영, 다희, 으뜸, 보름이, 태욱, 기쁨이, 그리고 신대분교의 강아지 바둑이와 백구의 꿈도 같이 오른다.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여행객 가족이 송덕사에 버려두고 간 고무줄 프로펠러가 상혁이와 상태 덕분에 다시 하늘 높이 솟구친다. 창범, 정환, 진영, 다희, 으뜸, 보름이, 태욱, 기쁨이, 그리고 신대분교의 강아지 바둑이와 백구의 꿈도 같이 오른다.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이 아이들은 강원도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이 마을 출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대리에는 초등학생 자녀를 둘 만큼 젊은 사람이 없다. 실은 부모 잃은 아이들이다.

태기산 기슭 송덕사라는 오래된 사찰의 아이들이다. 송덕사의 김순옥 보살님이 키우고 있단다. 학교 선생님에게 물으니 보살님은 10여년 전부터 부모 잃은 아이들 수십 명을 송덕사에서 키워왔단다.

지금은 대학생이 된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 아이들은 어엿한 신대리 사람이다. 이 분교의 본교는 사라진 지 오래다. 이 아이들 때문에 분교만 남은 것이다.

수줍음 많은 진영이와 다희는 내내 운동장만 내달린다. 절대로 카메라를 쳐다보지 않는다.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수줍음 많은 진영이와 다희는 내내 운동장만 내달린다. 절대로 카메라를 쳐다보지 않는다.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3년 전 교육당국이 신대분교를 없애려 할 때 보살님이 장문의 편지로 학교를 살렸단다. “얘들이 첨엔 얌전하더니 요즘은 능구렁이가 다 됐어요. 하하.” 학교 선생님에게 인사를 받으며 건너다 본 교실 안. 컴퓨터와 비디오, 그리고 책꽂이 가득 알차게 꽂힌 책 사이로 스민 햇살이 어찌나 그렇게 만져보고 싶던지.

이경재씨가 귀띔하는 숨은 풍경
섬강을 아시나요?

고요히 흘러가는 물결 위로 하얗게 부서지는 아련한 햇볕을 만나는 곳. 한창 높던 해가 조금은 기울어지고, 한창 바쁜 시간을 넘기고 잠시 앉으면 곧잘 그리워지는 곳.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처럼 똑같은 모자를 쓴 부자가 똑같은 몸짓으로 낚싯줄을 날리는 따스한 풍경.

강원도 횡성을 가로지르는 섬강이 내게는 그런 곳이다. 간혹, 횡성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에 - 그렇다고 해도 서울이라는 도시를 가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 ‘아, 이제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을 가장 먼저 갖게 하는 곳이 바로 섬강이다.

섬강에서는 아직 살아있는 무엇인가가 느껴진다. 갓 잡은 물고기와 같은 날것의 신선함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은 마치 지금의 동강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꼭 몇 년 전 처음 동강을 만났을 때와 꽤나 흡사한 느낌이다.

맑은 물이 흐르고 한적한 섬강의 모습.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맑은 물이 흐르고 한적한 섬강의 모습.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더구나 이제는 대부분 유명한 하천이 도시인을 위한 편의시설과 래프팅 보트로 가득한 것에 비하면, 섬강은 여전히 강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 흘러간다. 섬강은 사람들의 방문을 기다리는 강은 아니다.

모름지기 사람을 기다리는 강이라면 있어야 하는 편의시설이 매우 제한적이다. 하지만 사람의 방문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이 섬강의 가장 좋은 점이 아닐까.

그냥 오가다 들르는 오래된 친구의 사랑방처럼, 무엇을 소비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이 어디든 차를 세우고 흐르는 강물에 발을 담그면 친근하게 받아줄 성 싶다. 발을 담그고 낚시하는 강태공을 구경하는 것도 흥미진진하다.

참 이상하게도 낚싯줄을 던지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말하지 않아도 누가 한 가족인지 알 수 있다. 플라잉 낚시는 송어방류에 대한 섬강 생태계보전문제로 찬반논란이 많아 아직 권하기엔 미덥지 않지만, 누가 가족 아니랄까봐 똑같은 몸놀림으로 낚싯줄을 던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여간 즐거운 게 아니다.

흐르는 강물 구경에, 좋은 사람과의 대화에, 누가 부자지간일까 맞추기에 몇 시간이고 훌쩍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해도 섬강을 권해준 사람을 원망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 6번국도를 따라 양평에서 횡성 방향으로 가다 횡성 시내 입구에서 횡성댐 방향으로 좌회전, 섬강 물줄기를 왼편에 두고 계속 올라가면 나오는 횡성댐 근처 낚시터를 찾으면 됩니다.

Tip.
<깨끗한 집> 펜션

강원도 도농교류 시책 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진 펜션. 산악자전거, 캠프 파이어, 바비큐 시설이 갖춰져 있다. 태기산 등산로의 성골계곡에 있다. 뜨근한 황토방에서 아침을 맞으면 상쾌한 물소리와 새소리가 수려한 산세와 어우러져 마음이 푸근해진다.

ㆍ태기산은 웅장한 산세만큼 전망도 일품인 횡성 최고봉(1,261m). 특히 계곡의 설경이 유난히 아름답다고. 삼한시대 말기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꾼 신라 설욕의 꿈이 허물어진 태기산성으로나마 남아 있다. 신대리에서 송덕사를 거쳐 올라가면 왕복 4시간 소요.

ㆍ참숯가마 찜질의 원조격인 강원참숯도 멀지 않다.

ㆍ식사 : 신대리쪽에는 마땅한 식당이 없어 둔내면으로 나오는 것이 좋다. 현대성우리조트에서 멀지 않은 둔내막국수가 유명하다.

Info 가는 길
영동고속국도 둔내IC -> 6번국도 평창 방향 -> 서석 방향 표지판 따라 좌회전 -> 청일면 갑천리 봉덕상회 사거리에서 우회전 -> 신대리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카밀라 2020-12-04 19:34:09
좋은정보올려줘서진심으로감사합니다. 그리고.코로나19바이러스조심하시고 건강하시고행복한하루보내지진심으로응원합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