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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강물 따라 가는 길, 평창강 흐르는 눈빛에 숨이 막힐 듯!
강물 따라 가는 길, 평창강 흐르는 눈빛에 숨이 막힐 듯!
  • 김진용 기자
  • 승인 2006.02.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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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도돈리에서 평창강은 빙판으로 변해 있었다. 흰둥이와 검둥이를 데리고 나온 이재순 할아버지네 아이들에게 소중한 추억이기를.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도돈리에서 평창강은 빙판으로 변해 있었다. 흰둥이와 검둥이를 데리고 나온 이재순 할아버지네 아이들에게 소중한 추억이기를.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여행스케치=평창] 평창강은 남한강 제1지류다. 원류부터 따진다면 220km. 본류만 해도 149km가 넘는다지만, 또 한편 평창군에서 시작해 영월군 들머리에서 끝나는 짧은 강이기도 하다. 그만큼 휘어지고 굽이친다.

산 깊은 벽지의 순수한 생명력을 지키고 있을 것 같은 그 강의 시작과 끝을 만나기 위해선, 왠지는 모르겠지만, 거슬러 오르는 길을 택해야만 할 것 같았다.

평창강 평창군 횡성군 영월군의 크고 작은 계곡물이 흘러와 평창읍에서 몸을 섞어 너른 품새를 갖춘다. 그 물이 너무도 맑아 퉁가리 쏘가리 누치 같은 1급수에 서식하는 민물고기의 천국이다.

아침 햇살이 스민 세상이 이미 온통 순백색이다. 띄엄띄엄 놓인 강원도의 집은 이제 눈에 지쳐 있다. 처마에 덧문을 내리고 모두들 집에 들어앉은 듯 인적이라곤 없다. 저 눈을 헤치면 뭐가 나올까.

새하얀 설국에 꼭꼭 들어앉은 평창강을 만나러 나선다. 평창강이 흘러 흘러와 닿는 곳은 한반도 모양의 물돌이동 선암마을로 유명한 영월군 서면 옹정리다. 평창강은 이곳에서 주천강과 몸을 섞어 서강이라는 이름으로 통을 키운다.

옹정리에서부터 올곧게 강을 끼고 오르자면 지프차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듯해, 597번지방도로 우회해 주천면 판운리에서 처음 평창강과 만났다. 강자락은 이미 너르고 점잖은 품새를 갖추고 있었다.

눈덮인 섶다리가 보인다.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눈덮인 섶다리가 보인다.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섶다리가 바라보이는 판운식당. 난로가 훈훈하게 데워진 식당 안에는 주인 신용석씨 내외만이 매운탕으로 식사 중이었다. “판운리에서는 볕이 잘 드는 이곳 밤뒤 마을이 가장 크지요. 코앞인 것 같은 강 건너는 아직도 차가 들어가기 힘든 오지지요.

길이 나면서 저 마을들을 잇는 섶다리가 사라지는 바람에 빙빙 돌아서 한두 시간씩 걸어다니는 어르신들이 아직도 있지요.” 곡류가 심하다지만 이곳은 특히 물돌이가 4번을 연이은 곳이다.

그 물돌이동마다 차례대로 미다리, 장충동, 매운, 단여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밤뒤 마을에서 스무 걸음 남짓 섶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미다리이다. 다리는 기다란 널 위에 선 것처럼 흔들거린다.

한잔 거하게 걸친 채 소를 몰고 건너다 떨어지기 십상이었을 법한, 유일하게 남은 다리. 미다리는 3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기름지고 농사가 잘 되는 곳이었다. 밤나무가 많아 강 건너 밤뒤 마을 지명의 유래가 되기도 했다.

초여름 물이 불기 시작하면 섶다리가 떠내려가버려 다리없는 마을이 된다고 해서 미다리란다. 몇 가구 눈에 띄지만 대부분 외지인의 집이다. 고급 승용차 한 대에서 말끔한 신사들이 지번도를 들고 내려 임야니, 6,000평이니 한다.

