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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사찰기행] 남한강 법천사지ㆍ거돈사지ㆍ청룡사지, 천년을 외로이 그 빈터를 지켜오고...
[사찰기행] 남한강 법천사지ㆍ거돈사지ㆍ청룡사지, 천년을 외로이 그 빈터를 지켜오고...
  • 이현동 객원기자
  • 승인 2005.12.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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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법천사지 당간지주. 법천사지에서 조금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있다. 이곳까지가 절터라면 그 규모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2005년 12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법천사지 당간지주. 법천사지에서 조금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 있다. 이곳까지가 절터라면 그 규모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2005년 12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여행스케치=원주] 무심히 흘러가는 강물에 내 모습 비추어본다. 강물 흘러가듯 그렇게 그 고단함 흘려보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나는 희망적이다. 사실 희망이고 절망이고 그런 것은 원래 없는 것인지도. 순간 그렇게 아무것도 없이 그냥 나인 채로 남한강변 폐사지로 들어선다.

법천사지, 발굴이 한창 진행되다 지금은 잠시 덮어 두었다. 이미 절은 대부분을 땅에 묻었기에 그 위로 민가도 들어서 있고 길도 새로 나 있는 상태다.

그래도 야트막한 산기슭으로 절터가 남아 있는데 무엇인지 모를 건물터에는 그 유명한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비가 천년 세월 풍상에도 그나마 남아 있다. 그 주위로 그 화려했을 절의 내력을 알려주는 석조물들이 또 하나의 건물터 위로 진열되어 있다.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면 오히려 폐사지의 영화가 무상하다 싶을 정도다.

화불이 새겨진 석불 광배며, 하트 모양이 거꾸로 된, 마치 한송이 통통한 불꽃이 새겨진 돌이며 볼록하게 활짝 피어선 그 끝이 엎드린 것 같은 연꽃이 새겨진 배례석이며 이외에도 무엇에 사용되었는지는 짐작할 수 없는 석조물들이 아주 세심한 손길로 다양한 문양을 보여주고 있다. 돌 하나하나에 이 만큼 정성을 다한 것을 보면 분명 여느 절과는 다른 것이다.

지광국사현묘탑비. 2005년 12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지광국사현묘탑비. 2005년 12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특히 지광국사현묘탑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정교함이 보인다. 고려 선종 2년(1085)에 세워진 이 비는 구름무늬 지대석 위에 당당한 귀부를 놓고 그 위에 비신을 꽂고 다시 이수를 얹었다.

우선 눈에 띠는 것은 거북 등에 새겨진 임금 왕(王)자, 비신 옆면에 깊이 새겨진 여의주를 희롱하는 듯한 두 마리 용이며, 비신 상부의 안상에 새겨진 것들이다. 여기에는 가운데 나무를 새기고 좌우로 계수나무 토끼(달을 상징)와 발이 셋 달린 새(태양을 상징)를 새기고 주위로 비천상이며 봉황이며 구름과 산을 새겨 이 하나만으로도 감탄이 절로 나게 한다.

지광국사(984~1067)의 어릴 적 이름은 수몽이다. 출가해서 혜린이란 법명을 받았는데 문종이 개성 봉은사로 직접 찾아와 왕사와 국사로 추대하였다고 한다. 스님이 입적하자 문종이 시호를 지광(智光), 탑호를 현묘(玄妙)라고 내렸다.

그런데 지광국사의 부도가 되는 현묘탑은 한때 일본 오사카로 밀반출 되었다가 반환되어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가 있다.

거돈사지 축대와 거돈사지의 느티나무. 2005년 12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거돈사지 축대와 거돈사지의 느티나무. 2005년 12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천년을 대변하는 남한강변 거돈사지
법천사지에 나와 부론면을 우회해서 정산리로 곧장 넘어간다. 정산리 마을 안쪽으로 차를 달려 5분, 도로가에 건실한 축대와 축대 귀퉁이에서 자라난 느티나무가 보인다. 거돈사지다.

축대 가운데 계단을 오르면 석탑과 석탑 앞에 놓인 배례석이 눈에 들어온다. 석탑 뒤로 다시 불상이 놓여졌을 대좌와 금당터가 보인다. 그리고 서쪽 한켠으로는 거돈사지의 여러 석조 부재들을 모아 놓은 곳이 있고 금당터 뒤로는 강당터가 보인다.

그 안쪽으로 여러 건물터가 보이고 제일 안쪽 산을 깎아 다듬은 곳에는 원공국사 부도가 있던 자리가 있다. 다시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원공국사의 부도비가 눈에 들어온다. 막힘이 없는 시선이다.

거돈사지 삼층석탑. 터를 높여 그 위에 탑을 올린 것이 득이하다. 2005년 12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거돈사지 삼층석탑. 터를 높여 그 위에 탑을 올린 것이 득이하다. 2005년 12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그 시선을 따라 바람들이 몰아친다. 거돈사지는 이미 겨울로 들어섰고 찬기운은 풀 한 포기 남김없이 동면으로 몰아간다. 한기가 점점 몸으로 파고든다. 몸을 일으켜 걸음이라도 내디뎌야 했다.

원공국사부도비, 불(佛)자와 만자(卍)자, 연꽃이 교대로 새겨진 거북등 위로 원공국사의 생애와 행적 그리고 국사를 기리는 송(頌)을 적은 비신이 있고 그 위에 이수가 놓여 있다.

