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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5월호
에메랄드 빛 바다의 유혹, 통영 비진도
에메랄드 빛 바다의 유혹, 통영 비진도
  • 이수인 기자
  • 승인 2006.05.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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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봄볕 쏟아낸 남도섬아
[편집자주] 지난 2016년 7월 홈페이지를 개편한 <여행스케치>가 창간 16년을 맞이해 월간 <여행스케치> 창간호부터 최근까지 책자에 소개되었던 여행정보 기사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지나간 여행지의 소식을 게재하는 이유는 10년 전의 여행지는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16년 전의 여행은 어떤 것에 관점을 두고 있었는지 등을 통해 소중한 여행지에서의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사 아래에 해당 기사가 게재되었던 발행년도와 월을 첨부해 두었습니다. 
에메랄드 빛 바다가 펼쳐지는 통영 빈지도 풍경. 2006년 5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에메랄드 빛 바다가 펼쳐지는 통영 비진도 풍경. 2006년 5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여행스케치=통영] 이순신 장군이 왜적과 겨루어 승리한 보배스러운 곳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비진도(比珍島). 외국의 휴양지를 방불케 하는 빼어난 풍광과 에메랄드 빛 바닷물로 인해 한때 ‘국제관광지’가 될 뻔한 비운(?)의 섬이다. 지중해를 만들던 신(神)의 푸른 물감 한 방울이 비진도 바다에 떨어진 게 아닐까?

2000여 개의 섬을 뿌려 놓은 듯한 남해안. 한산도에서 여수까지 300리 뱃길을 오고가는 수많은 여객선이 비슷한 시간차로 터미널을 들고 나간다. 육지와 섬을 잇는 연륙교가 생기면서 단 몇 분이면 섬에 갈 수 있게 되었다지만, 섬으로 가는 길은 배를 타야 운치 있다.    

잔잔한 은빛 물결을 가르며 배가 떠나간다. 웅웅거리는 엔진소리와 뒷좌석에 앉은 섬 아지매들의 질펀한 경상도 사투리를 배경음 삼아 달리는 뱃길 40분. 매물도를 향해 가는 배가 문어포에서 사람 몇을 떨어뜨려놓는가 싶더니 바로 비진도 내항을 거쳐 외항 선착장에 도착했다.

해변 옆으로는 송림숲이 펼쳐진다. 2006년 5월. 사진 / 이수인 기자
해변 옆으로는 송림숲이 펼쳐진다. 2006년 5월. 사진 / 이수인 기자

배 밖으로 발을 내딛자 쏟아지는 봄 햇살을 받은 해수욕장의 백사장 때문에 눈이 부시다. 뭍에서 가져온 커다란 짐 보따리를 이고 진 주민들의 뒤를 종종 걸음으로 따라간다. 사람 없는 매표소를 지날 무렵 찡그려 반쯤 감았던 눈이 뜨인다.

“와아~” 눈앞에 펼쳐진 에메랄드 빛 바다. 바다 빛깔만 봐선 멋진 야자수 몇 그루만 서 있으면 외국의 어느 휴양지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아령 모양의 섬 비진도. 둥그런 모양의 내항마을과 외항마을을 잇는 비진해수욕장은 아령의 손잡이 격이다.

반짝이는 모래사장이 아름다운 서쪽 해안. 2006년 5월. 사진 / 이수인 기자
반짝이는 모래사장이 아름다운 서쪽 해안. 2006년 5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은빛 모래사장과 잔잔한 물결이 평화로운 서쪽 해안과, 동글동글한 몽돌밭이 펼쳐진 동쪽 해변이 등을 맞댄 특이한 지형이다. 이런 생김새 덕에 한자리에 앉아 해돋이와 해넘이를 모두 볼 수 있다.

한때 전용헬기를 타고 이곳까지 날아와 해수욕을 즐겼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비진도의 빼어난 풍광과 바다 빛깔에 반해 ‘국제관광지’로 만들 것을 지시했다. 구체적인 청사진까지 만들어졌지만 이듬해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모든 계획이 물거품 되었다고 한다.    

당시의 일을 회상하던 마을주민 공영일씨는 대통령 가족이 머물렀던 자리라며 백사장 한쪽을 가리킨다. 그러나 바다 양식장에서 밀려들어온 스티로폼과 검은 해초만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을 뿐이다.  

