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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옛 정원 노닐기] 돌 하나에 시 한 수, 은둔의 미덕 '영양 서석지'
[옛 정원 노닐기] 돌 하나에 시 한 수, 은둔의 미덕 '영양 서석지'
  • 김진용 기자
  • 승인 2005.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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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돌은 안으로 아름다운 글을 머금고도/오히려 그 있음을 나타내기 꺼리는데/사람은 어찌 실속에 힘쓰지 않고/명예만 얻으려고 급급하는가 - 정영방, ‘상경석’(尙絅石) (서석지를 읊은 <경정잡영> 中) 서석지의 돌들은 이름과 시가 붙어있다.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여행스케치=영양] 경북 영양 입암면의 연못 하나. 서석지에는 무려 90여개의 돌이 있다. 물 위에 떠 있는 게 60여개, 물에 잠긴 게 30여개다. 선유석 통진교 난가암 상경석 옥계척 탁영반 화예석 희접암 상운석…. 연못을 파보니 나온 얼핏 평범한 돌들인데 제각기 상서롭고 심오한 이름까지 붙어있다.

선조들은 돌에 대한 애착을 지니고 있었다. 특별한 형체도 색깔도 없고 움직이거나 과시하는 일도 없기에, 풍상을 겪고도 언제나 그대로인 돌의 모습에서 지조와 절개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것이 또한 자연의 본래 모습이기에, 아무렇게나 놓인 것 같은 돌이건만 자연적인 것을 중시하는 전통 정원의 핵심 경물이 되었다. 서석지(瑞石池)의 돌 하나하나에는 이름 뿐 아니라 시(詩)가 붙어 있다.

서석지 정원의 각 부분을 노래한 <경정잡영>(敬亭雜詠)에  담긴 시들이다. 혹자는 이 시적 풍경을 음미하지 않고는 서석지 정원을 제대로 즐길 수 없다고까지 얘기한다.

서석지 정원 풍경. 서석지는 담양 소쇄원, 완도 세연정과 함께 3대 전통 별서정원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서석지는 상서로운 돌들의 연못이라는 의미.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서석지 정원 풍경. 서석지는 담양 소쇄원, 완도 세연정과 함께 3대 전통 별서정원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서석지는 상서로운 돌들의 연못이라는 의미.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이른바 ‘시경’(詩景)이다. 정원을 조성할 때 시적 풍취가 감도는 풍경, 즉 시를 지어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시를 통해서만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는 풍경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정원의 풍광과 경물을 노래한 시 속에 조원자의 의도와 조원 기법이 담겨져 내려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옛 정원은 장인(匠人)의 정원이 아니라, 문인(文人)의 정원이다.

요즘에야 조경 설계를 맡은 전문가가 따로 있지만, 옛날에는 글 읽고 시 짓는 선비가 직접 정원을 구상했다. 조원은 기술이라기보다는 세계관이며 ‘시경’이었기 때문이다. 서석지는 연못을 거닐다 돌에 내려서서 시를 읊는 정원이었다.

400년 거목이 된 은행나무가 정원을 감싸고 있다. 공자가 제자에게 강론한 곳이 은행나무 밑이었다. 이 때문에 은행나무는 단순한 조경수가 아니라 공자를 기리며 학문에 정진하는 유학자의 정신세계를 상징한다.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400년 거목이 된 은행나무가 정원을 감싸고 있다. 공자가 제자에게 강론한 곳이 은행나무 밑이었다. 이 때문에 은행나무는 단순한 조경수가 아니라 공자를 기리며 학문에 정진하는 유학자의 정신세계를 상징한다.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구름, 하늘, 바람을 담은 돌의 풍취 앞에 물끄러미 쪼그리고 앉으면, 돌 하나가 가만히 시간을 멈춰 세운다. 서석지 정원은 석문 정영방(石門 鄭榮邦, 1577~1650)이 조성한 정원이다. 연못의 무수한 돌과 400년도 넘은 은행나무로 유명하다.

정영방은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어받은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29세에 성균관 진사가 되었는데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벼슬길로 나아가려 하지 않고 서석지를 짓고 학문 연구로 일생을 마친 인물이다.

정영방은 일생에 세 번 벼슬에 나아갈 기회가 있었으나 그때마다 벼슬을 고사하고 은둔했다. 인조반정 후 이조판서를 지내던 우복 선생이 정영방의 재주를 아깝게 여겨 인조에게 천거했지만, 정영방은 바다 게 한 마리를 스승에게 보냈다 한다.

그러자 우복 선생이 “이 생물은 옆으로 비켜서 걷는 것이니 나도 혼탁한 정치에 휩쓸리지 말고 물러나라는 뜻으로 보이네” 하고 크게 웃으며 다시는 출사를 권하지 않았다 한다.

