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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가갸날, 우리말 나들이①] 누구나 스스로 깨우칠 수 있는 ‘우리말', 세종대왕의 흔적을 좇다
[가갸날, 우리말 나들이①] 누구나 스스로 깨우칠 수 있는 ‘우리말', 세종대왕의 흔적을 좇다
  • 김세원 기자
  • 승인 2019.09.05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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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6년 '우리말' 훈민정음 반포한 세종대왕
세종대왕이 모셔진 여주 영릉을 시작으로
업적을 기리는 서울 '세종이야기', '세종대왕기념관'까지
광화문 광장 가운데 인자한 미소를 지은 얼굴로 앉아있는 세종대왕 동상. 사진 / 김세원 기자

[여행스케치=여주] 우리나라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왕이자,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서울 광화문 광장 한가운데에는 그가 인자한 미소를 띤 채 앉아있고,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경기 여주에는 그가 잠들어 있는 왕릉과 함께 그의 업적을 볼 수 있는 세종대왕기념관도 마련되어 있다.

“다만 백성들이 문자를 알지 못하여 책(삼강행실도)을 비록 나누어 주었을지라도, 남이 가르쳐 주지 아니하면 어찌 그 뜻을 알아서 감동하고 착한 마음을 일으킬 수 있을까?”  1434년(세종 16년) 4월 7일

경기 여주에는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합장릉인 영릉이 자리해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세종이 잠든 곳, 여주 영릉을 찾다
세종의 묘인 영릉은 경기 여주에 자리해있다. 효를 중요시한 세종은 아버지를 모시고자 헌릉에 함께 묻혔지만, 풍수지리와 왕조의 지속을 위한 여러 이유로 명당인 여주로 세조 때 이장했다. 

대부분의 왕릉이 도성에서 100리 안에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의문이 생기는 장소이다. 이에 노정순 세종해설사는 “남한강을 끼고 있는 여주는 도성에서 거리가 멀어 이장지로 선택받지 못할뻔했으나, 한강 물길을 따라가면 100리 안에 들어 세종의 묘가 이곳으로 옮겨올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현재는 공사중인 여주 영릉의 전경. 사진 / 김세원 기자
영릉 앞으로 영릉비가 세워져 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여주에는 두 개의 영릉이 존재한다. 그 중 ‘꽃부리 영’자를 쓰는 세종대왕 영릉은 또 다른 영릉인 효종대왕 릉에서 난 길인 ‘왕의 숲길’을 통해 갈 수 있다. 숙종과 정조 등 조선의 왕부터 최근에는 문재인 대통령까지 모두 이 길을 걸어 세종대왕을 참배했다. 

700m, 걸어서 15분이면 갈 수 있는 길은 짧지만, 소나무와 굴참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길을 꽉 채우고 있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온통 풀과 나무로 둘러싸인 길은 고요함이 감돈다. 참배를 위한 길이라는 점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새 소리와 햇빛을 느끼며 걷는 길의 끝, 세종대왕이 잠들어 있는 영릉이 모습을 드러낸다. 

효종대왕 영릉에서 세종대왕 영릉까지 이어진 길. 사진 / 김세원 기자
굴참나무 등으로 둘러싸인 길은 참배를 위한 길답게 고요함이 감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세종대왕 영릉으로 가기위해 아이들은 왕의 숲길을 걷는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안타깝게도 영릉은 현재 공사 중에 있어 온전한 모습을 감상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정자각으로 오기까지 지나쳐야 하는 재실과 홍살문 향로와 어로 등은 울타리로 막혀있고, 봉분 아래쪽 언덕은 비닐로 덮여있다. 1970년대 실시했던 성역화 사업 당시 설치된 능침 탐방로를 비롯해 잘못 공사 된 것을 바로잡는 공사이다. 일 년 후인 2020년 10월이면 온전한 영릉을 만날 수 있을 예정이다. 

Info 여주 영릉
주소 경기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269-50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효조대왕 영릉에서 세종대왕 영릉으로 이어진 ‘왕의 숲길’은 매년 5월에서 10월까지만 개방된다. 현재는 세종대왕 영릉이 공사 중으로 관람을 하기 위해선 효종대왕 영릉으로 찾아오는 편이 더 좋다. 

영릉을 둘러본 뒤 방문하면 좋은 세종대왕역사문화관 전경. 사진 / 김세원 기자

백성을 ‘여엿비’ 여긴 왕, 세종
그가 잠든 여주를 찾았다면 이곳에서 세종의 업적도 함께 찾아보자. 영릉에서 입구로 돌아 나가 15분 정도 걸어가면 ‘세종대왕역사문화관’이다. 한 개의 층으로 구성된 기념관에서는 세종에 관한 역사적 자료들을 볼 수 있다. 