장충동으로 들어가는 강둑길. 섶다리가 사라진 뒤로 장충동, 매운, 단여울 사람들은 이 길을 걸어 마을로 들어간다.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장충동으로 들어가는 강둑길. 섶다리가 사라진 뒤로 장충동, 매운, 단여울 사람들은 이 길을 걸어 마을로 들어간다.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미다리에서 계속 강을 건너면 장충동, 매운, 단여울이 나온다. 옛날엔 이 어름마다 섶다리가 놓여 세상 통로가 됐다는데, 지금은 사라져버려 밤뒤 마을로 되돌아가 다른 길로 들어가야 한다.

장충동으로 드는 길과 강줄기는 깍아지른 벼랑 사이를 후벼 파며 돌아 들어간다. 산세가 험하고 볕이 멀어 예부터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는 장충동은 이제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듯하다.

외양간에서 홀로 우는 황소 한 마리가 그래서 더욱 짠하다. 장충동을 지나면서는 더 이상 운전이 힘들다. 비가 오면 흰 구름이 매화 송이처럼 피어오른다는 매룬과 강여울이 짧고 급하다는 단여울 마을 길목까지 들어선 펜션 하나를 확인하고는 나오는 것으로 만족한다.

판운리를 벗어나 오르면 영월군의 경계인 모란 마을이다. 평창강의 유유한 물빛을 굽어보고 싶으면 모란 마을의 사찰 연화사에 오르면 좋다고 한다. 모란을 지나면 평창군에 닿는다.

평창강을 따르는 길은 눈과 얼음의 길이라 차라리 걸어 오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며 도돈리를 지나던 차, 그곳엔 강물 대신 눈이 흐르고 있었다. 휘도는 모양 그대로 거대한 빙판이 강을 입막음해버린 것이다.

꽝꽝 얼어붙은 평창강 위에 드러누워 천사를 그리는 아이.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꽝꽝 얼어붙은 평창강 위에 드러누워 천사를 그리는 아이.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그 얼음 위에 또 눈이 내려 강에도 눈이 쌓였다. 섶다리를 놓는 일은 판운리 마을의 가장 큰 일 가운데 하나였다. 초여름에 지는 큰 물에 다리는 저절로 떠내려간다. 그러면 추수가 끝난 뒤 또다시 장정 10여 명과 기술을 전수해 줄 어르신 한두 명이 2~3일 동안 만들었다.

물에 강한 Y자 모양의 물버들 나무를 거꾸로 박고 솔가지를 위에 씌운 후 흙을 덮었다. 못은 하나도 쓰지 않고 도끼와 끌로만 기둥과 들보를 맞췄다. 끝이 보이지 않는 천연 썰매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 위를 아이들의 웃음이 마구 미끄러지고 있었다. 자갈과 모래가 쫙 깔린 여름 강가에서 누치, 쏘가리를 잡던 추억이 못내 그리운 이재순 할아버지가 오랜만에 놀러온 손주와 외손주을 데리고 썰매를 지치러 나온 것이다.

도대체 할아버지와 손주가 어울려 놀기에 이만한 놀이터가 세상 천지 또 어디 있을까. 여름엔 여기서 팔길이 만한 물고기를 봤다며 세빈이가 꺄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조심스럽게 한발짝 한발짝 걷던 내 발걸음도 그 웃음을 좆아 이내 쿵쾅쿵쾅 신나게 강 위를 내달려 버린다. 마을 이장을 지낸 덕에 마을의 내력을 줄줄 꿰고 있는 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한참 듣다 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평창읍 못 미쳐 나타난 약수리 마을. 혹 이름처럼 약수가 있나 해서 기웃거리다 김옥희 할머니에게서 약수의 유래를 들었다. 옛날 효험이 좋은 약수가 있어 오지 산간 마을의 기쁨이었는데, 이 약수 때문에 찾아오는 외지 사람들 때문에 갖가지 말썽이 생긴 뒤로 한 장사가 바위로 약수를 막아버렸다는 것이다.

그 뒤로 지금은 옛날 약수터의 자리에서 물이 솟고 있지만, 예전만큼의 효험은 없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평창 아라리> 한 구절 “영월에는 덕개가 있어도 춥기만 하고요/평창땅엔 약수리가 있어도 아프기만 하네요” 에 얽힌 설움은 그래서일까.