몽돌밭 해수욕장 쪽에서는 바다고둥이 제법 잡힌다. 2006년 5월. 사진 / 이수인 기자
몽돌밭 해수욕장 쪽에서는 바다고둥이 제법 잡힌다. 2006년 5월. 사진 / 이수인 기자

미끈거리는 푸른 이끼가 잔뜩 낀 몽돌밭 해수욕장에서는 바다고둥과 게를 잡을 수 있다. 주먹만한 몽돌 하나를 들추자 크고 작은 고둥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좀 욕심을 내어 바지를 걷어붙인다면 저녁 간식거리는 족히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해수욕장 옆으로 돌아가면 커다란 몽돌바위 무더기가 나온다.

소각장을 끼고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으로 물새들의 쉼터이다. 높은 갯바위 위에 올라 바다를 내려다보자 밑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동글동글한 돌멩이 하나까지 감춤 없이 드러내 보이는 에메랄드 빛 바다와 푸른 하늘. 그 가운데 서 있는 아름다운 섬 비진도.  

바다에 떠다니는 '몰'이라는 해초를 말려 타작한다. 퇴비와 섞어 밭에 뿌리면 토질이 좋아진다. 2006년 5월. 사진 / 이수인 기자
바다에 떠다니는 '몰'이라는 해초를 말려 타작한다. 퇴비와 섞어 밭에 뿌리면 토질이 좋아진다. 2006년 5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지난 꽃샘추위에 독하게 걸린 감기를 달고 있으면서도 물속으로 발을 담가본다. 아직 차갑지만 발이 시리지 않는 것을 보니 봄 바다가 맞다. 외항 선착장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용이 하늘로 오르는 모양을 하고 있다는 봉우리 가 나온다. 밭에서 만난 마을 청년이 오늘같이 맑은 날엔 멀리 대마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등산에 젬병이면서도 한번 올라 보고 싶다고 하자, 산이 험하고 숲이 무성해 길을 찾기 어려울 거라며 만류한다. 대신 옆으로 돌아가는 산길을 30분 정도 가면 ‘비진암’이라는 암자가 하나 있다고 일러준다.

파래와 가사리를 이렇게 말려 상품으로 내다판다. 2006년 5월. 사진 / 이수인 기자
파래와 가사리를 이렇게 말려 상품으로 내다판다. 2006년 5월. 사진 / 이수인 기자

‘그까이꺼 대충 가다보면 나오지 않겠어.’ 씩씩하게 길을 나섰다. 밭이 끝나는 곳에서부터는 산길이다. 한참동안 올라가자 길이 두 갈래로 나눠진다. 잠시 망설이다 방향을 정하고 걷는데 어느 순간 길이 없어졌다. 잘못 왔다 싶어 되돌아가 다른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길을 찾을 수가 없다.

‘여기가 아닌가 베’ 하고 왔다 갔다 하기를 몇 차례. 금방 나온다는 암자는 고사하고 길조차 보이지 않는다. 분홍 꽃망울을 터트린 진달래꽃 주변으로는 커다란 말벌마저 윙윙거리며 날아다닌다. 쏘일까 무서워 가던 길도 포기하고 돌아나와 버렸다.

한참동안 산을 헤맸다고 생각했는데 채 5분도 걸리지 않아 산을 빠져나왔다. ‘지금까지 뭐한 건가’ 싶어 어이없어 하는데, 밭두렁에 매어 놓은 흑염소가 헐레벌떡 뛰어나오는 모양을 보고 ‘매에에~’ 하고 운다. 

외항마을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 조용히 잠들어 있는 고래같다. 2006년 5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외항마을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 조용히 잠들어 있는 고래같다. 2006년 5월. 사진 / 이수인 기자

내항으로 넘어가는 산길로 들어서자 발 아래로 등을 맞댄 두 개의 해수욕장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큰 숨을 내쉬어 본다. 그동안 묵힌 속의 것들이 뚫리는 듯 기분이 상쾌하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건너편 바다 위에 떠있는 작은 고래섬이 천천히 따라오며 길동무가 되어준다.    

