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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백두대간 종주기⑰] 영월과 태백의 명산 함백산, 겨울산~ 모든 생명체는 휴식중인데
[백두대간 종주기⑰] 영월과 태백의 명산 함백산, 겨울산~ 모든 생명체는 휴식중인데
  • 박상대 기자
  • 승인 2006.03.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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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함백산 정상. 온통 새하얀 설경이다. 2006년 3월. 사진 / 박상대 기자
함백산 정상. 온통 새하얀 설경이다. 이번 코스는 화방재 → 만항재 → 함백산 → 싸리재 → 금대봉 → 비단재 → 매봉산 → 피재이다. 2006년 3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여행스케치=강원] 백두대간에 눈이 많이 내렸답니다. 산에 다니는 사람들은 일기예보를 자주 보는데 영동지방에 대설주의보를 발령한답니다. 겨울산에 오를 때 가장 가슴 설레는 일이 눈을 만나는 일입니다. 일기예보를 접하는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지요. 이번 겨울에 눈 내리는 산행을 하지 못했거든요. 몇 주일째 아쉬움을 토로하며 잿빛 하늘을 원망했는데....

설레는 마음으로 새벽바람을 가르며 집을 나섰지요. 강원도 영월과 태백에 걸쳐 있는 명산 함백산에 가는 길입니다. 백두대간의 허리로 그 규모가 가장 장엄하다는 태백준령이지요. 겨울에 이곳을 타는 일은 행운이며 즐거움입니다. 삼척시 피재에서 영월군 화방재까지. 여름에는 이 구간을 하루에 달리지만 겨울에는 중간에 싸리재(두문동재)에서 한번 끊어서 간답니다.

욕심을 부리자면 못할 것도 없지만 안전산행이 절대 우선이기 때문이지요. 피재는 삼수령이라고도 합니다. 피재는 한국 전쟁 때 피난민들이 이 고개를 넘어 피하면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첩첩산중이란 뜻이겠지요. 삼수령은 낙동강, 한강, 오십천이 나뉘는 고개랍니다. 하늘에서 빗방울 하나가 떨어지면 세 조각으로 나뉘어 세 하천으로 흘러내린답니다.

함백산의 광활한 풍경. 2006년 3월. 사진 / 박상대 기자
함백산의 광활한 풍경. 2006년 3월. 사진 / 박상대 기자

태백산이나 함백산에는 이런 봉우리가 여럿 있지요. 매 사냥을 많이 했다는 매봉산(천의봉) 오른쪽 기슭으로 하얀 눈밭이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여름에는 고랭지 채소가 싱그러움을 자랑하겠지요. 그러나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에 채소밭은 설원일 뿐입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쩌억쩌억! 괴성이 들립니다. 10m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눈보라 속에서 괴성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대체에너지원으로 개발해 놓은 풍력발전소의 거대한 풍차가 질러대는 소리랍니다. 바람을 받아 돌아야할 풍차의 날개가 눈보라에 얼어 울어대는 거지요. 눈보라가 그쳤습니다.

거무튀튀하던 하늘이 파랗습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것은 하얀 설원입니다. 뽀드득 뽀드득 발아래서 전해지는 기분 좋은 발자국 소리와 앞서 걷는 동료 산객의 거친 숨소리가 아니라면 무서운 정적을 느끼겠네요.

지지배배 울어대던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 화려한 자태를 뽐내던 꽃과 그 꽃들을 유혹하고 달래고 속삭이고 입 맞추던 나비와 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풀잎을 흔들고 낙엽을 건드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던 산들바람은 또 어디로 밀려갔을까?

가끔씩 따악 소리를 내며 머리 위에 떨어지던 죽은 나뭇가지마저 움직임이 없습니다. 시끄러운 것보다 고요한 것이 더 무섭겠다는 생각을 하며 눈길을 걷습니다.

함백산 제2쉼터. 2006년 3월. 사진 / 박상대 기자
함백산 제2쉼터. 2006년 3월. 사진 / 박상대 기자

“겨울에는 말이오. 따끈따끈한 아랫목에서 삶은 고구마 먹으면서 몸을 살찌우는 게 자연의 순리대로 사는 거 아닌가요? 겨울에 살이 쪄야 봄에 다시 열심히 일하고….”

기를 쓰고 겨울산행을 하는 산객들을 두고 한 친구가 말하더군요. 그래서 겨울산에서 만난 산객에게 겨울에도 산행을 하는 까닭을 물었지요.

“산이 기다리니까요. 겨울에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몸에 병이 날걸요.”

“겨울 산행의 묘미는 긴장이지요.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느끼는 긴장의 연속…. 얼굴을 때리는 눈보라를 이기고 완주할 때 쾌감을 느끼지요.”

“아, 겨울에 아랫목에서 고구마도 먹어보고, 동치미도 먹어봤어요. 어쨌든 산 아래 있는 것보다 산 위에 있는 것이 더 즐거우니까 산에 오른 것 아닙니까. 여름에 태풍 불 때 산에 오른 것하고 겨울에 눈보라 헤치며 산에 오른 것하고 다 같은 거예요.”

“산 것이 다 산 것이 아니고, 죽은 것이 다 죽은 것이 아닙니다. 겨울산을 걷다보면 세상 만물이 다 죽은 것 같지요. 그런데 곧 다 살아납니다. 생명의 순회, 삶의 순환을 몸으로 느낄 수 있어서 좋지요.”

싸리재에서 함백산으로 오르는 길목. 2006년 3월. 사진 / 박상대 기자
싸리재에서 함백산으로 오르는 길목. 2006년 3월. 사진 / 박상대 기자

두문동재(싸리나무가 많아서 싸리재라 부르기도 합니다)를 지나 은대봉을 오릅니다. 고사목들이 앙상하게 떨고 서 있습니다. 저 멀리 금대봉과 매봉산이 보입니다. 함백산으로 오르는 길은 좀 멀더군요. 산길이 멀게 느껴지는 것은 다리가 아프거나 배가 고픈 탓일 겁니다. 게다가 아이젠을 착용하고 눈길을 걸으면 힘이 두 배로 더 들지요.

억척스럽게 먹을 것을 챙기는 사람들은 따뜻한 국물을 챙겨오기도 하고, 눈으로 라면을 끓이기도 합니다. 사과와 귤, 곶감, 초콜릿, 떡 등을 나눠 먹습니다. 위스키를 한 잔씩 나눠 마시기도 하고, 따끈한 커피를 나누기도 합니다. 산행의 숨은 묘미가 먹는 일이 아닐까 싶네요. 정상을 오르는데 오른쪽으로 철쭉나무들이 눈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봄이 되면 연분홍 철쭉이 산객들과 눈인사를 하겠지요. 왼쪽 능선으로는 주목들이 저마다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사연들을 짊어지고 이 산길을 오르내렸을지 알고 있을 테지요. 함백산은 한때 대박산(大朴山)이라 불리었답니다.

크고 밝은 뫼! 함백산 정상에 오르니 천하가 발 아래네요. 뒤쪽으로 까마득히 청옥산과 두타산이 보이고, 저 멀리 태백산이 눈에 들어옵니다. 날씨가 차갑고, 가는 바람이 불어주니 시계가 넓고 멀리 열린 덕분입니다. 안개도 없고 구름도 없는 겨울산은 백두대간의 꿈틀대는 기운을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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