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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한국의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④ 부석사, 백두대간 기운이 흘러가는 극락정토에 위치하다
[한국의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④ 부석사, 백두대간 기운이 흘러가는 극락정토에 위치하다
  • 노규엽 객원기자
  • 승인 2019.09.0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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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와 조화를 이루며 조성된 건물 배치
사찰 명칭에 그대로 녹아있는 창건설화
무량수전에서 보는 풍경은 사찰 이상의 아름다움을 선사
<편집자 주> 2018년 6월 30일, 바레인의 수도 마나마에서 개최된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이 신청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확정됐다. 이에 해당하는 사찰은 영주 부석사, 양산 통도사, 보은 법주사, 해남 대흥사, 안동 봉정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등 총 7곳. 각 사찰이 세계유산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역사적 이유와 사찰문화 등을 면면히 살펴본다.

[여행스케치=영주] 소백산국립공원에 속해있는 부석사는 무량수전의 존재만으로도 유명한 사찰이다.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자 미술사학자였던 故 최순우 선생이 한국의 미를 예찬하며 저술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저서로 인해 한국인에게도 이름이 매우 익숙한 곳이 부석사와 무량수전이다.

백두대간 산세를 병풍 삼아 자리 잡은 사찰
부석사는 소백산국립공원의 북동쪽으로, 영주시와 봉화군의 경계를 짓고 있는 봉황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부석사 뒤편으로 봉황산을 이루며 동서로 가로지르는 산자락은, 백두산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이 태백산에서 소백산으로 달려가는 중간 즈음에 해당된다.

부석사 일주문 전후로 은행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부석사 일주문 전후로 은행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해발 평균이 1000m에 이르는 산세를 병풍처럼 두르고 산의 형세에 맞춰 오름식으로 지어진 부석사는 깊은 산골 끝자락에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사찰이다.

부석사 입구로 향하는 길목에는 너른 주차장과 식당들이 자리해 분주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부석사 매표소를 지나는 순간 인간세상의 분위기는 딱 끊기고 고요한 숲길이 펼쳐진다.

이 숲길은 어느 계절에 찾아도 각자의 멋을 뽐내지만, 은행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어 가을을 특히 최상으로 친다. 은행나무길을 걸어 오르는 동안 왼편에 나타나는 부도비와 당간지주도 둘러보며 부석사로 향하면 된다.

국내 사찰 건물 중 아마도 가장 유명할 무량수전의 모습.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국내 사찰 건물 중 아마도 가장 유명할 무량수전의 모습.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천왕문을 지나고부터 부석사의 속살을 보게 된다. 산세를 거스르지 않고 조성된 부석사는 법당인 무량수전에 이르는 동안 계단이 이어지지만, 석탑과 건물들이 자연과 조화된 모습을 보며 천천히 오르면 힘들지 않다.

부석사 등화스님은 “부석사에서는 사찰 건물과 탑, 조경 등이 불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즐거움을 줄 것”이라며 “올라갈 때는 상승감, 내려갈 때는 하강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안양문(안양루)을 거쳐 무량수전으로 향하는 길은 부석사를 대표하는 풍경이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안양문(안양루)을 거쳐 무량수전으로 향하는 길은 부석사를 대표하는 풍경이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무량수전으로 오르는 길목에 많은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볼 수 있는 장소가 나온다. 범종루를 지나 안양루와 무량수전을 올려다보는 지점이다. 길이 곧바로 이어지지 않고 살짝 비대칭으로 꺾여 이어지는 계단은 규칙에 어긋난 듯 하면서도 안정감을 주는 모습이다.

하나의 건물이지만 현판을 다르게 걸린 1층 안양문을 지나 2층 안양루로 오르면 거대한 무량수전이 우람한 모습을 드러낸다.

Info 부석사
주소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입장료 어른 1200원, 중고생 1000원, 초등학생 800원

무량수전 동편에 자리한 층 석탑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뜻한다고 한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무량수전 동편에 자리한 층 석탑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뜻한다고 한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뜬 돌 절'이라는 특이한 이름이 붙은 이유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의상대사는 중국 당나라에서 배운 화엄종을 한국에 전파한 창시자로서, 부석사 이외에도 한국 내 많은 사찰을 건립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인물이다.

의상대사가 세운 사찰 중 가장 유명한 부석사는 이름부터 특이점이 있는데, 이는 부석사 창건설화와 연관이 있다. 

신라 문무왕 1년(661)에 의상대사가 화엄학을 공부하기 위해 당나라에 갔을 때, 의상대사를 연모한 선묘라는 여인이 있었다. 의상대사가 10년간 화엄의 도리를 배우고 깨달음을 얻은 후 귀국길에 올랐을 때, 뒤늦게 소식을 들은 선묘가 부두로 달려갔으나 의상대사가 탄 배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부석사 이름이 지어진 결정적 역할을 한 부석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부석사 이름이 지어진 결정적 역할을 한 부석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이에 실망한 여인은 바다에 몸을 던졌고 용으로 변신하여 의상대사가 탄 배를 호위하여 귀국하게 된다. 그 후 의상대사가 화엄의 도리를 펴기 위해 왕명을 받고 지금의 부석사 자리에 절을 지으려고 할 때, 이곳에 살고 있던 많은 이교도들이 방해하였다.

이때 용으로 변한 선묘가 바위를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기적을 보여 이교도를 물리쳤고, 그리하여 이 돌을 한자로 ‘부석(浮石)’이라 부르고 사찰 이름을 부석사라 불렀다는 이야기다.