이파리가 8개로 갈라지는 팔손이나무. 옛날 인도의 호기심 많은 한 시녀가 공ㅈ의 쌍가락지를 몰래 껴 보았다. 한번 끼워진 반지가 빠지지 않자 겁이 난 시녀는 반지 위에 다른 것을 끼워 감췄다. 반지를 찾는 왕 앞에 불려나간 시녀는 반지를 낀 두 엄지를 제외한 여덟개의 손가락을 내밀자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쳤고 시녀는 팔손이나무로 변했다. 2006년 5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이파리가 8개로 갈라지는 팔손이나무. 옛날 인도의 호기심 많은 한 시녀가 공주의 쌍가락지를 몰래 껴 보았다. 한번 끼워진 반지가 빠지지 않자 겁이 난 시녀는 반지 위에 다른 것을 끼워 감췄다. 반지를 찾는 왕 앞에 불려나간 시녀는 반지를 낀 두 엄지를 제외한 여덟개의 손가락을 내밀자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쳤고 시녀는 팔손이나무로 변했다. 2006년 5월. 사진 / 이수인 기자

내항마을 입구에 이르자 커다란 동백나무 사이로 키 작은 팔손이나무 두세 그루가 초라하게 서있다. 정말 이파리가 여덟 개로 갈라졌는지 궁금하여 몇 번씩 세어본다. 이곳이 팔손이나무의 군락 자생지라는데 나머지 나무들은 다 어디 있는 걸까? 주위를 둘러봐도 안내 표지판 하나 없다.  

봄갈이가 한창인 산비탈에서는 흰 수건을 깊게 둘러맨 동네 아지매가 밭을 매고 있다. 지난 가을에 심은 시금치를 수확하고 난 자리에 이제 콩을 심을 거란다. 텃밭 옆에서는 동백나무가 짧은 봄날의 기억을 뒤로 한 채 붉은 꽃송이를 뚝뚝 떨어뜨리고 있다. 그 모습이 처절하여 지나는 눈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지난 추석에 심은 시금치가 잘 자랐다. 한창 수확기이다. 2006년 5월. 사진 / 이수인 기자
지난 추석에 심은 시금치가 잘 자랐다. 한창 수확기이다. 2006년 5월. 사진 / 이수인 기자

뭍으로 나가는 마지막 배가 떠나자 노을이 진 바다에 서서히 어스름이 깔린다. 인적 없는 아늑한 바닷가엔 파도소리와 바다새 우는 소리가 이따금씩 들릴 뿐이다. 고깃배가 들어오는 것일까? 멀리서 통통거리는 뱃소리가 아련하다. 맵싸한 바람은 갔지만, 다가와 와락 안기지 않는 봄이 그동안 못내 서운했다. 봄은 남에서부터 온다는데….

먼 남해의 바다에 가면 봄을 느낄 수 있을까 기대했다. 물러가는 추위가 심통 맞게 던져놓은 감기까지 달고 내려온 여행길. 하지만 비진도는 그동안의 서운함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후하게 봄을 퍼주었다. 참 고맙다.

Info 가는 길
남해고속국도 사천IC → 사천(3번국도) → 사천읍(33번국도) → 고성(14번국도) → 통영
여객선 _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차례씩 배가 들고나간다.
통영 → 비진도(7시, 14시) / 비진도 → 통영(9시, 16시)

비진해수욕장 가운데로 난 이 길을 사이에 두고 몽돌밭과 모래밭이 나눠진다. 2006년 5월. 사진 / 이수인 기자
비진해수욕장 가운데로 난 이 길을 사이에 두고 몽돌밭과 모래밭이 나눠진다. 2006년 5월. 사진 / 이수인 기자

Tip.
비진도는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성수기에는 입장료를 받는다. 매표소가 있는 곳은 외항 선착장 한 곳뿐. 그래서 내항에서 내리면 입장료를 내지 않게 된다. 단, 비수기에는 입장료가 없다.

● 숙식 _ 비수기의 비진도는 문을 연 음식점이나 가게가 따로 없다. 그래서 식사를 하려면 민박집의 가정식을 이용해야 한다. 숙식을 동시에 해결할 수도 있지만 식사만 할 수도 있다. 만약 한나절만 들르는 짧은 여행이라면 간단한 음료와 먹을거리를 챙겨가는 것이 좋다.  

● 맛집 _ 통영은 충무김밥의 원조고장이다. 중앙시장 김밥집 대부분이 ‘원조’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다들 TV 맛집에도 한두 번씩 나왔다. 하지만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김밥집은 중앙시장 문화마당 앞 <한일김밥>이라는 흰 간판을 단 집이다. 포장만 가능하다.

이파리가 8개로 갈라지는 팔손이나무. 옛날 인도의 호기심 많은 한 시녀가 공주의 쌍가락지를 몰래 껴보았다. 한번 끼워진 반지가 빠지지 않자 겁이 난 시녀는 반지 위에 다른 것을 끼워 감췄다. 반지를 찾는 왕 앞에 불려나간 시녀는 반지를 낀 두 엄지를 제외한 여덟 개의 손가락을 내밀자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쳤고 시녀는 팔손이나무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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