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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4월호
[한국의 정원] 진주 용호정원과 우곡정, 열두 봉우리 속 신선계
[한국의 정원] 진주 용호정원과 우곡정, 열두 봉우리 속 신선계
  • 김진용 기자
  • 승인 2006.03.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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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진주 용호 정원. 평지에 연못을 파고 둘레에 12개의 가산(假山)을 쌓았다. 2006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진주 용호 정원. 평지에 연못을 파고 둘레에 12개의 가산(假山)을 쌓았다. 2006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여행스케치=진주] 전통 정원에 들렀다가 혹시 바위 숫자를 세본 적이 있는지. 우리 옛 정원의 연못 주위에선 큰 돌이나 작은 바위, 혹은 흙더미를 흔하게 보게 된다. 무심코 지나치기 쉽지만,  문득 그 수를 헤아려 보면 대부분 12개로 일치하는 데 놀라게 된다.

지난 여름 진주의 우곡정(隅谷亭)이라는 정자에 들렀을 때다. 표지판도 없는 외딴 숲 속의 정자라 지역 주민 외에는 잘 모르는 곳이다. 정자를 건립한 우곡 선생이 낚시를 했다는 연못과 느티나무 고목의 정취에 젖어 서성이는데, 문득 돌부리에 발이 걸린다. 주위를 살펴보니 얼핏 3~4군데에 돌이 놓여 있다.

여름이라 무성해진 풀섶 때문에 가려진 돌이 몇 개 더 있겠다 싶어, 연못 둘레의 풀섶을 헤쳐 보기로 했다. 하나가 놓인 곳도 있고 두 개가 놓인 곳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돌이 놓인 장소는 정확히 12군데였다.

백일홍과 연꽃이 어우러진 용호정원 풍경. 2006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백일홍과 연꽃이 어우러진 용호정원 풍경. 2006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관련 문헌이 적어 이것이 의도된 것이었는지 확인하긴 어렵지만, 우리 옛 정원의 경물(景物) 가운데 ‘무산십이봉’(巫山十二峯)의 상징과 연관되지 않았을까. 무산은 중국 쓰촨성 동쪽의 산이다.

열두 개의 장엄한 봉우리가 겹겹이 하늘을 막고 협곡을 이뤄 예부터 선녀가 사는 선산(仙山)으로 신비화된 산이다. 그래서 신선이 산다는 봉래·방장·영주산을 뜻하는 삼신산과 함께 도교와 신선사상의 주요 상징물이 되어 왔다.

선조들은 정원을 이루는 나무나 돌, 담장 등에 이름을 지어 붙이는 것을 즐겼다. 평범한 경물에 자신의 이상향이나 세계관을 담는 한 방법으로 사용한 것이다. 무산십이봉이라는 명명은 속세의 소박한 정원 안에서나마 신선 세계를 구현하고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꿈꾸겠다는 뜻이 담긴 것이다.

우곡정 연못 주변에 놓인 평범하기 그지없는 돌들. 2006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우곡정 연못 주변에 놓인 평범하기 그지없는 돌들. 2006년 3월. 사진 / 김진용 기자

경남 함양의 정여창 선생 고택의 사랑채 주변을 비롯해 무산십이봉의 흔적은 전통 조경 곳곳에서 발견되지만, 무산십이봉의 모습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진주 용호정원이다.

연못 가운데 정자가 있고, 연못 주변에 높고 낮은 흙 둔덕 12개를 쌓았다. 그 둔덕마다 심어진 백일홍이 여름철엔 연꽃 향과 어울려 가히 신선이 노니는 모습을 그릴 정도이다. 

Info 진주
● 용호정원(龍湖庭園)
일제 강점기인 1922년 거듭되는 재해로 기근이 겹치자 만석꾼의 거부였던 참봉 박헌경(朴憲慶)이 백성에게 집과 땅과 금전을 주어 조성한 정원이니, 일종의 취로사업으로 볼 수 있다.

박 참봉은 이후에도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사재를 털어 주민들을 먹여 살렸다. 이 때문에 주민들과 지나는 과객이 세운 송덕비 7개가 지금도 남아 있다. 진주시 명석면 소재.

● 우곡정(隅谷亭)
고려 후기 대사헌을 지닌 우곡 정온(鄭溫) 선생이 태조의 역성혁명에 반대하다 낙향하여 1393년에 지은 정자다. 태조가 그를 다시 불렀으나 앞을 못 본다는 핑계로 벼슬을 사양했다.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솔잎으로 눈을 찔렀더니 눈동자는 움직이지 않고 선혈만 낭자했다고 한다. 진주시 사봉면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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