원공국사(930~1018)는 8살에 출가하였고 이후에 중국에 가서 천태학을 배워 깨달아 40살이 지나면서 귀국하여 현종 때 왕사가 되었다. 말년에 스님이 병을 얻어 거돈사로 들어 왔는데 그해 입적하자 현종은 국사로 추증되고 시호를 원공, 탑호를 승묘라고 했다.

거돈사지 전경. 2005년 12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거돈사지 전경. 2005년 12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그런데 스님의 부도탑비는 거돈사지에 있는데 부도인 승묘탑은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처럼 국립중앙박물관에 가 있다.

원래의 제자리를 떠나 있으니, 제 것을 제 자리에 간수하지 못한 것 또한 아픔일 텐데, 그 옛날 거돈사지의 당간지주 또한 한 짝만 거돈사지 앞 개울 건너 폐교가 된 정산초등학교 마당에 가 있다. 다른 한 짝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발굴 조사하고 이후 거돈사지 그 터를 복원해놓았다 한들 그 고단함마저 되돌려 놓지는 못했을 터…. 마음이 당간지주만큼 무거워진다.

용의 꼬리에 지은 절, 청룡사지
거돈사지를 나와 남한강을 거슬러 충주로 향한다.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청계산 기슭,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물고 다투다 여의주를 떨어뜨렸는데 한 마리가 그 여의주를 물고 청계산 위로 승천하고 다시 한 마리가 빛을 발하며 사라졌다.

이를 본 도인이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곳에 절을 지으니 청룡사다. 청룡사는 조선말기까지 이어져 왔다.

조선 말기 민씨들이 세를 부릴 때 판서인 민대룡이 소실의 묘를 청룡사에 쓰기 위해 머슴을 시켜 불태웠는데 이 머슴은 고개를 넘다 피를 토하고 죽었고 그 뒤로 민대룡 집안에서 이 묘에 벌초를 하기만 하면 해를 입어 벌초를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서 절은 폐사되었는데 지금은 밭으로 사용되고 잘 다듬은 돌로 쌓은 축대만 남아 있다. 그래도 청룡사에는 보각국사가 있었다. 절터 아래 계곡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면 보각국사부도와 비 그리고 석등이 나온다.

조선말기까지 이어져 오다가 사라진 청룡사. 그 안에 있는 청룡사지보각국사 정혜원융탑. 그 앞에 사자가 받치고 있는 석등이 있고 뒤로 비가 있다. 정혜원융탑 가는 오솔길 입구에는 1976년에 땅 속에서 발견된 위전비를 볼 수 있는데, 토지가 청룡사에 귀속돈 사실 및 그 과정에서의 노고가 적혀있다. 2005년 12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조선말기까지 이어져 오다가 사라진 청룡사. 그 안에 있는 청룡사지보각국사 정혜원융탑. 그 앞에 사자가 받치고 있는 석등이 있고 뒤로 비가 있다. 정혜원융탑 가는 오솔길 입구에는 1976년에 땅 속에서 발견된 위전비를 볼 수 있는데, 토지가 청룡사에 귀속돈 사실 및 그 과정에서의 노고가 적혀있다. 2005년 12월. 사진 / 이현동 객원기자

환암 혼수(1320~1392)는 고려시대 말기의 유명한 스님이다. 우왕 때(1383)에 국사가 되어 ‘정변지웅존자’라는 호를 받았고 국사로 책봉되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도 스님께 귀의했을 정도였는데 스님이 입적하자 태조가 보각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탑호는 정혜원융탑이다. 부도비는 법천사지와 거돈사지의 그것보다 훨씬 단순해졌는데, 이수가 없다. 부도는 오히려 화려한데 특히 볼록하게 배를 내민 듯한 중대석과 몸돌에는 각각 운룡문과 사자상이 그리고 안상에 신장상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에는 합각마루가 표시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용과 봉황을 같이 조각했다. 전체적으로 아담하면서도 섬세하다. 남한강변 폐사지, 법천사지·거돈사지·청룡사지에서 그 천년을 넘어선 석조물들을 만난다.

제각기 다른 모습들로 시대를 표현한 탑, 부도, 비 그 속에서 다시 그 시대 추앙받던 국사들을 만난다. 천년 세월 무상함이라지만 어찌 모두 땅속에만 묻혔다고만 할 것인가! 그곳에 서면 알 것이다. 바람만이 내 몸을 스쳐 지나는 것이 아니라는 걸….

Info 가는 길
남한강변 폐사지 여행코스 _ 영동고속국도 문막IC로 나와서 부론면으로 가다가 손곡리로 들어서면 법천사지가 나온다. 이 법천사지에서 시작해 남한강을 거슬러 정산리로 가면 거돈사지가 나오고 다시 충주 소태면으로 가면 청룡사지가 나온다.

Tip. 주변 여행지
청룡사
청룡사지 옆 가파른 길을 오르면 청룡사가 나온다. 근래에 지었는데 절에는 자연암반에 새겨진 산신, 나반존자, 칠성신을 새겨 모신 삼성각이 이채롭고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줄지 않는, 소화불량과 피부에 효과적인 영천수가 있다.

흥법사지
원주의 간현유원지에서 양평 방면으로 가면 흥법사지가 있다. 이곳에는 탑과 진공대사부도비의 귀부와 이수가 있다. 흥법사지는 문막IC에서 나와 우회전해서 간현유원지를 찾아가면 된다.

맛집 - 대감집 문막IC를 나와 좌회전해서 문막 파출소 지나 우회전한 후, 300m 우측으로 ‘대감집’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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