화면을 통해 세종 시대에 만들어진 책들과 훈민정음 해례본 등을 넘기며 살펴볼 수 있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전 글을 배우지 못한 백성들은 한자를 읽지도 쓰지도 못해 손해를 보거나 사기당하기 십상이었다. 실제로 글을 읽지 못해 짓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쓴 채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세종실록을 살펴보면 백성을 지극히 아끼던 세종의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다. 열녀와 효자의 이야기를 담아 엮은 윤리책인 <삼강행실도>는 글을 읽지 못하는 백성을 위해 앞면은 그림이, 뒷면은 그림의 설명이 적힌 책이다. 세종은 책을 지은 후에도 본질적으로 백성들이 글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종대왕 영릉이 공사중이기 때문에 왕릉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효종대왕 영릉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왕릉으로 가는 길 곳곳에 녹음이 짙다. 나무가 만드는 그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해도 좋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삼강행실도>가 편찬되기 전 나온 <농사직설>의 경우도 마찬가지. 중국의 것에서 벗어나 조선에 맞춰 만든 <농사직설>을 배포했으나 가장 필요한 농사를 짓는 평민들은 정작 글을 읽지 못해 각 고을의 관리들이 내용을 정리해 알려주어야 방법을 따라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백성을 지극히 아끼던 세종이 ‘우리의 말’이 있어야 함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역사문화관에서는 이런 내용을 좀 더 쉽게 애니메이션이나, 그림들을 통해 알 수 있어 아이와 함께 찾아도 좋은 곳이다. 훈민정음에 관련된 것뿐 아니라 악기나 과학 등 전반적인 세종대왕 시절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다. 또한 공사 중인 영릉에서는 보기 힘든 석물들이 따로 전시되어 있어 영릉을 본 후 방문하면 좀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현재 수정적의 옆쪽은 과거 집현전이 있던 자리이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서울에 남아있는 세종의 흔적
그렇다면 한글은 어떤 원리로 창제된 것일까? 여기에 대한 답은 여주보다는 서울에서 조금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광화문 광장에 위엄 있게 자리한 세종대왕 동상을 자세히 관찰한 사람이라면 이곳에 숨은 재밌는 비밀을 알 수 있다. 바로 동상 뒤로 돌아가면 작게 마련된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전시관인 ‘세종이야기’와 ‘이순신이야기’가 그것. 

어린이들이나 광화문을 찾은 외국인들이 주로 찾는 이곳은 여주의 역사문화관과 비교해 설명이 좀 더 쉬운 것이 특징이다. 전시관의 한편에는 세종대왕의 삶을 드라마화한 KBS의 <대왕세종>을 볼 수 있는 장소를 비롯해 한글 창제부터 반포 과정을 디오라마로 표현해둔 곳도 있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용하기 쉽다.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뒤로 돌아가면 '세종이야기'와 '충무공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세종대왕의 업적을 비롯해 훈민정음의 창제 과정을 쉽게 알기 좋은 전시관. 사진 / 김세원 기자
세종이야기에서는 뱃지만들기, 탁본뜨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전시관을 따라 걷다 보면 아이들도 한글 창제 과정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둔 전시물을 만날 수 있다. 1443년 만들어진 훈민정음은 3년 동안 세종이 직접 사용하고 다듬으며 1446년 반포된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따르면 자음의 기본자인 ‘ㄱ, ㄴ, ㅁ, ㅅ, ㅇ’은 입술, 목구멍 등 발음할 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의 발음기관을 본 따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발음에 따라 거센소리에는 획을 더하고, 된소리에는 기본자를 두 번 써 모음이 완성되었다.

모음의 경우에는 하늘과 땅, 사람을 본 따 만들었다. 각각 ‘ㆍ’, ‘ㅡ’, ‘ㅣ’임을 알 수 있다. 기본 모음끼리 만나 지금의 모음을 구성했다. 훈민정음이 과학뿐 아니라 동양의 철학까지 문자에 담아냈음을 알 수 있는 설명이다.

‘세종이야기’에서 체험도 하고 창제 과정도 살펴봤다면 광화문 광장에서 도보로 10분 거리, 경복궁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훈민정음 창제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훈민정음 집현전 학자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경복궁의 수정전 옆자리가 과거 언문을 연구하던 기관인 집현전의 터이다. 고대봉 사단법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집현전이 임금이 정무를 보던 사정전보다 컸을 정도로 세종이 훈민정음 창제에 큰 의의를 뒀다”고 설명한다. 

동대문에 자리한 세종대왕기념관의 전경. 사진 / 김세원 기자
우리나라 고유의 한글서체인 최정호 선생의 한글 원도. 사진 / 김세원 기자
기념관에서는 <월인청강지곡>, <삼강행실도> 등 다양한 서책을 만날 수 있다. 사진 / 김세원 기자

종로와 떨어져 있지만 서울 동대문구에 자리한 세종대왕기념관에 방문하는 것도 한글날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세종대왕의 업적을 볼 수 있다는 점은 앞서 방문한 기념관과 비슷하지만 이곳에서는 <삼강행실도>, <세종실록> 등을 볼 수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지난 남북정상회담 때 두 정상의 뒤에 세워져 큰 화제를 모은 훈민정음 병풍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글자체 등도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타자기 전시까지 감상할 수 있다. 고대봉 세종대왕기념관 관장은 “훈민정음의 창제는 창제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며 “배움이 느린 사람도 사흘이면 스스로 깨칠 수 있다고 쓰여 있을 만큼 배우기 편한 것이 한글”이라고 설명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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