등화스님은 “사찰 이름은 보통 불교 용어를 쓰는 것과 달리 부석사는 창건설화에 따라 ‘뜬 돌 절’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며 “설화 속의 선묘낭자는 이후 부석사의 수호신이 되었다고 하며 그를 모시는 사당도 마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안양문을 거쳐 올라오는 계단에서 석등 사이로 무량수전 편액을 찾아내는 것도 관람 포인트가 된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안양문을 거쳐 올라오는 계단에서 석등 사이로 무량수전 편액을 찾아내는 것도 관람 포인트가 된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사찰 이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부석은 현재도 무량수전 뒤편에 남아있다. 조선 영조 때 지어진 이중환의 <택리지>에 따르면 “위아래 바위 사이에 약간의 틈이 있어 줄을 넣어 당기면 걸림 없이 드나들어 떠있는 돌임을 알 수 있다”라고 적혀있어, 조선시대까지도 돌이 떠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선묘각은 무량수전 뒤편에서 부석의 반대편에 자리하고 있다. 

부석사에는 안동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국내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로 알려진 무량수전과 조사전 등이 훼손되지 않고 남아있다. 등화스님은 “1400년이 다 되어 가는 오랜 역사와 주변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게 만들어진 사찰인 점이 인류가 보편적인 가치로서 기릴 문화재로 평가받은 것 같다”고 말한다.

지장전에서 무량수전을 바라보면 안양루와 무량수전 지붕이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지장전에서 무량수전을 바라보면 안양루와 무량수전 지붕이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무량수전 앞에 서서 보는 풍경이 백미
너른 품을 지닌 부석사를 천천히 거닐며 모든 전각을 둘러보는 일도 의미가 있겠지만, 천왕문부터 무량수전까지 이어지는 길목에 있는 주요 문화재들은 알고 보는 것이 더욱 좋다.

종무소 앞뜰에 나란히 자리한 삼층석탑 두 기 뒤편으로 보이는 범종루는 누각이자 문의 역할을 하는 건물이다. 범종루 계단은 안양문으로 향하게 되어있는데, ‘안양’은 극락(천국)이란 뜻을 지니고 있어 안양문이 극락세계에 이르는 입구를 상징한다.

즉, 안양문을 지나 마주하게 되는 무량수전이 있는 자리는 극락이라는 뜻이다. 등화스님은 “부석사는 무량수전 쪽으로 올라올수록 상품세계로 들어오는 것”이라고 설명해준다.

1376년에 중수된 목조 건축물인 무량수전은 대한민국 국보 제18호이다. 건물 내부를 지탱하고 있는 배흘림기둥의 모양새와 건물 외관을 떠받치고 있는 주심포 양식 등 고려시대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건축학적인 중요도 외에 불가에서의 의미도 무척 흥미로움을 지니고 있다.

무량수전 내부에는 아미타 부처님이 서쪽 공간에 자리해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무량수전 내부에는 아미타 부처님이 서쪽 공간에 자리해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무량수전 내부에 들어서보면 부처님이 정면 중앙에 계시지 않고, 서편(왼편)에 앉아 동편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또한 법당에 모신 주불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아닌 아미타 부처님. 이는 바로 무량수전이 극락이자 부처님 세상인 서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량수전 밖 동편에 세워져 있는 삼층석탑이 석가모니 부처님을 표현한 것으로 부석사에서는 중심자리가 되는 것이죠.”

어려운 교리만으로는 중생을 구제하기 힘들다는 깨달음에서 창시된 화엄의 가르침답게 무량수전을 극락으로 조성한 것은 중생들이 부석사를 찾는 것만으로 극락에 들어 깨달음을 얻기를 바라는 의도 아니었을까. 화엄의 가르침을 건물 구조로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부석사의 진정한 멋스러움이라 하겠다.

조사당 앞에는 의상대사가 사용했다는 지팡이가 나무로 자란 모습으로 남아있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조사당 앞에는 의상대사가 사용했다는 지팡이가 나무로 자란 모습으로 남아있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의상대사와 조사들이 모셔져 있는 국보 제 19호 조사당.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의상대사와 조사들이 모셔져 있는 국보 제 19호 조사당.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부석사의 본래 중심자리인 삼층석탑을 보고 뒤편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르면 국보 제19호인 조사당이 나온다. 이곳은 의상대사를 비롯한 역대 조사를 기리는 곳으로, 의상대사가 쓰던 지팡이가 땅에 꽂혀 나무로 자라나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부석사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할애할 곳은 무량수전에서 내려다보는 남쪽의 풍경이다. 극락에서 바라본 중생의 세계. 현세이자 속세의 모습은 까마득히 작은 모습으로 흐릿하게 보이고, 내 몸이 서있는 무량수전 앞뜰은 선명하니, 풍경을 즐기는 것만으로 불가의 깨달음이 전해지는 듯하다.

무량수전 앞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극락에서 일반세상을 보는 의미가 있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무량수전 앞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극락에서 일반세상을 보는 의미가 있다. 사진 / 노규엽 객원기자

이곳에서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 적혀져 있는 문장을 읽으며 부석사에서의 여운을 즐기면 더욱 좋겠다.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 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ㆍ안양문ㆍ조사당ㆍ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핼쑥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중략) 멀찍이서 바라봐도 가까이서 쓰다듬어 봐도 무량수전은 의젓하고도 너그러운 자태이며 근시안적인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

※ 본 기획 취재는 국내 콘텐츠 발전을 위하여 (사)한국잡지협회와 공동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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