서석지 연못을 이루고 있는 돌들. 물이 줄어 띠처럼 늘어선 암맥이 드러나 있다. 돌 색깔이 흰색이라 맑은 물속에서도 선명하고 오묘한 경관을 조성한다.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서석지 연못을 이루고 있는 돌들. 물이 줄어 띠처럼 늘어선 암맥이 드러나 있다. 돌 색깔이 흰색이라 맑은 물속에서도 선명하고 오묘한 경관을 조성한다.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서석지가 이름난 것은 연못이 있는 내원(內園)의 아름다움 때문만이 아니다. 서석지는 몇 십 만평에 달하는 외원(外園)을 거느리고 있다. 영양 입암면의 문암에서 시작해 서석지로 들어가는 길 주변과 일월산까지 계곡을 따라 펼쳐진 기암괴석의 그림같은 경관이 그것이다.

서석지로 향하는 길에 선바위가 보인다. 영등산에서 시작된 산맥과 일월산에서 시작된 산맥이 만나고, 청기천이라는 강물이 만나 세 갈래의 기가 모이는 곳이라한다. 선바위는 외원의 핵심을 알리는 곳이자, 내원으로 드는 입구이기도 하다.

주일재(主一齋)와 사우단(四友壇) 주일재는 경정을 기준으로 왼쪽에 자리잡은 서실(書室)이다. 주일재 앞에 연못 안으로 들여쌓은 사우단이 있다. 소나무, 대나무, 매화, 국화가 자라는 단이었는데, 지금은 국화는 시들어버렸다.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주일재(主一齋)와 사우단(四友壇) 주일재는 경정을 기준으로 왼쪽에 자리잡은 서실(書室)이다. 주일재 앞에 연못 안으로 들여쌓은 사우단이 있다. 소나무, 대나무, 매화, 국화가 자라는 단이었는데, 지금은 국화는 시들어버렸다.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정영방은 이 외원의 경관 곳곳에도 이름과 시를 지어 붙였다. 내원을 구성하는 돌들은 이 외원을 이루는 기암괴석과 자연 경관의 축소판이다. 가령 외원의 구포암(龜浦巖)은 내원의 선유석(僊遊石)과 그 모양과 위치가 비슷한 식이다.

게다가 외원과 내원을 이루는 암석이 영양에선 보기 힘든 화강암이다. 외원의 화강암 석맥(石脈)이 땅 속으로 서석지 정원의 연못까지 이어져 와 내원 연못의 돌을 이루고 있다. 결국 주변의 자연 경관을 그대로 정원 앞마당으로 끌고 들어온 셈이다.

서석지는 얼핏 연꽃과 웅장한 은행나무가 눈길을 끈다. 하지만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연못 가득한 돌이 보여주는 깊고 냉정한 풍모에 빠져들고, 서석지를 벗어나면 광대한 외원의 풍류에 젖어들게 된다.

Info 가는 길
중앙고속국도 안동IC -> 34번국도 안동 방향 -> 임하호 -> 진보면에서 31번국도로 좌회전 -> 입암면에서 911번지방도로 좌회전 -> 서석지

거북바위가 있는 서식지 외원 풍경.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거북바위가 있는 서식지 외원 풍경.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Tip. 주변 여행지
ㆍ선바위 관광지

안동 - 청송을 거쳐 31번국도를 타고 영양읍으로 향하다 보면 낙동강 상류의 반변천을 따라 하늘이 내린 것 같은 영양의 천혜 경관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서석지 외원의 중심이자 내원의 입구이기도 한 선바위 주변 풍취는 그 절정이다.

선바위는 거대한 거북이 강물에 목을 축이고 있는 듯한 형상이다. 남이포라고도 부르는 이 주변은 남이 장군의 전설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근처 운룡지(雲龍池)라는 곳에 아룡과 자룡 형제가 살았는데, 역모를 꾀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조정에서 남이장군에게 토벌할 것을 명했다 한다.

선바위 관광지 풍경.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선바위 관광지 풍경. 2005년 1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남이장군이 용으로 변한 두 형제와 싸우니 번개가 치고 우뢰가 번쩍였다 한다. 결국 두 형제를 물리친 남이장군은 이 부근의 기운이 높아 도적의 무리가 다시 일어날 것 같다 하여 큰 칼로 산맥을 자르고 물길을 냈다고 한다.

‘남이장군 산책로’라는 1시간 남짓한 등산로가 일품이고 야생화·분재·수석 전시관, 관광정보센터가 있다.

ㆍ삼양식당
43년 전통의 향토음식점. 경북 최고봉 일월산에서 채취한 산나물 정식을 한다.

ㆍ숙박
영양군 내에는 고급 숙박시설이나 펜션이 없는 편이다. 신라장 여관, 일월산 관광농원, 수비관광농원. 고급 숙박시설에 묵으려면 안동으로 나가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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