금당계곡 들머리.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금당계곡 들머리.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평창읍을 지나쳐 31번국도를 타면 강과 잠시 헤어진다. 방림면에 들어서 중방림 마을의 천제유원지에서 다시 만난 평창강은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강안개에 덮인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조용하고 오붓한 가족의 쉼터를 찾는다면 평창강 줄기에서 이만한 곳이 없을 듯하다. 봉평면으로 접어드는 강마을에는 뜰마저 눈에 덮혀 있다. 눈밭에 집으로 이르는 길이 선연히 나 있으면 사람이 사는 집일 것이다.

비포장길 군데군데 민박집 겸 매점의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라 쓸쓸함을 달랜다. 수림대 마을을 지나면서부터는 세계 각국의 건축을 한 자리에 모은 듯 갖가지 펜션들이 수없이 늘어서 있다.

금당산 자락을 끼고 도는 금당계곡이 있기 때문이다. 등매초등학교 앞 다리를 건너가면 협곡도 그런 협곡이 없다. 좌우로 굽이굽이 바위절벽이 하늘을 가로막고 섰다. 봄이면 원시림, 여름엔 물 맑은 피크닉 장소와 래프팅 장소로도 많이 이용된단다.

평창강이 시작되는 의풍포. 갈대밭 왼쪽에서 속사천이, 오른쪽에서 흥정천이 내려와 만나고 있다.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평창강이 시작되는 의풍포. 갈대밭 왼쪽에서 속사천이, 오른쪽에서 흥정천이 내려와 만나고 있다.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이윽고 다다른 의풍포 마을. 평창강이 처음으로 그 이름을 얻는 곳이다. 오대산 자락 계방산 속사천과 봉평 흥정산의 흥정천이 만나는 곳이다.

그 ‘두물머리’의 미모는 어쩌면 그리 유순하게 아름답던지. 5월의 햇살처럼 따스한 얼음 사이사이로 졸졸졸 생명의 소리가 눈부시게 반짝인다. 시간이 멈춘 그곳에서 마음도 이제 그만 멈춘다.

하얀 메밀꽃 펜션 전경.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하얀 메밀꽃 펜션 전경.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Info 숙박&맛집
숙박
마을마을의 민박집이 평창강을 맛보는 가장 좋은 숙박지이다. 영월 주천면 판운리에 가장 민박이 많다. 봉평면 백옥포리의 평창청소년수련원도 가족형 콘도시설과 청소년 캠프가 있어 일반 여행객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지나치기 아쉬운 펜션도 많다. 흥정천 흥정계곡의 하얀메밀꽃 펜션, 금당계곡 들머리의 하늘꽃 펜션, 대화면 개수리의 보마누아 펜션, 장충동을 지난 오지의 엘솔 펜션이 취재 도중 만난 괜찮은 펜션이다.

주천묵집 도토리묵조밥.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주천묵집 도토리묵조밥.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맛집
주천묵집 영월 주천면 신일리. 도토리묵조밥 맛이 고소하면서도 따뜻하다. 도토리묵, 메밀묵 전문점. 직접 뜯어말린 갖가지 묵은 나물 반찬도 맛깔스럽다. 실내에 전통 생활용품도 전시돼 있다. 

판운식당 판운리의 대표적인 매운탕집. 3~4월이 되면 담백하고 개운한 퉁가리 매운탕을 낸다.

거기민물매운탕 방림면 주민들이 적극 추천한 매운탕집.

미가연 봉평면의 메밀싹과 순메밀음식 전문점. 메밀싹이란 메밀을 싹 튀워 콩나물처럼 재배한 것이다. 밥에 그냥 비벼 먹지 말고 메밀싹만 따로 맛보면 아삭아삭 씹히면서 상큼한 향이 난다. 여름에 가장 상큼하다고 한다.

이효석 문화마을 모습.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이효석 문화마을 모습. 2006년 2월. 사진 / 김진용 기자

Tip. 이효석 문화마을 봉평면 시내에 이효석 문화마을이 있다. 이효석 문학관이 있고 봉평 옛 장터와 물레방앗간이 재현되어 있다. 물레방아가 꽁꽁 얼어 있었다.

“돌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도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레방앗간 안으로 들어가질 않았나.” <메밀꽃 필 무렵>의 향기에 잠시나마 젖어보는 것도 좋겠다. 문화마을 양쪽으론 온통 메밀밭인데, “소금을 뿌린 듯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던 메밀꽃을 눈이 대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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